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지니아 님의 서재입니다.

꿈을 먹는 괴물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유지니아
작품등록일 :
2019.02.21 15:04
최근연재일 :
2019.03.10 19:3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63
추천수 :
3
글자수 :
27,191

작성
19.02.23 19:13
조회
39
추천
0
글자
13쪽

2화. 갈 곳이 없어.

DUMMY

여느 때처럼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번에 잡아온 악몽은 지독한 녀석이라 기록할 것이 많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다.


그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 들린 적 없는 인간의 목소리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놀라, 쓰고 있던 잉크병을 깨트렸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변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모습이다.


쓰러질듯 비틀거리는 인간을 잡았는데, 아마도 자신을 해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럴만하지.


잠깐 동안 발버둥을 치던 인간은 금세 쓰러져 버린다.

아무리 경계에 걸쳐있다 해도, 동굴은 바우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인간은 견딜 수가 없다. 쓰러진 인간을 안락의자에 눕혔다. 피가 흐른 얼굴이 파르라니 하다.



"다치기까지 했군."



용케 여기까지 들어왔다.

자신 말고 [밖]의 문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잊혀진 동굴'의 문은 자신만 아는 통로였다. 헌터들은 이곳이 아닌 왕들의 바위에 있는 정식통로로 다니니까.



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피 흘린 인간에게 동굴은 너무 추울 것이다.

오랜만에 동굴에 온기가 가득했다. 털짐승이 된 이후로 따뜻하게 불을 피우는 법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도 인간은 깨어나지 않았다.

이마의 피는 멈추었지만, 얼굴은 더욱 창백하기만 하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인간은 죽게 될 것이다.


서랍 깊은 곳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물건은, 모습이 변한 뒤론 더 이상 몸에 지닐 수 없었다.

괴물은 자신의 손톱에 작은 인간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목걸이에 매달린 보석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자, 창백한 얼굴이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 갔다.


인간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보고서를 마저 작성한다.

새롭게 붉은 잉크를 채우고 조심스레 펜을 잡는다.

모습이 변하고 글씨를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길고 날카롭게 자란 손톱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작은 인간은 정신이 드는지 뒤척이기 시작한다. 상처는 말끔히 아물었지만, 갈증이나 허기는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먹을 것이라곤 베리 몇 알 뿐이다.

과일향기에 눈을 뜬 인간은 다시금 겁에 질린 얼굴이 된다.



“제발 살려주세요. 잡아먹지 마세요. 저 맛없어요···.”


“잡아먹지 않는다.”



과일을 내려놓고 멀찍이 물러서자 잠시 망설이더니 과일을 먹기 시작한다.


인간은 죽지 않았지만,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쓰러진 인간을 눕혀놨을 때 문을 확인했다.


[밖]과 연결된 문은 막혀있었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사라졌다.

문이 막히면 악몽을 잡으러 나갈 수가 없다.


악몽이 바우로에 가져올 변화를 생각하며,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라면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지.



-방문요망.



편지라 하기엔 민망한 짧은 내용을 적는데 인간이 입을 뗐다.



“저기···.”



작은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잉크를 채운 펜이 허무하게 부서졌다.


혼자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인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손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며 겁에 질린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한다.



“잡아먹지 않는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곧 집에 돌아갈 수 있게 해주마.”


 

물론, 그전에 막혀버린 문을 어떻게 해야 하겠지만.



***



동굴은 미로처럼 크고 작은 방이 많다.

삭막해 보여도 집으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해내고 있었다. 가장 큰 방은 침실이자 서재로 쓰고, [밖]과 연결된 문이 있다.

그 외 작은 방들은 창고로, 식재료를 보관하고 손질하는 주방으로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처음 동굴에 집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비안은 혼자서 많은 것들을 손봐야 했다.

단단한 바위를 뚫어 벽난로도 만들고 욕실도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그것들은 크게 쓸모가 없었다.

털짐승은 따뜻한 난로도 데운 목욕물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벽난로는 찻물을 끓일 때나 가끔 사용되었고, 목욕은 동굴에 만들어진 찬 샘물로 충분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비안처럼 씻으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비안은 커다란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저···, 아까는 소리 질러서 죄송했어요.”


“아까? 처음 들어왔을 때를 말하는가? 그대가 이곳에 오고 이틀이 지났다.”


“이틀이요? 어쩐지 푹 자고 일어난 것 같더라니···.

아무튼 죄송해요. 소리질러서.”


“사과할 필요 없다. 누구든 이 모습을 보면 두려워하지.”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비안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베어나왔다.


과거엔 그도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였다.



“이제 무섭지 않아요. 나쁜사람 같지 않으니까. 사람, 사람맞아요? 가족도 있어요?”



두려움이 가라앉자 이번엔 호기심이 떠올랐다.

귀남은 조잘조잘 질문을 쏟아내었다.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네 뒷산에 큰 동굴이 있고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었다니.



“인간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는 사람이었다.”



사람이지만 인간은 아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괴물이 방 밖으로 나갔다.

귀남은 괴물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



왕들의 바위 35층에 자리한 자료실에서 아도라는 쌓여있는 서류 더미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매일하는 야근은 이제 익숙하지만, 요즘은 정말 너무한다.


바람축제까지 일주일정도 남았다.

축제 기간엔 평소보다 비싼값에 거래되기 때문에 헌터들은 무지막지하게 꿈을 긁어모아온다.

그렇게 가져온 꿈을 등록하고 대충 작성한 보고서를 자료실에 던져 넣는 것이다.

꿈을 종류별로 나누고 기록해 보관하는 것이 자료실의 일인데, 헌터들의 보고서는 말 그대로 개판이라 거의 대부분을 새로 써야했다.


아도라 혼자서 처리하기엔 너무나 방대한 양이지만, 살인적인 업무에 재밌지도, 보람되지도 않는 자료실에 지원하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아도라는 벌써 5년째 홀로 서류더미와 싸우고 있다.


축제 준비로 너무 바빠 비안에게 가보지도 못했다.

항상 칼같이 약속을 지키던 비안에게서 연락이 없자 아도라는 걱정이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그가 보낸 보고서가 이미 이곳에 도착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휘익-.”


“여기요! 여깁니다!”



아도라가 반갑게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자, 작은 새는 날개를 접고 아도라의 손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목에 걸린 편지를 꺼낸 그는 다정하게 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휘익-.”



짧은 울음을 내뱉은 새가 높이 날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통에서 편지를 꺼냈다.



-방문요망.



“비···비안님!?”



아도라는 서류더미를 한쪽으로 밀어 넣고 책상서랍을 뒤적여 약병을 챙겼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안님 이런 편지를 보낼리가 없다.



“벌써 늦은 건 아니겠지.”



아도라는 서둘러 동굴로 향했다.



***



“비안님! 괜찮으십니까? 비안님!”



아도라가 애타게 비안을 부르며 동굴로 내려왔다.



“여기다.”



아도라는 걸걸한 비안의 목소리가 들리는 침실로 달려갔다.


하늘빛 머리카락의 아도라가 들어오자 동굴의 칙칙한 공기도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아도라는 비안을 붙잡고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비안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번엔 또 얼마나 다치셨길래··· 우선 약부터 드시지요.”



아도라가 약병을 꺼내며 비안에게 건넸지만 비안은 조심스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보여줄 것이 있다.”



비안의 동굴에 온기가 돌고 있었다.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는 난로 옆 안락의자에 낯선 얼굴 하나가 보인다.



“누구···신지요? 손님···?”



손님이라기엔 몰골이 너무 꾀죄죄하다.


얼굴은 말라붙은 핏자국과 흙먼지로 얼룩졌고, 모양이 요상한 옷은 구멍이 나고 찢어졌다.

작은 몸집의 소년 같은 손님은 비안의 동굴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인간이다.”


“···인간!”



아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안과 인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간이 여길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귀남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알 턱이 없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여기가 어딘데요? 뒷산 동굴 아니에요?

전 그냥 떨어져서 도움 청하려고 들어왔는데···.”



아도라 역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밖]에는 선택된 사람들만 나갈 수 있다.

아무나 들락날락 할 수 있는 문이 아니다.

그 역시 인간세계인 밖에는 나가본 일이 없다. 그런데 인간이 우연히 바우로에 들어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걱정마라. 다시 돌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돌아갈 문이 막힌 것이 문제이긴 하나.”


“문이 막히다니요? 바로 저 문 말입니까?”



아도라가 나무로 된 문을 가리켰다.

비안이 말없이 끄덕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직접 달려가 손잡이를 돌렸다.


그는 직접 나가보지 못했지만, 비안이 나가는 것을 종종 배웅하곤 했다.

비안이 나갈 때마다 통로는 일렁이는 빛을 내뿜으며 비안을 밖으로 보내주었다. 그랬던 통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막혀버렸다.

동굴벽 한쪽에 문을 매달아 놓은 꼴이 되었다.



“그럼···전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없는거에요?”



귀남이 막힌 문을 보며 울먹였다.


밖으로 나간다 해도 갈 곳이 없다.

집에선 가출했고, 자신을 찾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하지만 가지 않는 것과 갈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지 않는가.

겨우 죽지 않고 살았다 생각했더니 이번엔 동굴에 갇혔단다.



“울지 마세요. 작은인간,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흐흑···.저는 귀남이에요. 강귀남.”


“기···우, 나미?”


“그게 아니고, 아··· 그냥 나미라고 부르세요.”


“나미! 예쁜 이름이네요. 울지마세요.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저는 아도라입니다. 저분은 비안님이시죠.

제가 바우로의 모든 기록을 뒤져서라도 꼭 방법을 찾아드리겠습니다!”



아도라의 말에 귀남은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아도라가 귀남을 달래주는 사이, 비안이 욕조를 들고 와 목욕준비를 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나무욕조의 먼지를 닦아내고 끓인 물과 맑은 샘물을 적절히 섞어 목욕물을 채웠다.



“그러고보니. 좀 씻어야 되겠습니다.”



아도라가 달래주던 손을 슬며시 떼며 말했다.

귀남의 꼴이 말이 아니다.

피와 흙먼지로 얼룩진 얼굴 한가운데 길게 눈물자국까지 생겼다.



“난로옆에서 씻으면 춥지 않을거다. 그 목걸이는 절대 빼지 마라.”



목걸이?

귀남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 봤다.


얇은 체인에 매달린 작은 보석이 자신의 가슴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화려한 세공은 없었지만, 초록빛의 보석이 독특해 보였다.



“목걸이가 없으면 다시 아프게 될거다. 아마 말도 통하지 않게 되겠지.”


“아! 그러고보니 인간이신데 바우로어를 잘하시네요?”



귀남은 그제서야 자신의 입에서 나오던 언어가 낯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머릿속에서 자동번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건 특별한 물건이다. 목걸이가 가진 힘이 바우로에 맞게 바꿔주는 것 같다.”



아도라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귀남의 목걸이를 뚫어져라 살펴보았다.

귀남은 남자가 자신의 가슴주변을 바라본다는 것에 얼굴이 달아올라. 슬며시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절대 안뺄테니까. 목욕하게 잠깐만 나가주세요.”


“동굴은 이방이 아니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인간이시지만 같은 남자끼리니 그냥 씻으시죠. 보지 않을테니.”



아도라는 난로에 장작을 몇 개 더 집어넣으며 말했다.

비안도 책상 앞에 다시 앉는 것이 나가지 않을 눈치다.


귀남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봤다.

짧은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탓인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보기 안쓰러울 만큼 깡마르다보니 여성의 상징인 봉긋한 가슴도 엉덩이도 없다.



“제가 이래 봬도 여자거든요. 두 분이 계시면··· 씻을 수가 없어요.”



두 남자는 잠시 동안 귀남을 멍하니 바라봤다.

인간은 자신이 여자라고 말했다. 여자?

얼굴은 제법 예쁘장하지만, 차림새나 모습을 보면 남자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바우로의 여인들도 인간의 여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늘씬한 여인이건 살집 있는 여인이건, 저마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귀남의 각목 같은 직선과는 완전히 다른 곡선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비안이 자신의 옷가지를 몇 개 꺼내두고 침실을 나왔다.


갈 곳이 없어 좁은 창고 바닥에 앉자 곧 아도라가 황급히 따라 들어왔다.

두 남자가 앉기 좁은 공간에 비집고 들어온 아도라가 소근거렸다.



“여인인거 왜 얘기 안해주셨습니까!”


“···나도 몰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을 먹는 괴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6화. 가시에 찔린 상처. 19.03.10 20 1 13쪽
5 5화. 시릴 만큼 검은 눈동자. +2 19.03.01 79 1 8쪽
4 4화. 훔치는게 아냐. 19.02.27 20 1 11쪽
3 3화. 갈이 살까요? 19.02.24 29 0 10쪽
» 2화. 갈 곳이 없어. 19.02.23 40 0 13쪽
1 1화. 괴물을 만나다. 19.02.21 76 0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