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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BOOK 님의 서재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행성이 파괴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뒷BOOK
작품등록일 :
2019.07.01 17:16
최근연재일 :
2019.10.11 08:41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13,870
추천수 :
231
글자수 :
437,237

작성
19.10.09 13:47
조회
78
추천
2
글자
10쪽

루시퍼

DUMMY

“뭐?”


그녀가 갑자기 돌머리 취급하자 체스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가르쳐준 첫 번째 단어를 이렇게 들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네가 날 만나러 왔을 때부터 널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라졌어.”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체스트는 왜 자신이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어쩌면 정말로 자신이 돌머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니, 그러면... 사념체는 사라진 건가?’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만약 사념체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거였다면 사념체는 여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닥불과 똑같이 생긴 사념체가 여신을 만나는 순간, 자칫 잘못하면 여신이 더는 모닥불을 그리워하지 않아 사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념체는 여신을 만나 그녀와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은, 여신의 사념이 사라져도 사념체 자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때 체스트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스피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내가 그 사념체를 직접 만나볼게. 그럼 되잖아?”


그건 안 된다고 말하려던 체스트가 순간 멈칫했다.


이미 진짜 모닥불인 자신을 만난 여신은 이제 사념체를 맞닥뜨려도 별문제가 될 게 없었다.


사념체가 가짜 모닥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사념체가 어디 있는진 알아?”


스피카의 말에 체스트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건 모르지만... 사념체를 찾아갈 방법은 알고 있지.”






쿠구구구-


고층 건물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얀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한 사내가 있었다.


“뭐야 당신들은?”


알파는 갑작스럽게 자신 앞에 나타난 이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체스트의 말에 알파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내 아버지를 알고 있나?”


그 말에 체스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아버지가 너와 네 누나에게 우주를 파괴하라고 시킨 것까지도.”


순간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멈추었다.


알파가 자신의 힘을 거둬들인 것이다.


체스트가 말을 이었다.


“너도 세상이 파괴되는 게 싫잖아. 안 그래?”


체스트의 말에 알파가 슬픈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릴 너희 아버지에게로 보내줘.”


“우리 아버지를 만나서 뭐 어쩌려고? 감당할 수 있어?”


알파의 말에 스피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스르르-


그러자 주위에 무너져있던 건물들이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알파는 주위를 둘러보며 스피카가 하는 일이 단순히 건물을 원상태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어느새 주위는 알파가 힘을 행사하기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알파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스피카를 쳐다봤다.


“뭐해? 안 데려다줄 거야?”


스피카가 재촉하자 알파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이들이라면... 우리 아버지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희망을 느낀 알파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 우리 아버지... 루시퍼에게 데려다줄 테니까.”






알파가 만들어낸 포탈 속으로 들어가자, 새까만 어둠이 주위를 잠식했다.


“빛이 있으라.”


여신의 말에 주위가 밝아졌지만, 그곳은 원래부터 검게 물든 공간인 듯 주위에 퍼져나간 빛을 모두 흡수해버렸다.


“아버지. 당신을 보고 싶다는 분들이 찾아왔습니다.”


알파의 말에 고요한 공간 안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가 보거라.]


알파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포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그 말을 끝으로 포탈을 닫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간의 중심에 무언가 일렁이더니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체스트와 똑같이 생간 여신의 사념체. 루시퍼였다.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그의 얼굴을 본 스피카가 순간 흠칫했다.


루시퍼는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체스트를 쳐다봤다.


“불청객이 왔군.”


그 말에 체스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덕에 네가 만들어진 건데 내 분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섭섭하네?”


루시퍼는 인상을 구겼다.


그의 계획은 여신을 만나 그녀와 영원히 사는 것인데 체스트라는 방해요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여신과 살다가 죽었어야 할 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


그 말에 체스트가 가늘어진 눈으로 루시퍼를 바라봤다.


“네가 여신을 만나게 둘 수가 없어서 말이야. 내가 선수 좀 쳤지.”


만약 루시퍼가 먼저 여신을 만났으면 우주를 모조리 파괴하고 단둘이서 영원히 살아가자고 제안했을 것이고 그럼 이 세상은 검게 물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체스트 자신이 스피카와 먼저 만나긴 했지만, 아직 사념체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안심하긴 일렀다.


‘이제 스피카가 사념체를 소멸시키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때 여신 스피카가 루시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네가... 내가 모닥불을 그리워하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진 사념체야?”


그 말에 루시퍼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럼 넌... 가짜 모닥불인 거지?”


“가짜라...”


그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루시퍼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때 체스트는 옛날, 동굴 속에서 여신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가짜가 뭐야?”


“가짜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아닌 거야.”


“그럼 진짜는 뭔데?”


“그건...”]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체스트가 오래되어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루시퍼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짜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아닌 거라고 한 말, 기억나?”


그 말에 스피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진짜가 뭔지 알려준 것도 기억하겠네?”


“...거짓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했지.”


그때 체스트는 루시퍼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루시퍼의 말이 이어졌다.


“난 동굴 속에서 너와 함께한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어.”


루시퍼의 마음속에서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내가 사념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짜고 저 녀석이 진짜라고 판단하지 마. 거짓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닥불’, 온전한 모닥불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건 저 녀석이 아니라 네 앞에 있는 바로 나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여신과 동굴 속에서 살았던 그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루시퍼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서 여러 기억이 뒤섞인 체스트보다 ‘모닥불’에 더욱더 가까웠다.


“그럼 넌 진짜 모닥불이야?”


여신의 말에 루시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네 옆에 있는 녀석은 가짜 모닥불이야. 저 녀석의 기억 속엔 모닥불 말고도 여러 가지 기억들이 뒤섞여 있으니까. 행성방위대라거나... 베가성이라거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체스트는 흠칫 놀랐다.


“어떻게 내가 과거를 바꾸기 전에 있었던 일을...”


그때 체스트의 머릿속에 루시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놈의 기억을 읽는 건 일도 아니지. 그리고 지금쯤 여신도 네 기억을 읽고 있을걸?]


그 말에 체스트가 문득 스피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체스트를 보고 있었다.


“정말로... 다른 기억들이 섞여 있어...”


그녀의 말에 체스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저 녀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스피카. 잘 생각해봐. 직접 과거로 가서 혼자 있는 네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누군지.”


그 말에 여신이 흠칫했다.


“그건...”


그때 체스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 녀석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난 직접 네게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줬어. 그것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야. 거짓이 아니라고.”


여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내가 잠깐 사념체의 말에 홀린 것 같아.”


체스트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군]


그때 머릿속에서 루시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그만 포기하고 소멸해라.”


체스트가 그렇게 말했지만, 루시퍼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듯한 미소로 체스트를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날 소멸시키려고 하는 거지? 날 소멸시키면 우주가 파괴되지 않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


그의 다음 말은 체스트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했다.


[여신을 내게 넘겨. 우주는 파괴하지 않을 테니까.]


거기까지 들었을 때 체스트는 무슨 헛소리냐고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세상을 영원히 살게 해줄게.]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세상?’


내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자 루시퍼가 내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 넌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왔어. 평범한 모범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었지.]


루시퍼의 말과 함께 체스트의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수행원에 의해 파괴된 행성과 홀로 쓸쓸하게 남겨진 자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희생당한 클라우.


자신의 눈앞에서 비참하게 죽은 노아의 후손들.


레나에게 이용당한 자신.


그 밖에도 체스트의 마음에 상처를 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긴 싫었을 거야. 상처받았을 때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떠오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을 테니까.


하지만 떠올리지 않는다고 그 상처들이 사라지진 않아.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상처들은 점점 널 집어삼킬 거야.


그러니까... 네 기억을 지워줄게.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아직 네가 살던 행성이 파괴되지 않은 그때로 돌아가서 그저 평범하게 전교 1등 모범생 체스트로 살아가.]


그 말과 함께 체스트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


어쩌면 그걸 원했을지도 모른다.


루시퍼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달콤하게 들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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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19.10.10 71 2 10쪽
» 루시퍼 19.10.09 79 2 10쪽
87 50년 후 19.10.08 73 2 12쪽
86 모닥불 19.10.07 69 3 10쪽
85 베타의 계획 19.10.05 86 2 11쪽
84 알파와 베타 19.10.04 75 2 10쪽
83 3년 후 (2) 19.10.03 165 2 10쪽
82 3년 후 (1) 19.10.02 72 2 12쪽
81 통일의 돌 19.10.01 75 2 12쪽
80 그날의 진실 19.09.30 70 2 10쪽
79 레나의 과거 (6) 19.09.28 145 2 11쪽
78 레나의 과거 (5) 19.09.27 77 2 10쪽
77 레나의 과거 (4) 19.09.26 74 2 10쪽
76 레나의 과거 (3) 19.09.25 116 3 11쪽
75 레나의 과거 (2) 19.09.24 77 2 10쪽
74 레나의 과거 (1) 19.09.23 88 3 10쪽
73 테리셔스 (12) 19.09.21 96 2 11쪽
72 테리셔스 (11) 19.09.20 86 2 10쪽
71 테리셔스 (10) 19.09.19 104 2 10쪽
70 테리셔스 (9) 19.09.18 80 2 11쪽
69 테리셔스 (8) 19.09.17 77 2 9쪽
68 테리셔스 (7) 19.09.16 79 3 11쪽
67 테리셔스 (6) 19.09.14 84 2 10쪽
66 테리셔스 (5) 19.09.13 84 2 9쪽
65 테리셔스 (4) 19.09.12 80 2 11쪽
64 테리셔스 (3) 19.09.11 79 2 11쪽
63 테리셔스 (2) 19.09.10 8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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