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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떼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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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떼
작품등록일 :
2014.09.19 00:29
최근연재일 :
2014.09.19 22:49
연재수 :
1 회
조회수 :
330
추천수 :
0
글자수 :
2,893

작성
14.09.19 22:49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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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목소리

DUMMY

한심하다, 정말 한심하다.

단지 내 욕심 때문에 두 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저승문 앞에 서게 만들어 버린 나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평가는 그것밖에 없다. 나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어둠과 기괴한 소리들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갈등한다.

"아직 멀었나?"

내게 이 상황을 요구한, 정체모를 그 목소리가 나를 채근한다.

"이런 걸 빨리 결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투덜거리듯 대꾸하고 다시 고민한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아도 여전히 편안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 골라주기라도 한다면 내 마음은 좀 더 편해질 지도 모른다. 남에게 내 책임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곳에는 나와 저 둘, 그리고 '목소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이 악몽이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어보지만 나는 이미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가 하면, 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뜬금없는 말에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본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그렇다.

나는 난로에 의한 화재사고로 죽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집에 혼자 있었고 잠들어 있었으며 내가 왠지 주변이 덥다고 느끼며 깨어났을 땐 이미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출구가 불길 때문에 가기에 부적합한 상태였다. 용감한 사람이라면 온 몸에 화상을 입는 것을 감수하고 불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난 그렇게 죽었고 정신을 다시 차려 보니 어둑어둑한 가운데 어디선가 희뿌옇게 빛이 들어오는 곳에 영혼이 되어 서 있었다.

난로 옆에 있었던 나무 탁자 위 신문지를 원망해 보았자 내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게 아니니 나를 자책하고 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원망하는 것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내가 저 세상에서 끝마치지 못한 것, 사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들이 족쇄가 되어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았다.

'살고 싶어? 다시 살아나게 해 줄까?'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미련이 남아있던 나에게 '목소리'의 제안은 절망 속의 한 가닥 희망이었고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였다. 당연히 나는 그 기회를 놓치기 싫어 '목소리'의 제안에 망설임없이 응했고 '목소리'가 오라는 대로 따라갔다.

불에 처참하게 탄 시신 대신 어느 새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온 내 몸이 보이자 나는 '목소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의심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 때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고작 의심 따위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도착했다고 해서 멈추자 그는 갑자기 악마로 돌변해 내게 실로 참혹한 대가를 요구했고 그 대가란 바로 주위 사람들 중 한 명의 목숨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사실을 깨닫고 필요 없으니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한 번 동의했으니 더 이상 의견은 받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단번에 거절하고는 나의 목숨과 맞바꿀 두 사람을 내 눈앞에 데려왔다. 그리고 정체 모를 투명한 벽을 만들어 두 사람을 따로따로 격리시켰다.

나는 회상을 끝내고 왼쪽 방에 있는 '1번 선택지'를 바라본다. 그 1번 선택지란 바로 생전에 나와 가장 친했던 단짝친구이다. 친구는 '목소리'에게 이 상황을 모두 전해듣고 나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저 친구, 평소에는 저렇게 논리정연한 성격이 아닌데. 위기가 닥치면 사람의 성격이 변한다는 말은 맞는가 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돌려 '2번 선택지'를 바라본다. 오른쪽 방에는 우리 엄마가 있다. 엄마는 벽을 두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젠장, 어쩌라는 거야!'

둘 다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면 어떻게든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다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는 결론을 내린다.

"엄마를 선택할래요."

대충 고른 게 결코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무도 선택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죽음과 단 0.1%도 관련이 없는 사람을 나 대신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아 친구는 포기했다. 그러고 나니 남는 건 엄마밖에 없다. 엄마, 미안해.

"흐음, 알겠다."

'목소리'는 말하더니 친구를 사라지게 하고 엄마가 있는 곳의 벽을 연다.

엄마는 벽이 열리자마자 나에게 달려온다. 아마 나를 꾸짖고 원망하기 위해서겠지. 엄마의 입이 열리고 말이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난다.

"일어나! 얘 좀 봐라? 안 일어나?"

"......뭐라고?"

나는 언제부터인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뜬다. 내 흐릿한 시야에 엄마의 얼굴이 들어온다.

"엄마? 나 대신 죽은 거 아니었어?"

나는 놀라 대답하며 몸을 일으킨다. 옆에서 엄마의 어이없다는 듯한 대답이 들려온다.

"너 대신 내가 왜 죽어? 얼른 현실세계로 돌아오세요. 여긴 집이랍니다."

"에? 그래?"

나는 또렷해진 시야로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있는 곳은 우리 집 거실 소파 위다. 난로는 멀쩡했고 나무 탁자 위 신문지도 그대로 있었으며 집 안 어디에도 불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결론 : 꿈이다

"악몽 꿨었네. 지금 몇 시야?"

나는 머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몇 시긴, 지금 저녁 여섯 시 넘었어. 밥 먹자."

"아차! 엄마, 나 여섯 시 반에 친구네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러니? 그럼 빨리 밥 먹고 가."

엄마는 식탁에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유리와 도자기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재빨리 밥을 먹고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친구'란 바로 아까 꿈 속의 단짝 말이다. 나는 친구네 집에 가며 핸드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한다.

"야, 나 낮잠 잤는데 꿈속에 너 나왔어! 가면 말해줄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켜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제껏 수없이 오갔던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때 내가 한 가지 실수한 게 있다면 신호를 지키지 않고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작가의말

작년에 끄적거려 봤던 단편이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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