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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낮 님의 서재입니다.

원작자가 내 형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나나낮
작품등록일 :
2021.09.27 14:18
최근연재일 :
2021.10.09 14:54
연재수 :
3 회
조회수 :
87
추천수 :
0
글자수 :
16,006

작성
21.10.0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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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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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화

DUMMY

형은 지독한 소설 망생이였다.


아니, 정확히는 노가다를 겸하는 소설 망생이였다.


약 2~3년 전. 그러니까 내가 막 스물 넷에 대학을 마치고 신의 직장 공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갈 쯤에 당시 형의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는데 그때까지도 형은 고 3때부터 꿈꾸기 시작한 소설가의 꿈을 접지 않고 계속 좇고 있었다.


그놈의 글이 대체 뭐라고


그나마 2~3등급의 모의고사 성적을 내던 형의 실력은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5등급까지 곤두박칠치고 말았고 어떻게든 흙수저 집안에 지방 국립대 이공 계열 장학생으로 입학하려던 형의 목표는 그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그 덕에 대학 진학을 아예 포기하고 스무 살의 노가다 시작.


그깟 놈의 글 대학 들어가면 실컷 쓰면 될 것을 고3 시절에 시작해 꿈을 말아 먹게 된 형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형이 스무 살부터 일을 시작해 득 본 것도 있긴 했었다.


처음부터가 우리 형제는 부모도 조부모도 없는 고아 집안이었기에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빠듯했었는데 어떻게든 공사판을 전전하며 돈을 벌어주는 형 덕분에 내가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던 것이다.


그 덕에 나는 흙수저임에도 다달이 몇십만원을 요구하는 종합학원을 등록해 공부를 계속 이어갔고 2년 간의 노력 끝에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성인이 되서부터는 더 이상 형에게 손벌리지 않고 과외와 알바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며 살았다.


이건 참 불행 중 다행인건지. 한 부모 가정도 안 되는 형편이었기에 군대는 형과 나 둘 다 면제였고 이 환경을 토대로 나는 4년간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공부와 돈 벌이를 이어가며 필사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나름 빡센 시간들을 보내며 어느덧 스물 넷 나에게 주어진 공기업 사원증 목걸이.


여기저기서 성공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나도 조금씩 사는 것에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그렇지만 형은 그때까지 쭉 어떻게 지냈나.


이제 막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형 나이 22살부터 26살까지 무한히 낮에는 공사판과 각종 노가다판을 전전하며 밤에는 몇 시간씩이나 소설만 써대는 미친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설만 파기 시작한 것도 햇수로 7년.


제아무리 소설을 보여달라 말해도 아직 완성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는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도 인터넷에도 올리지도 않는 기행을 형은 벌써 7년째 해오고 있었다.


썅. 도대체 무슨 글을 쓰길래 그렇게 비밀리인 거야.


물론 노가다 만으로 우리 형제가 먹고 살 돈은 계속 버는 형이었기에 내가 더 뭐라 참견할 자격은 없었다.


그저 날이면 날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10년도 더 된 구닥다리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형의 머릿속과 메모장 파일에 저장될 소설 내용이 궁금할 뿐이었다.


언제는 형의 컴퓨터 암호를 알아내서 그놈의 소설을 좀 읽어볼까도 싶었지만 몇 십번을 풀려 해봐도 형의 컴퓨터 비번은 절대 풀려지지 않았다.


더욱이 나는 당장 매일 풀어야 할 수많은 물리, 수학 문제와 작성할 레포트 또 해줘야 할 과에가 있었기에 형의 알 수 없는 소설은 점차 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내가 어느덧 공기업 2차 면접도 붙고 대학도 졸업해서 막 사회인으로서 말을 들어놓기 시작하려더 때쯤.


그때까지도 매일 밤 각 잡고 소설을 쓰던 형이 그날은 웬 일인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형우야 드디어 다 썼다.”


“뭐를?”


“지난 몇 년간 매일 밤 쓰던 이 소설을.”


그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형은 갓 태어난 익룡마냥 깍깍 소리를 질렀던 게 생각난다.


그만큼이나 기뻤던 거겠지. 물론 그 당시 나도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뭐야, 그럼 내게도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어서 와서 봐! 아마 다 읽는데만 족히 한 달은 걸릴걸?”


당시 내게 한 달이란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공기업에 들어가 막 일을 시작하기까진 몇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또 당시 생활비도 없는 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날을 시작으로 형이 무려 7년에 걸쳐 기획하고 집필한 엄청난 장편소설을 읽어나갔다.


형이 대학까지도 포기하며 어떻게든 쓰려 노력했고 마지막엔 다 써낸 그 걸작.


물론 맨 처음엔 여태 책도 거의 안 읽던 인간이 무슨 내용을 썼겠지 싶었지만...


형이 쓴 그 소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했다.


어떻게 ‘이런’ 걸 쓴 거지?


F~SSS급으로 능력자가 나뉘는 중세 판타지의 흔한 세계관이었는데 반해, 그 세계를 뒷받침해줄 설정들이 매우 상세하고 또 매우 변태적이었다.


이를 테면 소설 속에 나오는 7개의 대륙 중 한 대륙의 어떤 마을에 사는 40대 금발 남성의 이름과 그 사람의 취미, 심지어는 가족사와 그가 가진 트라우마 성격까지... 단지 주인공이 고블린 잡으러 가는 길 들른 주점에서 딱 대사 서너 개만 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마저 이렇게나 상세히 써놓은 것이었다.


“뭐야... 이게 소설이라고?”


형이 쓴 소설은 단지 소설이 아닌 하나의 세계에 대한 모든 걸 보여주는 거대한 백과사전 같았다.


<인물목록>이라는 소설의 부록책에만 해도 약 9000명에 달하는 주인공부터 지나가는 엑스트라까지의 모든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써져 있었으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잠시 훑어본 <인물사전>은 형이 쓴 14권의 시리즈에 딱 한 권밖에 되지 않았고 <세계관 1>과 <세계관 2>이라는 그 권별 페이지만 무려 7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가이드북 두 권과 각 권별 페이지가 1000페이지인 본편이 1권부터 11권까지 읽어달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놈아. 이걸 다 읽으라고?”


단지 종이 책도 아닌 컴퓨터 메모장 파일에 찍힌 페이지였음에도 그 위용은 엄청났다.


이 또라이가 7년 동안 대체 뭘 쓰는가 했더니만 무슨 외국 판타지 시리즈 하나를 다 만들고 있었네.


물론 형이 쓴 거대한 가상 세계를 쳐다보며 난 웃음 대신 한숨이 나왔다.


망할. 저녁에 5시간씩 무려 7년이나 쉬지 않고 이걸 쓸 바에야 공시나 팠으면 이미 취업까지 했겠다.


세 권의 가이드북은 없는 거라고 쳐도 본 권 하나의 페이지만 해도 1000페이지인데 그게 11권이면 11000페이지...


대충 장편 소설이라며 한 권당 250페이지 쯤으로 잡아도 1권당 총 네 권의 분권이 생기고 그렇게 치면 44권이나 되면 초장편이 되는데.


마법 소설 작가라면 몰라도 이제 막 신인인 형의 소설을 대체 누가 내줘?


이 문제는 웹소설로 간다 쳐도 심각했다.


분권이 총 44권이라 쳐도 한 권당 웹소설 분량으로만 약 25화가 나올 텐데 그걸 다 연재한다고 치면 1100화가 나올 게 분명했다.


1100화.


아무리 오래 써도 대부분 500화면 끝나는게 웹소설인데 거기에 2배라고?


이건 사람들이 열심히 읽다가도 다 나가떨어질 게 빤히 보이는데.


하물며 재미라도 있으면 어떨까.


그래도 7년 동안 글을 쓴 사람이라면 괜찮을까 싶었지만 형의 소설 재능은 꽝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19~21살 무렵에 썼을 1~2권에는 맞춤법이 자주 틀리는 건 물론 [쾅!] [캬캬 내가 최고다!]라는 허접한 문장들도 난무했으니까.


거기에 전편까지 남주가 여주를 미워하다 갑자기 고블린의 눈깔 30개로 목걸이를 만들고서는 결혼해다라 고백까지...


“야, 이게 소설이라고?”


“문제 있어?


”있어. 미친놈아!“


그나마 혈육이라 참고 읽어주고는 있었는데 도저히 나사 빠진 인간 마냥 어제까지 싸우다 고블린 눈깔 고백에 남주와 여주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이해가 안 가 키보드를 내리치며 말했다.


”뭐가 말야?“


”여기 이 부분.“


문제의 장면을 보여줬지만 소용 없었다.


”아, 이 부분? 여긴 내가 쓴 <인물목록>을 보면 다 이해될 텐데.“


그저 자기가 만든 세계에 심취해 형 그 자신만 아는 말을 한 탓이었다.


이딴 걸 대체 누가 읽냐고...


무려 한 달간 토악질을 버텨가며 형이 쓴 소설을 어떻게든 속독으로 읽고 최악이라 얘기했지만 형은 내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네가 아무리 욕을 해도 난 확신이 든다! 이게 떡상할거란 걸!“


전혀 주눅 들지 않고 7년간 방안에서 글만 써댄 인간 치곤 훨씬 더 높은 텐션과 자신감으로 우리나라의 출판사란 출판사의 이메일은 다 뒤져 저 넝마 같은 소설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형의 첫 작가 데뷔 도전은 시작되었고 약 3주 만에 그 도전은 처참히 박살 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작가님의 작품은 저희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파일을 뿌린 300여 곳의 출판사 중 절반이 형식적인 거절 메일로 돌아왔고 30여 곳은 읽다 지쳤는지 대략적인 피드백. 그리고 나머지는 무응답으로 돌아왔으니.


하지만 형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됐어. 그럴줄 알았다! 이미 종이책 시장은 점점 웹소설로 가고 있으니.“


”뭐, 웹소설을 연재한다고?“


”그래. 이 많은 소설을 다 업로드하다보면 대충 읽는 사람도 나오겠지?“


300번이나 두드려 맞은 거절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형은 느닷없이 웹소설 사이트로 접속했다.


”좋아. 한번 올려볼까?“


”잠깐, 그걸 올리겠다고?“


”그래, 어차피 이리된거 끝까지 가봐야지 안 그러겠어?“


”하지만 형의 소설은 가독성과 재미가 이미 똥망인데?“


”에라이. 그건 너만 해당사항이고.“


수년간 노가다로 다져진 형의 주먹이 나의 머리를 내리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차피 저 인간을 말린 순 없구나.


하기야. 고 3때부터 소설만 판 인간인데.


나는 이미 포기한 마음으로 낡은 침대 위에 걸터앉아 형이 웹소설 사이트에 접속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될 대로 되라.’


잠시 눈을 감자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의 콧노래 같은 소리와 타자 소리만 들려왔다.


뭐, 그래도 의리의 독자들이 생기면 다달이 몇십의 수익은 나오겠지?


한달 전부 1화씩 연재한다치면 그래도 3년은 해먹을 테니 무상 수익이 몇 년은 나올려나.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살림살이를 생각하며 나는 멍한 얼굴로 형이 웹소설을 올리려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전화 왔네? 뭐야 형 번혼데?“


이제 막 표지와 소개글까지 다 쓰고 1화를 업로드하려는데 형 폰으로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곧 형 손에 핸드폰을 쥐어 줬고 몇 번의 ‘예’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윽고 형이 통화를 끊었을 땐 이미 몸을 떨고 있었다.


”왜 그래? 또 소설이 개구리대?“


간혹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통한 거의 욕에 달하는 피드백 받는 걸 보았기에 나는 이번에도 전화 건 곳이 출판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이 한 대답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형우야. 우리 인생 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출판사와 전 세계 출판사들에게 계약하제. 선입금만 5천으로.“


씨발!


내면과 육성으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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