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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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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의
작품등록일 :
2017.08.07 07:53
최근연재일 :
2017.08.07 07:5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310
추천수 :
0
글자수 :
15,749

작성
17.08.07 07:54
조회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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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2 - 함정

DUMMY

만족스러운 검신을 얻어냈지만 여전히 작업은 많이 남아 있었다. 우선 검신의 거무튀튀한 표면을 말끔하게 갈아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손잡이를 만들어 검신의 탕과 연결시켜야 했다. 그 외에는 적당한 검집도 만들어 달고 다녀야 검을 드디어 완성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어렵고 중요한 단계인 검신 제작을 드디어 완성했으니, 남은 것은 시간만 들 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는 잠시 고민했다. 오늘은 함정 순찰을 말고 검 제작에 집중할까? 이년동안 시간을 바쳐 온 결과가 드디어 눈 앞에 놓여 있단 생각은 대장장이의 손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함정 순찰을 소홀히 했던 과거의 기억, 그 끔찍했던 순간이 금방 머릿속을 채웠다. 올무를 갉아서 도망친 토끼, 구덩이에 빠져 죽어 썩어버린 산양, 누군가 선수를 쳐 찌꺼기만 떠다니던 어망. 대장장이는 아래 분지마을과 거래할 것도 없어 겨울을 쫄쫄 굶은 채 보내야 했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 대장장이의 눈쌀이 찌푸려지는 기억, 매일 아침마다 함정을 순찰하는 것은 그 후 대장장이에게 하나의 율법이 되었다. 그리고 율법은 지켜져야만 했다.


대장장이는 공터 구석에 놓인 자기 오두막으로 가 검을 가죽에 둘둘 감고는 탁자 위에 놓았다. 그 후 대장장이는 허리춤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단검을 한번 더 확인했고, 만족스럽다는듯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단검집을 왼손으로 툭툭 두들겼다. 준비가 다 된 대장장이는 순찰에 나섰다. 당장이라도 검을 더 만지고 싶어 근질거렸기에 최대한 빨리 순찰을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런 대장장이의 희망은 깔끔히 무너졌다. 높고 푸른 침엽수림의 임관 아래 대장장이가 대충 파놓은 구덩이. 그 위에 덮은 위장은 무너져 있었고 그 아래에선 연신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것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짜증이었다. 분지마을 사람이 대체 뭘 주워먹을게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년전 사건에 대장장이가 분지마을을 떠난 이후 분지마을과 대장장이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지켜지고 있었다. 대장장이는 거래할 때를 제외하고는 분지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분지마을 사람은 굳이 대장장이가 사는 곳까지 올라오지 않는 것. 그걸 이제와서 어겼다는 것에 대장장이는 짜증이 났다.


물론 분지마을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여행자일 수도 있었다. '이론적'으론. 하지만 산맥은 험했고 그 너머는 더 험했다. 범죄자나 왠 모험자 같은 사람들이 가뭄에 콩나듯 얼굴을 들이밀긴 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다. 지형적으로 이곳에 오려면 분지마을을 거쳐야만 했고 분지마을은 이곳까지 사람을 결코 올려 보내지 않았으니.


그때, 발자국 소리를 들은 것인지 갑자기 신음소리가 그쳤다. 대신 소리 높여 외쳤다.


"칸드라! 거기 너야? 칸드라! 들리면 대답해줘!"


대장장이는 눈쌀을 찌푸렸다. 대장장이가 아는 목소리였다.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이기도 했고. 대장장이는 그 목소리가 연상시킨 불쾌감에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더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구덩이에서는 계속 그 기분 나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칸드라! 칸드라! .....칸드라, 그 때 일은 내가 정말로 미안해, 하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대장장이는 이 자식을 그냥 여기 버려두고 가는게 좋을지 아닐지 자리에 서 고민했다. 버려두고 가면 이 구덩이 인근은 한동안 쓰지 못한다는게 단점이지만, 대신 이 구덩이 근처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대장장이는 그 장점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지금 마을이 습격 받았다고. 갑자기 왠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 시비를 걸더니 지난밤에 우리 마을을 습격했어."


대장장이는 앞으로 분지마을 대신 그 이상한 놈들하고 거래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제발... 네가 우리 마을을 싫어하는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의 고향이잖아. 너 말고는 우릴 도와줄 사람이 없어..."


순간 대장장이의 속에서 무언가 욱하고 솟아 올랐다.


"아비 상 치르는 사람을 마을에서 쫓아내놓고는 이제와서 왠 빌어먹을 놈의 고향 타령이야!?"


그 말을 내뱉자마자 대장장이, 칸드라는 후회감을 느꼈다. 그냥 무시하고 돌아서야 했는데, 대꾸를 해버렸다. 지금이라도 돌아서는게 늦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속이 너무 부글거렸다. 마음에 드는 검신을 드디어 만들어내 기분이 좋았는데 대체 아침부터 왜 이러는건지.


"칸드라, 내 말 들,"


"그 애미애비 가리지 않고 붙어먹을 놈의 마을을 내가 왜 신경 써야 하냐고! 나는 그냥 여기서 혼자 살다가 필요한거 생기면 거래할 사람만 있으면 돼. 그게 마을이 됬던 미친놈이 됬던 내가 알바 있나? 하, 이번에도 운이 좋으면 왠 호구가 눈깔 돌아 마을을 구하겠답시고 나서겠지. 그리고 니들은 다시 그 호구를 추방하면 그만이겠고! 아, 그런 호구가 이젠 없다고? 안 됬네요! 마지막 호구는 니들이 싫답니다!"


"칸드라..."


"욘, 너는 양심이란게 있긴 하냐? 내가 돌아오자마자 얼굴을 싹 바꿔 놓고는 이미 한 번 바꾼적 있다고 또 바꿔서 여기까지 와?"


"칸드라, 내가 미,"


"미안하면 꺼져!"


칸드라는 짜증스레 힘을 일으켜 구덩이에서 욘을 들어 올리고는 바닥에 거칠게 내던졌다. 욘의 폐가 짜부러지며 공기가 컥하고 뱉어져나왔지만 칸드라는 신경 쓰지 않고 숲 속으로 걸어갔다.


"칸드라!"


욘이 외쳤다. 하지만 칸드라는 되돌아보지 않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욘이 따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칸드라는 찝찝해진 머리로 순찰을 한바퀴 돌고나서 공터로 돌아왔다. 괜히 아침부터 짜증나는 일이 생겨 검이나 만들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검을 다듬다 보면 신경 쓰이는 기억도 같이 다듬어져 나갈 것이라고 칸드라는 믿었다. 지금까진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검을 다듬는 수행 같은 과정은 마음을 가볍게 비웠지만 이번엔 그 자리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찼다.


마을 사람들은 괜찮은걸까?


그 생각은 칸드라의 눈쌀을 일그러트렸다. 이 이런 곳에 와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 망할, 빌어먹을 착한사람 병. 하지만 생각은 이어졌다.


욘은 무사할까?


그 생각은 척수반사적인 것 처럼 칸드라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칸드라를 비웃듯,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대체 누가 마을을 습격한걸까?


"닥쳐!"


칸드라는 외쳤다.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 그 마을이 어찌 되던 내가 알 바 아니야!"


생각은 이어졌다.


정말로?


칸드라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탁자에 이마를 박았다. 마치 그러면 속 안의 답답함이 사라질 것 처럼. 하지만 겨우 그 정도에 감정이 사라질리 없었다. 감정은 쇠처럼 무겁고 바위처럼 끈질기니까.


칸드라는 2년전 그 사건을 떠올렸다. 기억에는 오직 뚝뚝 끊긴 이미지들만이 있었다.


타오르는 화염, 산맥 바깥에서 도망쳐 온 한 무리, 습격, 타오르는 화염, 어른들이 마을을 지키겠다고 모이는 모습, 그냥 숨자고 부탁하는 칸드라, 그걸 뿌리치고 같이 나가는 아버지, 타오르는 화염,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의 시체, 타오르는 화염, 계속 타오르는 화염,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광활한 화염.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인 마을의 폐허, 벌벌 떠는 마을의 사람들, 계속 타오르는 화염, 타오르는 숲, 도망치는 누군가, 타오르는 화염, 타 쓰러진 시체. 돌아온 자신 위에 질기게 이어지는 공포 어린 눈길.


그리고, 그리고..... 숲에 쓰러진 한 이방인을 도와 다시 무리로 돌려보내는 자신.


칸드라는 힘 없이 중얼였다.


"그러고도 여전히 그러고 싶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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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 분지마을 17.08.07 71 0 17쪽
» 2 - 함정 17.08.07 107 0 8쪽
1 1 - 대장장이의 새벽 17.08.07 13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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