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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묵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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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묵
작품등록일 :
2021.10.04 06:09
최근연재일 :
2021.10.04 06:11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96
추천수 :
0
글자수 :
33,728

작성
21.10.04 06:10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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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괴물 사냥꾼 (1)

DUMMY

‘그때 그 게임을 안 했더라면. 시발.’


데릭은 속으로 뇌까리며 술을 홀짝였다.


사실 술인지 뭔지도 모를 그냥 누리끼리한 액체였다. 마시면 취하니까 그냥 술인갑다 하는 거지, 사실 말 오줌을 술이랍시고 내놓은 걸 수도 있었다.

이곳 미개한 중세 새끼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니까.


따지고 들면 또 까탈스럽게 군다고 지랄을 해대겠지. 개자식들.


“여기 한 잔 더.”


뭐, 안 마시겠다는 건 아니지만.


술집 점원이 새 잔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손에 덕지덕지 묻은 새까만 때가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언제쯤이면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돌아갈 수 있기는 한 걸까. 슬슬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 개같은 세상에 떨어진 지도 벌써 5년째였다. 그럼에도 아직 이렇다 할 단서조차 찾지 못했으니.


‘······역시 메인 스토리를 밀어 봐야 하는 건가.’


게임의 스토리였던 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뭐라도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은 게임 속 세상이니까.

사실상, 그게 유일한 희망이지만.


데릭이 그 어렴풋한 해답을 알면서도 지금껏 주저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시발. 대체 그걸 어떻게 깨라고.’


악마니 뭐니 별 괴물 같은 것들이 죄다 튀어나오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그 게임이 자신에겐 현실이 됐다는 거고.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괴물을 잡을 수 있던 그때와는 얘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괴물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죽이려면 자신 또한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이곳은 그런 현실이란 말이다.


심지어 메인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등장하는 적들도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스토리에 개입했다간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게 뻔했다.


‘······적어도 오러만 있었다면.’


오러.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초현실적인 힘.

게임적인 요소일 뿐이었던 그 힘은 이제 현실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상태창도 있고, 레벨업도 있고, 능력치도 있다.

문제는 레벨을 올리기가 더럽게 어렵다는 거고.


‘몇 마리를 더 죽여야 되는 거야. 시발.’


지금껏 그가 사냥한 괴물의 수만 하더라도 기백을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오러 습득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한 마리 잡기도 존나 어려운데. 시발.


“후우.”


그래, 일단 오늘은 쉬자.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죽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우울함에 찌들며 술을 들이키던 그때였다.


덜컥!


꼬질꼬질한 소년 하나가 다급하게 술집에 들어와 이리저리 안을 살폈다.

소년은 이내 데릭을, 정확히는 데릭의 차림새를 보고는.


“우와, 진짜잖아?! 아저씨, 아저씨! 괴물 사냥꾼 맞죠?! 그쵸?!”


잔뜩 들뜬 모습으로 데릭에게 달려들었다.

뭐야 이건 또. 귀찮게.


“······근데 뭐. 어쩌라고.”

“아, 드디어······!”


오늘은 그냥 쉬고 싶은데.

딱 봐도 보수 낼 돈도 없어 보이고.


데릭이 시큰둥한 얼굴로 소년을 훑어보았다.

그런 시선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소년은 데릭의 장비를 정신없이 구경하며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었다.


뭐지. 의뢰가 아닌 건가.


“꼬마야, 용건만 후딱 말하고 꺼져라. 귀찮게 굴지 말고.”


데릭이 매몰차게 말했다.

5년이란 세월은 그에게서 예의와 친절을 앗아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 죄송해요. 진짜 괴물 사냥꾼은 처음 봐서요.”


소년 또한 그런 태도가 익숙한 듯 보였다. 데릭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용건이 뭔지만 말해. 참고로 내 의뢰비는 더럽게 비싸니까 돈 없으면 그냥 다시 나가고.”

“아, 그게 아니라. 그, 있잖아요, 저기 혹시······”


소년은 한참을 머뭇거리며 뜸을 들였다.

데릭이 짜증을 내려던 그때, 소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요.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잘할 자신 있어요. 정말로요.”

“······뭐?”


뭔 소리야 이건 또.

데려가 달라니, 어딜?


“괴물 사냥꾼이 되고 싶어요. 재능도 있다 생각하고요.”

“하.”


헛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이 개같은 직업을 하고 싶다는 놈이 있을 줄이야. 재능이 있다는 말도 우습기만 하다.


“아서라. 나도 사람이니까 이번 한 번은 말려주지. 넌 내게 평생 감사해야 할 거야.”

“전 정말 진심이라고요!”

“네가 진심이든 말든.”


무엇보다 데릭도 진심이었다.

원수가 한다고 해도 세 번은 뜯어말릴 직업이 이 괴물 사냥꾼이란 직업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었지만 너무 귀찮았다.


“그만 가 봐라. 어차피 데려가 줄 생각도 없으니. 정 하고 싶으면 알아서 찾아가든가.”


‘교단’을 말하는 거였다.

괴물 사냥꾼을 양성하는 곳으로, 드넓은 대륙에 총 5곳밖에 없는 폐쇄적인 집단.


사실 혼자서 찾아갈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그건 데릭이 알 바가 아니었다.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그러죠. 부탁드릴게요. 가는 길에 잡일도 제가 다 할 테니까요. 네?”


이건 좀 솔깃한 얘기군.


데릭은 이놈을 데리고 다니는 것의 득과 실을 잠시 따져보았다.

결과는.


“어딜 보수도 없이 날로 먹으려고. 꺼져라. 말로 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냥 혼자 하고 말지, 이런 짐덩어리를 데리고 다니는 건 명을 재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지난 5년 간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운 삶의 지혜였다.


보수 얘기가 나오자 소년도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역시 쥐뿔도 없는 놈이었다.


“······그럼 위치만 알려주시면 안 돼요?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요. 제발요.”

“하하.”


살리긴 개뿔.

이쯤 되니 왜 이렇게까지 이 개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물론 물어볼 생각은 없지만.

경험상 남의 일엔 관심을 끄는 게 상책이다.


“그래.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한 번만 더 말해주지. 포기해라. 넌 반드시 죽는다.”


미친 세상이었다.

이런 삐쩍 마른 소년이 홀로 여행하겠다는 건 곧 자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였다.


“······전 약하지 않아요.”

“오. 그거 참 부럽군.”

“진짜예요! 전······”


소년은 말을 끊고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귓속말을 하듯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사람도 죽여봤다고요.”

“오. 그건 참 안 부럽군.”

“우씨!”


소년은 대뜸 식탁에 놓인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반사적으로 데릭의 손이 허리춤에 매인 검으로 향했고, 한 발 물러나며 소년의 손목을 베어내려던 그때.


우웅─


“봐요! 저 오러도 쓸 줄 안다고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데릭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소년이 움켜쥔 나이프엔 시퍼런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데릭이 그토록 갈망하던, 망할 오러였다.


“······그건, 확실히 부럽군.”


데릭의 반응을 확인한 소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쵸?! 저 진짜 재능 있다니까요?”


재능이 있니 마니 할 수준이 아니다.

이런 촌구석에서 홀로 오러를 깨우친다는 건 천재, 그것도 단 한 줌의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려라. 빨리.”

“앗.”


소년은 재빨리 오러를 거둔 후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다행히 주위가 원체 소란스러웠던 탓에 그 오러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있었다면 벌써 난리가 나도 제대로 났겠지.


데릭은 굳은 얼굴로 소년을 바라봤다.


“······나이가 몇이지?”

“저요? 아, 그, 열다섯이요.”


그 나이에 오러를 두른다라.


“그 정도면 사냥꾼 따위가 아니라 기사단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몰랐나?”

“······아뇨. 알아요. 근데 그건 좀 사정이 있어서.”

“흠. 그런가.”


역시 물을 생각은 없다.

타인의 개인사엔 질색하게 된 지 오래였다.


그런 것보다 데릭은 이 소년의 효용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오러가 있다면 저울추를 새로 올려야 하니.


속으로 계산을 마친 데릭이 소년에게 물었다.


“남을 가르쳐본 적 있나?”

“네? 뭐가요?”

“오러 말이다.”


레벨업을 통해 오러를 배우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그때까지 몇 번이나 더 사선을 넘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아, 그건······”


소년이 머리를 굴리는 게 훤히 보였다.


“사실대로 말해라. 어차피 금방 드러날 일이니.”

“아. 그······ 아, 아뇨. 없긴 한데, 그래도······”

“스승은? 따로 없었나?”

“어엄, 그, 네, 딱히······.”


역시 스스로의 재능만으로 깨우쳤다는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놀라운 일이었지만 데릭에겐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흠, 이론적인 건 잘 모르겠군.”

“아,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가르쳐본 적도 없으면서 뭘 장담하는 건지.

하지만 데릭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보수는 오러 강습으로 받겠다. 당연히 잡무는 모두 네 몫이고.”

“아.”


소년은 나직한 탄성을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난리법석을 떨 듯한 모습인지라 데릭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교단까지만 데려다주지. 그 이상은 네 몫이다.”

“네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정말로요!”

“그리고 명심해라. 내 명령에 무조건 따를 것. 이게 최우선이다.”

“넵!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소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차게 답했다.

제대로 듣고 있긴 한 건지.


뭐, 정 못 써먹겠다 싶으면 버리면 그만이니.


“이름은?”

“아, 토니입니다! 그······ 저는 뭐라 부르면 될까요?”

“데릭이다. 마음대로 불러라.”


호칭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형님형님 거리다가도 등에 칼 꽂은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


“흐음······ 아! 그러면 선배님! 데릭 선배님은 어떨까요? 헤헤.”

“끔찍하군. 그냥 데릭이라 불러라.”

“넵······.”


데릭은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할 거니까 준비나 해둬라.”

“아, 넵!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여기로 다시 올게요!”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그 모습에, 데릭은 대충이나마 토니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뭐, 아무래도 좋은 얘기지만.


토니는 2층으로 올라가려는 데릭에 등에 대고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저 얼간이는 이게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길인 줄도 모르고 저렇게 좋아라 한다.


“······쯧.”


오러 사용자들은 대개 콧대가 더럽게 높다. 앞으로 오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겠지.


토니가 자신에게 안겨줄 이득에 대해 생각해본 데릭은 소년에게 자그마한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직접 겪어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가는 길에 의뢰를 몇 개 같이 수행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만큼 엿같은 직업이니.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겠지만 어차피 오러를 배울 시간도 필요하니까.


‘······뭐, 그래도 하겠다면야.’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남의 인생이니까.


데릭이 다시 스승을 얻은 날이자, 처음으로 제자를 들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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