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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일 님의 서재입니다.

절대자의 기억을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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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우일
작품등록일 :
2023.12.07 20:13
최근연재일 :
2023.12.18 19:4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89
추천수 :
9
글자수 :
42,291

작성
23.12.11 21:05
조회
15
추천
1
글자
12쪽

윈터.

DUMMY

-긴장하지 말거라.


스윽.


검은 머리의 망령이 여느때와는 달리 짓궂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오히려, 상냥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음성으로 부드럽게 사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고작 8살 아이인 사울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손에 들린 이 낡은 검을 제대로 휘두르는 것조차 힘들다. 이곳에 오기 전, 단 한번 밖에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했다. 아니, 그건 형식만은 ‘벤다'는 행위였지만 사실 ‘벤다'라는 정의에는 맞지 않은 동작이었다.


내려 쳐진 검을 들어올림으로서 멈췄을 뿐이니까.


-어려워 할 일도, 두려워 할 일도 아니다.


검은 머리 망령 아저씨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검을 쥔 두 손과 정직하게 서있는 다리. 시야는 검은 그림자 속을 응시하고 있다. 다른 곳에 신경을 할애할 여유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뒷덜미에서는 식은 땀이 미친 듯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런 사울의 등 뒤로 차가운 감촉이 맞닿는다. 수없이 단련한게 명백한 단단한 몸의 느낌. 차가운 두 손이 검을 들고 있는 사울의 두 손 아래로 겹쳐진다.


-저것들은 그저 불쌍한 이들일 뿐이니.


씁쓸한 듯한 목소리다.


그 짧은 한 마디에 수많은 감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사울은 알 수 있었다. 저 망령 아저씨의 감정은 곧 사울의 감정이기도 했으니. 그의 기억이 불안정하게나마 깃들어 있는 사울에게는 그 감정의 편린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손의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불쌍한 이들.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


‘죽지 못하는 자들(Undead).


그것들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힐튼 제국 수도에 위치한 대도서관에 보관된 가장 오래된 역사책중 하나.


『종의 기원』 속에서조차 간결하게 기록돼 있다.


-죽지 못하는 자들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제는 ‘신비'의 하나로 여겨지기까지 하는 몇몇 용들과 거인들의 시초들만이 그들이 없던 세상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두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죽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는지.


#


시선은 정면에서 떨어트리지 않고.


두 다리로 조심스레 뒤로 물러선다.


열려 있는 문 앞에 있는 작은 층계. 좁은 곳은 위험하다. 하지만 넓은 곳도 딱히 유리한 것은 아니다.


싸워본 경험이라고는 없은 사울이 본능적으로 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건, 검은 머리 망령 아저씨의 조각난 기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조각난 기억의 단편을 꺼내들어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주받은 핏줄의 아이'인 사울의 재능이었지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8살에 불과한 사울의 뇌가 견딜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이 몸을 비집고 들어왔을 때.


사울은 그것들을 ‘봉인’했다.


하지만, 지금 기억 속에 스며들어있는 한 검사의 노하우들을 사울은 본능적으로 꺼내들어 이용한다. 두손의 떨림은 사라져 있다. 천성이 겁이 많은 사울에게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할 수 있어.’


검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어둠 속의 기척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


-크르륵.


화가 난 듯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곧바로 작은 두 다리를 움직인다.


‘죽지 못하는 자’들의 특징은 지성이 없다는 거야.


제이콥 형과 그곳을 떠나올 때 이후로 저것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날, 자신은 겁에 질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형의 넓은 등 뿐. 제이콥 형은 홀로 자신을 지키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몇 번이고 베었던 놈들이니까.”


사악.


사울의 기세가 변한다.


설령, 지금의 자신감이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 지금은 그거면 된다. 기억에 몸을 맡기거라.


타닥.


먼저 나온 건, 쿱이었다.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생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사이에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


쿰파 할머니께서는 연세가 있으셨던 탓에, 톰 아저씨가 집을 보수해 놓으셨다. 층계가 있는 문 근방에는 걸어다니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난간이 있다.


사울은 쿱이 문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옆으로 작은 몸을 뛰어 난간으로 올라간다.


-그어어.


저의 앞에 있던 먹잇감이 사라지자,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울을 덮치려고 달려오던 기세 그대로 층계 아래로 떨어진다.


퍽.


쿰파 할머니 댁 앞의 마당에 쌓여있던 눈에 놈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고. 사울의 붉은 두 눈은 이미 그것에 관심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이어서 나오고 있던 데이브를 바라보고 있다.


난간에 올라선 채로 사울의 두 손은 이미 검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크어어어어.


마찬가지로 성대를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와 함께 사울을 향해 데이브가 팔을 벌린다.


하지만 사울은 이미 난간을 딛고 위로 떠올라 있었다.


아직, 어린 몸은 검을 제대로 다룰 근력조차 없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술'이 아니라 날붙이로 내려칠 뿐인 행위였으니까.


사-악.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사울의 손에 들린 낡은 검이 데이브의 목을 수직으로 잘라 버린다.


데이브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아직 식지 않은 혈액이 사울의 몸을 따뜻하게 적셨다. 하지만 이 어린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검이 바닥에 박히기 전.


고개를 아래로 말아서는 내려친 검의 기세를 이용해 한 바퀴 회전한다. 내려친 검이 나무 바닥에 박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어린 아이의 몸에 깃든 누군가의 기억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빈약한 몸의 한계를 몇 번이고 전장에서 쌓아온 경험으로 뒷받침한다.


쿵.


위로 떠올랐던 탓에 더욱 강하게 바닥에 사울의 몸이 내려 앉고. 충격을 대비하기 위해 힘을 주었던 두 다리였지만, 예상보다도 허약한 몸인 탓에 허벅지가 경련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두 눈은 곧바로 다음 상대를 포착한다.


눈에 파묻혀 있던 쿱이 어느새 층계에 도달해 있었다.


8살에 불콰한 사울의 키는 다른 아이보다도 작았지만. 계단 위에 올라 있는 이점 덕분에 쿱과 시선이 마주친다.


생에 어떤 미련도 없는 듯이 공허한 눈동자.


그것을 바라보는 사울의 눈에는 연민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두 손을 말없이 전력을 다해 가로로 그어진다.


사-악.


데이브에 이어, 쿱의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다.


눈밭에 붉은 꽃들이 수놓아진다.


겨울이 끝났는데도 아직 녹지 않던 눈밭이 뜨거운 핏물로 인해 녹아 내린다.


“네게 죽음을 허락한다.”


슥.


허공에 검을 한번 흔들어 핏물을 털어 버린다. 그 끝에는 사울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얀 불꽃'이 서려 있었다.


대륙의 중심. 힐튼 제국에 ‘검은 집'이라는 곳이 생겨나기도 전. 그러니까, 최초의 윈터라 불리던 남자가 ‘윈터’라고도 불리기도 전.


그저,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검을 들던 사내.


누군가는 그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절대자'라고.


그리고, ‘하얀 불꽃’은 그 절대자의 상징이었다.


#


털썩.


사울의 작은 몸이 힘없이 쓰러진다.


검은 머리의 망령이 천천히 사울의 옆으로 걸어간다.


-아무래도, 아직 이 정도가 한계인가 보군. 아니, 그 핏줄이기 때문에 ‘불꽃’의 형태라도 현현하는게 가능했다고 보는게 맞겠지.


씁쓸하게 내뱉는 말투.


그는 목이 잘려 버린, 두 시체를 바라본다. 검으로 목을 베었음에도 놈들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지 못하는 자(Undead)'라는 이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불꽃의 모양새만 흉내냈기 때문이다.


만약, 사울의 재능이 조금더 꽃을 피웠더라면 저것들이 움직일 일은 없을 것이다.


-뭐, 괜찮겠지.


검은 머리의 망령이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한 사내를 보며 말한다. 집 안에 아직 언데드가 하나 더 있지만, 움직이지 않으니 괜찮다.


망령은 흐릿해진 몸으로 난간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더니 하늘을 바라본다.


유난히도 어두운 밤하늘.


그가 습관처럼 무언가를 입에 무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지만 손이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점점 대지를 울릴 정도로 커다란 발소리가 가까워 졌고.


그의 모습은 더욱 흐릿해져 있었다.


-아직, 다음 왕이 태어나기도 전일 터인데. 내 ‘기억’을 전수받는 아이가 나타났다라... 다음 겨울은 부단히도 춥겠구나.


“사울!”


익숙한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고.


검은 머리의 망령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


‘절대자.'


그가 태어난 것은 긴 겨울이 시작된 추운 어느 날이었다.


빈민가 창부의 아이로 태어난 아이는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마치 쓰레기라도 된 거처럼 골목길에 버려졌다.


흔한 일이었다.


빈민가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에게 아이를 키울 여유는 없을 뿐더러, 키울 생각조차 없었다. 긴 겨울이 시작되면 그건 더욱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남았다.


아이가 버려지기 전날. 술기운에 누군가와 주먹질을 치고 받다가 죽어 같은 골목에 버려진 한 남자의 손에 의해서.


-와···왕이시여.


‘죽지 못하는 자’, 언데드들은 지성이 없다.


그것은 잘못된 사실이다.


‘왕'이 태어나면 그것들은 지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는 긴 겨울을 ‘죽지 못하는 자'들의 손에 의해 키워졌다.


훗날 ‘절대자'라 불리며, 자신의 손으로 저의 백성들의 목숨을 거둬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


“···당장 불러야 합니다! 촌장님, 말씀대로 쿰파 할머니의 장례를 미룬 탓 아닙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면 생계를 유지할 여력이 없습니다.”


소란스러운 마을의 공터.


어젯밤에 있던 일 떄문에 아침이 되자마자 마을의 어른들은 모여 있었다.


“그럼, 저것들을 저대로 둘 생각입니까? 무슨 사고가 또 벌어질 줄 알고요!”


모여있는 어른중 누군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친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제대로 묶어서 감시해 놓으면, 여유가 생길 때까지 괜찮을 겁니다. 제이콥이 맡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랬으면, 이번 일도 벌어지지 말았어야죠. 제이콥이 계속 감시할 수도 없잖아요.”


“그건···”


“됐습니다. 전, 더이상 이곳에서는 못 살겠습니다. 애초에, 톰 씨의 말처럼 사울 그 아이 탓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어요. 날이 조금만 더 따뜻해지는데로 가족들과 떠나겠어요.”


과격해지는 대화 속.


휴밀턴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약탈'이 기승을 부리는 지금. 어른들이 하나둘 씩 마을 떠나면, 더이상 이 마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역시, 그날 제이콥과 사울을 받아들였으면, 안 됐던 건가.’


절레, 절레.


아니다.


그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제이콥 덕분에 그 해 겨울을 이 마을은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이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습니다. 그럼, 투표를 하도록 하죠.”


휴밀턴이 한숨을 내뱉으며 정면을 향해 말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아···그러니까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푸른 색의 긴 장발을 위로 묶고 있는 한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이렇게 생긴 검을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마을의 상황과는 달리,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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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죽지 못하는 자들 23.12.08 20 1 13쪽
3 생존자들 (2) 23.12.07 24 1 13쪽
2 생존자들 23.12.07 36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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