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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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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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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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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글자
10쪽

87. 이기적 유전자 (3)

DUMMY

87.


영화관에서 나오니 5시였다. 저녁 먹기엔 좀 이르고 그렇다고 뭐 하기엔 애매한지라, 나와 한겨울은 그저 시간이나 때울 셈으로 주위를 걸었다.


“이제 슬슬 추워진다. 그치?”


“그런가?”


“응. 난 좀 쌀쌀한 것 같은데?”


그리 말하며 반 발짝 다가온 한겨울은,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쉴 틈 없이 다시 입을 연다.


“야. 근데 있잖아. 나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뭐.”


“너 뜬금없이 예절 수업은 왜 듣냐? 안 어울리게.”


“... 그냥.”


“들을 거면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지. 패러독스 갔다오니까 수강신청 변경기간도 다 끝났잖아.”


미리 말해줬다면 뭐가 바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식이었다. 끼니때가 될 때까지, 딱히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냥 정처 없이 걷기.


“근데 우리 실기 때 그거 한 것도, 드론에 찍혔으려-”


쉴 새 없이 이야기하던 한겨울이, 순간 발걸음과 동시에 하던 말을 멈췄다. 뭔 일인가 하고 살피니, 거리변의 오락실에 정신이 팔려 있는 한겨울. 가게 안쪽에선 오락기들이 현란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바깥에 놓인 인형뽑기와 펀치머신 기계가 가장 눈에 띄었다.


“... 펀치머신은 왜. 바투 루앙 생각나서?”


“뭐래. 펀치머신 본 거 아니거든? 저거 보고 있었거든.”


녀석이 가리킨 것은 의외로 펀치머신도, 인형뽑기도 아닌 가게 내부에 있는 스티커 사진 기계였다.


“... 스티커 사진? 찍자고?”


“됐네요. 애들도 아니고 유치하게... 그리고 너 사진 찍는 거 싫어하는 거 뻔히 아는데, 억지로 시킬 생각 없거든. 그냥 저게 아직도 있네 하고 본 거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다가, 내가 모르는 정보에 걸려 넘어진다.


“... 내가 사진 찍는 거 싫어한다고?”


“... 응? 아니야? 분명 너가 싫어한다고 한 것 같은데... 아닌가?”


얘가 또 뭔 바보같은 소리 하는 건가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 야. 권민성. 근데 CCTV는 왜 지워?


순간 학기말평가 때 둘러대느라 그렇게 말했던 게 떠오른다. 젠장. 이 여자 별 쓸데없는 걸 다 기억하고 있네.


“야. 됐고, 밥 먹으러 가자. 이제 슬슬 배고프다.”


“... 찍고 싶으면 찍던가.”


“뭐 해? 가자... 응?”


“한겨울 니 찍고 싶으면 찍자고. 저거.”


한겨울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가, 다시 내 얼굴을 향한다. 그리고는 목을 뒤로 쭉 빼더니, 의심스럽다는 눈빛과 목소리로 물어온다.


“뭐야. 너 내가 아는 권민성 맞아?”


“... 그럼 넌 누구랑 영화 봤는데.”


“아니. 그... 니가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


“이상하다. 너 혹시 열 있냐?”


옛날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이마와 한 손, 내 이마에다 한 손 얹고 중얼거리는 한겨울.


“열은 또 없는데... 야. 어디 아픈 건 아니지?”


“... 찍기 싫음 밥 먹으러 가던가.”


“야. 누가 싫대?”


“...”


[ 인생 5컷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 마나블렛을 화면에 대 주세요! ]


“내껄로 하자.”


스티커 사진 기계는 생각보다 좀 더 좁았다. 들어온 지 몇 초 되지 않아 샴푸 냄새로 가득 찰 정도로.


[ 화면을 보고 스마일~ ]


“야. 좀 더 붙어 봐. 같이 나와야 할 거 아냐.”


“니가 오면 되지.”


찰칵-!


[ ☆ 인쇄 중 ★ ]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지이이잉-


기기에 들어오고 5분도 안 돼서, 사진이 출력되어 나온다.


“야. 내가 좀 붙어 보라 했... 푸흡. 야. 근데 권민성 너 왜 이리 못생기게 나왔냐?”


“...”


“표정은 또 왜 이래. 누가 보면 무슨 영정사진인 줄-”


“야. 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내놔. 찢어버리게.”


“에이. 돈 주고 찍었는데, 아깝게 찢긴 뭘 찢어?”


한겨울은 순간 단호한 척 손바닥을 내밀며 정색하지만.


“기숙사 돌아가면 마나블렛에 붙여놔야지. 못난 얼굴 맨날 보게. 푸하하하!”


“...”


결국 씰룩거리던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지 혼자 빵 터진다. 그리고는 ‘아. 이거 어떻게 해야 안 구겨지지?’ 하면서 주머니에 어찌저찌 넣더니.


“야야야.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이 근처에 삼겹살 리조또가 진짜,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데 있거든? 빨리 가자.”


내 웃옷 옷자락을 잡고 끈다.


---


띠링-! 띠링-!


그 날 저녁엔 마나블렛이 사정없이 울렸다. 발신자는 뭐... 말할 것도 없다.


[ 한겨울 -> 권민성 : 아 ]

[ 한겨울 -> 권민성 : 아 리조또 ]


예상한 일이다. 결국 한겨울 선생님께선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리조또를 못 잡수셨으니까.


[ 급한 사정이 생겨 부득이하게 쉽니다. ]


“아. 뭔데?”


“다른 거 먹어. 다른 거.”


한겨울이 고작 음식 하나에 어마어마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면서까지 데려갔던 가게 정문엔, 오늘 장사 안 한다고 큼지막하게 써 붙여져 있었다. 나야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 아. 오바야. 여기는 진짜 너랑 꼭 오고 싶었는데...”


녀석이 계속 아쉬워하는 것이 너무 눈에 보였기에, 이렇게 광기 넘치는 연락이 올 거란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 민성아.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그 연락 오는 타이밍에, 박준 사부가 날 찾아온 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예? 예!”


띠링-! 띠링-!


눈치 없이 계속 메시지 보내는 한겨울. 얘는 진짜...


“음... 그... 연락 오는 것 같은데...”


“소... 소리 끄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바쁘면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데...”


“예? 예. 예! 답장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 그래.”


내가 마나블렛을 무음으로 전환하는 동안, 박준 사부는 나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약간 뜸을 들이다, 운을 뗀다.


“어... 음. 민성아.”


“예!”


“기숙사... 도로 들어오는 건 어때?”


“... 예?”


“아... 아니, 명령하는 건 아니고... 민성이 너가 나 불편해하는 건 알아. 다만 당분간 내가 기숙사에 없거든.”


“아...”


“아마 졸업식 전까지는 거의 행성 알렉산드리아에 있을 거야. 돌아오더라도 음... 잠은 다른 곳에서 잘 것 같고. 그러니까 이제 나 없으니, 기숙사 편하게 쓰라고. 그 말 해주고 싶어서 온 거야.”


내가 아무런 대꾸도 없자, 박준 사부는 멋쩍은 듯 볼을 살짝 긁더니, 어렵사리 입을 연다.


“음... 사실 민성이 너한테 사과를 좀 하고 싶었어.”


“... 예? 사과요?”


“응. 너가 왜 날 피하나 생각을 좀 해 봤거든. 그러니까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조금 예민하게 굴었던 게 떠오르더라고. 그깟 침대 좀 누운 게 뭐 대수라고...”


“...”


“미안.”


“아... 아닙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나와 박준 사부가 앉은 벤치에선 계속 정적이 흘렀다.


파앗-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대운동장 라이트가 꺼질 때 즈음, 박준 사부는 시간을 한 번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민성아. 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


파즈즈즈-!


그리 말한 박준 사부는 차원의 틈을 열었다.


“음... 잘 있어.”


그리고 짧은 인사를 건네고, 차원의 틈으로 사라지려는 그 때.


“저. 박준 사... 아니. 형.”


나는 용기를 조금 냈다.


“응?”


“그... 형도 잘... 다녀오시라고요.”


나의 말에 박준 사부는 잠시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응. 잘 다녀올게. 돌아오면 커피나 한 잔 하자.”


피식 웃곤 공간의 틈새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


덜커덕-!


기숙사로 돌아왔을 땐, 정말 박준 사부의 자리엔 아무런 짐도 남아있지 않았다. 침대 커버조차도 벗겨간 것이, 정말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풀썩-!


나는 몇 달 만의 내 침대에 몸을 던진다. 푹신하다. 벤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안락하다. 중독될 정도로.


허나 그 감촉을 즐길 새도 없이, 요사이 안 하던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나저나... 커피?”


나는 저쪽 세계에서 6년 동안 박준 사부와 지냈지만, 커피를 마시는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커피뿐만 아니라 웃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저쪽 세계의 사부와 이쪽 세계의 형은 성격도, 말투도, 행동도 모든 것이 다 다르다.


링링도 마찬가지다. 저족 세계 링링은 방구석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던 히키코모리였건만, 이쪽 세계 링링은 아침마다 조깅을 해서 내 잠을 깨우는 여자.


별로 이상하다 생각되지는 않는다.


엄연히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는 아예 다른 곳이니까.


그리고.


“... 지는 얼마나 이쁘게 나왔다고.”


나도 좀 다른 사람이 돼 있고.


---


적응되지 않을 만큼 너무 푹신한 곳에서 잠들어서인지, 간만에 늦잠을 잤다.


정오 즈음에 일어나 마나블렛을 확인했을 땐, 수많은 한겨울의 메시지 속에.


[ 핸슨 최 -> 권민성 : 일어나는 대로 교수실로 오거라. ]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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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0. 소규모 전쟁 (2) 21.12.10 2,152 81 11쪽
93 89. 소규모 전쟁 (1) +6 21.12.07 2,356 93 12쪽
92 88. 이기적 유전자 (4) +8 21.12.07 2,182 102 9쪽
» 87. 이기적 유전자 (3) +5 21.12.07 2,248 83 10쪽
90 86. 이기적 유전자 (2) +22 21.12.01 2,752 122 10쪽
89 85. 이기적 유전자 (1) +17 21.11.29 2,846 136 10쪽
88 84. 쓰레기 둘의 행성 (完) +79 21.11.11 3,726 242 15쪽
87 83. 쓰레기들의 행성 (7) +6 21.11.07 2,588 99 15쪽
86 82. 쓰레기들의 행성 (6) +4 21.11.03 2,571 103 12쪽
85 81. 쓰레기들의 행성 (5) +2 21.11.02 2,630 99 15쪽
84 80. 쓰레기들의 행성 (4) +4 21.10.22 2,646 100 12쪽
83 79. 쓰레기들의 행성 (3) +1 21.10.16 2,605 105 10쪽
82 78. 쓰레기들의 행성 (2) +7 21.10.14 2,683 116 12쪽
81 77. 쓰레기들의 행성 (1) +4 21.10.08 2,761 100 12쪽
80 76. 가상의 우상 (4) +4 21.10.07 2,698 112 11쪽
79 75. 가상의 우상 (3) +4 21.10.06 2,679 113 13쪽
78 74. Virtual Idol (2) +4 21.10.05 2,724 112 10쪽
77 73. Virtual Idol (1) +5 21.10.04 2,852 108 13쪽
76 외전 - 짧 모음 +4 21.10.03 2,785 117 10쪽
75 72.5 파티 (6) +10 21.10.03 2,750 127 7쪽
74 72.. 파티 (5) +2 21.10.02 2,738 103 13쪽
73 71. 파티 (4) +4 21.10.01 2,748 98 11쪽
72 70. 파티 (3) +6 21.09.30 2,786 114 10쪽
71 69. 파티 (2) +3 21.09.29 2,912 9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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