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ascal 님의 서재입니다.

그녀의 고장난 시계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pascal
작품등록일 :
2020.07.12 17:00
최근연재일 :
2022.01.09 00:46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2,540
추천수 :
6
글자수 :
139,460

작성
21.09.28 16:39
조회
34
추천
0
글자
11쪽

그녀 - 50화

DUMMY

기다리다 – 그녀(She)


여느때보다 단조로운 아침이었다. 일찍 일어난 탓이었다. 왜일까? 이유를 약간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짐작에 닿기 전에 그녀의 생각은 길을 돌렸다.

부모님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고등학교 3학년인 여동생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은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기로 했다. 보통의 다른 여자들은 세면을 마치고 기본적인 화장을 하는, 외출준비에 오래 걸리는 듯하였지만, 그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머리를 가진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세면은 언제나 신속했다. 신속하다기보다는 무료했다. 라고 보는 게 옳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조금의 망설임과 미적거림도 없이 집을 나선 그녀는 자신이 5시 30분에 집을 나선 것을 알았다.


얼마전이었다면 날은 어두웠을 지도 모르지만. 한창 봄인 지금은 꽤 밝았고, 생각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버스를, 지하철을 타는 그녀는 이내 곧 인파에 둘러쌓이고 만다. 이른 아침이란 시간에도 세상은 생각보다 바삐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사무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성추행 역시 심심치 않게 당해보았다. 남성은 일생동안 성추행을 겪어보지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몇 번 경험하지 못해볼지 모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이 생각하는 것보다 빈번히, 심심치않게 성추행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좀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일반의 반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개의 경우에 많은 여성들은 자리를 회피한다. 당하고서도 참거나 당하고서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하면 그 즉시 갚아주었다. 자신의 엉덩이로 다가온 손을 그녀는 바로 꼬집어 비틀었으며, 자신에게 은밀한 하지만 고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접촉이 있을 때면 눈을 부라리며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올바른 대처가 아니었다. 정말로 올바른 대처는 소리를 지르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대처로 방어적이냐 공격적이냐 차이였을 뿐. 잘못된 대처방식이란 점에서는 똑같았다. 상응하는 대가라는 건 없다. 범죄당했고. 저항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쉽지 않았다.


자리가 없어 서있는 그녀의 옆으로 옆의 남성이 기대어온다. 달리는 열차 안이 그리 붐비지 않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여지없이 과하게 흔들려 자신에게 기대어오는 남자의 정강이를 한 대 강하지 못하게 차고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기분은 구렸다. 사실 그래서 구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아침에 일찍 깨어나게 만든 그것이란 걸 알고있었다. 그녀가 학교 그러니까 서울대학교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였다. 버스와 지하철과는 달리 학교는 적막했다. 어른들의 말처럼 학교라는 곳은 사회라는 곳보다 정말로 편한 곳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이 학교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성실과 부지런함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서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카페를 찾았다. 사실 그녀는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짜증이 났다 계속해서 짜증이 났다. 초조, 불안, 애가 타는 기분.

카페는 대학 앞에 얼마든지 있었다. 유명브랜드의 카페부터 유명하지 않은 카페까지 전부 있었다. 정말이지 카페 전성시대였다. 밥을 안 먹어도 카페는 먹는 시대다. 밥이 만원이 넘어가면 다들 비싸서 난리지만. 커피와 디저트로는 당연히 만원이 넘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다시 바로 나왔다.


참을 수 없었다. 개방되지 않은 공간의 압박감. 그녀의 짜증은 개방되지 않은 공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레몬에이드 하나를 집은 그녀는 계산을 마친 뒤, 학교의 산책길을 택했다. 벤치에 앉았다.


“하아........”


한숨을 뱉어냈다.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어느하나 집중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죽였다. 핸드폰 안 메신저에서 그의 프로필을 한동안 보았다.


멍청이, 머저리. 바보. 병신.


수많은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무언가 상스럽지 않으면서 업신여기는 단어를 찾고 싶었는데. 그녀는 그런 단어를 찾지 못한 듯 했다.


그리고 어느새 봉사활동 동아리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다. 여러 활동들을 보았다.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씻겨주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양로원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 같이 밥을 먹는 모습. 김장을 하는 사진도 있었다. 게다가 집을 짓는 모습도 있었다. 못을 입에 물고 망치를 들고 있는 학생의 모습은. 무언가 반짝반짝 빛나보이기까지 했다.

봉사활동동아리긴하지만 같이 회식하는 사진도 있었는데. 사진이었지만, 다들 시끌벅적하다는 것이 느껴졌고, 무척이나 재밌어보였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 속에 포함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물론. 합격을 한다면의 이야기지만.

자신은 고아원에서 어떤 식으로 애들을 씻겨주고 있는지. 어떻게 집을 만들고 있는지. 회식장소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요리는 어떤 요리를 할지.

동시에 자신이 과연 그런 일들을 사진의 이 사람들처럼 밝고 재밌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으으.....” 소름이 돋아나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상상의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이내 수업시간이 된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고민했다.


제낄까?


21살인 그녀의 난생 처음의 생각이었다. 20살 대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그녀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주변동기들이 그녀에게 몰려들었으며, 과선배부터 대학교선배까지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칼에 모든 접근을 잘라내버렸고, 수업 한 번 빠지질 않았다. 대학교 1학년부터 그녀는 거의 혼자 대학생활을 해왔다고 보면 될 정도인 것이다.


가끔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수군수군 거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 수군수군의 내용이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라는 것도. 인정머리가 없다거나 자신이 공주인 줄 안다거나 오만하다거나 등등의 나쁜 이야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단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은 것이었고, 그녀의 성적 역시 톱클래스였다.


그런 그녀가 처음, 난생 처음 제낄까? 라고 생각하였지만. 이내 곧 그마두었다.


그녀는 자신의 처음 든 그 마음보다 자신의 원칙을 중시하는 인간이었고, 그녀는 곧 벤치에서 일어나 수업에 들어갔다. 레몬에이드는 기껏해야 한 입 먹은 상태였다.


집중은 되지 않았다. 그저 칠판을 바라보다가도 어느새 동아리활동을 상상하고 있었으며, 혹은 떨어져 동아리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떨어져 동아리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인지 모르게


멍청이, 머저리, 바보, 병신


이 마음속에 튀어나왔다.


교수님을 바라보다가도, 누군가의 발표를 듣다가도, 칠판을 바라보다가도, 필기를 하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는. 수업이 끝나고 자신의 무척이나 많이 비어잇는 필기를 보며


멍청이, 머저리, 바보, 병신


이 튀어나왔다.


오후 1시 반. 수업이 끝나고, 그녀는 식당으로 향하려다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블 치즈 새우 버거를 먹어야만 운명의 신이 자신을 합격시켜 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도저히 무언가 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어져서는 포장하여서는 아침에 앉았던 벤치에 앉았다. 아침보다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지만 말이다. 정확히는 아침에는 사람이 씨가 말라있었는데. 지금은 꽤 심심치않게 보였다.


“하아.......”


그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콜라를 한 번 쭈욱 ᄈᆞᆯ고. 햄버거를 입에 우적우적 쑤셔넣었다. 무언가 참을 수 없이 자신 안에 무언가가 비어있다고 느껴졌다. 햄버거로 그 공간을 그녀는 채워버리고 싶었다. 달았다. 풍성했고, 맛있었다.

그녀는 왜인지 울고싶다고 생각했다. 전혀 울 일은 아니지만 무언가 그냥 울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울지는 않았지만.


햄버거를 다 비워내고서는 하늘을 보며 아까와는 조금 다른 한숨을 내뱉었다. 인생무상의 한숨과 비슷했다. 시간은 어느새 벌써 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탈의 마음도 없어졌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상상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상상은 그저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그 둘만을 오갔다. 그녀는 시간을 보며. 제발 멈춰다랄고 애원하고 싶었다. 디지털시계였지만. 그녀는 초침을 붙잡고는. 붙잡지 못한다면 때려서라도 멈추고 싶었다.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손톱을 깨물었다. 머리카락을 베베 꼬았다. 시간은 확실히 빨랐다. 이렇게 시간을 의식하고 있는데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2시 40분.


합격이냐. 불합격이냐.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아리를 말했을 때. 미친놈인가. 라고 생각했다.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여서 처음에 알아듣지 못했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조금 화가났다. 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내가 입술을 깨물고, 손톱을 깨물고, 머리카락을 꼬꼬있어야하지?


2시 50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3시 발표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손에는 땀이 나서는 지문인식이 잘 되지 않았다. 핸드폰이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게 불합격의 신호같이 느껴져서 더 짜증났다. 인터넷앱도 잘 눌러지지 않았다. 그게 불합격의 신호같이 느껴져서 짜증이 솟구쳤다. 이 세계에 자신과 자신이 앉은 벤치와 핸드폰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휴대폰 화면이 바뀌었다.


멍청이, 머저리, 바보, 병신 이었다.


“여보세요.”


“지은씨도 합격했어요. 저도 합격했고. 와. 저 이런 거 합격해보는 거 처음인데.”


“아, 발표가 오늘이었던가? 잘됐네. 그런데 내가 합격한 건 어떻게 알아?”


“제가 지원했잖아요. 지은씨 주민등록번호하고 휴대전화번호 다 아는데요. 뭘.”


“아, 그렇네. 그래도 내 개인정보같은 건 이제부터 함부로 쓰지 말아줘. 어쨌든 고마워.”


“와. 지은씨한테 고맙다는 말을 다 듣네요.


“아니. 그럼...끊을게.”


그녀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벤치에 놓은 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시발. 멍청이. 머저리. 바보, 병신. 시바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녀의 고장난 시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그 남자 - 55화 22.01.09 15 0 8쪽
54 그 남자 - 54화 21.12.22 40 0 8쪽
53 그 남자 - 53화 21.10.14 39 0 6쪽
52 그 남자 - 52화 21.10.11 46 0 6쪽
51 그 남자 - 51화 21.10.10 54 0 8쪽
» 그녀 - 50화 21.09.28 35 0 11쪽
49 그 남자 - 49화 21.09.23 21 0 7쪽
48 그 남자 - 48화 21.09.17 24 0 5쪽
47 그 남자 - 47화 21.09.16 48 0 5쪽
46 그 남자 - 46화 21.09.06 57 0 6쪽
45 그 남자 - 45화 21.08.25 24 0 7쪽
44 그 남자 - 44화 +3 21.08.23 34 0 5쪽
43 그 남자 - 43화 21.01.20 34 0 7쪽
42 그 남자 - 42화 20.12.17 35 0 7쪽
41 그 여자 - 41화 20.11.13 76 0 5쪽
40 그 남자 - 40화 20.10.23 47 0 7쪽
39 그 남자 - 39화 20.10.17 34 0 9쪽
38 그 남자 - 38화 20.10.14 34 0 8쪽
37 그 남자 - 37화 20.10.08 43 0 7쪽
36 그 남자 - 36화 20.09.28 34 0 8쪽
35 그 여자 - 35화 20.09.25 94 0 6쪽
34 그 남자 - 34화 20.09.20 69 0 5쪽
33 그 남자 - 33화 20.09.14 48 0 7쪽
32 그 남자 - 32화 20.09.13 34 0 9쪽
31 그 남자 - 31화 20.09.11 54 0 7쪽
30 그 남자 - 30화 +1 20.09.11 69 1 7쪽
29 그 여자 - 29화 +1 20.09.08 56 1 7쪽
28 그 남자 - 28화 20.09.07 49 1 3쪽
27 그 남자 - 27화 +1 20.09.07 42 1 5쪽
26 그 남자 - 26화 20.08.30 131 0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