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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 님의 서재입니다.

천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yyhh
작품등록일 :
2019.03.22 13:01
최근연재일 :
2019.03.29 06:19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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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76

작성
19.03.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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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동토에서.

DUMMY

끓어오르는 분을 삼키는 헤로스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헤로스의 마른 입술 사이로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내 시야를 가리는 듯 하더니 선 굵은 눈썹에 하얀 이슬처럼 서리로 내렸다.


잠시의 멈춤에도 얼어붙을 듯 에이는 날씨.


차디찬 바람이 우뢰처럼 다가와 귓가를 때리고 전신의 세포를 파괴한 듯 몸을 굼뜨게 한다.


그저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 바람은 이렇게 전하는 것 같았다.


동토에서의 전투.


모든 것이 희디 흰 눈 아래 가라앉아 버린 이곳은 가만히만 있어도 온 몸의 마디마디가 굳어 가고 아득해지는 정신 줄을 부여잡기에도 벅찬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헤로스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이라 여기며 목 놓아 울부짖을 듯 싸웠지만 매 번 지고 매 번 후퇴를 거듭하며 여기 동토의 끝자락까지 밀려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둘러싸던 화려함과 안온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해버리다니.


작은 실수가 빚은 엄청난 참상에 헤로스는 말을 잃었다.


그를 따르는 군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전세를 알아 챈 눈치 빠른 귀족들은 백기를 들고 파르세치온의 뒤에 숨어 그의 눈과 귀와 다리가 되었고 그의 충직들은 그를 따르다 죽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왕비 베르나르체는 ..... 이미 파르세치온의 여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을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왕이시여. 괜찮으십니까?”



얼마 남지 않은 헤로스의 사람, 슈가란테가 다가왔다.


차디찬 날씨에 적들도 전의를 잃은 듯 아까부터 꼼짝 않고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


얼음 바람에 패인 얼굴의 상처가 아픔 마음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그의 굵고 큰 검은 눈동자가 넓은 호수마냥 물을 머금었다.


소리 내어 울고 있지만 않을 뿐 아까부터 그의 온 몸은 울고 있었다.


그의 생애 단 한 번도 패배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것이 자만을 부른 것일까?


적과 대치하고 있는 하얀 얼음의 땅이 온통 핏빛으로 흔건하고 피울음을 삼킨 비린내가 대지를 진동했다.


그를 따르던 사랑스런 부하들과 그의 분노의 칼에 떨어져 나간 파르세치온 사람들이 서로 주검으로 엉켜있다.


그것이 헤로스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전의를 향한 불 소시개가 되어 주었고 파르세치온의 사람들에게는 공포로 남았다.


10배도 넘었던 파르세치온의 사람들이 거의 반 토막에 이르자 파르세치온의 진지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쯤 했으면 항복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요. 그러니 이만 돌아갑시다.”


“마찬가지지 항복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소.


“더 밀고 들어가서 얻을 것이 없소”


“헤로스의 주검을 보고 그의 목을 베어 오라는 파르세치온 대사제의 명을 어길 셈이요?”


“그의 주검을 보기 전에 여기 있는 모두가 주검으로 돌아갈 수도 있소”


“....”


“아까 전투에서 이미 모두 전의를 잃었소. 헤로스의 괴력을 보지 못했소?”


“그러니 마지막까지 몰아붙여야지요. 만약 살려 두었다 후일을 도모하면 어쩌려고요”


“이미 그의 세력은 이 나라에 없소. 저기 있는 저들이 다일뿐이요.”


“하지만....”


“저들이 살아남는다 해도 세력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요. 더군다나...”


“....?”


“지금 우리가 이대로 돌아간다 해도 우리 군사들 많은 수가 길거리에서 죽어 나갈 거요”


“그게 무슨?”


“그들은 억지로 싸우고 있소. 그들의 눈빛은 아직 헤로스를 따르고 있소. 그들 눈에 서린 존경의 빛과 두려움의 빛을 그대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말이요?”


“.....!”


“죽음에 몰려 싸우기는 했지만 배신자라는 마음의 짐을 벗지 못한 채 굶주리며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쉽지 않을 것이요. 삶의 의욕을 지켜가기 힘드오. 그리하여 많은 자들이 길거리에서 주검으로 버려질 것이요”


“배신자라니? 누가 배신자란 말이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요”


“누가 들으면 정말......큰일 날 소리.... 말 좀 조심하시오”


“....그리고 저들의 뒤에는 숲이 있소. 어차피 저들을 뒤로 몬다고 해도 마직막에 저 빽빽한 잣나무 숲으로 숨어 버리면 더 이상은 쫓을 수 없소. 저런 싸움터는 적은 수의 군사가 매복하기 쉬워 큰 수의 군사라 해도 지는 것이 보통이요. 더군다나 정신력까지 약하면....”


“왜 매 번 지는 것만을 이야기하시오?”


“현실을 보라는 뜻이요. 이기려고 마음먹었으면 아까 그들이 강을 건너기 전에 끝냈어야 했소.


“강은 이미 얼었기에 그저 땅이나 다름없소.


“의지력 없고 며칠 굶었고 힘이 빠지고 두려움에 떠는 군사가 미끄러운 얼음판을 건너 싸워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시오?”


“그건...”


“아까보지 못했소. 저 곳을 건너며 죽어 나간 군사가 몇인 것 같소. 이 전의 전투에서는 우리가 모두 이겼지만 저 얼음을 사이에 두고는 우리가 모두 졌소. 군사의 대부분을 저 곳에서 잃었소. 헤로스도 그 것을 알기에 코앞에 있는 잣나무 숲으로 숨어들지 않고 보란 듯 서 있는 것이요.”


“그건...”


“헤로스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소. 그는 지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울 것이요. 그러니 그는 여기서 죽기로 싸울 것이요.”


“....”


“그러나...우리는 살고자 하오. ...그러니 누가 이기는 싸움이겠소?”



파르세치온은 완벽한 승리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헤로스의 죽음만이 답이었다.


억지로 세운 자신의 계략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와 헤로스가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진즉 한 배를 탄 총리대신의 아우 잔피우스와 자신에게 충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블론셔만을 함께 헤로스와의 전투에 내보냈다. 그만큼 완벽을 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의견을 갈리게 하고 설전으로 기회를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그는 아직 몰랐다.


이번 설전뿐이 아니었다.


매번 공을 다투고 과를 나누는 설전은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잔피우스는 블론셔만에게 넉넉히 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재목이 아니라는 것이 더 옳았다.


블론셔만은 형의 세력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잔피우스가 자신과 같은 급으로 대우 받으려는 게 불만이었다.


실력이나 경험으로나 나이로나 무엇 하나 자신보다 나은 것이 없었다. 잔피우스는 애송이였다.


그와의 설전으로 지친 블론셔만은 슬슬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잔피우스가 이럴진대 파르세치온도 나을게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헤로스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의 명령에 따르던 부하들의 눈초리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명령만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배반 한 사람은 또 배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잔피우스는 잔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싸움은 블론셔만 말대로 물러나는 것이 맞다.


너무도 자명하다.


이긴다 해도 파르세치온 군사의 많은 수를 잃을 것이다.


허나 염려되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살아 돌아간들 파르세치온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문제이다.


헤로스를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한 추궁이 들어왔을 때 무언가 구실이 필요했다.


그때를 대비해서 잔피우스는 블론셔만과 설전을 벌이는 것이다.


지금은 멍청해 보이겠지만 나중에는 내가 더 현명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잔피우스는 그 때 블론셔만의 핑계를 댈 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이 멍청한 녀석은 속도 모르고 자신의 덫에 잘도 걸려들었다.


어두움이 몰려들고 있었다.



“왕이 시여. 어쩌시렵니까? 이제 곧 어두워질 겁니다.



헤로스도 하늘의 빛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 칠흑 같은 밤이 오면 서로의 존재조차 구분 못할 정도로 어두워질 겁니다.


“...”


“그리고 저들은 불을 피운다 해도 저희는 피울 수 없습니다. 위치를 들키면 수가 적어 위치가 노출되고 그러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밤이면 더욱 추워질 겁니다. 추위에 살아남기도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어쩌자는 것이냐?”


“숲으로 들어가 다음 방법을 강구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다음 방법은? 게서도 불을 피울 수는 없다. 그리고 짐승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 보다 움직이는 것이 얼어 죽지 않을 가망성이 더 높습니다. 숲속에서는 몸을 숨기기가 쉬워 저희가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음...”


“정녕 여기서 끝을 보실 겁니까? 분하셔도 다음을 강구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네 말이 맞다”


“그러면?”


“어두움이 몰려와 서로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될 때 즈음에 움직일 것이다. 신호는 휘파람으로 한다. 병사들에게는 임박해서 일러두어라. 움직이기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 저들은 우리가 숲으로 들 거라는 것을 몰라야 한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두움이 다가올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차가워졌다.


삼사 일에 한 번 꼴로 해가 지는 이곳.


덕분에 삼사 일을 한줌의 양식과 눈을 녹여 삼키며 가까스로 버티었다.


몸을 휘감던 살집은 점점 여위어져갔고 앙상한 얼굴에 살기를 띈 두 눈만이 더 바짝 일 뿐이다.


죽기를 각오했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던 자들을 모두 사지로 내몬 자로서의 책임감이라는 게 있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더라도 하찮지 않게.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마음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항상 그렇듯 감정만을 내세울 수 없다.


감정에 휘말릴 수는 없다.


뇌가 없는 자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나만의 일이 아니다.


헤로스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날들이어도 함께 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무책임이라는 단어로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후회스런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긴다.


들끓던 머리가 한결 시원해졌다.


슈가란테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어두움이 내리는 것은 본 잔피우스가 반색을 했다.


“이제 어두워지니 오히려 잘 되었소”


“무엇이 말이요?”


“어두워지면 기습 작전을 펼치는 거요”


“기습작전? 그들은 가만히 당하고만 있답니까?”


“그러니 꾀를 내야지요. 저들은 기습을 못합니다. 허니...”


“허니?”


“우리가 기습을 합니다.


“그게 꾀요?”


“저들이 우리가 기습할 것을 모르게 하고 기습을 하면 되지요”


“어떻게요?”


“우리는 자는 것처럼 쉬는 것처럼 하고는 기습하자는 거요”


“그러니 어떻게요?”


“추격 조를 뺀 나머지는 불을 피워 쉬는 모습을 보이는 거지요. 그러면 아마도 속지 않겠소?”


“쯧쯔. 아직도 헤로스를 모르시는 거요. 너무 과소평가하십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 한들 헤로스는 헤로스요. 천하무적인 헤로스”


“천하무적? 지금 헤로스를 따르는 자가 몇이라 생각하오?”


“마음대로 하시오. 내 생각은 다르니. 난 그저 잠이나 자야겠소. 먼 길을 가야하니”


“그러다 기습이라도 당하면?”


“한 명의 군사라도 살리려 들 텐데 기습이요? 그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때는 쓰는 수법이지요. 지금의 헤로스는 남은 한 명이라도 살리려 들게요. 살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만약 죽고자 한다면 그냥 버틸 것이고. 나는 자러 가오. 마음대로 해보시오”



수십 년의 세월을 헤로스 곁에서 녹봉을 받으며 살던 자다.


아무리 지금은 적으로 있다고 하지만 그를 모를 리 없었다.


블론셔만은 시간이 갈수록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파르세치온 편에 서는 것을 이리도 서둘렀다는 말인가?


헤로스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슬슬 발을 빼거나 뒤로 물러 날 궁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생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블론셔만이 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 못 들고 뒤척일 때 잔피우스는 기어코 기습을 감행할 모양이었다.


막사 밖이 소란스러웠다.


일을 감행할 이들에게 특별한 음식이 제공되는 듯했다.


하기야 그래야 이 어두움을 뚫고 나설 용기라도 생기겠지.


어두움이 거의 내렸을 때 멀리서 세찬 바람 소리인지 휘파람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졌다.


고향의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총총히 떠오랐다.


내일은 길을 나설 것이다.




오랜 기간 숙성시켜 가며 연재할 생각이며 따로 연재 주기를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작품 하나를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미리 오픈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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