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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쓰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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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9.01.25 17:46
최근연재일 :
2019.01.30 19:38
연재수 :
8 회
조회수 :
420
추천수 :
0
글자수 :
21,543

작성
19.01.25 17:48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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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전생과 현생

DUMMY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다.


언제나 약을 달고 다녔고 학교 출석부보다 병원 차트에 적힌 이름이 더 많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병은 악화됐다. 심장마비가 코앞이었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의사나 간호사는 모두 친절했지만, 그는 더이상 자신의 꼴을 참을 수가 없었다. 허약한 심장이 저주스러웠다.


이 빌어먹을 심장을 죽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이고도 남으리라.


그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기적적으로 완치되길 빌고 또 빌었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그의 희망은 매연으로 가득한 밤하늘만큼이나 새까맣게 물들었고 평소 신을 찾지 않던 그였지만 세 번째 심장마비를 겪고 나서 그는 신을 찾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는 방법은 몰랐다.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소망을 조그맣게 속삭였다.


같은 병동의 사람들은 처음엔 남자를 신경쓰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사람들도 남자를 따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병동은 '기도하는 병동'이란 명칭이 붙었고, 얼마 후 남자는 네 번째 심장마비를 겪었다.




* * *




"으흠."




소녀의 자줏빛 눈동자가 남자를 훑었다.


남자는 침을 삼켰고 소녀는 팔짱을 꼈다.




"심장마비라. 간단한 사인이네."




소녀가 말했다.




"근데 세 번이나 견뎠다? 대단하네. 진짜 아팠을 텐데."


"···여기는···."




남자가 말했다.




"어디입니까?"


"그게 중요해?"




소녀는 남자와 마주보는 의자에 앉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보다, 네 불만은 뭐야?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서 여기까지 온 거지?"


"···불만 말입니까?"




남자는 문득 일생을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많습니다. 네. 아주 많이요."




남자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왜 제 심장은 이런 겁니까? 네? 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죠?"


"음··· 방화에 강도에··· 거기다 강간에다 살인, 어린이 납치 후 살해, 시체 유기···."




소녀가 말했다.




"이 정도? 억울하면 네 전생한테 가서 따져."


"···제 전생이 그렇다는 소립니까?"


"대충 본 바로는 그렇지. 아주 악질이던데."


"하···."




고작 전생 때문에?


난 기억도 못하는데?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떨리는 입술을 느끼면서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러면··· 제 전생은 어떻게 만납니까?"


"어라, 왜? 진짜 만나려고?"




소녀가 물었다.




"만나봤자 좋을 것도 없을 텐데."


"그래도 만나야겠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왜 네 죄를 내가 대신 갚아야 되냐고 묻고 싶습니다."


"음, 그래? 뭐, 좋아."




소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남자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그게 네 불만이고 소망이라면 들어줘야지. 난 그걸 위해 존재하니까."




소녀의 말이 끝나자 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정수리가 따뜻해짐을 느끼고 소녀를 올려다보았지만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만남은 쉽게 이루어졌다.


전생을 기록하는 도서관에 도착하자 다시 소녀가 나타나 남자를 안내했고, 소녀는 남자에게 도서관 한쪽, 구석에 꽂힌 '인간 백과'란 제목의 두꺼운 책을 건네주었다.




"펼쳐 봐.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남자는 붉은색 겉표지의 책과 소녀를 한 번씩 번갈아보았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침을 삼키고 책을 펼쳤다.


책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남자는 빠르게 눈을 돌려 소녀를 보았지만 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남자는 침으로 입술을 적시고 연기를 바라보았다.


연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적당한 크기의 몸통이 생겼고 팔과 다리, 머리가 생겼다.


연기는 군데군데에 뚫린 구멍을 나머지 연기로 메웠다.


연기는 눈이 있을 만한 부근에 시커먼 구멍을 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여긴 어디지?"




남자는 책을 내려놓고 연기를 올려다보았다.




"이름."


"뭐?"




연기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넌 뭔데 새끼가 초면부터 반말이냐?"


"너야말로 이 개새끼야. 왜 내가 너 같은 쓰레기 새끼가 진 빚을 갚아야 되냐?"


"뭐라고?"




연기는 미간으로 보이는 부분에 주름을 잡고 남자에게 다가왔다.




"다짜고짜 욕부터 박냐? 너 새끼 뭐하는 새낀데? 뒤지고 싶냐?"


"미친 새끼."




남자는 연기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손이 닿자 연기는 부스스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연기는 다시 형체로 돌아갔고 남자는 이빨을 갈며 소녀를 보았다.




"이 새끼 만지는 건 안 되는 겁니까?"


"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창문에 등을 기대고 있던 소녀가 말했다.




"그건 영혼이야. 너도 물론 영혼이지만 아직 생령이지. 생명이 담긴 영혼은 생명이 없는 영혼을 직접적으로 만질 수 없어."


"개씨발."




남자는 다시 연기를 보았다. 연기는 뭉클거리는 주먹을 쥐고 휘두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남자의 몸엔 걸리지 못하고 계속 통과해 미끄러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남자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소녀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건 네가 원하던 것의 결과물이야. 해결도 네가 알아서 해야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남자는 소녀를 보았다.




"제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을 겁니다."


"그야··· 응. 그렇긴 하겠네."




소녀는 팔짱을 끼고 오른팔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그러면··· 음, 하실?"




소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의 오른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속에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하실은 소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예, 리엘 님."


"쟤들 학교로 데리고 가."




하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럼 둘 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불만이 안 사그라들 것 같다잖아."




리엘은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꺼내 껍질을 벗기고 하실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러니까··· 자, 선물."


"···감사합니다."




한쪽 볼이 볼록 튀어나오게 사탕을 물은 하실이 무릎을 털고 일어나 남자와 연기를 보았다.




"가자."


"···학교가 대체 뭡니까?"




남자가 물었다.


연기는 그때까지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욕지거리도 토해 내는 중이었다.


하실은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르륵.


남자와 연기가 온갖 그림자에서 솟아난 사슬에 묶여 고정됐다.




"이 개 같은 년···."




연기의 얼굴 부분이 사슬에 감겼다. 연기의 욕지거리는 사라졌고 남자는 침을 삼키며 하실을 보았다.




"그, 그래서 학교가···."


"대체 뭐냐고?"




리엘은 팔짱을 풀고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있어. 요즘 떠오르는··· 영혼 집단 자살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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