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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영의 서재입니다.

잡담


[잡담] 이요 환담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이요’의 구조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술격 조사 ‘이다’가 종결 어미 ‘요’와 결합해 만들어진 거라면, 이미 종결 어미가 사용된 곳에 또 ‘요’가 덧붙는 현상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가령 잠이 안 오는군요, 라고 말할 때처럼 종결 어미 뒤에 또 종결 어미가 붙는 경우가 더 있나? 그리고 종결 어미 ‘요’는 연결 어미 ‘요’와는 다른 걸까? 사전엔 다른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나?


얼른 사전을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실은, 종결 어미 ‘요’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단 것이었습니다. 대신 보조사 ‘요’가 있더라고요. 이제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이요’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굴리지만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보조사 따위로는 서술격 조사 ‘이다’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죠. 주격 조사 ‘이’에 보조사 ‘요’를 덧붙이는 건 가능하지만, 주격 조사처럼 자기 개성이 확실한 녀석하고 같이 지내려면 아무래도 쓰임이 제한적이게 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까지 썼던 모든 글에서 ‘이요’로 잘못 쓴 부분들을 ‘요’로 고치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새벽 2시 반에요(부사격 조사 + 보조사). 문제는 『심연의 사냥꾼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븐의 대사인 “운명에 대한 긍정이요.”를 “운명에 대한 긍정요.”라고 고쳐 써야 하는데 도무지 맛이 살지가 않아 한참 머릴 싸매고 고민했습니다. 어법에 맞으면서도 읽는 맛이 살아있는 문장...을 쓸 수 있었다면 제가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결국 저도 운명을 긍정하게 됩니다.


보조사 ‘요’와는 다른 종결 어미 ‘요’의 쓰임을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경우엔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요’는 안 되고 ‘해요’는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럼 ‘이요’ 자체를 하나의 보조사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이런 방법을 인정한다면, 그래서 언중들의 언어 생활이 문법에 빠르고 다소 너그럽게 반영된다면, 제가 질색하는 ‘-께’나 ‘꺼’의 쓰임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제 평소 지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는 예속입니다.


그는 국립국어원을 사랑했다.



*



2021년 2월 3일, ‘이요’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택한 방식은 ‘이요’를 하나의 조사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다’를 학교 문법에서와 같이 서술격 조사로 보고 있는 탓에 다른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다’에 한해 곡용 개념을 받아들이는 건 현행 방식보다 정합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무튼 이젠 마음 놓고 ‘이요’를 쓸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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