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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채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슈퍼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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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체
작품등록일 :
2021.07.26 21:57
최근연재일 :
2021.07.26 21:58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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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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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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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알고보니 내가 타고 있던 게 환생트럭이었던 건에 대하여

DUMMY

질주(疾走).

새까만 아스팔트 도로를 달렸다.

속도를 높이고, 거칠게 핸들을 돌리며, 수많은 경쟁자와 싸웠다.

목숨을 건 레이스.

서킷 위에서의 1분 1초는 삶과 죽음 사이의 외줄 타기였다.

안전장치가 있다지만, 안심이 되진 않았다.

최고 속도 380km. 달리기 위해 태어난 차량이다. 부품의 내구도는 극도로 낮았다.

그래도 드라이버는 믿어야 했다.

차량이 정상적이기를,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언제나 운전석에 들어갈 때면 기도했다.

제게 오늘 경기를 무사히 끝마칠 힘을 주소서.

다섯 번째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두려움을 뒤로하고, 페달을 밟는다.


***


“끙-차.”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리를 펴자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복도식 아파트 10층. 여름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계단으로 올라온 탓에 온몸이 땀 범벅이었다.


“휴.”


잠시 숨을 고르고 벨을 눌렀다. 딸깍. 벨이 헛돌았다.


“택배입니다.”


고장난 벨 대신 문을 두드렸다. 생수 같은 건 집 안까지 들여놓지 않으면 가끔 항의가 들어온다. 이 무거운 걸 밖에 그냥 내버려 두고 갔다고.


안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곧 문이 열렸다. 인상을 잔뜩 쓴 아저씨가 나왔다.


“뭐요?”

“생수입니다.”

“안에 놓고 가쇼.”


시키는 대로 현관 너머에 차곡차곡 생수를 쌓았다. 2L짜리 여섯 개 세트로 네 묶음.

모두 들여놓은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 잠깐만.”


아저씨가 나를 불러세우더니 안으로 사라졌다. 마실 거라도 주시려는 건가.

다시 밖으로 나온 아저씨 손에 들려 있던 건, 마실 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였다.


“이것 좀 버려주쇼.”

“......”


나는 말 없이 쓰레기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거절해도 되지만, 이 역시 클레임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럼 괜히 일이 귀찮아진다.

자존심을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했다.


“에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짐은 덜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착잡한 건 매번 똑같았다.


“끝난겨?”


1층까지 내려오자 해당 동의 경비아저씨가 말을 붙였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에 그건 뭐여?”

“버려달라고 하셔서요.”


경비아저씨가 인상을 쓰며 혀를 찬다.


“요새도 몹쓸 사람들이 있구만. 1006호지?”

“어떻게 아셨어요?”

“그 집이 단골이여. 나도 몇 번 당했어.”


경비실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손을 털더니 밖으로 나왔다.


“이리내. 내가 버릴게.”

“괜찮아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요.”

“떽. 달라면 줘.”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저씨에게 음식물 봉투를 건넸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익숙하게 음식물 쓰레기 통에 쓰레기를 던져 넣었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자네나 나나 피해잔데 고맙다고 하면 안 되지.”

“그래도요.”


나는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아파트의 오전 배달은 이걸로 끝. 이제 터미널로 돌아가 오후 물량을 실을 차례였다.


따르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아파트를 빠져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택배 기사입니다.”


고객의 전화인가.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성진아, 형이다.


낯익으며 낯선 목소리였다.


“...잘 지내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지 속으로 헤아린다.

다섯 해.

5년 전의 인연이었다. 서킷에서 일어난 대형사고 이후로 줄곧 연락하지 않았었다.


-너는 잘 지내냐?


“그럭저럭. 근데 왜?”


전화를 어서 끝내고 싶었다. 한때 팀의 동료였던 이와 전화하고 있자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찌릿.

우측 얼굴에 남은 커다란 화상 흉터가 문득 아프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 혹시 코치할 생각 없냐?


“......”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한 때의 인연이니, 확실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없어.”


-그래, 알겠다. 갑자기 미안해.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하아.”


사거리의 신호를 받아 차를 세웠다.

운전대 위에 고개를 처박았다.

한쪽 시력을 잃고 F1에서 은퇴한 지 어언 5년. 집 하나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왔다.

가끔 지금처럼 코치해달라느니 하는 연락이 오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 상태로 무슨 서킷이냐.’


월드 챔피언 우승 경력 3회의 드라이버.

드높은 명예를 가진 전설적인 드라이버라지만 누가 외눈에게 코칭을 맡기고 싶을까.


‘맡긴다고 해도 내가 싫어.’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데 제대로 가르칠 수는 있을지 등.

그런 시선을 받아가면서까지 서킷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왼쪽 동공 너머로 사거리가 비춘다. 단안 실명이어도 공도에서 운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허용되어있고.


신호가 바뀌었다. 다시 차를 출발하여 근처에 있던 물류 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시끄럽던 터미널은 오후가 되면 쥐 죽으리만치 고요해진다.

하차 된 물건을 옮기는 레일이 멈추고 다른 트럭들 역시 배송을 위해 빠져나간 탓이다.


나는 내 구역으로 가 물류 알바들이 분류해놓은 물건을 실었다. 오후 물량은 오전 물량보다 좀 적은 편이었다.


“다 치우면 여덟 시 정도 되겠네.”


물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주택가라서 아파트보다 오래 걸린다. 배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같은 물량인데도 자정 가까이 돼서 끝난 날이 많았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노하우가 제일 중요하단 말이지.”


짐칸의 문을 잠그고 트럭에 올랐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다시 도로로 진입한다.

틀어 놓은 라디오 너머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최근 일본에서 이상한 자살 방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자살 방법이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기묘한데요. 일본 시사 전문가 김응룡 씨를 모셨습니다.


자살 방법?

나는 라디오의 소리를 키웠다. 자살에 관심은 없지만, 말 그대로 기묘한 뉴스였기에 호기심이 도졌다.


-안녕하세요, 김응룡입니다.


-요새 일본에서 ‘환생 트럭 자살’이라는 괴이한 자살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환생 트럭 자살이 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예. 우선 환생 트럭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환생 트럭이라는 건 일본 서브컬쳐에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복권’인데요.


-복권이요?


-환생 트럭에 치여 죽으면 다른 세계에 도착한다는 게 일본 서브컬쳐에 만연한 클리셰입니다. 다른 세계에 도착한 주인공은 승승장구하고, 본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정확한 방법이 뭔가요?


-단순합니다. 그냥 트럭에 치여 죽는 것. 그게 다죠.


신호를 받고 차를 멈췄다.

신호가 긴 곳이라 한가하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렇다면 운전자는 피해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류회사들이 소속 직원들에게 안전운전에 각별하라며 공문을 보내고 있다고 하네요.


나는 혀를 찼다. 말세야, 말세. 아무리 힘들다지만 트럭에 치이는 자살이라니.

한 번에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멀쩡히 일하다 범죄자 되는 운전자는 무슨 죄야.


-그나저나 다른 세계라는 건 모두 허구 아닌가요? 그런 걸 위해 자살한다니 말도 안 되네요.


-그런 허구에 기대고 싶을 정도로 고달픈 현실이라는 반증이겠죠. 어떻든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안타깝긴 안타깝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면 그럴까. 한편으로는, 현실이 게임도 아니고 너무 한심한 짓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액셀을 밟았다. 차가 다시 도로 위를 달렸다.

시속 50km.

서킷에 비하면 한참 느린 속도다.

그런데도 주변 풍경은 확확 돌아간다.


“날씨 좋네.”


그때였다.


끼이이익!


귀가 찢어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드리프트에 죽어가는 타이어 소리였다.

나는 급히 시선을 좌측으로 돌렸다.

커다란 소음과 함께 중형차체가 도로를 구르고 있었다.

맹렬한 회전과 움직임. 이대로라면 충돌할 게 분명했다.


꿀꺽.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다.

서킷 위에서 상대를 추월할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계산한다. 모든 사고가 충돌을 회피하는 선택지로 나아갔다.


‘급정거하면 충돌. 속도를 높이거나 줄여도 똑같아.’


우측 차선으로는 화물 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브레이크를 밟는 낌새는 없다. 우회전 역시 어렵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는 한 대.’


급정거와 우측 회피는 불가능.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모든 판단이 선 순간, 나는 왼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끼기긱!


격한 움직임에 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차체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넘어가지 마라. 넘어가지 마라.’


뒤이어 찌그러진 차체가 전방 유리 너머로 스쳤다. 종이 한끝처럼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기우뚱하던 차체 역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했다.

회피는 성공.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대 더.’


현재 트럭의 위치는 중앙선을 침범한 상태다. 이대로 멍하니 있으면 정상 주행하던 차량과 추돌한다.


왼쪽으로 크게 돌린 핸들을 빠르게 풀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바퀴가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엑셀을 밟았다.


부아앙!


맞은편 차선을 한참 넘어간 차체가 다시 본래 차선으로 돌아와 몇 개의 차선을 넘었다.

그와 동시에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트럭의 옆을 스쳤다.


‘사람은 보통 왼쪽으로 핸들을 꺾는다는데.’


상대 운전자도 피한다고 피했지만, 오히려 악수였다. 내가 핸들을 크게 꺾지 않았다면 충돌했을 것이다.


끼이익!


뒤늦게 반응한 차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도로 위에 멈춰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쾅!


굴러가던 차체가 건물 외벽에 크게 들이박았다. 네모나게 찌그러진 차체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목숨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아직 안 죽었네.’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손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핸들의 감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스릴에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영혼은 못 속인다는 건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몸은 서킷을 갈구하고 있었다. 눈만 멀쩡했다면, 어디든 가서 달렸을 텐데.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사고가 생겼다. 다른 차와 스치지도 않았지만, 다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살펴봐야 했다.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던 그때였다.


끼기기긱!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온 직후,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무언가가 머리를 으깨려는 것처럼 짓눌렀다.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팔다리가 부서지고, 허리가 접힌다. 사지가 더는 육체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정신이 끊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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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내가 타고 있던 게 환생트럭이었던 건에 대하여 21.07.26 4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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