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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미
작품등록일 :
2020.12.31 13:35
최근연재일 :
2021.01.02 20:44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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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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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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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8

작성
20.12.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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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

DUMMY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신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


조금 전 까지 잠에 빠져 있었기에, 그저 어둠 속에서 아무런 낌새도 없이, 그저 번뜩이는 느낌과 함께 송곳 같은 빛을 따라 눈을 뜬 정진은 생각했다. 매일 같이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 곧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게 아닐까하고.


별거 없네. 다시 눈을 감고선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으쓱해진 그는 마치 신이 된듯한 고무감으로 뒷목부터 시작해 척수를 따라 흐르는 전율을 맛보며 기지개를 힘껏 펼쳤다. 백수 생활로 인해 시간에 쫓기지 않는 그였기에 기상 시간은 괴로움이 아닌, 침대의 너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즐거운 때였다.


전혀 서두를 필요 없이, 서두를 이유도 없이 자는 동안 굳어버린 온몸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넝쿨처럼 이리저리 꼬아대며 하루라는 유를 창조해낸 이 순간을 축복하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침대 이곳 저곳 어디에 몸뚱이를 옮겨 보아도 늘 받아주던 폭신함은 온데간데 없고, 시멘트 돌바닥 같은 딱딱함만이 지천이었다.


급히 눈을 뜨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자 한평생 일을 하지 않아 비단 같이 고운 피부결로 자잘자잘한 돌망울들이 거칠게 핥아 대는 감각들이 전해졌다.


그제서야 왠 땅바닥에서 눈을 떴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진은 조금 전의 평화로움은 단박에 깨버리고 불안감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낯선 장소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에 증거 될만한 것들을 찾아 둘러보지만 지하 주차장 같은 인테리어에 전등 하나만이 머리 위에 매달린 채 자신을 향해 원형으로 빛을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그밖엔 어두웠다. 그저 여기도 저기도 그리고 뒤에도,


"뭐야 여기.."


분명 없었는데.. 잠깐 뒤돌아서 마찬가지인 어둠을 확인했을 뿐인데, 돌아온 눈앞엔 어느 새 뿌연 안개가 가득했다. 내가 저걸 못 봤다고? 고개를 살짝 꺾으며 기억에 의심을 품는 동안 전등 불빛을 따라 안개들이 조금씩 피어나는 현장을 포착했다. 아, 잘못본게 아니였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정진은 마음이 놓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마찬가지로 안개가 조금씩 뭉게 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뒤쪽에도 역시나. 위에서 보자면 안개들은 중앙에 정진을 놓고선 동그랗게 손을 잡고 너도나도 그를 향해 달려드는 형세였다. 그 중심에서 정진은 아니지, 안개가 이런데도 끼던가. 미세먼지 이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후 하고 입김을 분 것 마냥 눈 앞에 있던 안개가 휘몰아치며 전설 속의 홍해 처럼 세로로 갈라졌다. 홍해와 다른게 있다면 갈라진 틈 사이를 메꾸는 어둠이었다.


어? 저건 또 뭐야. 안개로 인해 생긴 불규칙한 굴곡 때문일까 안개 틈 사이로 생긴 어둠 속에서 어둠인데 어둑한 형체가 보였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몰랐다. 눈은 보이지 않는 무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유를 찾으려고 애를 쓰니까, 마치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며 소나 양, 메두사 같은 모습을 그렸던 것 처럼. 그처럼 지금 정진의 눈 또한 아무것도 없는 어둠에서 어둑한 형체를 그리는 걸지도 몰랐다.


한편으론 한밤 중에 나뭇 가지를 보며 귀신을 그리고 그렸던 수 많은 사람들 처럼 정진도 같은 마음이었다. 내 눈이 이상한 거겠지


안개들은 어둑한 틈 사이로 드러난 어둑한 형체에는 흥미가 없는 듯 그것을 주위로는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렇기에 정진의 주변은 안개로 가득해지는데 오직 한 방향. 착각이였으면 하는 어둠의 형체가 있는 곳은 오히려 안개가 걷혀 나가며 착각은 더욱 뚜렷해져 갔다.


이윽고 어둑한 형체는 어둠마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전등의 빛이 강해진걸까, 형체가 빛 속으로 들어온걸까.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둑한 형체는 별자리 처럼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 형태로 빛을 반사하기 시작했다.


사자. 어둠 속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주둥이를 벌려 온 이빨을 다 드러낸 사자의 머리통이였다. 사자의 머리통이 어둠의 경계선을 뚫고 전등의 빛 아래로 드러났다. 불행히도 정진은 잘못보지 않았던 것이다. 으읍.. 정진은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다 못해 밧줄로 꽁꽁 묶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마 그의 심장이 일평생 시도 해본적 없는 박동으로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일터. 곧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발목의 근육이 활 시위 처럼 팽팽해졌다. 아마 정진이 두 다리를 움직인다면 일평생 내본적 없는 속도로 달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정진은 달아나지 못 했다. 안개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에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달아나지 못 했다. 어쩌면 달아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가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는건 지독한 공포심이였으니까. 다름 아닌 그 스스로가 만들어낸 공포가 그의 머리를, 사고를 점령했기에 그를 붙잡고 있는건 다름 아닌 본인이라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로 달아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태초로 부터 습득되어 피에 새겨진 위기 상황에서의 생존 방법을 따르기 위해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자. 저 맹수가 나를 못 본체 지나가도록. 나에게 흥미를 갖지 않도록. 나를 보지 못하도록.


그런 그의 바램이 무색하게 사자의 아가리는 정확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때였다.

스릉, 스릉. 쇠사슬들이 서로 퉁기는 소리가 안개를 타고 사방에서 울렸다. 구세주인가. 자신을 구원할 사자일지도 모르는 자를 찾아 정진은 눈동자를 굴렸다. 안개로 가려진 시야와 사방으로 울리는 소리로 인해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구조 요청을 하자. 공포심에 얼어붙은 다리 대신 가벼운 주둥이를 움직이기로 한 그는 입 밖으로 소리쳤다. 으으 으으.. 말문을 턴지는 26년이 흘렀건만 그의 언어는 유아기로 퇴행한 듯 옹알이 밖에 내질 못 했다.


스릉, 스릉. 계속 들리는 소리에 정진은 뻣뻣해진 목을 필사적으로 돌려 됐다. 그 동안 사자 또한 찬찬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스릉. 사자도 성큼. 스릉. 사자가 또 다시 성큼. 사자의 움직임과 주위에서 울리는 스릉 소리가 묘하게 일치함을 깨달은 순간. 정진은 깨달았다. 구원의 사자 같은 것은 없다고. 아가리를 벌렸던 사자는 어느 새 콧등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분노로 가득찬 눈빛으로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스릉 거림이 으르렁 거리는 듯 했다.


철렁. 사자의 눈빛을 본 순간 여태 밧줄에 꽁꽁 묶인 듯 옥죄이던 심장이 마침내 붙잡고 있던 혈관들을 죄다 놓아 버린 듯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한 철렁거림이 들었다. 여파로 폐 또한 본분을 잊은 듯 호흡 또한 흐름을 멈췄다. 고대하던 면접에 떨어졌을 때 느꼈던 절망감이 이랬던가, 사랑하던 연인이 다른 남자와 있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의 낙담이 이랬던가.


공포로 얼룩진 머릿 속에서 철렁거림을 품은 기억들이 솟구쳤다. 그러나 하나 같이 부족했다. 그 어느 것도 지금 같은 철렁거림은 아니였다. 그와 동시에 번뜩이는 기억하나.


빠아아아아아앙!!!!! 갑작스레 울리는 경적에 쳐다보자 송곳 처럼 눈을 찌르는 라이트빔과 끼이익 거리는 고무 마찰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지척에서 마주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철렁거림이 이와 같았다. 그랬다. 죽음을 직감하는 순간이 이랬었다. 정진은 그때 처럼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만든 어둠 속에선 위험한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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