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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우 님의 서재입니다.

풍류무한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송현우
작품등록일 :
2012.07.09 18:01
최근연재일 :
2013.01.31 12:21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47,522
추천수 :
551
글자수 :
4,540

작성
12.06.04 18:04
조회
64,564
추천
199
글자
9쪽

풍류무한 02

DUMMY

Chapter 1









1




나는 천하에서 이화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남자다!

그게 뭐 대수냐고?

훗!

천박한 식견하고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뭐가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거다.

이화궁이 어떤 곳인가?

하늘을 나는 솔개조차 오직 암컷만 상공을 비행하는 게 허락된다는 곳.

강호에서 말하는 금남의 절대성역!

그곳이 바로 이화궁이다.

내로라하는 무림인이라면 아마도 이화궁의 무공을 논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밖에 없다.

진짜배기랄 수 있는 이화궁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일자무식이니까.

간혹, 이화궁에 방문했던 몇몇 손님들로 인해 외궁에 대한 몇 가지 정도는 어디서 주워들었을 수도 있다.

훗!

가소로운 일이다.

단언컨대 이화궁의 실체는 온건히 내궁에 있다.

그러니 내궁에 발조차 디디지 못한 자라면, 이화궁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셈이었다.

내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고작 이화궁의 궁도가 몇 명이며, 건물이 몇 채나 되는가에 대해 안다고 허세를 떠는 게 아니다. 내가 이화궁에 대해 아는 정보의 질은 차원이 다르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보길 바란다.

듣다보면 이화궁이 내 손바닥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시작해보지.

이화궁의 궁도들이 하루 동안 얼굴에 처바르는 분가루의 양이 얼마인지!

나는 안다.

배꽃같이 하얀 무복 안에 받쳐 입은 속곳을 이 여자들이 며칠이나 안 빨고 입는지!

나는 잘 안다.

오만 깔끔한 척은 다하는 그 계집들이 실제로는 하루에 몇 번이나 뒷물을 하는가!

나는 훤하게 안다.

푸하하하핫!

그러니 이 몸이야말로 지난 천 년에도 없었고!

향후 천 년에도 없을!

천상천하에 유일무이한 남자다……, 이 말씀이신 거다.

대체 어떻게 이화궁에 대해 그리 잘 알 수 있냐고?

후훗!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내게 주신 운명.

말 그대로 천명이 나를, 이화궁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하하……

하……


2


하……

하……

아……하하…….

아, 제기랄!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봐도!

현실은 그저 어린놈의 처량한 신세한탄일 뿐이었다.

이 엄동설한에!

산더미처럼 쌓인 빨랫감 앞에서!

제 아무리 호탕하게 쳐 웃어 봐도!

그 모습이란 비참하기만 했다.

어쩌면 이 꼴로 쳐 웃으니 더욱 비참한 걸지도…….

이화궁에 대해 훤히 알면 대체 뭐하냐고!

천명?

여자들의 속곳이나 빨아 너는 게 주어진 천명이라면……?

난!

당당히 그 천명에 맞서 싸우리라!

옥황상제, 석가모니, 공자, 노자…, 내 앞으로 다 나와!

이게 진짜 내가 살아가야할 유일한 운명이라면 당장 내 눈 앞에 나와서 진짜 이게 네 운명이다…, 라고 직접 말을 해 보라고!

.

.

.

하아~!

생각해 보니 눈곱만큼의 가능성도 없는, 헛소리였을 뿐이다.

앞서 내가 읊어댄 저 냥반들도 남자다.

그러니 저분들이라 해서 무슨 수로 이화궁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아, 생각해보니 더 열 받네.

저 대단하신 분들도 못 들어오는 곳이 바로 이화궁이거늘!

난 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세상은 왜!

이 나를!

절대금남이라는 이화궁에!

달랑 하나뿐인 남자로 살게끔 하는 거냐고?

“한시우!”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자가 보인다.

울퉁불퉁한 피부에 쫙 째진 두 눈.

비가 들이칠 것 같은 들창코와 썰면 세 접시는 나올 듯한 입술.

세 겹진 턱살과 태산처럼 우뚝 솟은 배.

곰 같은 어깨에 통나무 같은 팔뚝.

그리고 서까래 같은 두 다리로 우뚝 선 여자는, 나를 오연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뭐해? 부르면 빨리 튀어오지 않고?”

봉화사 대종을 통째로 삶아 먹은 듯한 커다란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겹쳐진 턱살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대는 이 여인.

그녀의 이름은 구숙연이다.

이화궁 외궁에 소속된 궁도.

딱 봤을 때는 사십 대 중반은 되어 보이지만, 실제는 이제 막 삼십을 넘긴 노처녀였다.

“네, 갑니다. 가요.”

괜스레 성질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

나는 그녀가 또 무슨 일을 시킬까 생각하며 걸음을 분주히 놀렸다.

“하여튼! 늙으나 젊으나……, 남자들이란, 쯧!”

구숙연이 혀를 차는 소리는 내게 있어서 달리는 말의 채찍질.

또 저녁을 굶지 않기 위해서 나는 아예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차다.

만약 이렇게 찬바람 계속 맞다 행여 입이라도 돌아가면……?

전설 속 송옥과 반악이 쫓아와 바지 끄댕이를 잡고 ‘형님’이라 외칠, 내 준수한 용모에 흠이 가겠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건 단순히 내 개인적이 문제가 아니다. 희대의 미남자인 내 입이 돌아간다는 건……, 실로 천하가 울만한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잡생각은 구숙연의 면전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 날 괴롭힐지 모르는 만큼, 이 돼지 앞에서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장작 떨어졌단다. 빨래 다 끝나면 장작도 패놔.”

윽!

오늘은 빨래로 모든 업무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장작까지 패려면 새벽이나 되어야 일이 끝날 터.

자칫하면 오늘 저녁을 굶기 십상이었다.

“뭐야? 대답 안해?”

구숙연이 두툼한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알겠어요.”

그녀는 쭉 째진 눈으로 날 잠시 노려보다, 팩하니 몸을 돌렸다.

육중한 체구를 움직여 궁으로 돌아가는 구숙연.

그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발아래쪽의 돌맹이가 보인다.

아우!

저걸 그냥,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몸집은 둔해보여도 구숙연 역시 이화궁의 외궁도.

무공을 익힌 몸이다.

나 같은 꼬맹이가 짱돌 하나를 들었다고 어찌 해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객기가 부르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아는 나는 다시 빨래터로 향했다. 불만을 쌓아올릴 시간에 방망이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저녁밥을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3


“아고, 아고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삭신이 쑤셔왔다.

생각해 보니 처량하다.

삭신이라니!

이게 열세 살 꼬맹이에게 어울릴 단어냐고?

인간의 육신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쪼그리고 앉아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진짜 해보기 전엔 모른다.

이미 굳은살이 잡힌 손바닥에 피가 배어날 만큼 방망이를 휘둘러야함은 물론이거니와 물에 젖은 빨래의 무게란…….

아! 이런 걸 정말 형언키 힘들다 하는 거겠지.

아무튼 주방을 향한 내 한 걸음, 한 걸음은 천근처럼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결단코 굶지 않겠다는 각오만 없었다면 당장 숙소로 돌아가 쳐 잤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럴 바에는 다리 밑에서 계속 살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지.

잠시의 불만으로 그렇게 쉽게 내릴 결론은 아니었다.

거지란 게 어릴 때야 그저 나이 어린 것만 내세워도 적당히 구걸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달라진다.

멀쩡한 사지를 두고 왜 걸식이냐는 손가락질이 따르기 마련.

그리되어 수입이 줄면?

이를 참아낼 왕초가 아니었다.

필시 사람들에게 철전 몇 푼을 더 뜯어내겠다고 한쪽 다리의 힘줄을 끊어 병신을 만들었을 터.

조칠 형이나 육삼 형처럼, 나도 평생을 절뚝거리며 살아야했을 거다.

그랬다면 이거야말로 천하의 재앙이란 표현으로는 부족한!

전 우주적 손실…… 아, 내가 너무 나갔나?

어쨌거나 상황이 그러하니 이화궁으로 온 게 분명 잘못된 선택이 아니리라.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실을 말하자면, 사실 당시의 내 선택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선녀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던, 그 여자는 이미 날 이화궁으로 데려가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니까.

당시 멋모르고 여자 앞에 당당히 나섰던 왕초가 생각난다. 죽어도 자기 사업밑천을 날로 빼앗길 순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었지.

그리고 이어진 여자의 구타.

폭행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허구한 날 구숙연에게 얻어터지는 나지만, 당시 왕초가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나름 대가 세다고 자부했던 왕초였다.

하지만 여자에게 자근자근 밟히더니, 결국은 제 입으로 제발 날 데려가 달라고 외쳐댔다.

나로서는 실로 무시무시하면서도 교훈적인 장면이었다.

폭력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런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난 후였다.

그러니 어리디 어리고, 순박하기 짝이 없는 내게 선택의 여지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함께 가겠냐고 묻는 여인의 말에 숨도 못 쉬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대는 것만이 나로선 최선이었다.

뭐, 그 땐 정말 어렸으니까, 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암!

적어도 지금은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냉철한 판단 하에 화를 자초하지 않는 언행을 골라서 할 뿐이니까.

그 때였다.

“어라? 이건 또 뭐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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