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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123 님의 서재입니다.

구간반복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현대판타지

rabbit123
작품등록일 :
2017.11.19 13:46
최근연재일 :
2017.11.19 13:5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412
추천수 :
0
글자수 :
10,384

작성
17.11.19 13:48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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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쪽

구간반복

DUMMY

빨리 술을 마시고 싶다는 대답은 어쩌면 제일 우선가는 대답이었다. 가장 먼저, 당장, 생각할 것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이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술잔이 깨지는 상황은 애초부터 머릿속에 없었다. 나는 노래 불러야 했다. 시간 빨리 지나가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어서 시간이 가서 어서 빨리 이 유리조각을 치우고 최대한 내 범행이 들키지 않게 여건을 조성하고 최소한만 이 예상 외 시간에 노력을 할애해, 나는 어쨌거나 하고 싶은 술을 마시는 내 욕망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컷 흥얼거리며 단단히 박힐 준비를 하는 유리조각들을 치워 나갔다. 떠들고 싶은 노래가 뚝 끊겼을 때, 이번에는 숫자를 크게 세기 시작했는데 강박처럼 뚜벅뚜벅 돌아가는 초침을 의식해 박자처럼 내려친 손뼉에는 확실히 순서가 있어 나는 1도 세고 2도 세고 3도 세가며 단위 있는 측정도구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나는 확실히 강박증은 아니었고 얼개 없는 몸에 규칙적인 박자가 오래 갈 리도 없어 금방 흐트러진 나는 맨땅이나 마저 쓸어야 술병을 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허공을 한 번 할퀴고 나서는 내게 “귀엽다.”고 한 마디를 건넸다. 그리고서 술병을 딸 수 있었다.

허튼 혼잣말의 뒤끝이 깔끔했다. 한창 세던 숫자가 술병이 열림과 동시에 100에 멈췄기 때문인데 나는 이 단정한 허튼짓을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고 재미 들려 이번에는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는 시간을 또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독한 위스키가 식도를 채우는 순간에도 다시 이 숫자세기를 시작해 술이 꿀꺽 넘어가는 동안 나는 또 ‘하나, 둘, 셋, 넷’.

정리 되지 않은 산더미 같은 생각도 가지고 담아둔 말도 하릴없이 많은 나는 오직 순서만은 가지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세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틀리지도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실행할 수 있을까.

우선 얼룩으로 위에서부터 뿌연 거울을 흘낏 흘겨보고는 “귀엽다.”라는 한 마디로 순서를 어겨주고서.

“다 죽여 버리게.”

다 취해 나자빠진 매무새에 칼 같이 머리를 쪼개 조각조각 기억이 나게 하는 위스키 특유의 취기에 어설픈 손끝을 맡기고 기억나는 어제를 모른다고 발뺌할 수 있다면 나는 진짜로, 내 말대로, 혹은 발광 같은 주책대로 다 죽여 버릴 수 있는 것인지.

하찮은 모기가 대답을 한 대도 나는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다 죽여 버리겠다.”는 호언을 명성처럼 가슴팍에 새겨서 짐승 같은 당장의 욕망을 두서없이 실현하며 늘어놓기는 “하나, 둘, 셋.”이라고 차례가 있는 것처럼, 계획한 것처럼, 다가올 결말이 있는 것처럼 떠벌이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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