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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스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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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비스1
작품등록일 :
2020.02.21 00:18
최근연재일 :
2023.08.19 01:2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79,335
추천수 :
3,718
글자수 :
1,081,358

작성
23.08.05 22:28
조회
85
추천
8
글자
20쪽

2부 - 62. 텔레드라이버 (8)

DUMMY

텔레드라이버의 중심부로 들어설수록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많아졌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의 비율도 늘어났다.


동시에 날 쳐다보는 사람들의 비율도 점점 늘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일에 바빠 라비와 나를 지나치기 바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복도에 서서 서로 대화하던 어떤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고 날 빤히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은 입을 벌리고서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완만한 커브를 만드는 거대한 복도를 돌아서 우리는 어떤 방문 앞에 섰다. 모구모구도 나를 따라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라비가 못 들어가게 막아서 문밖에 남아야만 했다.


방으로 들어서자 환한 조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형 워킹 로더 세 대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이었는데, 앞쪽에는 창문처럼 보이는 거대한 화면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가 촘촘하게 바닥에 붙어 있었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바닥이 높아져서 뒤쪽에 앉은 사람들도 앞에 놓인 단상과 화면을 잘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화면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화면에 표시되는 내용이 화면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튀어나와 보이도록 구성된 입체화면이었는데, 홀로그램과는 달리 또렷하고 밝은 색상으로 된 갖은 도형을 표시하고 있었다. 어떤 항성이나 그 주변을 도는 행성, 그리고 우주선을 표시한 지도처럼 보였다.


화면 앞에 있는 작은 단상에는 짙은 초록색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단상에 팔을 기대고 서 있었다.


코 밑에 멋들어지게 자리 잡은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콧수염이 없었더라면 훨씬 젊어 보였겠지만 그것이 주는 깊고 중후한 카리스마를 가지진 못했으리라.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도 쉽게 신뢰를 얻는 그런 사람. 바로 그런 부류처럼 보이게 하는데 저 콧수염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라비와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외모에 어울리는 중저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수고했어, 소령."


"별 말씀을요."


동시에 단상을 향해 있던 의자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났다.


"대니!"


"살아 있었군요!"


"서크서크!"


의자에서 앰버, 라피스, T4A, 암디디가 동시에 일어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자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인기남이네. 여자 둘에 메몬, 서크족이 반기는 남자라."


"저 인기남은 지고족한테도 인기를 차지했죠."


라비가 무심하게 툭 던지며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네 종족에게서 모두? 부럽군."


"사령관님도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버릇만 없었어도 인기남 되셨을 거예요."


라비의 말에 사령관이라 불린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눈을 둥글게 뜨고서 라비에게 되물었다.


"내가? 내가 언제?"


"아까 나한테 콧수염 한번 만져볼 거냐고 물어봤잖아요."


그러자 이번에는 앰버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마치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이다.


"아니, 그거야 내 콧수염을 자세히 들여다보길래 그랬지."


"라피스는 보지도 않았다는데 라피스한테는 왜 물어봤어요?"


"이 콧수염이 그쪽 같은 붉은 머리 미인한테 먹히는 거라면, 옆에 있는 미인한테도 먹힐 거라 생각했지."


사령관이라는 사람의 대답에 앰버는 표정을 찡그렸고, 라피스는 킥킥댔다.


앰버와 라피스 뒷줄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나는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다. 얼마 전 까지만해도 제국군에게 쫓기며 목숨이 왔다 갔다 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농담이나 따먹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들어와 있자니 말이다. 그것도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함께.


"대니, 여기는 서머릿지 중장님이셔. 여기 텔레드라이버와 저항군 2함대를 책임지고 있어."


라비가 내 생각을 알아챈 듯, 잽싸게 사령관의 말을 끊고서 그를 소개했다. 그러자 서머릿지 사령관도 자세를 바로 하고서는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대니. 서머릿지입니다."


"반갑습니다, 대니 듀플럭스입니다."


그는 내 손을 꽉 잡고 악수를 한 다음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마치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주 즐거운 일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동작 하나하나가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다. 잠시 겪어보니 왜 앰버나 다른 이들이 이 사령관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모하비에서 아주 큰 역할을 하셨더군요. 얼마 전 제국군 기지에서도 한바탕 소동을 벌인 다음 탈출하셨다고."


"운이 좋았죠."


"그 운이 저항군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항군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하죠. 제국군의 특무작전관도, 과거에서 날아온 구 제국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불사신 같은 로그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로그라는 명칭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좋겠군요. 좋은 의미로 떠도는 소문이니까."


"상관없습니다. 전 원래 로그였는걸요."


"하여튼 당신 같은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처럼 되고 싶기도 합니다. 제국군으로부터 살아남고 결국에는 그들이 통제할 수가 없는 존재 말입니다. 당신은 저항군에 있어 희망 같은 존재죠."


그저 천만에요, 라고 대꾸할 수도 없는 과찬에 나는 그저 라비에게 시선을 옮겨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듯 말이다.


"참, 그 엄청난 일들을 같이 해내신 대단한 지고족 친구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디 계신가요?"


"테니얼 말인가요?"


"네. 라비에게서 들었습니다. 예전 지고족 영웅이었던..."


나는 다시 한번 라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라비는 사령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고 얘기를 했다. 사령관은 라비의 말을 듣자마자 한쪽 다리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던 자세를 바로잡고서 딱딱한 얼굴로 내 팔을 잡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아쉽습니다. 그분이 여기 계셨다면 우리 작전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요."


"무슨 작전 말이죠?"


"그걸 설명해 드리려고 여러분들을 여기 모이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사령관은 몸을 돌려서 라비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가 단장 앞에 있는 입체화면에 손을 가져다 대자, 화면을 채우고 있던 갖가지 도형은 화면 저 너머로 사라졌고 둥그런 행성 모양이 하나 나타났다.


"여기는 마엘스트롬A라는 행성입니다. 지금 심해우주를 항행 중인 텔레드라이버와 저항군 2함대가 120시간 내로 다이브 아웃 할 장소 근처에 있는 행성입니다. 일각에는 해적들이 오가는 항로에 있는 외딴 행성으로 알려졌지만, 저항군의 보급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우주 곳곳에 있는 저항군은 이곳에 결집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물자를 보급한 다음, 다시 다이브해서 그곳에서 80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제국군 시설을 습격할 예정입니다."


사령관의 설명이 끝나자, 행성 모양은 사라지고, 깨진 나무조각이 얼기설기 엮인 것처럼 보이는 괴상한 물체의 모양이 떠올랐다.


"이건 제국군의 무인 함선 건조 플랫폼입니다. 수십 시간 내로 소형 한 척을 쉽게 만들어 내는 기술이 집약된 곳이죠. 최근에 제국군은 이런 플랫폼을 우주 곳곳에 만들어 놓고 있는데, 이번에 만들어 놓은 플랫폼은 최대 규모입니다. 특징은 사람의 운용을 최소화해서 거의 무인으로 운용이 가능하다는 거죠."


"저걸 습격하겠다는 계획이에요?"


앰버가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일차적인 목표는 플랫폼을 무력화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기술을 탈취해 오는 것입니다. 저것이 있으면 저항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저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구요?"


딱 봐도 굉장히 위험할 것 같은 작전 브리핑에 앰버는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대답 대신 한 번씩 웃어주고서는 설명을 이어갔다.


"저항군이 마 엘스 트롬 A에 결집하려는 목표가 저 플랫폼입니다. 이 작전은 수개월 전에 우주 전역의 저항군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던 내용이고, 결집 후에는 보급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죠. 하지만 우리 텔레드라이버는 최근에 어떤 정보를 입수했고, 그 정보를 분석하던 중 제국군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제국군도 이 정보가 필요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거죠."


앰버와 라피스, 그리고 나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사령관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 셋의 시선이 T4A와 암디디에게까지 향했을 때였다. 암디디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었고, T4A는 잘난 척 뭔가를 사령관에게 말하려다가 사령관의 손짓에 입을 다물었다.


"너무 축약하다 보니 설명이 부족했군요. 이렇게 말하면 이해할지 모르겠네요."


사령관이 손짓하자, 화면에는 한 메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메몬은 온몸에 알록달록한 천을 치렁치렁 걸치고 있었고, 두 손으로 수정구슬을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 저항군은 제국군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했습니다. 그게 비과학적인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령관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자, T4A는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메몬은 비과학적이지 않아요! 인간들과 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뿐이고요! 그건 메몬-차별적인 발언입니다!"


"좀 조용히 해봐, 수정구슬 들고 있는 메몬이 과학적으로 보이기나 해?"


앰버가 T4A의 머리를 툭 때리며 투덜댔다. 앰버는 사령관이 하는 말이 영 탐탁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화면에 나오는 지금 내용은 흥미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사령관은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보는 영상은 우리 요원이 변방 우주 외딴 행성에서 수소문해서 찾아낸 한 메몬에 대한 겁니다. 오라클이라고 불리는 메몬이죠. 무한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지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우리 요원들이 2년에 걸쳐 찾아다닌 메몬입니다."


"미래를 예지한다는 메몬을 찾는 작전을 2년이나 한다구요?"


내가 묻자, 앰버는 고개를 돌려 '쉿!'하고 외쳤다.


"우리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이해해 줬으면 하는군요. 여하튼, 이 메몬을 찾아다닌 이유는 제국군을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였어요. 그러자 이 오라클이라는 메몬은 이렇게 말했어요."


사령관이 손짓하자, 화면에 있던 메몬은 수정구슬을 쓰다듬다가 갑자기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서 몸을 부르르 떨며 속삭였다.


"내가 보게 되는 것은 어떤 그림자요, 그것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오아시스 속 어딘가에 숨겨진 무한한 지식의 한 조각이니, 내가 이 지식의 주인에게 쫓겨나기 전에 어서 원하는 것을 말하라."


녹화된 영상에는 보이지 않는, 아마도 그 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당사자인 듯, 어떤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힘의 균형을 깨트리고 제국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힘의... 균형을... 무너트릴... 방법..."


메몬은 더듬거리면서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T4A가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어, 저거...!"


"저게 뭔데?"


심드렁한 앰버의 물음에, T4A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를 둘러보다가 머쓱한 듯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얌전히 제자리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화면에 보이는 메몬은 무언가를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3, 1, 7, 5, 알파, 1, 9, 줄루, 4, 2, 리마, 1, 1...."


"받아적어! 얼른!"


어떤 남자가 외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휘청거렸다. 오라클이라는 메몬은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연속된 숫자와 기호를 구슬픈 노래를 하듯 계속 읊어대었다. 이 의미불명의 노랫가락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메몬의 눈은 더 빨리 번쩍였다. 메몬이 노랫가락을 읊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이 영상을 찍고 있던 자들이 제대로 받아적었을지 의심이 되는 시점까지 이르렀다.


그때, 메몬은 자신을 촬영하던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으르렁댔다.


"너희들은 이 사막을 엿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동력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처럼 제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영상은 거기까지인 듯, 화면은 다시 검은색으로 변했다.


저항군 요원들이 오라클이라는 이상한 메몬을 만난 영상이 끝나자, 사령관은 마치 질문을 받는다는 표정으로 우리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앰버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자, 사령관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요원들은 저 오라클이라는 메몬이 말해준 정보를 가지고 텔레드라이버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100시간 전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정보를 분석했어요. 분석 결과 이 메몬이 준 정보는 아주 오래전 행성 연합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던브레이커라는 작전이 있었으며, 그 작전은 제국군이 얼마나 강하던, 저항군이 얼마나 수적으로 불리하든 간에 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는 병기에 대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정확한 세부 내용을 알아내기에는 텔레드라이버가 가진 자원이 부족했어요. 할 수 없이 우리는 예정된 계획대로 마엘스트롬A로 가서 다른 저항군과 접촉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깊게 분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죠. 그런데 우리 요원을 추적한 제국군의 습격을 받게 되었죠.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0시간 전이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여기로 오게 된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반가웠어요. 얘기했다시피 저항군의 희망이기도 했고..."


"...그리고 우리가 던브레이커 작전에 관한 정보를 안다고 했기 때문이었군요."


내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사령관은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라피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러자 라비도 놀란 눈으로 라피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라피스의 머리에 씌어있는 은빛 머리띠 때문에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던브레이커 작전을 실마리이자 라그나로크의 열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라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관과 라비를 향해 차분하게 물었다.


"슐레이만 대령을 아시나요?"


대답하지 못한 사령관이 라비에게로 시선을 옮기자, 라비는 예전에 테니얼이 했던 대답을 똑같이 던졌다.


"오래전에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 그 사람을 찾는 이유는 뭐죠?"


"전 2백년 전의 비밀 작전에 참여했던 사람이에요. 2백 년이 지난 지금도 던브레이커 작전에 대해 여러분이나 제국군이 관심을 보이는 걸 보니 아직 작전은 진행 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무에게나 제가 아는 정보를 줄 수는 없어요. 제 첫 번째 임무는 슐레이만 대령을 만나는 것이고 그에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쪽이 찾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질문은 뭐죠?"


"잘못된 곳에 엉뚱한 시간에 있게 된 사람들을 뭐라고 하죠?"


라피스의 질문에 방 안은 조용해졌다. 어찌나 조용해졌던지, 두터운 문밖에서 낑낑대는 모구모구의 투정이 들릴 정도였다. 숨 막히는 정적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대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목으로 침이 꿀꺽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 바로 그 순간, 서머릿지 사령관이 차분하게 그 질문에 대답했다.


"답은 영웅이 되는 길목에 놓인 사람들이죠."


사령관의 대답에 라피스는 말없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령관의 말이 정답인지 아닌지, 라피스의 반응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사령관도 답답한 모양이었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라피스를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서 중얼거렸다.


"이게 그 작전의 암호인지는 모르겠어... 내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시가 생각나서 대답한 것뿐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누군데요?"


내 물음에 사령관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콜펙스 헤디치라고, 가난한 행성에서 제국군과 싸우던 군인이셨지요."


"성이 뭐라고요?"


입을 앙다물고 있던 라피스는 깜짝 놀라며 사령관에게 되물었다.


"헤디치. 내 풀네임도 서머릿지 헤디치입니다."


"그 시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비밀작전의 실체가 드러나기 직전이었던 엄중한 상황에서 엉뚱한 라피스의 요청이 재미있다는 듯, 사령관은 입을 비쭉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작전에 대해 알려 주는 거요?"


"제 요청이 먼저예요."


"아름다운 숙녀의 부탁이라면야 물론."


사령관의 뻔뻔한 대꾸에 앰버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앰버가 그러건 말건, 사령관은 개의치 않고서 단조로운 목소리로 짧은 시를 읊었다.


"길목에 어그러져서

시간의 오류를 만난 그들은

영웅이 되는 길목에 놓여 있다

타오른 불길 속에 부서지는

잔영의 꿈을 담고서

잘못된 시간에 함께 춤을 추던

희미한 기억의 파편은

하나둘 모여 빛나는 별처럼

숨쉬는 영혼을 안는다

헤매는 시간의 틈 사이로 보이는

덧없는 순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길목에 서 있는 자들은

아득한 기억의 푸른 장막 아래

새로운 운명을 안고 있다"


사령관은 시를 다 읊은 후 라피스를 향해 다시 물었다.


"만족해요? 증조할아버지도 전해 들은 거라고 하니 내용은 조금 달라졌겠지."


"슐레이만 대령의 풀네임도 슐레이만 헤디치에요."


라피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이 서로 연결되어 가자, 사령관은 긴장한 듯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한 대답이 맞았다는 말입니까, 뭡니까?"


라피스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라피스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이제 때가 되었고,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머릿지 사령관이 대답이 맞는 대답이고,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하라는 뜻을 담아서 말이다.


라피스는 단호한 어조로 사령관에게 말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세요."


"뒤에 있는 화면에 직접 손으로 그릴 수 있어요."


사령관이 단상 옆으로 비켜나며 대답했다. 그러자 라피스는 화면 앞으로 나아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라피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심장이 쿵쿵대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위기, 위험, 난관, 장애... 뭐라고 이름을 붙이던 나를 괴롭히던 그 모든 것을 헤치고서 라피스를 이곳까지 데려온 보답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라피스 또한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 자신이 원했던 답을 찾아서 2백 년 전의 임무를 성사시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 앰버, T4A와 암디디도 묵묵히 라피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앰버의 눈가에는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테니얼이 지금 여기 있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


그도 자신이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던브레이커 작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을 터인데. 그렇게나 자신을 괴롭히고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던 그 작전의 실체를 말이다. 그러면 답답했던 그의 속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았을까.


모두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라피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내게로 돌리고 있었다.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이다. 그녀 또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라비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는 둘 다 테니얼을 추억하고, 동시에 추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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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2부 - 64. 텔레드라이버 (10) +2 23.08.08 84 9 14쪽
163 2부 - 63. 텔레드라이버 (9) +2 23.08.06 82 9 13쪽
» 2부 - 62. 텔레드라이버 (8) 23.08.05 86 8 20쪽
161 2부 - 61. 텔레드라이버 (7) +2 23.08.04 91 10 14쪽
160 2부 - 60. 텔레드라이버 (6) +2 23.07.29 84 10 13쪽
159 2부 - 59. 텔레드라이버 (5) +2 23.07.28 78 9 11쪽
158 2부 - 58. 텔레드라이버 (4) +4 23.07.22 83 9 14쪽
157 2부 - 57. 텔레드라이버 (3) +6 23.07.14 94 9 11쪽
156 2부 - 56. 텔레드라이버 (2) +1 22.08.09 217 10 15쪽
155 2부 - 55. 텔레드라이버 (1) 22.07.31 128 10 13쪽
154 2부 - 54. 유령선 (6) 22.07.23 114 12 13쪽
153 2부 - 53. 유령선 (5) +4 22.07.16 145 12 12쪽
152 2부 - 52. 유령선 (4) +4 22.07.09 125 8 12쪽
151 2부 - 51. 유령선 (3) +2 22.07.02 118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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