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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4왕자가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유신언
작품등록일 :
2021.05.22 17:51
최근연재일 :
2021.06.28 07:15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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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44
추천수 :
1,569
글자수 :
240,661

작성
21.05.27 18:50
조회
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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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글자
13쪽

2. 모두의 계획이 틀어진 밤 (3)

DUMMY

순간 주변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영문 모를 반응에 난 잠시 갸웃했다.


‘왜들 이래.’


함께 잔혹한 전투를 겪고 전우애가 조금이라도 싹튼 줄 알았는데, 왜 경멸하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걸까.


심지어 지혜운 마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구호영에게 나쁜 짓이라도 하려는 거 같잖······아!’


그제야 깨달았다. 연세희가 병약하면서도 여자를 밝히는 호색가로 왕성 내 유명했다는 것을!


잘못 말했다. 침소를 콕 짚어서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괜한 오해를 사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변명을 하는 게 여러모로 더 이상하겠지.


“네, 알겠습니다.”


다행이랄까, 구호영이 먼저 불편한 침묵을 깼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내 뒤로 구호영이 따라붙은 게 느껴졌다.


귀빈실 앞에 도착한 난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다. 이어 구호영도 방에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오해한 건 아니지?”

“오해, 말인가요?”

“했구나.”

“평소 여색을 즐기신다고 들은 바는 있습니다.”


꽉 찬 돌직구가 구호영의 입에서 튀어나와 나를 한 대 쳤다.


그런데 난 그 대답이 당혹스럽다기보다는 흥미로웠다.


구호영 이 녀석은 나에 대한 그런 소문을 익히 알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곳에 온 거니까.


“그럼 내가 너한테 평소대로 행동하면 어쩌려고 여길 온 거야?”

“왕자님께서 부르셨으니 왔습니다만. 혹시나 제게 색정을 느끼시더라도 응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전 호위대원이지 기녀가 아니니까요.”


얼굴색은 변해도 내게 한마디 말도 못 꺼내던 밖의 사내들과 다르다.


구호영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었다.


‘왕자든 뭐든 상관없다는 거네.’


피식 웃음이 났다. 소설을 읽으며 했던 상상보다 훨씬 재밌는 녀석이다.


저게 허세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음흉하게 굴었다면, 구호영은 소신껏 나를 쥐어팼을지도 모른다.


“잘 알고 있어. 나도 널 내 호위무사로만 보고 있고. 그저 몇 가지 말을 하려고 부른 것뿐이야.”

“네.”

“그래서, 혹시 지혜운이나 다른 사람한테 나에 대해 얘기한 것 있어?”

“그건 왕자님의 힘에 대해서 말씀인가요?”


맞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구호영도 놀랐겠지. 병약하다고 알려진 제4 왕자가 갑자기 괴한들의 공격을 다 쳐낼 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니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신기했을 텐데?”

“왕자님께서 일부러 숨기셨던 거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셨을 테니까요. 제가 밝혀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짝짝짝.


난 만족스러움을 담아 손뼉을 쳤다. 눈앞의 인재가 무예도 판단력도 아주 뛰어났고. 그 덕에 내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아는 사람의 수가 더 늘어나지 않게 됐으니까.


지금의 난, 힘을 숨길수록 생존에 더 유리했다. 당장 나에 관한 정보가 널리 퍼지는 건 막아둬야 했다. 물론 언젠간 터질 진실이겠지만.


“합격.”

“합격, 이신가요?”


구호영은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이었지만, 살짝 아리송하단 어조였다. 난 웃으며 그에게 답했다.


“그래. 합격했으니까 구 산원에게 특별 임무를 줄게.”

“명 받겠습니다.”


구호영이 나를 향해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앞으로 한 시진 뒤, 날 이곳에서 몰래 빠져나가게 해줘.”

“이곳이라 하심은, 주둔지를 나가신다는 말씀인지요.”

“맞아.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만. 지금 난 아까처럼 힘을 쓸 수 없으니까 구 산원의 도움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구호영은 군말 없이 내 명령을 받았다.


내가 구호영에게 할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난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어.”

“말씀하시지요.”

“칼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검술을, 말인가요?”


대외적으로 연세희는 병약 왕자다. 그렇기에 대외적으로는 검술을 배우거나 단련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세희 속 진짜 나, ‘진시혁’은 더더욱 검술과 연이 없었고.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선, 나도 내 몸을 지킬 수단이 필요하다. 아까처럼 습격을 받았을 때, 칼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가르쳐줄 수 있겠어? 이것도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왕자님께서 원하신다면, 틈틈이 알려드리지요.”

“그래? 고마워. 구 산원이 가르쳐준다면 걱정 없겠네. 아까 싸우던 모습만으로도 무예가 상당하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난 웃으며 구호영을 치켜세워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농담이나 가벼운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실력 확실하고 입도 무거우니 그것으로 됐다.


“자, 그럼 괜한 오해 받기 전에 돌아가 쉬어. 한 시진 뒤에 다시 보자고.”

“네.”


구호영은 내게 대답한 뒤 바로 귀빈실 밖으로 나갔다.


한 시진이면 겨우 2시간. 들어가 쉬라곤 했지만 구호영이 편히 쉬긴 어렵겠지.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라면 밤에 나 혼자 움직였겠지만, 내 계획과 다르게 반지의 힘을 일찍 써버렸으니까.


난 오른손가락에 끼워진 은반지를 바라봤다.


[기록의 시선]

[연세희의 은반지(세공품, 장신구) : 새겨진 기운이 81% 남았습니다.]


반지에 새겨진 연세희의 기운은 무한히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리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비상시를 대비해 반지의 힘은 잠시 아껴두기로 하고, 구호영의 손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여차하면 역시 반지를 써야겠지만······’


그럴 일이 없길 바랄 뿐. 난 양손으로 머릴 감싸며 침대에 누웠다.


*


“왕자님 구호영입니다.”


문밖에서 새어 들어온 구호영의 조그마한 목소리. 난 놀라며 화들짝 눈을 떴다.


그럴 생각 없었는데 달콤하게 잠이 들었던 탓이다.


몸을 급히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허리에 칼집을 끈으로 묶은 구호영이 서 있었다.


“말씀하신 시간에 맞춰 왔습니다.”

“그래, 잘했어. 그럼 이제 나가 볼까.”

“저를 따라오시지요.”


분명 구호영도 이곳이 초행일 텐데, 어째선지 담담한 말투에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 난 바로 구호영의 뒤에 붙었다.


병영 외벽은 물론 내부 곳곳에도 초를 든 불침번들이 서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군부대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다만, 지금 내겐 살짝 곤란한 부분이었다.


“이쪽입니다.”


그러나 구호영은 막힘이 없었다. 마치 불침번들의 경계 동선을 미리 다 알고 있는 듯 절묘하게 그들의 시선을 피해 움직였다.


난 힘겹게 구호영의 보폭을 쫓아갔다. 반지의 힘을 빌리지 않은 연세희의 몸으론 그의 걷는 속도도 따라가기 버거웠다.


“헉, 헉······”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그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 사람 키의 세 배쯤 되는 석벽이 나왔다.


벽 앞에 멈춰선 구호영은 한쪽 무릎을 꿇더니, 내게 입을 열었다.


“제 등에 업히시면 됩니다.”

“어, 괜찮겠어?”

“왕자님 정도의 무게라면 문제없습니다.”


하긴, 날 안은 채 경공으로 나무 위까지 날아오른 사람이 아닌가.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나도 망설이지 않았다. 구호영의 등 뒤로 다가가 천천히 업혔다.


구호영은 양팔로 내 허벅지를 고정한 뒤, 그대로 일어섰다.


“웃!”


그런데 단순히 일어서는 동작이 아니었다. 내가 대비할 새도 없이 그대로, 우리 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높이 뛰어오른 구호영의 다리는 곧 석벽 윗면에 닿았다. 가벼운 발길질과 함께 우리는 병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착, 소리와 함께 땅에 착지한 뒤. 구호영이 내게 물었다.


난 그의 등에서 내려오면 답했다.


“······어, 그렇지. 여기 계람산이란 곳이 있다며. 그곳으로 간다.”

“산행을 하시려는 건가요?”

“뭐어- 그렇게 되겠지?”

“알겠습니다.”


야밤에 뜬금없이 등산이라고 하니, 의아해할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구호영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을 거다. 내 목적은 산행이 아니라 산에 있는 무언가라는 걸.


나와 구호영은 우선 대평의 도심으로 이동했다. 대평은 왕성으로 가는 상인들이 주로 오가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유동 인구가 많고 유흥업소도 자연스럽게 발달해있었다.


“가람산? 저기 보이는 저 큰 산이긴 한데, 이 밤에 산이라도 가실라고?”


늦은 밤까지 영업하는 주점에서 계람산 위치를 듣고, 우린 산으로 향했다.


산세는 험했다. 초입부터 부드러운 흙길이 아니라 돌덩이와 바위로 이뤄져, 도저히 연세희의 저질 체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구호영이 있었으니까.


“날 산 정상까지 업고가 줄 수 있을까?”

“네. 하지만 산길이 험해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상관없어. 동이 트기 전까지만 도착하면 되거든.”

“알겠습니다.”


어쨌든 겉으론 가녀려 보이는 여자에게 업힌 채, 고된 산길을 맡기는 게 양심상 찔렸으나. 현실적으로 이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구호영이 나를 업고 천천히 산을 오르는 동안. 난 그에게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아까 주둔지에서 나올 때 말이야.”

“네.”

“순찰하는 병사들을 다 어떻게 피한 거야? 구 산원 정도 되면 그런 게 바로 파악이 되는 건가?”

“한 시진 동안 미리 순찰조의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

“······내가 부탁한 뒤에?”

“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좀 쉬어 두라니까, 그 사이 두 시간 동안 순찰하는 병사들의 동선을 다 확인하고 있었다니.


뭐, 그 덕에 이렇게 군부대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 없는 구호영의 방식이 이젠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구 산원은 요령을 잘 안 부리는 편이구나.”

“부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라도 있어?”

“······요령을 부리지 않아야 강해진다는 걸 알아서 그런 것뿐입니다.”


구호영의 대답은 짧은 침묵 뒤에 돌아왔다. 그 찰나에 많은 생각을 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난 뭔가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걸 직감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여성의 몸으로 저런 높은 무공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구호영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가 있겠지.


내가 그러했듯이.


“아, 그렇구나. 아주 모범적인 군인이네.”


난 더 캐묻지 않고 대충 대화를 끝냈다. 이어 돌길을 걷는 구호영의 발소리만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산행한 지 꽤 시간이 지나, 어둑하기만 했던 시야에 차츰 보랏빛이 보일 때쯤. 우리는 드디어 계람산의 능선에 올랐다.


난 땀으로 잔뜩 축축해진 구호영의 등에서 내렸다. 그걸 보며 미안했지만, 구호영은 그다지 힘든 기색을 표하지 않았다.


“정말 수고했어. 이제 좀 쉬어.”

“네.”


구호영은 능선길에 놓인 큰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난 그 옆에 조용히 서서 해가 완전히 떠오르길 기다렸다.


그리고,


“꼬끼오오오-!”


곧 커다란 닭의 울음소리가 산 능선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소릴 들은 난 급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산 중턱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산닭이 아니라 커다란 닭의 형상을 한 푸른 기운을.


이어 그 닭의 형상은 파도에 스친 모래처럼 무너지더니, 어디론가 스르르 날아가기 시작했다.


“!”


난 재빨리 반지의 기운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뛰었다. 내 이상행동을 본 구호영이 소리쳤다.


“왕자님!”

“미안, 잠시 거기서 쉬고 있어!”

“그럴 수는-”


구호영이 다급히 날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난 기운이 흩어져가는 방향을 향해 마구 내달렸다. 반지의 기운을 낭비하더라도 상관없이.


“이곳인가.”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은, 깊은 산중. 우거진 초목 사이로 숨겨진 동굴 앞이었다.


“왕자님!”


어느새 구호영도 도착했다.


난 별다른 설명 없이 동굴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동굴 안은 꽤 넓었고, 깊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 들어갔지만, 동굴 안은 신기하게도 어둡지 않았다. 어디선가 은은한 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 빛의 원천을 잘 알고 있었다.


신수神獸 계룡의 힘, 계룡의 알.


작가의말

헉 죄송합니다. 밥먹다가 연재 예약을 깜빡 잊었...ㅠㅠ


다음부터는 오후 6시 15분이 아닌, 오전 7시 15분에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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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어둠을 보내며 닭은 울었다 (4) 21.05.31 2,076 40 13쪽
11 3. 어둠을 보내며 닭은 울었다 (3) +1 21.05.30 2,095 47 12쪽
10 3. 어둠을 보내며 닭은 울었다 (2) +2 21.05.29 2,155 42 17쪽
9 3. 어둠을 보내며 닭은 울었다 (1) +1 21.05.28 2,230 49 14쪽
» 2. 모두의 계획이 틀어진 밤 (3) 21.05.27 2,271 50 13쪽
7 2. 모두의 계획이 틀어진 밤 (2) +1 21.05.26 2,372 46 15쪽
6 2. 모두의 계획이 틀어진 밤 (1) +2 21.05.25 2,487 52 14쪽
5 1. 병약 왕자는 병으로 죽지 않는다 (4) +5 21.05.24 2,626 54 14쪽
4 1. 병약 왕자는 병으로 죽지 않는다 (3) +1 21.05.23 2,743 61 13쪽
3 1. 병약 왕자는 병으로 죽지 않는다 (2) +3 21.05.22 3,248 62 14쪽
2 1. 병약 왕자는 병으로 죽지 않는다 (1) +1 21.05.22 4,237 74 12쪽
1 0. 끝낼 수 없는 자 (1) +2 21.05.22 4,888 9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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