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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즘 님의 서재입니다.

록커의 펫 불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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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즘
작품등록일 :
2022.05.11 12:12
최근연재일 :
2022.10.10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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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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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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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공연장의 불청객

DUMMY

새벽 4시. 수색대 행정실.

병장 차준혁이 야간당직근무 중이다.

왼팔에 ‘당직’ 완장을 찬 준혁이 통기타를 치고 있고, 행정병 일병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다.

왼손은 지판을 누르고, 오른손은 피크로 아르페지오(한 음씩 연주하는 주법)연주하는데, 이때 손날 부분을 기타줄에 대고 있다. 팜 뮤트(Palm mute)라는 주법으로 연주음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소리를 죽이는 연주방식으로, 이 새벽시간에 기타를 치기 위한 생각해낸 방법이다.

준혁의 왼손가락이 빠르게 지판을 짚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급기야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주가 이어졌다.

옆에서 구경하던 행정병이 감탄했다.


“우와! 병장님, 지미 헨드릭스가 환생한 줄 알았습니다.”

“새끼, 그만 빨아. Jimi Hendrix is a god! 그는 신이야.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기타리스트가 아냐 임마.”

“에이, 제가 볼 땐 지미보다 병장님이 더 잘 치시는 것 같습니다.”

“너, 군 생활 더 편해지고 싶냐?”

“아부 아니라 진심입니다. 제가 봤을 때 병장님이 최고 넘버원입니다.”


내심 기분 좋은 준혁이 행정병 이마에 장난스레 딱밤을 때렸다.


“얌마, 그건 니가 이쪽 세계를 잘 몰라서 그래.”


행정병이 붉어진 이마를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저도 여기 오기 전에 록 음악에 심취한 적 있어서 좀 압니다. 아무튼, 병장님이 죽여주게 잘 치는 건 확실합니다. 실력 한번 제대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

“공짜로?”


행정병이 얼른 냉장고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 와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뚜껑.”


행정병이 뚜껑을 깐 후 다시 공손히 내밀었다. 준혁이 건네받은 박카스를 단숨에 마셨다.


“좋아. 박카스 삘로 한곡 칠 테니 잘 들어봐.”


행정병의 로비가 통했다.

준혁이 자세를 고쳐 잡고 피크로 기타줄을 때렸다. 통기타가 전자기타로 변신한 것처럼 끈적끈적한 선율이 흘렀다.

준혁의 연주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행정병이 물었다.


“우와! 이 음악 끝장입니다. 병장님, 이 곡 제목이 뭡니까?”

“Still Got The Blues”


* * *


대학가 MJ호프집 라이브 무대에 선 준혁은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지수는 학교에서 한번 마주친 인연이 있어서인지, 록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친구 소연은 대다수 관객들처럼 어쿠스틱 공연에서 락 공연으로 바뀐 것에 실망한 표정이지만, 지수는 오히려 신이 났다. 쌓인 스트레스를 락 음악으로 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공연을 즐길 준비가 돼있었다.

준혁은 그런 지수의 눈빛이 고맙고, 힘이 됐다. 멋진 공연으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준혁은 멤버들과 눈빛교환하며 시작 타이밍을 알렸다.

준혁의 기타로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본조비의 ‘I'll Be There For You’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락 그룹의 히트곡으로 공연의 포문을 열기에 적합한 곡이다. 연주의 난이도가 높지 않아 손을 풀기에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객들의 호응이 없다. 그들은 팔짱 끼고 관망하는 자세로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첫 곡이 끝나자 관객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건성으로 박수를 쳤다.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는 관객은 지수뿐이었다.

당황한 준혁과 멤버들이 드럼 쪽으로 모였다. 준혁이 해결책으로 공연순서변경을 제의했다.


“다음 곡은 빠른 템포에 간지 나는 곡으로 가자.”


멤버들도 준혁의 생각에 동의했다.

두 번째로 선정된 곡은 스키드 로의 ‘I Remember You’

간지 나는 곡으로 관객의 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곡이 끝나도 관객의 호응도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멤버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망한 관객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공연 장르를 변경한다는 발상이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준혁은 심란해졌다. 준혁의 무거운 마음이 보이는 지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준혁은 관객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20대보다 30대 이상의 직장인관객이 더 많았다. 젊은 층이 훨씬 많을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어쿠스틱공연을 즐기는 세대는 연령대가 다소 높은 편이라는 것을 간과한 결과다.

준혁은 멤버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다음 곡은 Still Got The Blues로 가자.”


기태가 펄쩍 뛰며 태클을 걸었다.


“야! 미쳤어? 리스트에도 없는 곡을 하자고?”

“어차피 지금은 강한 록 음악이 안 먹혀. 관객들 나이대를 봐서 블루스로 가보자. 차라리 그게 먹힐지 몰라.”


준혁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기태는 난색을 표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앵그리 타이거 놈들이 뭐라고 하겠어. 락 음악으로 승부할 자신 없으니까 블루스 한다고 얕잡아볼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해? 그놈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여기 있는 관객의 마음을 얻는 거야. 블루스 락으로 승부를 걸어보자.”

“그치만 연습도 안 한 곡인데...”

“예전에 많이 연습했잖아. 내가 이끌 테니 눈치껏 따라오기만 해. 아마 몸이 기억하고 있을 거야.”


기태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준혁의 제안을 수용했다.


“그래, 알았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모 아니면 도야.”

“오케이. 가보자.”


게리무어는 탁월한 기타실력을 갖춘 전설의 뮤지션이다. 블루스 음악의 대가인 그의 대표곡 ‘Still Got The Blues’는 절규하는 듯한 기타선율이 전율을 자아내는 명곡이다. 그만큼 준혁의 기타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자칫 실수로 노래를 망치기라도 한다면 미적지근한 분위기에 찬물을 붓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를 잘 아는 준혁은 긴장된 얼굴로 집중했다.

준혁의 피킹으로 세 번째 곡이 시작됐다.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기타선율이 흐르자 관객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준혁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혼신을 다해 연주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끈적끈적한 블루스 선율에 관객은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곡의 후반부에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연주로 곡이 마무리됐다. 음의 여운 속에 준혁이 지그시 감은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서 관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지수는 감동의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성공이다!

준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멤버들도 관객의 마음을 얻은 것에 안도하며 밝게 웃었다.

이 여세를 몰아서 다음 곡은 전자기타가 아닌 어쿠스틱기타로 연주하는 곡으로 골랐다. 미스터 빅의 ‘To be with you’와 익스트림의 ‘More Than Words’ 두 곡이다.

준혁은 무대 중앙에 기태와 나란히 앉았다. 오로지 보컬과 어쿠스틱기타 한 대 만으로 구성된 담백한 곡에 관객들도 반응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준혁은 연주 도중 간간히 지수를 보았다. 노래에 완전히 심취해 흥얼거리는 그녀모습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됐어!


담백한 두 곡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공연이 완전히 분위기를 탄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관객은 즐길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다시 분위기를 바꿔 뜨거운 곡으로 공연의 열기를 더하면서 마무리하면 된다. 그러면 성공적인 공연이 완성된다.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진 준혁은 어쿠스틱기타를 내려놓고 전지기타를 다시 멨다. 곡을 시작하려는 그때, 준혁의 손이 멈칫했다. 기타를 보는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멤버들이 의아해하며 준혁을 바라보고, 관객들도 술렁거렸다. 기태가 다가와 귓속말했다.


“야, 시작 안 해?”

“기타 줄이...”

“기타 줄이 왜?”

“기타 줄 하나가 없어.”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기태가 준혁의 기타를 보니 정말이다.

기타 3번 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기태가 기겁했다.


“야... 3번, 3번 줄 어디 갔어? 방금 전까지 연주했잖아!”


당황한 준혁은 기타의 헤드를 유심히 살폈다. 줄감개에 일부 남아있는 금속 줄의 절단면이 날카로운 이빨로 끊은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준혁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불가의 짓이다!’

‘놈이 지금 가까운 곳에 있다!’


준혁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맙소사!

비상상황이다.

무대 위의 준혁은 3번 줄이 감쪽같이 사라진 기타를 넋 놓고 바라봤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진땀이 났다. 멤버들의 표정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기는 마찬가지였다.

준혁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가가 멀리 도망가지 않고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문득 바이러스와 숙주의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준혁의 곁을 떠나지 않고 숙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런 기생충 같은 놈, 녀석은 지금 이 공간 안에 있어!’


준혁은 무대와 가게 안 바닥, 테이블, 벽, 천장 등을 둘러봤다. 하지만 불가를 찾을 수 없었다. 준혁의 이런 불안한 행동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의아해했다.


“야, 차준혁! 너 뭐해?”


기태의 목소리도 안 들리는지 준혁은 불가 수색에만 집중했다. 그만큼 준혁에게는 불가를 찾는 것이 절실했다.

보다 못한 기태가 준혁의 옆구리를 툭 치며 귓속말했다.


“얌마, 정신 차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수색을 멈춘 준혁이 관객들을 둘러봤다. 그제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근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수도.

순간, 준혁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함이 몰려왔다.

내가 지금 공연 도중에 뭘 하고 있는 거지.

준혁이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사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여기서 공연을 끝내라는 신호였다. 사장의 신호를 본 기태가 재촉했다.


“준혁아, 사장님 신호 봤지? 얼른 공연 끝내자.”

“아니, 계속해. 아직 하이라이트가 남았어.”


준혁이 공연을 고집하자 기태의 미간이 구겨졌다.


“얌마, 상황파악이 안 돼? 기타줄도 없이 무슨 수로 공연을 계속하냐고?”

“밴딩.”

“뭐?”

“밴딩으로 카버하면 돼.”


기태가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준혁이 별 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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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불가사리와의 조우 22.05.15 55 1 11쪽
5 5화. 괴생명체 수색 작전 +2 22.05.14 5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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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전역자의 동행자 22.05.11 77 8 9쪽
1 1화. DMZ에서 생긴 일 +4 22.05.11 121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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