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안. 님의 서재입니다.

버림받은 용사의 보좌관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N.J.
작품등록일 :
2023.05.10 22:42
최근연재일 :
2023.05.19 23:55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72
추천수 :
18
글자수 :
53,889

작성
23.05.11 23:55
조회
23
추천
2
글자
12쪽

2. NEW STORY(2)

DUMMY

[“보좌관은 그 어느 때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악의 판단을 내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너 역시 가문의 일원이지만 아직은 미숙하니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주술을 걸어주마.”]


네버 엔딩 스토리의 도입부는 설정상 비카리우스 가문의 후계자인 플레이어가 가주의 인솔하에 담당하게 된 황자를 만나러 가는 길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플레이어는 가주에게 한 가지 주술에 걸린다. 주술의 이름은 ‘호수의 고요함’. 주술에 걸린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호수와 같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차분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인 모양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나는 눈을 뜨자마자 주변의 정보를 모아 결론을 도출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렇게 잡생각에 빠졌을 때 재빨리 빠져나오는 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


어쨌든. 나는 비카리우스 가문의 보좌관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자를 보좌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자살한 비카리우스 가문 사람의 몸에 빙의했다.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해 파악이 끝난 다음으로는 이 몸의 원래 주인에게 있었던 일을 유추하기 시작했다.


“왜 죽었을까···.”


비카리우스는 보좌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가문이다. 황자가 먼저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있어도 절대 보좌관이 먼저 포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천장에 묶은 밧줄에 몸을 맡겨 편해지고자 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이유를 알면 내가 처한 상황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건?”


나는 손거울 옆에 놓인 한 장의 종이를 집었다.

유서였다.


‘아홉 번째 황위 계승권자, 시온 안타리아 님에게.’


‘먼저 몹쓸 것을 보게 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오직 이 방법만이 황자님과 제 가문을 위한 최선의 길이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황자님을 보좌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도 당연히 받았지만, 그 모든 교육은 최후의 요새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때를 가정한 교육이었습니다.’


‘가주님이나 첫째 형님이셨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계책을 낼 수도 있겠지만, 부끄럽게도 부족한 제 머리로는 조그마한 계책조차 짜낼 수 없었습니다. 보좌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로 제 목숨을 바칩니다.’


‘이렇게 하면 저희 가문은 가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황자님의 보좌관으로 배정할 것이며, 황자님은 마왕 토벌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 다방면으로 필요한 조언을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황자님과의 첫 만남에서 말씀드렸던 제 이름은 잊어 주십시오. 가문에 정식으로 파문을 요청했으니 저는 더 이상 그때 만났던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제 무능함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부디 좋은 보좌관을 만나 대업을 완수하시길 바랍니다.’


‘황자님의 찬란한 미래를 바라는 아무개가······.’


“최후의 요새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라······.”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남긴 유서를 다 읽은 내 감상은 별것 없었다. 그저 어떤 황자를 골라 플레이해도 멀쩡했던 요새가 대체 왜 부서졌다는 건지, 얼마나 부서진 건지 궁금할 뿐이었다.


빙의하기 전의 나였다면 아마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기 전까지 얼마나 고뇌했을까 공감이라도 해줬겠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오로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서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은 나는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으니 이제 요새와 황자를 살필 차례였다.


똑똑.


막 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보좌관님. 혹시 안에 있나요?”


나는 문을 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찾아온 손님은 내 허리춤 정도 올 정도로 키가 작은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비카리우스 가문의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짙은 남색인 것처럼,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가문이 하나 있다.

제국 안타리아의 이름을 고스란히 가져온, 먼 옛날 마족이 준동하기 전에는 대륙을 호령한 가문.


안타리아.


“9황자님을 뵙습니다.”

“아, 그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는 없는데······.”


유서에 적혀진 바에 의하면 이 아이의 이름은 시온 안타리아.

내가 마왕을 죽일 수 있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바짝 긴장했는지 주먹을 꼭 쥔 채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마주 인사를 건네 오는, 아무리 좋게 봐도 예의 바른 아이에 불과한, 9황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의 빠진 나사는 과연 뭘까?


“아, 보좌관. 저······.”

“예, 전하.”


다른 황자들의 빠진 나사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유추를 하고 있을 때, 9황자가 방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저런 생각을 하신 건가요?”


9황자는 방의 천장 마루에 묶여 있는 밧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저건······.”


나는 그럴싸한 변명을 만들기 위해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라면 이곳의 상황이 여간 안 좋은 게 아닐 텐데, 그런 상황에서 보좌관의 자살 기도는 치명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동할 수 있다.


“···처형대입니다! 요새 내의 범죄자들을 처형하기 위한 처형대를 만들기 전 시범으로-.”

“보좌관.”


9황자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다 이해한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전하?”

“저는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요새의 상황은 절망적이고 이곳에 있는 건 저희 둘 뿐이니까.”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다면 9황자의 인자함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앞으로 성심성의껏 한 몸 불살라 보좌하겠다며 눈물을 흘렸겠지만, 나는 아니다.


저건 버튼이 눌린 거다.

그동안 쌓였던 정신적 스트레스를 한 번에 폭발시키는 버튼이.


“전 정말 괜찮아요. 황궁에서 늘 혼자 지내야만 했으니까, 혼자는 익숙해요.”

“······외롭지는 않으셨습니까, 전하?”


예상대로 9황자의 미소가 조금씩 광기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손을 빼내기 위해 슬쩍 당겨봤지만, 어린애가 힘이 얼마나 좋은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9황자의 당기는 힘에 내가 끌려갈 뻔했다.


“전혀 외롭지 않았어요. 제 곁에는 아무리 오래 같이 지내도 질리지 않는 인형들이 있었거든요.”

“인형··· 말씀입니까?”

“네. 인형.”


그렇게 말한 9황자가 갑자기 한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투명한 커튼이 치워지듯, 아무것도 없었던 9황자의 뒤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어때요, 제 인형? 멋있죠?”

“······멋있습니다, 전하.”


9황자가 인형이라 칭한 한 쌍의 남녀는 방 어딘가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데 저 남자 인형은 어디서 본 적도 같은데 혹시······.”


짙은 다크 서클, 창백한 피부, 매부리코에 살짝 굽어 있는 등. 뼈와 가죽이 말라붙은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마른 체격.


나는 저 남자를 알고 있다.


“다베르 카르카스 아닙니까?”


용사를 네크로맨서로 전직시키기 위해 황도 외곽에 위치한 공동묘지 지하로 가면 만날 수 있는 세 명의 마스터 네크로맨서 중 한 명.

다베르 카르카스.


죽은 시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인간에게 인위적인 영생을 부여할 수 있다고 묘사되었던 그가-.


“아, 보좌관님도 아시네요? 하긴, 우리 스승님이 좀 유명하긴 하죠.”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아이의 손에 의해서 영생을 누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순간만큼은 비카리우스 가문의 주술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무리 9황자가 흑마법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들, 흑마법에 몸을 담은 지 수십 년은 된 마스터 네크로맨서의 시체를 저렇게 온전하게 남기는 게 가능하다고? 어떻게?


“아, 스승님은 자발적으로 제 인형이 되어 주셨어요.”


9황자가 여자 인형···. 아니, 시체의 품에 쏙 안기며 말했다.


“1황자 형님부터 8황자 형님까지 지원을 다 받으셔서 제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아무것도.”


여자 시체가 ‘아무것도’라는 단어를 강조한 9황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시선은 여전히 허공을 보고 있었고 쓰다듬어 주는 손놀림은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기계적인 움직임에 불과했다.


그녀의 쓰다듬을 받으며 9황자는 똑바로 나를 쳐다봤다. 자신이 받을 수 없었던 것에, 이 몸의 원래 주인도 포함된다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을 때도 제게 줄 만한 마땅한 시체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형님들의 부하 네크로맨서들이 쓸 만한 시체를 다 가져갔대요.”

“······그래서 달라고 하셨습니까? 카르카스의 시체를?”

“네!”


9황자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나 잘했지?’라는 칭찬을 바라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도 그럴게, 다른 형님들에 비하면 모자란 부분이 있겠지만 저 역시 어엿한 한 명의 용사잖아요? 그리고 무릇 용사가 모험을 떠날 때는 장비가 필요한 법 아니겠어요?”


네크로맨서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장비는 시체. 더군다나 해골, 유령 계열보다 시체의 생전 역량이 중요시되는 시체 네크로맨서에게 다베르 카르카스 급의 시체는 웬만한 전설급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진 훌륭한 장비다.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해서 스승님이 직접 가공도 해주셨어요. 부패 방지와 자동 수복 마법진이 각인되어 있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요.”

“카르카스가 직접 가공했다고요?”

“네. 제가 직접 지켜본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닫았다.


“그에 비하면 어머니는 제게 준 게 별로 없긴 하지만, 뭐. 저를 낳아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9황자가 고개를 들어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그렇죠?’라고 말했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자신의 어머니마저 시체로 만들어 데리고 다닐 줄이야.


“비카리우스.”

“······.”

“보좌관님?”

“아! 예, 전하.”


9황자가 싱긋 웃으며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한 발짝 물러났고. 그렇게 다가오고 물러나는 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밧줄의 바로 밑까지 밀려나 있었다.


“이름을 버려서 비카리우스로 불렀을 때는 반응 안 하신 거예요? 재밌네요.”


9황자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름을 버려?


순간 낙뢰가 떨어진 것처럼 뇌에 스파크가 일었다.

책상에 놓여 있던 유서와 9황자가 했던 말이 한데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9황자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으려고 한 것 때문에 버튼이 눌린 게 아니라-.


“있잖아요, 보좌관. 사람이 한 번 죽으려고 마음먹었으면 죽어야지······.”


죽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버튼이 눌린 거다.


“왜 갑자기 살기로 했어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버림받은 용사의 보좌관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휴재 공지 +2 23.05.20 8 0 -
공지 1화 내용 수정 공지 23.05.11 10 0 -
10 10. 코넬린(3) 23.05.19 7 1 11쪽
9 9. 코넬린(2) 23.05.18 10 1 12쪽
8 8. 코넬린(1) 23.05.17 13 2 12쪽
7 7. EXILE(4) 23.05.16 14 2 12쪽
6 6. EXILE(3) 23.05.15 15 2 12쪽
5 5. EXILE(2) 23.05.14 18 2 13쪽
4 4. EXILE(1) 23.05.13 19 2 11쪽
3 3. NEW STORY(3) 23.05.12 19 2 13쪽
» 2. NEW STORY(2) 23.05.11 24 2 12쪽
1 1. NEW STORY(1) 23.05.10 34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