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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연랑 님의 서재입니다.

시간을 담은 도깨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오기연랑
작품등록일 :
2021.10.16 18:36
최근연재일 :
2021.12.10 07:30
연재수 :
63 회
조회수 :
2,285
추천수 :
23
글자수 :
312,416

작성
21.11.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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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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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부 #16

DUMMY

백하도령과 함께 도착한 곳은 황무지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공장들 앞이었다.


이 세계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공장들이 늘어서 있지만, 흡사 버려진 듯 황량하기만 할 뿐이었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굴뚝이 수두룩하지만, 어느 곳 하나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도 보이지 않고, 그저 황량한 바람만이 머물다 갈 뿐이었다.


도깨비불이 되어 뒤따라온 한울과 솔이가 '펑'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누비도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누비는 솔이 손을 붙잡고 도깨비불이 된 것 자체가 꽤나 놀라운 경험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기 있어요?"


나래가 백하도령을 보며 묻는 말에, 백하도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현서야~"


여왕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열린 공장지대 문을 통과해 무수히 늘어선 공장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계속 이름을 불렀다.


"현서야~"


그 뒤를 쫓아 백하도령과 나래, 솔이와 한울, 누비가 뒤따랐다.


뒤따라 걷던 백하도령이 누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대의 시간을 돌려줄 테니, 여왕을 도와주거라."


백하도령의 말에 누비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백하도령을 바라보다가 이내 의지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하도령의 손길이 닿자, 누비의 몸에서 안개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모습이 변하였다.


온전한 개의 모습이 된 누비는,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누비는 후다닥 달려가 여왕 곁으로 가서 꼬리를 흔들었고, 여왕은 누비를 보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어머, 어디서 왔어? 귀엽다."


여왕이 머리를 쓰다듬자, 누비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어 대더니, 가볍게 짖어댔다.


뒤따라온 나래가 여왕을 보며 말했다.


"누비에요."


"누비? 이름 이쁘네."


여왕이 귀엽다는 듯이 연신 누비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번엔 백하도령이 나서 말했다.


"아들 찾는 걸 도와주려나 봅니다."


백하도령의 말에, 여왕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어머, 정말요? 너 정말 현서 찾는 걸 도와줄 거야?"


그러자 누비는 기쁜 표정으로 왕왕 짖고는, 코를 바닥에 대고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누비가 앞장서서 가자, 그 뒤를 여왕이 뒤따랐고, 여왕 뒤로 백하도령과 나래, 한울, 솔이가 따라 걸었다.


"그런데, 정말 여긴 뭐하는 곳일까요? 갑자기 웬 공장들이..."


그러다가 줄지어 선 공장들을 지나쳐 그 너머로 나오자, 또다시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흡사 놀이공원에서나 볼 것 같은 놀이기구들이 공장들 너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공장들처럼 모두 회색빛으로 물들어 멈춰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나래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꿈공장이야."


모두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토끼 한 마리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이든?"


나래는 그 토끼를 알아보았다.


토끼굴에서 나래를 도와줬던 이든이었다.


"다시 보게 될 줄 알았어."


이든의 말에 나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왜?"


"그냥. 왠지 그럴 거 같았거든."


나래는 피식 웃고는 주위 공장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가 꿈공장이라고? 그럼 꿈을 만드는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나래는 다시 이든을 돌아보았다.


"어떤 의미?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말하는 꿈이란 게, 단지 잠들었을 때 꾸는 꿈을 의미하는 거라면, 그거랑은 조금 달라."


"어떻게 다른데?"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상상이랄까? 우리는 인간들이 꿈꾸는 모든 것들을 만들었어."


"그럼 지금은? 왜 안 만들어?"


"이젠 못 만들어."


"왜?"


이든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상상할 시간이 부족해졌어. 그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었고, 시간낭비처럼 여겨졌지. 그들은 '교육'을 통해서 정해진 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어. 우리가 가져다주는 상상들은 망상 따위로 취급되곤 했지. 해서는 안될 것이 되어버렸어. 이제... 달창을 넘나드는 토끼는 보기 힘들어졌지."


"달창?"


"응. 달창이 활짝 열린 날엔, 가끔 인간들도 우릴 볼 수 있긴 하지. 보통은 우리가 인간들에게 꿈을 배달해줘."


"꿈을 배달한다고?"


"그래, 우린 때때로 아주 이쁘고, 행복한 꿈을 만들어서 가져다주곤 했어. 그래서 인간들은 우리를 복(福)의 상징처럼 여겨주곤 했지. 뿌듯했어. 하지만 이젠... 인간들은 더 이상 상상을 하지 않아. 그들은 그런 걸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니까."


나래는 왠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래도 학창 시절엔 가끔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곤 했는데,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화들짝 놀라 머리를 때리며 공부에 집중하려 애쓴 적이 많았다.


잠시 회상하던 나래가 주위를 둘러보니, 회색빛으로 멈춰버린 공장과 놀이기구들이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나래의 물음에 이든이 따라서 공장들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힘들겠지."


나래가 이든을 돌아보았다.


"왜?"


이든 역시 나래를 보며 대답했다.


"갈수록... 인간들은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지고 있거든. 시간은 늘지 않았는데, 같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지. 갈수록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질 테니... 상상할 겨를이 없겠지."


"꿈은 꿀 거 아냐?"


"과거에는 인간들이 다양한 상상을 토대로, 꿈도 다양하게 꾸었지만... 인간들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들이 꾸는 꿈마저 정형화되어 갔어. 수많은 미디어들이 인간들의 상상을 대신하게 되었고, 새롭게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았어."


그때 누비가 왕왕 크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찾은 모양이구나."


백하도령이 발길을 재촉하자, 모두 뒤따라 총총히 소리 난 곳으로 향했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공장의 한쪽 구석이었고, 거기에는 여왕과 누비가 나란히 서서 구석 어두컴컴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커먼 그 형체는 흡사 그림자 같으면서도 입체감이 있었고,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는, 눈과 입부분만 하얀빛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정확한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며 여왕이 한걸음 다가갔다.


"현서야... 이리 와."


그녀는 양팔을 벌려 아이를 안아주려 했지만, 아이는 웅크린 체 그녀를 보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또 때릴 거잖아?"


그 말에 여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얼굴에 시름이 깊어지자, 백하도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낙심해서는 안돼. 그럼 다시 위험해질 수 있어."


그의 말대로 아이의 발밑에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여왕에게로 스멀스멀 다가가고 있었다.


나래는 얼른 여왕 뒤로 다가가 말했다.


"아이가 미워서 때린 건 아닐 거잖아요?"


나래의 말에 여왕은 슬픈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이에요. 나는.... 나는..."


여왕이 망설이는 사이,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난 열심히 했어. 배고파도 참았단 말이야."


아이가 원망하듯 하는 말에 여왕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건 스스로 생각해낸 거야, 저 아이의 진심이 아니야.'


나래는 그림자의 실체를 알아보며 어떻게든 여왕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런 나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다가온 백하도령이 나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모든 것은 순리대로 풀릴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여왕님이 무너지고 말 거예요."


"너도 알다시피, 저 그림자 또한 여왕의 내면이다. 이제 그녀의 내면을 내가 내어 놓을 것이니, 네가 모든 부정한 것들을 쫓아내거라."


백하도령의 말에 나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여 보였다.


백하도령의 반대쪽 손이 여왕의 어깨에 가 닿았다.


그 순간, 사방의 풍경이 달라졌다.


붉은색과 주황색 사이에 그 어떤 색상이 주위를 감싸고, 약간 뜨거운 기운이 밑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여왕과 아이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게 뭐야?"


따져 묻는 여왕의 물음에 아이는 겁을 먹은 듯 쭈뼛거렸다.


여왕의 손에는 성적표가 들려 있었고, 아이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인 체였다.


옆으로 동생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기껏 학원 보내서 공부시켜놨더니, 성적이 이게 뭐야?"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여왕의 손에 회초리가 들려졌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엄마."


울며 양손으로 사정하듯 빌고 있는 아이의 종아리에 사정없이 회초리가 날아들었다.


'짝'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주위의 뜨거웠던 기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고, 주황빛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울던 아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훌쩍 거리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을 바라봐야 했다.


여왕이 지나는 길에 아이를 흘겨보니,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위로가 필요했던 그 순간에 여왕은 차디찬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내 녀석이 그거 몇 대 맞았다고 울고 있어? 얼른 집중해!"


아이는 얼른 고개를 숙여 책에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형아면 형아답게 굴어야지."


여왕의 질책이 끝없이 이어지고, 아이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나래는 마음이 아팠다. 왜 그랬을까? 그 시절엔 그게 당연한 것이었을까?


아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빛은 증오로 물들었고, 표정은 험악해져 가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나래는 아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왕을 보았다.


함께 서 있는 여왕은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고, 나래는 이것이 어쩌면 여왕이 만들어낸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한 생각은 하지 마요.'


나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아이를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허공으로 흩어졌고, 아이는 다시 원래의 훌쩍이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여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래 곁에 있던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현서야..."


여왕이 울며 다가가자,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아이가 달려와 여왕의 품에 쏙 안기자, 여왕은 그런 아이를 다독거리며 따라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현서야. 엄마가 미안해."


나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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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2부 #27 21.12.06 4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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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부 #18 21.11.22 45 0 10쪽
49 2부 #17 21.11.18 44 0 11쪽
» 2부 #16 21.11.17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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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부 #14 21.11.15 41 0 11쪽
45 2부 #13 21.11.11 45 0 11쪽
44 2부 #12 21.11.10 44 0 11쪽
43 2부 #11 21.11.09 62 0 11쪽
42 2부 #10 21.11.08 4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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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부 #7 21.11.02 4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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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부 #5 21.10.28 47 0 11쪽
36 2부 #4 21.10.27 4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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