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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오류가 있네요.
1) 월산대군이 졸해서 성종이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예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실 최고참인 정희왕후(세조의 왕비)가 예종의 아들(제안대군)을 제끼고 또 의경세자의 큰 아들 월산군(나중에 월산대군)도 제끼고 3순위자인 당시 잘산군(나중에 성종)을 왕으로 세운 겁니다.
아마도 질산군이 월산군보다 더 어리니 수렴첨정 기간이 길어지고 자신의 권력이 길어질 걸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한명회가 크게 관여했다고 하죠.
1순위인 제안대군은 저능아라 열외시켰던 것 같고요.
때문에 월산대군은 일생 동안 사약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찌보면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가 할매의 권력욕 때문에 왕권에서 배제되었던 것이니까요.
시골에 처박혀 살고 왕 찬양하는 시조도 짓고 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죠.
한편 제안대군은 실록에 저능아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이게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가장 정당한 원자를 왕위 계승에서 배제시킨 핑계거리로 기록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기록된 제안대군의 난행(이혼 등)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2) 연산군이 월산대군의 부인을 강간했다는 것은 조작의 가능성이 많습니다.
일단 실록에 그렇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당시 쉰을 넘긴 나이였기에 신빙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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