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공녀는 일본식 한자 표현으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잘못된 표현으로 규정한 말입니다.
당연히 문법적으로는 잘못된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중국식 한자 표현은 되고 일본식 한자 표현은 안된다는 생각에는 반대합니다만...
공녀의 경우는 국어국어원에서 잘못된 표현이라고 확정한 표현이니 규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잘못된 표현입니다.
공녀와 같은 높은 집안 출신의 여자를 가리키는 한자어는 영애 혹은 천금입니다.
그리고 뭔가 공자라는 표현은 원래는 춘추전국시대 공(公)의 아들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높은 집안 출신의 아들을 뜻하는 말로 변한 것 뿐입니다.
한마디로 원래는 판타지에서 이야기하는 공작의 아들을 뜻하는 공자와 같은 뜻이었다는 말이지요.
사전 비등재어라는 점은 저도 본문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다만 제가 느끼는 딜레마는, 판타지의 세계관이 한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라는 것이죠.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아들과 달리 딸을 따로 지칭하거나 드러내어 예우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용어가 비대칭적으로 발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여성형 명사는 드물죠. 아예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 모를까...
문제는 서양역사물을 번역하거나 (서양 냄새 물씬 풍기는) 판타지를 쓸 때 단순히 국어어법의 타당성, 혹은 한자 조어법의 원류만을 고려하여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가입니다.
서양에서는 남녀의 지칭어/호칭어가 대개 일대일, 대칭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 속의 문화는 대칭어를 요구하는데 작가가 쓰는 언어(한국어)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현실... ;ㅅ;
'공녀'는 사전에 없는 말이니 '공자'를 예로 들겠습니다. 공자는 '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그 자신의 사회적 신분 혹은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호칭어로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백작님' '공주님'처럼요.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게 용례에 맞느냐는 또 논외로 하고...
반면 '영애'는 '춘부장'처럼 타인의 가족을 그 타인 앞에서 높여 이르는 말로서, 의미 자체에 '지칭어'로서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호칭이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영애, 안녕하십니까?' 이건 마치 '춘부장, 안녕하십니까?'와 같은...
"눈 앞에 있는 이를 다른 이에게 높여 이르는" 말이 아니라 "눈 앞의 있는 이를 존중하여 그 가족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즉 그 매개가 되는 타인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며, 실은 그 딸을 높이기 위한 말이라기보다는 그 타인을 높이기 위한 말에 가깝습니다.
"세레아 백작님, 영애께서 참 아름다우시군요."
(이때 '께서'와 '-시-'는 '영애'를 높이는 말이지만 '영애' 자체는 그 주체보다는 '세레아 백작님'에 대한 예우의 의미가 강합니다.)
춘부장을 예로 들면 더 명확하죠.
'춘부장'은 타인의 아버지를 그 타인 앞에서 높여 이르는 말이고,
그 대상을 직접 높여 '부를' 때에는 '아버님'이나 '누구누구 아버님' 등으로 불러야 합니다.
즉 '춘부장'이란 말 속에는 눈 앞의 타인을 공대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김 군, 자네 춘부장은 안녕하신가?"라고 했다면 김 군은 화자보다 아랫사람이지만 화자가 예우를 하고 있죠.
그런데 만약 화자가 김 군의 아버지를 직접 만난 자리라면
"춘부장, 안녕하십니까?" 가 아니라
"아무개 아버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해야 옳은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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