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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님의 서재입니다.

무주택자 무신론자 무연고자 김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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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손
작품등록일 :
2020.05.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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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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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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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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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9화 - 김연희 (3)

DUMMY

처음 교도소에 다녀와서 미경이가 도움을 받겠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로 많이 바빠졌다. 면회도 더 자주 가고, 다음 면회를 가기 전에 변소희와 함께 사전 논의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돌발 상황은 항상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발생했다.


두 시간 거리에 사는 딸애가 연락도 없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누구···세요?”


딸애가 홍삼 세트인지 뭔지를 오른손에 쥐고 주방에 들어섰을 때 식탁에는 나와 변소희 그리고 남자 변호사가 서류를 잔뜩 올려둔 채로 둘러앉아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할 말을 찾고 있는데 변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주경신문 기자 변소희라고 합니다. 김연희 님 따님이신가요?”

“네, 그런데 기자 분이 엄마 집엔 무슨 일이야?”


딸애는 악수를 위해 내민 변소희의 손을 외면하고 오히려 내 쪽으로 목을 쭉 빼며 물었다. 늙은이 취급하지 말라고, 집에 찾아올 땐 미리 연락을 하라고 그렇게 일러두었는데도 딸애는 항상 막무가내였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셌는데, 커서도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너는 인사한 사람 무안하게 그게 뭐니?”

“나이 든 사람 혼자 사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그게 보이겠어, 지금?”

“누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이야! 나는 너 모르는 사람 집에 들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니?”

“저번에도 꽃집에서 만난 아줌마 집까지 데리고 왔는데 알고 보니까 다단계였다면서!”

“얘는, 내가 그걸 알았으면 데려왔겠니? 그리고, 물건 안 샀으면 된 거 아냐?”

“물건을 안 산 게 문제가 아니라, 낯선 사람을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집에 들이는 게 문제지!”

“너도 내 나이 돼 봐! 말 걸어주는 사람한테 경계심 세우게 생겼나!”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인데!”

“너 알 바 아냐! 내 집에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거면 그냥 가!”

“무슨 일인지 알 때까지 절대 못 가!”


딸애는 그렇게 고집스러운 얼굴로 남은 의자를 빼서 앉았다. 어찌나 엉덩이를 세게 내려놓는지 의자가 부서질까 무서울 정도였다.


“하던 거 계속해요, 나 없는 셈 치고.”


그렇게 팔짱을 끼고 시비조로 말하는 딸애 때문에 변소희와 변호사가 내 눈치를 봤다.


“다음에 다시 올까요?”


변소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 중요한 일을 저런 고집불통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죠. 하던 얘기 계속 해요. 쟤도 관심 있으면 동참하든지 하겠죠, 뭐.”


사실 마지막 말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던진 건데, 의외로 분위기는 그런 쪽으로 흘러갔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엔 관심 없이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는 줄 알았던 녀석이 조금씩 우리가 하는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딸애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자란 편이어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낼 줄 아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굉장히 무례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성격이라고 생각해서 타이르고 말렸는데, 세월이 지나보니 그 나름의 장점도 많았다. 뒤끝이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드러나기 때문에 딸애의 진의를 알기 위해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어서 편했다.


“미경이 언니가 뉴스에 나온 그 여자였어?”

“그래.”

“대박이네.”

“넌 지금 그게 할 소리니?”

“아니, 신기한 건 사실이잖아. 그런데 누명을 썼다, 이거야?”

“어디서 늦게 들어와가지고 지난 줄거리 타령이야. 가만히 듣기나 해, 끼어들지 말고.”

“알았어. 근데 이런 일이었으면 나한테도 진작 말하지 왜 숨겼어?”

“늙은이가 괜히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고 한 소리 할까 봐 그랬지.”

“참 나, 엄마가 언제 내가 그런 소리하면 듣기나 했었어?”

“아유, 잔소리 듣는 것도 귀찮으니까 그렇지!”

“섭섭하게 왜 이래? 엄마한테 잔소리하는 건 자꾸 모르는 사람이랑 엮일 때 그런 거고, 이건 미경이 언니 일이잖아. 누가 들으면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줄 알겠네! 쓸데없는 일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 알았어. 일부러 숨긴 건 아니고 그냥 나도 어쩌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럼 저번에 전화했을 때도 이 일 안 하고 있었다고?”

“그건 아니지만···”

“됐어. 바쁜데 빨리 진행하세요. 우리 얘긴 나중에 다시 할게요.”


그렇게 그 날부터 딸애도 우리의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원래 하는 일이 바쁠 텐데 연차를 쓰고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관여했다. 수동적으로 변소희와 변호사의 지침을 따르던 나와는 달리, 딸애는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추진하는 일의 방향성도 새로 제안했는데 대부분 호응이 좋았다.

딸애가 아니었다면 변소희와 변호사가 속한 단체에 대해서도 모를 뻔했다. 그리고 미경이가 얽힌 사건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사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미경이가 자백한 살인 행각이 일어났을 시점에 그 애 옆에 다른 남자가 둘이나 더 있었다는 것이었다. 언론에선 전혀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변소희도 지금까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딸애가 공식 기록 등을 독자적으로 조사해서 알아낸 거였고, 그것에 대해 묻자 변소희도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어쩌다 보니 이 일에 얽힌 것뿐이에요. 살인 사건이랑은 관련이 없어서 말씀 안 드렸던 거구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세요? 개인적으로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사실 우리 단체에서 보호 중에 있어요. 따로 풀려났기 때문에 범죄 조직에서 노리고 있거든요.”

“그럼 그렇게 보호 중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둘은 면죄부를 얻는 거예요? 우리 언니만 협박에 못 이겨 자백한 것 때문에 감옥에 있구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게 맞지만, 사실···”

“저도 직접 봐야겠어요.”

“네?”

“보호하고 계시다는 그 두 남자, 저도 직접 봐야겠다고요!”

“하지만···”

“안 그러면 저도, 우리 엄마도 이 케이스에서 손 뗄 거예요. 언니를 위해 백 퍼센트 일하는 사람이랑 함께 해도 될까 말까인데, 어떻게 믿고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기겠어요? 오히려 언니가 감옥에서 못 나오게 훼방 놓으려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생각해 보니 딸애의 말이 맞았다. 이런 일을 지금까지 숨겼던 것도 그렇고, 더군다나 미경이와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을 감싸는 변소희의 태도가 왠지 찝찝했다.

변소희는 한참 고민하는 표정으로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요. 만나게 해 드릴게요. 직접 보면 알 거예요. 진미경 씨처럼 범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걸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으면 재판은 뭐 하러 하겠어요?”


변소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자리가 마련되었다. 우리만 따로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고, 단체 사람들이 함께 참석하는 모임의 형식이었다. 나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서 빠졌는데, 딸애는 자리에 나갔고, 직접 질문까지 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점잔 빼면서 물어본 것 같아. 더 시비조로 물어봤어야 했는데. 직성이 안 풀려.”


그런 딸애의 모습을 보니 아직도 어렸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딸애 말에 의하면 직접 만나 본 그 남자들은, 그 자신들도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얼떨떨해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둘은 무사히 빠져 나오고, 미경이가 살인죄를 뒤집어 쓴 상황 때문에 동정해주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우리는 다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에 미경이와의 면회가 잡혔을 땐 딸애도 함께 갔다. 어느새 교도소 내 면회 절차에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딸애는 긴장한 티가 팍팍 났다. 나도 불과 몇 주일 전에는 저런 모습이었겠지 생각하며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딸애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굳은 눈빛은 그대로였다.

미경이가 반대 편에서 걸어 나오자 딸애의 얼굴에 흠칫 놀란 떨림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최근에 밝아졌던 미경이의 얼굴도 급격히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로 만나자마자 울고 불고 눈물을 쏟는 광경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양 쪽 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둘은 대화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앞으로 진행할 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모는 딸애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그냥 실감이 안 났나 봐. 그 안에 있는 게 미경이 언니 같지 않았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차가운 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실감이 안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딸애가 함께 하는 면회 횟수가 몇 번 더 쌓인 뒤에는 오히려 서로 개인적인 대화도 나누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딸애는 그렇다 쳐도, 미경이 쪽의 변화가 아주 긍정적이었다. 말수도 많아지고, 얼굴도 밝아지고, 우리가 준비하는 일에 대해서도 훨씬 더 믿음을 갖는 눈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경이를 돕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미뤄지고 있었던 첫 공판 날짜가 잡혔고, 그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 남겨 둔 상황에서 변호사를 대동하고 미경이의 면회를 갔다. 딸애는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빠졌다. 그런데 며칠 새 다시 만난 미경이의 얼굴이 내가 처음 그 애를 다시 봤던 날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아, 아뇨. 그냥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게 될 걸 생각하니까 너무 긴장이 돼서··· 다들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마. 결국 진실이 밝혀지면 다르게 알게 될 거니까.”

“네, 그렇죠.”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살짝 뜸을 들인 뒤 나온 대답에서 뭔가를 느꼈어야 했는데, 어느 정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음에도 나는 미경이가 한 말만 믿고 넘겨버렸다.

면회 시간이 다 돼서 헤어질 때에도 미경이는 걱정하는 듯한 내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는데, 다시 알게 된 미경이에게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어서 오히려 더 걱정이 되었다.


살짝 찜찜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낸 뒤, 변소희가 집까지 찾아왔다.


“어? 왠 일로 연락도 없이? 오늘은 약속이 잡힌 날도 아니잖아요?”

“잠깐 들어가도 되죠?”

“네, 그럼요, 들어오세요.”


마실 것을 내오는 내내 변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도 어느 정도 직감을 했던 것 같다. 아주 많이 나쁜 일이 생겨버렸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무슨 일이든 직접 듣기 전까지는 믿지 않으려고도 했던 것 같다.


“죄송해요.”


변소희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얼굴에는 단순히 슬픔만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뭔가 다른 감정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서 말해요.”

“네.”


하지만 변소희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앞에 놓아준 오렌지주스가 든 유리잔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이제는 그게 무슨 일이든 직접 듣고 싶지 않아졌다.


“이만 나가 봐요.”


그냥 그렇게 말이 흘러 나왔고, 변소희도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 입장에서도 직접 얘기해주고 싶어서 왔는데, 막상 전하려니 입이 안 떨어졌을 거다.


한참 뒤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렵게 전한 소식은 미경이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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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 보스를 만나다 (3) +2 20.08.12 161 1 11쪽
53 53화 - 보스를 만나다 (2) 20.08.10 17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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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 고백 20.08.05 17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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