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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노동자 님의 서재입니다.

내 조선에 아포칼립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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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노동자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3.03 14:36
최근연재일 :
2021.03.23 06:2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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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글자수 :
1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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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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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괴물(3)

DUMMY

대왕 세종의 명에 따라 모든 인원들이 근정전에 다시 모였다.

이미 한 줌의 재로 돌아간 괴물들의 사체는 바람에 날려 남아있지 않았다.

계단 위 전각 앞에서 근정전 앞마당에 도열해 있는 신하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대왕 세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과인과 그대들은 오늘 구식을 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었고, 그 수가 일천(一千)에 달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들과의 사투를 끝내고 이 자리에 다시 모인 수가 대략 오백(五百)이니라.”


“비록 절반만 살아남았다고는 하나, 그마저 영의정 황희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했을 것이다. 이 말에 이의 있는 자가 있는가?”


대왕 세종의 물음에 신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왕 세종이 말을 이어갔다.


“하여 영의정 황희의 공을 크게 치하(致賀)해야 마땅한 일이나,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잠시 미루는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다. 허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영의정 황희 덕에 살아남았음을 마땅히 고맙게 여기고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전하.”


대왕 세종의 노골적인 칭찬에 황희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신하들을 따라 고개 숙일 뿐이었다.


‘저 양반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가지고는.’


다만 고개를 들며 슬쩍 본 수양의 못마땅한 표정에 통쾌한 참이기도 했다.


‘배 좀 아플 거다.’


수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황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의 전개대로였다면 이 시점에 대왕 세종의 칭찬을 받는 것은 수양이었다.

늑대로 둔갑하는 강력한 능력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치고 나가며 활약하는 것이 바로 수양이었으니까.


‘앞으로 네가 칭찬받을 일은 없을 거다, 수양아. 이 형이 항상 한 발 앞설 테니까.’


대왕 세종이 말을 이어갔다.

그 내용은 대왕 세종이 물었던 질문에 황희가 내놓은 정답이기도 했다.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하오?”

―“한양 도성을 수복(收復)하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전하. 그리하여 도성을 하나의 철옹성(鐵甕城)으로 만든다면 괴물들로부터 도망친 백성들이 마땅히 찾아올 것이옵니다.”


대왕 세종은 뒷이야기도 읊어 나갔다.


“괴물들을 퇴치하기 위한 토벌대를 만들 것이다. 그 수는 하나의 토벌대 당 25명씩으로 정하여 총 20개의 토벌대가 될 것이다.”


“또한 그대들도 알다시피 저 괴물들에 대항할 수 있는 비범한 힘을 얻은 자들이 있다. 그 자들을 이 시간부로 비범인(非凡人)이라 칭하고, 각 토벌대를 이끌 토벌대장으로 우선적으로 임명할 것이며, 나머지 토벌대장은 군을 지휘해본 무관이나 전술에 능한 자들로 정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비범인에 속하는 자들이 이끄는 토벌대는 좀 더 위험한 구역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단, 황희가 이끄는 토벌대는 예외였다.


“또한 영의정 황희가 이끄는 일개 토벌대는 특별히 이곳에 남아 궁을 지킬 것이다.”


대왕 세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양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바마마, 영의정 황희 또한 비범인에 속할진데, 어찌 최전선에 나서지 않고 궁에 남아 편히 쉰단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대왕 세종이 수양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나섰다.


“어허! 어찌 그리도 어리석단 말이냐? 궁에 남는 것이 편히 쉬는 것이라니? 행여 밖으로 나섰다 궁지에 몰린 토벌대원들이 몸을 피하거나 겁에 질린 백성들을 대피시킬 안식처가 될 곳이거늘, 정녕 궁을 지키는 것이 편한 일이라 여긴단 말이냐? 하물며 지금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영상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과인의 말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영상은 멍청히 보고만 있던 모두를 대신해 솔선수범하느라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란 말이다!”


몰아붙이는 대왕 세종의 타박에 수양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황희는 그저 흐뭇했다.


그리고 마침 황희와 대왕 세종이 예상했던 신하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것은 임금의 출궁(出宮)에 관한 것이었다.


“전하의 말씀대로 영의정 황희가 궁에 남는 것은 마땅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하오나, 궁궐 밖을 나서면 인육을 탐하는 괴물들이 날뛰고 있을 것이온데, 어찌 전하께서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어 이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워주시옵소서.”

“맞사옵니다, 전하. 직접 나서시면 아니 될 일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 신하의 발언에 이어 모든 신하들이 복창하였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대왕 세종은 그저 그런 신하들을 전각 앞에서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역시나 영의정 황희 말대로였다.


―“대소 신료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옵니다, 전하.”


아니 어쩌면 대왕 세종 본인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당장 전쟁이 벌어져 적장이 도성까지 쳐들어와도 옥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백성을 버리고 왕부터 피신시킬 자들이니까.

너무나도 뻔하고 일관된 신하들의 반응에 대왕 세종은 화가 났다.

그래서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야 했고, 그것은 황희와 의논했던 예정된 대답이 아니었다.


“그대들이 나의 출궁을 만류하며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지금도 궁 밖에선 수많은 백성들이 괴물들에게 찢겨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오니 전하께서 한시라도 빨리 궁에 남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야···”

“가당치도 않은 소리!”

“···”

“내가 왜 몸을 단련하기 시작했는지 아는가? 그대들이 말하는 옥체를 보전하기 위해서? 아니다! 왕이랍시고 백성들을 직접 들여다보기는커녕 궁에 갇혀 상소문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하도 답답하여 시작한 발악이니라! 헌데 인육을 탐하는 괴물들이 나타나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궁에만 처박혀 있으라? 그것이 정녕 그대들이 생각하는 왕도란 말인가! 자고로 왕이란, 모든 백성들의 아비이거늘! 제집에 괴한이 들었는데 아비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찌 자식이 괴한과 맞서 싸울 용기를 낸단 말인가!”


한껏 퍼부은 대왕 세종은 문득 눈을 껌뻑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황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덕에 씩씩거리는 와중에도 예정된 대답 또한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현 시점에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있는가?”


안 그래도 대꾸할 말이 없었던 신하들은 대왕 세종의 마지막 말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궁궐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라면, 대왕 세종이 괴물들의 머리를 한 손의 악력으로만 터트리는 것을 보지 못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당장 눈앞에 아른거렸는지 출궁을 만류하던 자들의 시선이 애꿎은 허공을 향할 뿐이었다.


*


이번 출궁이자 출정의 목표는 모든 괴물을 퇴치하고 도성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한양 도성 수복’이었다.

그에 따라 최초로 결성된 궁 안의 토벌대 인원들은 구식을 행하던 하얀 소복 차림 그대로 급하게 마련된 갑옷을 걸쳤다.

그 모습을 보자니 황희의 머릿속으로 짧은 감상이 스쳤다.


‘이래서 백의민족인가?‘


훗날 이와 같은 하얀 소복 차림은 최초의 토벌대를 상징하게 될 것이기도 했다.

마침 척주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걸치고 있는 황희에게 한 무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상 대감, 아바마마의 말씀대로 대감의 솔선수범이 아니었다면 저 또한 목숨을 장담치 못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세자, ‘이향’이었다.

마땅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그 모습을 보자니 한결같이 건방진 그의 아우와 극명히 비교되었다.


“아닙니다, 세자 저하. 그저 늙은이의 작은 지혜였을 뿐입니다.”

“그 지혜가 수백의 목숨을 살렸으니 어찌 작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대감께서는 비범인에 속하시니 앞으로도 저 같은 평범한 자들보다 더 많은 백성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자신을 평범한 자라 표현하는 세자의 눈에서 낙담하는 기색이 스쳤다.

다만 그 모습을 보던 황희는 세자의 훗날을 그려볼 뿐이었다.


‘본래의 전개에서도 세자는 능력을 얻는 것이 조금 느린 편이었지.’


모든 비범인이 괴물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자, 이향처럼 사태가 진전된 후 뒤늦게 비범인이 된 자가 많았고,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갈 예정이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세자 저하. 저하와 같이 인품이 훌륭한 분이시라면 수십의 군사를 부릴 마땅한 능력을 얻게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대감의 말씀대로 능히 수십의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제가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멀어지는 세자의 뒷모습을 보며 황희는 생각했다.


불사군주(不死軍主), 죽지 않는 군사들의 주인.


그렇다.

이 나라의 세자, 이향은 ‘네크로맨서’와도 같은 능력을 지닌 자였다.

그와 같은 능력은 그야말로 한 사람이 백여 명의 역할을 해내는 일당백(一當百)으로,

앞으로 빠른 속도로 증식해나갈 괴물의 개체 수를 생각한다면 꼭 필요한 능력 중 하나였다.


‘세자가 능력을 얻어 비범인이 되는 순간부터, 괴물 토벌은 수월해질 거야.’


시선을 거두려는데 마침 한 무리가 황희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한명회였다.


‘아주 작당모의 한다고 얼굴에 써서 붙이고 다니지?’


수군거리는 모양새와 한명회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는 자들의 연신 두리번거리는 고갯짓.

굳이 듣지 않아도 뭔가 구린 내용이 오가고 있다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자세히 보니 한명회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는 사내들은 황희와 함께 궁에 남게 될 자들이었다.


특별히 필요한 자가 있냐는 대왕 세종의 물음에 황희의 대답은 척주가 유일했고, 나머지 토벌대원들은 무작위로 배치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무작위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다소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황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셋 정도면 척주 혼자서도 능히 상대할 테니까.’


마침 황희에게 간택된 척주가 말을 걸어왔다.


“대감, 어찌 일부러 궁에 남기로 자처하신 겁니까?”

“엇? 그것을 어떻게 알았나?”


역시 척주는 무사에 걸맞은 눈치와 판단을 지닌···,


“예? 그야 아까 전하와 대화를 나누실 때 소인도 옆에서 듣고 있었으니 알지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척주의 말대로 궁에 먼저 남고 싶다고 청한 것은 황희 쪽이었다.


“크흠, 어찌 남기는? 놈들을 상대한 직후 내 숨이 넘어갈듯이 헐떡이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봤습니다. 소인은 그때 대감이 놈들에게 물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싸우자는 겐가?”

“···송구하옵니다.”


뒤통수를 긁적인 척주가 황희에게 되물었다.


“그럼 토벌대원들에게 궁궐 수비를 맡기고 휴식을 취하실 예정이십니까?”

“아니, 자고로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일세. 이럴 때일수록 몸을 부지런히 굴려야지.”

“예?”


물론 황희가 대왕 세종에게 부탁해 궁에 남은 것은 그가 세웠던 계획을 위한 초석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2선으로 빠진다.


차마 1선으로 나설 수 없는 노쇠한 몸임을 대왕 세종에게 보여주는 것.

다만 그게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분명 강녕전에 숨겨진 목빙고(木氷庫)에서 요기체(妖氣體)를 얻었다고 했어.’


요기체(妖氣體).

말 그대로 요사스러운 기운이 들어 있는 물체로, 아직 이 시점에서는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었다.

본래의 전개대로였다면, 해당 목빙고에 있는 요기체가 발견되는 것은 이야기의 중반부 이후였고,

수양의 휘하에 있는 자가 우연히 얻게 되며 그 능력은 얼음 속성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 계기로 황희가 위험해지기도 했지.’


요기체를 통해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는 자들은 많았으나, 얼음 속성에 관련된 것은 해당 목빙고에 있는 것이 유일했다.

애초에 얼음 속성 능력자는 황희가 유일했기에 그것을 얻은 수양의 부하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그 기특한 일을 해낸 부하를 데리고 수양은 인체실험을 강행했다.

오로지 황희를 처단할 방도를 찾기 위해서.

다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황희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수양아, 이번에도 형이 한 발 앞서간다.’


황희의 시선이 저 멀리 한명회와 있는 수양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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