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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방


[수면방] 근대화에 대한 짤막한 고찰

  조선의 근대화 여부에 대한 논의에서 많은 사람들은 ‘통상 수교 거부’로 대표되는 척화 정책이 실패의 주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과연 올바른 것이며 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에 따른 근대화 실패의 책임을 나눠받아야 하는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짤막한 생각을 풀어보려 합니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인 1875년을 기준으로 조선과 일본, 청의 근대화에 대한 적응, 아울러 그에 필요한 제반 여건부터 살펴보는 것으로 출발해보겠습니다. 지식이 짧아 충분한 논거를 갖추고 글을 쓰지 못함에 양해를 미리 구하겠습니다.


  먼저 주변국을 보겠습니다. 일본국은 통상 수교가 이루어지던 1853년의 흑선 내항 당시, 이미 300년에 걸친 개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을 통한 간접적 접촉(조총 전수)을 제외하더라도 1641년부터는 VOC(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상관이 나가사키에 설치되어 정기적인 서양과의 교류가 정착된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중국도 큰 차이가 없어 명대에 이미 마카오를 통한 제한적인 교류가 이루어졌고, 청대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일구 통상정책이 관철되어 일본과 비슷한 통상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구 통상(하나의 항구를 통한 통상 무역)정책을 통해 서방의 문물을 제한적으로나마 꾸준히 접촉한 이들은 결과적으로 급격한 근대화가 진행되었을 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면역 기제가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은 청과 일본, 유구(오키나와)를 제외한 국가들과는 거의 무역 관계가 없다시피 하여 서방과의 접촉이 이루어졌을 때, 그 충격을 완충할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즉, 대원군의 개방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일단 조선이 통상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 첫번째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두번째는 조선의 열악한 세수입니다. 조선 정부의 세입은 18세기 말부터 감소 추세를 보이다 19세기 초의 대기근과 흉작, 중계 무역의 파탄 등으로 사실상 와해 직전까지 내려앉습니다. 국가가 쓸 수 있는 재정 규모가 작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 근대화의 추진에 필요한 자원이 없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근대화에 필수적인 제철소와 제련소, 그외 사회 간접자본의 정비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됩니다. 이를 감당할 재원이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조선 경제 규모의 100배에 달하는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어 정부의 재정이 모자라도 민간 수준에서 어느 정도의 투자 여력이 축적되어 일정한 수준의 근대화를 추진할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이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2대 은 생산국이자 도자기 수출국, 구리 생산대국인 일본은 이것으로 중앙 정부의 세입을 확보하여 근대화에 소요되는 기반 자금의 일부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과 중국은 이러한 자금으로도 부족하여 프로이센식 모델, 즉 토지 귀족을 자본가로 변신시켜 원시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을 밞으려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그럴만한 땅도 모자라고 농업 생산력에서는 동일 면적에서 일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러고도 일본이 서방의 차관과 전쟁 배상금을 받아서야 산업 혁명을 완수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의 근대화에 소요될 자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이 부분부터가 난맥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조선은 오랜 세월 물물 교환 경제에 가까웠습니다. 면포가 실질 화폐 구실을 하다보니 제대로 된 상품 화폐 경제가 구축되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조선에서 화폐 주조에 쓸 은과 구리가 많이 나지 않다는 점인데(은은 좀 있습니다만 중국 탓에 은광 개발이 좀 지연됩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충분한 화폐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도 시장 규모에 맞는 화폐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고, 정부 스스로도 화폐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당백전 같은 악화를 발행, 스스로 경제를 붕괴시키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산업화에 필요한 금융 체제로의 전환은 고사하고 자본주의 사회 진입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조차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설령 외국으로부터 충분한 차관을 들여온다고 한들 근대화에 효율적으로 투자가 될지, 또 막대한 화폐의 유입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충격을 정부가 제대로 조율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심스러운 부분들입니다.


  다른 지정학적, 국제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한 관점에서의 근대화 가능 여부를 간단히 고찰해보았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보자면 대원군이 근대화 실패의 주범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부당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P.S. 근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느냐에 대한 물음은 매우 많은 정치적 논란을 가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정을 떼고 결과만 달면 미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수되었다. 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1년에 3억 5천만 달러씩 물자와 기술을 퍼준 천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댓글 4

  • 001. Personacon [탈퇴계정]

    14.03.21 04:50

    생각해보지 못 했던 부분이네요. :D
    항상 학교에서 주입된 부정적인 인식만 갖고 있었는데 말예요.

  • 002. Personacon 수면선인

    14.03.21 22:52

    사실 생각해보면 달라지는 부분들은 많졈.

  • 003. Lv.91 온달의꿈

    15.11.23 23:18

    수면선인님의 글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내용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선은 당시의 조선이 근대화가 실패한 것의 원인과, 조선이 근대화의 역량이 있었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놓고 분석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근대화=산업화 라는 공식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산업화가 곧 근대화 라는 시각으로 보면, 수면선인님의 말씀대로 자본과 인구, 토지를 포함한 시장 같은 것들이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에 단순한 결론 밖에 나오진 않죠. 그렇게 보는 시각 때문에 한강의 기적을 '기적'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시각이 만들어 질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근대화를 논하기 전에 근대화를 가능케 하는것은 과학, 그리고 과학 이전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조선시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마 그럴꺼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그 당시 세계 최강의 철학 왕국이었습니다. 유학의 폐해가 가져다준 임팩트가 너무 강해 이걸 아는사람은 드물다는게 함정이지요. :)

    우선, 조선은 당시 수면선인님의 말처럼 서쪽애들과의 교역이 수치상으로 거의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배를 통한 통상수교는 없었지만, 유학자들을 통한 서학과 서양 문물의 유입은 일본보다도 훨씬 빨랐습니다.
    단지 그것이 집권층과 유학세력의 일부에게만 마치 샘플검수처럼 극히 작은 물량이 들어와, 소수들만 향유할수 있었기에 의미가 작아 보였을 뿐이었던 거죠.
    여하튼, 이미 기술이나 기술 그 이전의 철학적 소양의 토대는 전혀 부족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서양철학사 에서는 최근 백년 이내 에서야 등장하는 관점이나 주장들이 이미 그때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정립되다 못해 논리의 헛점이 낱낱이 분석되고 까발려져 그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파당들이 난립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시점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가루가 되게 까이고 있었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레스 같은 1대? 제자들은 제외)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근대화를 막은 주된 원인이 흥선 대원군에 있는게 아니라, 조선의 유학세력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유학 세력은 크게 보면 둘로 나눌수 있는데, 항상 당파싸움을 하며 기득권층에 속해 있는, 말로만 유학을 논하지 속은 전혀 유학의 도를 따르고 있지 않은, 말하자면 입만 산 소피스트 같은 세력과 그 반대의 세력이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 004. Lv.91 온달의꿈

    15.11.23 23:19

    조선의 역사는 세종대왕때 빼고는 항상 전자의 세력이 주도해 봤고, 그래서 항상 나라가 망조가 들었죠.
    근데 이 후자의 세력이, 힘이 없기는 해도 쪽수가 워낙 많고 조선의 정치 자체가 유학의 토대위에 세워 졌기에 왕도 함부로 무시할수가 없는 세력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후자의 세력도 여러 파가 있는데,
    천주교가 가져온 사상과 철학을 받아 들이고 소화해보려는 파와 전혀 그렇지 못한 파가 나뉘어 격심한 대립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시선으로 보면 별 문제도 아닌 문제지만 그 때 당시는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만큼 중요한 문제 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친 이유는 당시의 이런 상황때문으로 봅니다. 그냥 외국애들이 싫어서 그렇다거나 유학의 예와 맞지 않는 면이 많아서 그런건 결코 아니었어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게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비교해서도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하는 풍토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항상 유학이 무조건 옳다 고집하지도 않았고, 유불선을 그냥 통으로 묶어 통찰 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유학자들이 극심한 난리를 피운것은 그럴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유학자들이 어떤 문제를 놓고 대립했는지 까지 말하자면 너무 길어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때 들어온 천주교를 위시한 변질된 서양 철학이 유학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그런 문제였기 때문이었죠. 천지 우주 만물의 로고스가 사람의 육신이 되어서 왔다는 말 자체도 유학자들 입장에서는 받아 들이기 어려웠구요.
    요약하자면, 조선은 유학의 왕국이고 선비들이 나라의 기틀인데, 이 선비들이 난리를 피우니 조정으로서는 상당히 난감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순히 서양과의 수교로 얻어지는 기득권층의 지각변동이 두려워 쇄국정책을 펼친것은 아닌거 같아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아예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난 상황이니.. 물론 이 난리라는 것은 식자층에 한정된 거죠.

    많은 사람들이 근대화 하면 서양의 근대화부터 먼저 떠올리지만, 이미 조선은 세종대왕때 근대화로써 유의미 하다고 볼수 있는 업적들이 슬슬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당장 한글창제만 하더라도 넘사벽의 업적이죠. 한글창제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엉, 대단하네..' 하고 말겠지만, 고대동양철학에 대해 지식적 기반이 있는 분들의 시선에는 그야 말로 엄청난 업적입니다. 그외에 여러가지 근대적 개념의 제도정비가 있었고, 과학기술 또한 세계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게 별 문제 쭈욱.. 계속 되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세계최강국 자리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수면선인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고종때도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근대화가 조선땅에 이미 이루어졌었습니다. 물론 한양땅에만 한정이지만...규모만 따지는게 의미가 있을까요?
    어쨌거나 일본애들이 지들때문에 근대화가 되었다는건 말짱 개소리죠.

    어쨌거나 저는 '근대화의 역량' 만 놓고 보자면 '조선의 피 지배계층'에게는 차고도 넘치게 이미 있었다고 봅니다. 근대화가 안된 이유는 뭐 윗대가리들 탓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유학이 가져다 준 '폐해' 라고 까지 하긴 뭣하고 그냥 '유학이 낳은 헤프닝' 정도라고 말하고 싶네요.

    유학의 폐해는 매우 심각할 정도 였지만, 그 심각한 만큼이나 유학의 덕도 많이 봤습니다.
    일단 유학 하나만 가지고 500여년이나 국기가 유지 되었고, 세종대왕때 이룬 수많은 업적들 또한 조선 이전부터 쌓아온 철학적 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말은...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플라톤이 말한 '완벽한' 철인 하나가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갈수만 있다면 날개를 쭉쭉 펴고 날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뭔가 처음의 논지에서 벗어난거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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