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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arasol 님의 서재입니다.

미국 없는 독립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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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씩
작품등록일 :
2024.01.05 06:34
최근연재일 :
2024.01.05 06: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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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250

작성
24.01.0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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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의친왕 이강.

DUMMY

제1화. 의친왕 이강.


주인공으로 점찍어둔 인물로 빙의를 하다니.

무슨 소설도 아니고.

참 기막힌 우연, 덕분에 실제 왕족의 삶을 경험하게 생겼다.


내가 빙의를 한 시기는 20세기에 막 접어든 1900년이었다.

이 시기는 의친왕 이강의 미국 유학생활이 시작된 해.

당연히 난 지금 조선이 아닌 미국에 와 있었다.

졸지에 동양에서 온 왕자님이 된 나는 학교생활을 준비해야했다.


영어는 제법 잘하는 편이라 적응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더불어 왕자라는 신분덕분에 인종차별도 겪지 않았다.

오히려 백인들이 먼저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조선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도 넉넉해 난 부담 없이 초대 받은 사교계 무대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나자, 내 인맥은 꽤 다양해져 있었다.

그 중에는 조선인 청년 한 명이 포함되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소인, 김규식이라 합니다.”

“반갑소. 이강이오.”

나는 청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사 김규식.

훗날,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게 될 인물이다.


@.


이 시기, 교통수단은 더럽게 느린 반면, 미국은 너무나 넓었다.

사람 한 명 찾는데, 해가 바뀌고 바뀌어 1903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찾던 사람을 만나 투자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내가 악수를 나누고 있는 중년의 백인남성은 아직은 별 볼일 없는 인물이다.

재산이라고 해봐야 자신이 직접 만든 발명품 하나가 가진 전부다.

하지만 그 발명품 하나가 훗날 거대 기업의 시초가 된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다.

그가 만든 물건은 면도기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킹 캠프 질레트.

질레트의 창업자가 될 인물이다.

지금이야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발명가에 불과하지만, 다음 해가 되면 그가 만든 면도기는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를 캐냈으니, 고생한 보람은 있군.

하지만 당분간 장거리 이동은 사양이다.


@.


학기가 끝나갈 무렵, 김규식이 나를 찾아와 서부여행을 권유했다.

서부에 있는 교민들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질레트를 만나러 중부까지 가는 일도 죽을 맛이었는데, 서부로 가자니.

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서부에서 만나야 할 사람도 있으니, 한 번 가기는 해야 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오렌지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이곳은 서부에 있는 리버사이드란 곳이다.

마차에서 내리자, 내 또래의 조선인 청년 한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소인. 안창호라 합니다.”

“반갑소. 이강이오.”

도산 안창호.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다.

하지만 끝내 광복의 순간을 보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안타까운 위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써 그에게 감사하며,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 사람의 운명을 바꿔줘야겠다.

과거였다면 헛된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독립투사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친일파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올바른 사회.

우리 손으로 독립을 쟁취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다.


@.


서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자, 1904년으로 해가 바뀌었다.

얼마 후,

러시아 제국과 일본의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역사를 알고 있던 나야 관심 밖의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교계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내기까지 벌이고 있었다.

이즈음부터 김규식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수시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김규식은 이 전쟁을 미리서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그 비상한 머리로 이 전쟁의 여파가 조선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1905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다.

나로 인해 역사가 바뀌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떤 선택이든 난 그의 결정을 존중할 생각이다.

어차피 내 몸은 하나라 해 줄 일은 많으니까.

김규식이 귀국을 결정한다면, 상해에서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맡겨도 괜찮겠군.

러일전쟁이야 시간이 부족해 개입을 할 수 없었지만, 신해혁명은 다르다.

이 기회의 시기까지 놓칠 생각은 없었다.


@.


1904년이 끝나갈 무렵, 질레트의 사업은 결국 대박을 쳤다.

한편, 난 직접 만든 면직물로 특허를 받는데 성공했다.

특허를 받았다고 해서 대단한 물건을 만든 건 아니다.

부드러운 천 몇 장과 발상의 전환만 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니까.

내가 만든 물건은 바로 삼각팬티였다.

삼각팬티는 실제로도 1950년대 일본의 한 할머니 손에서 탄생했다.

무더위에 힘들어하는 손자를 생각해 기존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속옷을 짧게 자른 게,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된다.

초창기 형태가 아닌 현대적인 디자인까지 가미시켰으니, 물건에는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홍보인데.

마침 사업차 동부로 넘어온 질레트가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질레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삼각팬티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제가 만든 속옷입니다.”

“속옷이요?”

“네. 직접 한 번 입어보시겠습니까?”

내가 권유하자 질레트는 방에 들어가 속옷을 입고 나왔다.

이내 방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게 착용감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이윽고 자리에 앉았는데, 표정을 보니, 긍정적인 반응이다.

“왕자님, 이 물건을 팔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사실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저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

홍보의 신이 알아서 물건을 팔아주겠다는데.

계획대로 내가 만든 물건의 가치를 알아본 질레트는 나에게 동업을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각자의 서명이 담긴 계약서를 한 부씩 나눠가졌다.

덕분에 김규식을 빈손으로 귀국시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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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0화. 프롤로그.(수정 완료) +2 24.01.05 160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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