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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세우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5:18
최근연재일 :
2024.05.08 23:44
연재수 :
1 회
조회수 :
4
추천수 :
0
글자수 :
4,615

작성
24.05.0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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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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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신이 죽은 세계 (1)

DUMMY

모든 화물은 반포로 통한다.


세상이 잠자는 시간.

시리도록 창백한 구름이 검은 여름의 여명을 갈랐다.

건물들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햇살을 얼룩지게 하는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반포의 하루는 빠르게 시작한다. 적어도 배송 업자들은.


"자, 오늘 온 단기 알바생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공터 청소해야 하니까. 아예 처음 온 신입들은 저쪽으로 가셔서 안전 강의 빨리 듣고 오세요."

"거기, A2 구역은 오늘 대형 참치 들어온다고 하니까 힘 좋은 사람들 위주로 보내!"

"C4 구역에서 냉동 통돼지 같이 나르실 분 구합니다! 아침 커피는 사겠습니다!"


아무 관계도 없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

지상 최고의 물류창고, 반포 허브(Hub).


"트럭 들어온다! 상하차 조 대기!"


눈 좋은 한 사람의 외침에, 경험 많은 인부들의 팔뚝에 힘이 더욱 들어가고, 손은 더욱 빨라진다.

오직 알바생들만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 광경을 확인하고자 했다.


허브의 출입구는 가히 8차선 고속도로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그 넓은 입구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트럭과 트레일러들의 행렬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마, 차가 들어오잖아! 빨리 치우고 상하차 준비해!"


희끗한 머리를 빨간 모자로 감춘 한 매니저가, 매부리코를 흔들어대며 버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바생들은 황급히 다시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여전히 곁눈질로 트럭을 훔쳐보기 바빴다.


빨강, 노랑, 파랑의 쇠의 물결들이 흐르듯 지나쳤고 어느덧 각자의 자리를 잡고 상하차 대기를 시작했다.

한 구역만 빼고.


"이봐, Z 구역! 거기는 왜 이렇게 일이 느려? 빨리 못해?"

"앗, 죄송합니다! 얼른 치우겠습니다!"

"빨리 하고 조회 끝내! 뒷 차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네네! 서두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트럭을 구경하던 알바생들이 허겁지겁 다시 청소공구에 달라붙었다.

그 만큼이나 그 검은색 트럭은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높이는 낮은 만큼 앞뒤로 길게 잡아 늘린듯한 형체는 다른 트럭에 비해 낮은 차고를 가지고 있었다.

차의 앞 부분은 트럭의 일반적인 얼굴 형태를 갖추고 있었지만, 노란색 선이 콧등을 가로지르며 차체를 따라 길게 칠해져 있었다.

진하게 선팅이 되어 속이 비치지 않는 코발트 블루의 색을 가진 유리는 태양광을 고려한 코팅이겠지만, 칠흑과 같은 차체의 색에 대비해 깊은 어둠을 느끼게 했다.

더욱이, 뒤로 이어진 캠핑카와, 왜 인지 거기에 용접되어 있는 넓고 납작한 트레일러까지.


"Z구역 조회 하겠습니다! 트럭에서 내려 주세요!"


그렇게 검은 트럭의 문이 열리고, 운전수가 내렸다.


"운전면허증이랑, 알코올 검사랑, 오늘 작업 내용 확인을 부탁드립니다....아?"


알바생은 당황 속에서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무엇 때문에 당황했는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우선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 트럭에 걸맞는 이질감을 보이고 있었다.

얼굴은 전형적인 트러커(trucker)의 그것으로, 전혀 관리되지 않은 머리카락과 턱수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밑으로 이어지는 잘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양복, 반짝이는 구두는 마치 결혼식장의 신랑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반 쯤 걷어 올린 소매와, 풀어헤친 윗 단추, 그리고 흘러내린 넥타이는 흔한 직장인의 모습과 같았다.

그의 한 손에 들린 커피 컵에서는, 아메리카노의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이것까지만 해도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알바생은 꼭 그것 때문에만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트러커가 내민 면허증과, 알코올 검사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알바생의 눈은 다시 작업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가 한번도 다뤄보지 못한 품목이 적혀져 있었다.


"시...시신....여섯 구? 익사?"


알바생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추가 없이 여섯명 맞습니까. 그러면 얼른 실어주시죠. 10분만 더 늦으면, 화장터에 자리가 없을 겁니다."

"에......."


마치 당연히 그걸 싣을 거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트러커를 보며 알바생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굳어버렸다.

깊고 담담한 눈빛이 알바생을 쳐다보자, 그는 더욱 얼어붙었다.


"하아...... 처음이십니까? 시간이 빠듯한데. 도와 드릴테니, 같이 싣죠. 화물은 어디 있습니까?"

"앗. 얼른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시신, 아니 그러니까 화물은 그게......"


고작해야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알바생은 횡설수설했고, 트러커는 그저 묵묵히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을 마무리 한 건 벼락같은 관리자의 노호성이었다.


"야, 이놈아! Z7구역! Z7구역! 내 이럴 줄 알았제, 이놈아! 멍하니 트럭 쳐다보지 말고 작업부터 빨랑빨랑 하라고 몇번을 말해!"

"죄, 죄송합니다!"

"빨랑 가서 실어라, 이놈아! 관짝 처음 보는 것처럼 머저리같이 굴지 말고, 혼자 못 하겠으면 옆에 구역 놈한테 빌어서라도 데리고 가서 실어! 늦으면 네놈을 관짝에 넣어버릴 테다!"


관리자의 시퍼런 서슬에 질린 알바생은 허겁지겁 팔을 걷어붙히고 트럭 뒤편의 트레일러로 달려나갔다.


"에잉, 쯧쯧.... 요즘 것들은 예전 같지가 않아서 걱정일세."

"그거야, 요즘 사람들이니까요, 당연히 예전과는 다르겠죠. 시간 안에 싣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그리고 자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심지어 버릇없기까지 하지, 말대꾸나 하고 말일세. 그래, 기다리는 동안 커피나 한 잔 할텐가?"


혀를 걷어차는 관리자에게, 트러커는 그저 손에 든 커피를 내보이며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어이, 김씨. 내가 누차 이야기하지만, 트럭 말일세, 어떻게 좀 안되겠는가? 신입 놈들이 이것만 보면 구경하느라 일을 안 한단 말일세."

"전에 말씀하신 시즌 일 만 번째 부탁 말씀이시군요."

"그래, 시즌 일 만 번째 부탁이야. 아무래도 검은색 보다는 흰색이 낫지 않냐는 말이지. 검은색 관리하는게 보통 어려운가? 꼬맹이놈들 긁고 가기만 하면 티가 난단 말일세. 뿐이랴? 이런 여름 날씨에는 햇빛을 먹어서 덥기도 하단 말이야. 자네가 굳이 검은색을 고집한다면야 뭐, 개인 취향의 영역이니까, 어쩔수는 없겠네만."


관리자는 코를 치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밝아지는 하늘에서, 태양빛이 따갑게 그의 검버섯을 두드렸다.


"자네가 일을 시작한지....9년 이던가?"

"올해로 10년입니다."

"허허, 벌써 그렇게 됐나. 그래, 장장 10년일세. 강산이 한번 바뀔 때가 되었지. 그러니 자네도 이제 그.... 내려 놓을 때가 되었지 싶은데. 어떤가? 우리 크루(crew)에 들어온다고 하면 대접도 섭섭지 않게 해주겠네. 내가 그정도 짬은 있거든. 허허."


관리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젊은 트러커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그저 쓰게 웃고 있었다. 관리자는 자신이 인재 영입에 다시 한번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아직도...어렵나?"

"예, 그런 것 같군요. 아직은 제가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저 말고는 여기 Z구역 배송은 안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자네 하기 나름이지. 아침에 몇 탕 뛰고 왔는가?"

"인천 들러서 한 군데 배송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다음에 또 다른데 갈 거겠지? 그러면 벌써 세 탕이군. 혼자서 세 명 분 일을 한다는 건, 두 명 분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랑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돈벌이가 되겠냐, 이 말일세. 자네가 일을 줄이면, 그만큼 또 누군가 와서 채우게 되어 있는 법이야."

"아시다시피, 나라에서 주는 돈이라는 게 쥐꼬리 아니겠습니까. 더 벌려면, 그 만큼 더 해야죠."

"그렇다고 해도 일반 사기업 물품 배송보다 반도 안 주는게 말이 되는가? 그럴 때 공무원한테 드잡이질을 한번 해 줘야지, 안 그러면 평생 그 돈 받고 일해야 할 걸세."

"그러면 그 때는 어르신께 줄을 대 봐야겠죠."


반포 허브에는 비정기적인 화물이 존재한다.

한강을 타고 떠내려와, 허브의 강변에 자리잡는 이름 없는 시신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타나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시신들을 깔끔하게 치워주는 배송업자.


그런 그와의 실없는 이야기. 서로의 넋두리가 오가는 것이 관리자는 좋았다.


"쯧쯧, 무연고자 시체라니, 참 말세야, 말세. 다섯 구?"

"여섯명 입니다."

"어쩐지 어제 날씨가 꾸리하더라니, 다들 왜 이렇게 한강에 몸을 못 던져서 난리들인지 원."

"덕분에 제 직업이 보람 있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지. 허허!"


차 뒤에서 탕탕, 하고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알바생이 문을 닫고 두드리는 소리였다.


"상차 완료 했습니다!"

"이놈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왜 진작 이렇게 빨리빨리 못하냐! 그래, 김씨. 얼른 가 보게. 익사체라 잘 타지도 않을테고... 오늘 화장장이들이 고생 좀 하겠구만."


젊은 트러커는 커피를 단숨에 입에 털어넣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손을 흔들고 떠나가는 관리자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윽고, 검은 트럭은 들어온 길을 따라 다시 사라졌다.


"검은색 트럭.... 처음 보는데. 신기하게 생겼네..."


그 뒷모습을 알바생이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걸어가던 관리자가 벼락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고, 이놈아! 검은 트럭 처음 보냐? 시체도 처음 보고, 넌 처음 보는 것 많아서 좋겠다! Z구역은 오늘 장사 끝났다. 문 닫고 옆으로 건너가라!"

"앗, 네넵!"


도대체 오늘 아침 상차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알바생은 고민을 뒤로 한 채 다른 구역으로 향했다.


트럭이 떠난 자리에는 우중충한 시취(屍取) 만이 남아있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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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죽은 세계 (1) 24.05.08 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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