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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플레이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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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스타킹
작품등록일 :
2022.05.12 19:41
최근연재일 :
2022.05.13 19:41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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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
글자수 :
29,507

작성
22.05.12 20:00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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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0. 작가와 주인공

DUMMY

물속에 몸을 던졌다.


인생이 후회로 가득 찼기 때문은 아니다.



글에 대한 뜨거운 열망.

그러나 그에 비례하는 처참한 재능.


결코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으나,


졸작인 동시에 내 인생의 역작.

그 마지막 페이지에 온점을 찍었으니.


더 이상 후회 따위가 남아있을 리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는데······.’


이건 후회는 아니고 신께 올리는 기도랄까.

죽기 직전에 떠오른 내 마지막 소원이 아닐까 싶다.


간혹 있지 않은가.

잘나가는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재탄생되는 경우 말이다.

나 역시 작가였던 만큼, 그런 기대를 한 번쯤 품어는 봤다.


하지만 내 소설은 누가 봐도 삼류 소설.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회 수가 바닥에 고정된 삼류 중의 삼류 소설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지만, 그렇게 해서 된다면 그거야말로 소설 아니겠는가.

그런 건 불가능하다.


‘아까 그 사람도 장난이었겠지······.’


한강에 몸을 던지기 전, 도착한 문자 하나가 떠오른다.


- 당신의 이야기로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내용.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 직업을 아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불가능한 일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편으론 매달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문자를 보냈다.


- 네 부디, 부탁드립니다.


답장은 없었다.

그걸 확인하기 전에 몸을 던졌으니,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서.


부끄럽고, 불편하고,

그럼에도 기대를 하고.


마치 소녀가 된 기분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

달빛이 수면 위에서 물결과 만나 부서진다.

퍽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는다.


내가 쓴 이야기가 저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기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분명 찬란할 것이기에.


한줄기 빛이 내려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정확히 나를 향해 다가온다.


이윽고 빛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내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스마트폰이었으니까.


-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밝게 켜진 액정 사이.

몇 마디 글자가 선명하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소설 속이었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이곳에 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물속에서 숨이 넘어가기 전, 가까이 다가온 스마트폰을 보고 손을 뻗었을 뿐.


“······.”


그냥 기도하면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해두자.


당황스럽거나 두려움.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갈 것 같이 몸이 가볍고 신선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지금 그랬다간 약간,


아니, 꽤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았기에, 나름 다소곳하게 앉아본다.


눈앞에 있는 ‘녀석’ 때문이었다.


“이봐.”


초면에 대뜸 반말을 내뱉는 이 남자에 대해선 아주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스스한 갈색 머리에 약간 붉은빛을 띠는 적갈색 눈동자. 그리고 그의 인생을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크고 작은 흉터까지.


완벽하다.

그리고 덕분에 확신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이 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지금 소설 속에 있다는 것을.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 하하.”


웃음이 나왔다.

비록 멸망이라는 결말을 앞둔 안타까운 세계였지만, 어차피 죽으려 했던 몸이다.


오히려 내가 만든 이야기와 함께 생을 마감할 수 있다니. 예술가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까 싶다.


내가 말없이 웃고 있자 주인공 ‘데리시오’가 재차 말을 걸어왔다.


“실실 쪼개지 말고. 넌 누구지?”


글쎄. 난 누굴까.

내 눈이 손바닥에 달리진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아무리 더듬어도, 내가 누군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의 내 몸인지, 아니면 흔한 클리세처럼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보가 더 필요했기에 나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소는 이름 모를 산 중턱, 야영을 위한 모닥불.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주인공과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 그리고 나까지 합쳐서 셋.


‘혹, 내가 등장인물이라도 된다면······.’


대충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대충은 말 그대로 대충일 뿐 확신은 아니다.


내가 만약 중요 인물이라도 된다면, 말 한 번 잘못 꺼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뒤틀릴 수도 있다.


그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오늘이 제국력으로 언제지?”


나는 분명 제국력으로 소설의 흐름을 맞춰 놓았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시간만큼은 전부 꿰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 소설은 내가 피를 토해가며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으니까.

부모가 자식의 성장 과정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듯이 나 또한 그러했다.

그러니 지금이 언제인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짝!


고개가 휙 돌아갔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뺨이 먼저 뜨끈거렸다.


“곱게 끝나고 싶다면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


끄덕.


명백한 내 실수였다.

너무 들떠있던 나머지 녀석의 성격을 간과하고 말았다.


의심 많고, 독선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한 인물. 흡사 중세판 양아치나 다름없는 설정인데, 그런 녀석을 앞에 두고 딴소리를 했으니.

맞을만 했다.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초조해하고 있을 때였다.


“데리시오, 그만해!”


때마침 주인공 곁에 있던 여성이 끼어들었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풍성한 금빛 단발, 그리고 뾰족한 귀가 인상적인 엘프 소녀.

여주인공 ‘셀리아’다.


사사건건 주인공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특징인데, 그 특유의 답답함 탓인지 몇 없던 독자들에게 폭격을 당한 비운의 여주인공이랄까.


지금도 열심히 데리시오에게 대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설정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내심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 모자란 재능 탓에 그녀가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바라던 모습으로 남아줬기에.

고마울 뿐이다.


그보다 문제는 데리시오였다.

그는 셀리아의 개입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목을 한 차례 뿌득 풀면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그녀와 눈싸움을 한다.

데리시오가 짜증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자다가 뒤통수 깨지고 싶은 거면 너 혼자 깨져.”

“뭐?”

“저 녀석이 입고 있는 꼬라지를 봐라. 딱 봐도 탈영병이야.”

“······.”


뜻밖의 전개에 뺨 맞고 들어갔던 웃음이 다시 튀어나왔다.

둘이 투닥투닥 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거니와, 방금 대화로 눈치채고 말았다.


내가 누구인지 말이다.


내 꼴이 탈영병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위치한 장소, 그리고 방금 저 둘의 대화 내용.

마지막으로 모닥불 위에서 익어가는 토끼고기까지.


역시, 내 예상대로 지금 장면은 이야기가 약간 진행된 초반부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주인공 일행이 만나게 되는 등장인물이라면······.


작중에서 가장 미남이고, 검과 마법도 제법 다룰 줄 아는데, 본업은 사실 사기꾼이며, 지금 잠깐 등장했다가 먼 훗날 뜬금없이 주인공의 짐꾼이 되는 인물.


너무 조잡한 거 아니냐고?


부정은 안 하겠다. 내 글재주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독자들이 넘어가야지, 뭐 어쩌겠나.

애초에 남들 읽으라고 쓴 글도 아니고 말이다.


‘그보다 조금 아쉽군.’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등장인물 중에, 먼 훗날 기용되는 등장인물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갈 이야기를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인공의 동료가 된다면.

그땐 더 이상 이 세계는 내가 알던 이야기가 아니게 될 터.


‘역시, 어쩔 수 없겠지.’


나는 두 사람 모르게 아쉬움을 털어냈다.

그리고 잡생각은 그만두고 지금 장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래 봬도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엑스트라.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지금.

그 틈을 파고들어 주의를 끄는 것.


별거 아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싸우고 있을 거지?”

“······?”

“배고프다. 가지고 와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닥불 위를 가리켰다. 거기엔 엉덩이가 반쯤 타들어간 토끼고기가 있었다.


“밥 먹자.”


딱!


“윽!”

“야! 하지 말라니깐!”


절묘한 코스로 돌멩이가 날아왔다.

데리시오가 던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힘 조절이라도 했는지 머리가 터져버리진 않았다는 것.

뜨뜻한 뭔가가 주륵 흘러내릴 뿐이다.


“너처럼 말귀를 못 알아듣는 녀석들 중엔 가끔 그런 녀석들이 있더군. 한쪽이 없어지면 더 잘 들리는 놈들 말이야.”

“······.”

“너는 어느 쪽일까?”


기쁜 건지 화난 건지, 어딘가 일그러진 녀석의 표정. 내가 묘사해놓은 거지만 직접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더 소름 끼치는 건 녀석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성격상, 수틀리면 내 한쪽 귀를 주저하지 않고 뜯어버릴 게 분명하다.

주인공은 그런 녀석이니까.


다만, 녀석은 지금 혼자가 아니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셀리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녀는 본디 착하디착한 성격으로 설계된 인물이다.

그런 여자가 잔인한 성정의 데리시오와 여정을 떠났으니, 초반엔 서로 마음이 맞을 리가 없었고.

그 결과 화가 쌓이다 못해, 당장이라도 한판 붙기 일보직전일 터.


즉, 지금의 나는 기폭제 역할이다.



데리시오가 글썽거리는 셀리아의 눈을 바라본다.

나는 근처에서 두 사람을 감상한다.


아마 데리시오 녀석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을 터.

그러다 좀 지나면 이렇게 말하겠지.


“너는 항상 그런 식이지.”


그의 눈빛에 흉흉한 기운이 깃들었다.

아직은 순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인 주인공의 살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제 곧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할 테니까.


“녀석에 대해 알아보고 먹을 걸 나눠줘도 늦지 않아.”


당연한 수순이다.

소설 속에서 데리시오는 셀리아와의 기 싸움을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녀가 그를 이기는 유일한 천적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말은 저렇게 해도 고기는 준다는 뜻이지 않은가.

내가 따로 묘사한 적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허무하군.’


여기서 내 역할은 끝났다. 여운과 씁쓸함만이 남는다.

단역 배우들이 느끼는 고충, 그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약간이나마 위로를 해보자면, 머지않아 내 이름이 저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거론된다는 것.


그때 저 두 사람은 또다시 싸우고, 서로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화해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없겠지.

지금 여기서 먹을 걸 얻어먹고 내일이 되면 쫓겨날 테니.


‘그래도···,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다오.’


내게 너희를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생길 때까지.

아주 조금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대답해, 네가 누구인지.”


부모의 심정을 몰라주는 자식의 말.

녀석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약간 힘을 담아 말해본다.


“러셀 단텔리어. 방랑 기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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