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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럭비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도술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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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럭비
작품등록일 :
2023.01.02 14:41
최근연재일 :
2023.01.02 14:53
연재수 :
1 회
조회수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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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4,967

작성
23.01.02 14:53
조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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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1화

DUMMY

“도술을 부리고 싶으냐?”


도술사가 한에게 물었다. 한은 생각했다. 도술을 부리고 싶은 게 아니다. 도술사라는 신분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신분사회에서 도술에 재능이 있다면 천민이라도 도술사가 될 수 있으니까.

실제로 도술사가 되어 천민에서 양반으로 인생역전을 한 사람이 지금 한의 눈 앞에서 묻고 있지 않은가.

한은 한없이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한테는 도술 재능이 없습니다. 나리.”


한의 자조적인 말에 도술사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진지한 대답을 듣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튓마루에 앉아 의뢰인인 최 대감을 기다리다가 심심한 시간이나 때울 겸, 자신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한을 불러 세워 물어본 것일 뿐, 별다른 의도는 없었으니까.

그때 최 대감이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도사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 대감이 두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데 도술사는 앉은 채로 대충 손을 내밀었다. 마치 약속시간에 늦은 최 대감을 질책하는 듯한 태도.

오오, 양반에게도 결코 꿀리지 않아. 저게 도술사의 힘이구나.

생전 처음 도술사를 본 한은 생각했다.

하긴 최 대감이 이 지역 유지로서 떵떵거리고 사는 양반이지만 오늘은 이 도술사에게 아쉬운 입장이었다. 이렇게 실력 있는 도술사를 모시기란 힘드니까.


사실 최 도령만 아니었어도 최 대감이 이런 천민 출신 도술사의 비위를 맞출 일은 없었다. 올해 서른 살 먹은 골칫덩이 백수 아들 최 도령. 과거를 보겠다면서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부모 등골만 빼먹으면서 빈둥대는 한심한 인생이다.

안 그래도 지금 한창 도박장에서 패를 까다가 최 대감에게 억지로 끌려온 최 도령은 입이 댓발 나온 상태였다.


“뭐 하냐 이 놈아. 도사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최 대감이 뻣뻣하게 구는 최 도령의 고개를 숙이게 했다. 최 도령은 눈 앞의 도술사에게 고개를 숙이기가 싫어 버텼다. 얼굴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니 아버지. 이 도사 놈 천민이었다면서요. 근데 내가 고개를 숙여요? 양반인 내가?


“이 새끼가!”


결국 버팅기던 최 도령은 최 대감에게 뒤통수를 한 대 맞고 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이 놈이 제 아들입니다. 부디 도사 님께서 이 놈한테 요괴가 붙은 건 아닌지 봐주십시오.”


최 대감의 말에 도술사가 덤덤한 눈빛으로 최 도령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요괴가 붙은 건 아닙니다.”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 아들 놈이 도박에 빠지고 색욕에나 빠진 건 요괴가 들러붙었기 때문일 겁니다. 원래 이 녀석은 똘똘하고 착한 녀석이었단 말입니다.”


대감님, 최 도령이 똘똘하고 착했던 적이 있었다고요?

옆에서 최 대감과 도술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은 묻고 싶었다. 이 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걸음마할 때부터 머슴 생활을 시작했고 그 때부터 최 도령을 봐왔지만 절대 이 자식이 착하고 똘똘했던 적은 없었다.

최 도령은 처음부터 그냥 원래 망나니 같은, 그런 자식이었다.


“요괴 때문이 아닙니다. 아드님이 원래 그런 사람인 겁니다. 도박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도술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도술사의 뼈 때리는 말에 최 대감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최 도령의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봐... 당신... 당신이 나에 대해서 알아? 아냐고... 읍...”


도술사에게 무례하게 구는 최 도령의 입을 최 대감이 서둘러 막고 말했다.


“도사 님, 그럼 부적 하나 써 주시겠습니까?”

“어떤 부적을 원하십니까?”

“총명부적이라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게 하는 부적이 있다던데 그거 하나만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술사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한 장에 백냥이오.”

“네 네.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그저 정성껏 써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도술사는 손가락으로 붓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종이와 붓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한아, 내 방에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거라.”

“알겠습니다. 대감님.”


한은 곧바로 최 대감의 방으로 가 종이와 붓을 가져왔다. 앞에 그것들을 놔 주자 도술사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빠르게 종이에 뭔가를 그려나갔다. 한이 보기엔 아무렇게나 휘적휘적 낙서를 하는 것 같았다. 최 도령에게도 그렇게 보였는지 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거 부적 맞아요, 아버지? 그냥 아무거나 휘갈기는 거 같은데?”


최 대감이 찌릿 최 도령을 째려보자 최 도령이 입을 다물었다. 도술사는 붓을 내려놓은 다음 종이 위에 손바닥을 펼쳐 뭔가 기운을 주입하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하앗! 하앗! 하앗!”


요란하게 소리를 내던 도술사는 동작을 마치고 종이를 집어 최 대감에게 건네주었다.


“다 됐습니다.”


누가 봐도 거지발싸개 같은 낙서. 최 대감은 거지발싸개 같은 낙서가 담긴 종이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았다.


“제 도술력을 듬뿍 담았으니 몸에 지니고 공부하면 능률이 몰라보게 오를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술사는 툇마루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최 대감은 주머니에서 엽전 뭉치를 꺼내 도술사에게 건네주었다. 도술사는 엽전뭉치를 손에 올려놓고 짤그랑거리며 유유히 대문을 빠져나갔다.

와, 붓질 몇 번 하고 한 방에 백 냥을 벌다니... 도술사 최고다... 한은 그 광경을 넋이 나간 채로 바라보았다.



그 이후 최 도령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서당을 다녔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최 대감의 불호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최 도령의 무거운 책을 들고 서당 등교길, 하교길을 따라다니는 개인머슴 한은, 최 도령이 서당에서 공부를 할 동안 바깥에서 대기해야 했는데 정말 그 부적이 효과가 있을까 궁금해 서당 담벼락 너머로 최 도령의 모습을 훔쳐봤다.

그러나 한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훈장님 앞에서 졸거나 잡담을 하거나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학우들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뿐이었다.


‘저거... 저거... 백 냥짜리 부적을 사줘도 정신 못 차리는구나...’


최 대감 같은 아버지가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거급제를 할 자신도 있는 한으로선 최 도령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 도령이 야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벼슬에 대한 욕심은 누구보다 많지만 머리도 나쁘고 노력도 안 하는 그가 벼슬길에 오를 일은 평생 없어보였다.


“아, 공부하기 싫어 죽겠네. 나도 도술력에 재능이 있으면 도사나 하는 건데... 그럼 부적이나 써주면서 쉽게 돈 벌고...”


서당을 마치고 나온 최 도령이 책가방을 한에게 던지며 구시렁거렸다. 아무래도 오늘 수업이 어려웠나보다. 서당 밖에서 훈장님의 가르침을 어깨너머로 듣던 한도 오늘 수업을 다 이해했는데 말이다.


“도박장이나 가자.”


최 도령은 곰방대에 담뱃불을 붙이고 말했다. 한 며칠 참나 싶더니 결국 도박장이다.


“네? 대감님께서 아시면 어쩌려고요?”

“그래서 꼰대가 모르는 데 뚫어놨어. 그리고 이게 진짜 효능이 있나 시험해봐야지.”


최 도령은 부적을 흔들어보였다. 아무래도 그는 총명부적으로 도박판에서 끗발을 세우길 기대하는 거 같았다.


“안됩니다. 대감님께서 도련님 도박장에 가는 건 절대 말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최 도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말려? 말려? 니가 감히 나를 말린다고? 한아, 너 머슴 주제에 선을 좀 넘는다?”

“아니 그건 대감님께서 지시하신...”


그 순간 최 도령이 한에게 따귀를 갈겼다.


“가서 일러바쳐. 또 내가 도박장 간다고 일러바치라고.”


빨개진 뺨을 한이 붙잡고 말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넌 꼰대 머슴이 아니라 내 머슴이라고.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씨... 알아들었으면 조용히 따라와.”

“알겠습니다.”


최 도령은 곰방대를 한 모금 빨고 발길을 옮겼다. 한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새 도박장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멀고 낯설었다. 작은 산 하나를 넘어 옆 고을로 넘어가야 했는데 가벼운 차림의 최 도령과 달리 책가방을 든 한은 산을 계속 오를수록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한, 빨리 안 와?”

“네, 죄송합니다.”


겨우 산을 넘어 옆 고을에 도착한 둘은 그 고을 초입에서 가장 큰 주막을 찾았다. 여기저기 상에 앉아 국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 주막 건물 뒤쪽으로 돌아간 최 도령은 닫힌 창호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담배연기가 자욱한 큰 방 안에 남자들 일고여덟 명이 화투패를 까는 모습이 보였다. 최 도령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있어라.”

“알겠습니다.”


한은 문 앞에 쭈그리고 흙바닥에 앉았다.

사실 최 도령이 도박장에 오면 한의 입장에서는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했다. 최 도령의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단 것이었다.

최 도령이 도박에 빠져 있을 동안 한은 그날 서당에서 어깨너머로 들은 내용을 책을 들여다보며 복습했다.

누가 보면 머슴 주제에 공부해서 뭐 할 거냐고 하겠지만 한은 천민 출신들이 전문기술장인으로 궁에 들어간 사례들을 몇몇 들어서 알고 있었다.


‘궁에 들어가면 그래도 이것보단 더 잘 살 수 있을 거야.’


아직 어떤 기술을 배울지 정하진 않았지만 한은 일단 글부터 배워둘 생각이었다. 글을 읽을 줄 알아야 여러 전문서적을 읽고 기술을 빨리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이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방안에서 간간히 최 도령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아씨! 또 개패잖아!”

“아, 끗발 안 서네! 진짜!”


아무래도 총명부적이 효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최 도령이 판을 엎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이제 나오겠군.’


한은 펼쳐놓은 책을 얼른 접어서 책가방에 넣었다. 아니나다를까 곧 최 도령이 곰방대를 뻑뻑 피우면서 방 밖으로 나왔다. 전부 다 잃은 모양이었다.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 말 없이 주막을 빠져나가는 최 도령의 뒤를 한은 눈치껏 조용히 따라갔다. 최 도령은 산길의 초입에서 갑자기 품안의 부적을 꺼냈다.


“젠장, 뭐가 총명부적이야! 이거 완전 돌팔이 도사잖아!”


그러면서 부적을 벅벅 찢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얇은 종잇장이 질긴 쇠가죽처럼 찢기지 않았다. 도술력이 깃든 탓이었다.


“망할! 한낱 종이짝 주제에!!”


최 도령은 힘을 주다가 성질을 못 이기고 그냥 부적을 구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휙 돌아서서 다시 씩씩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은 얼른 부적을 주웠다.


“도련님! 이거 안 가져가십니까?”


최 도령은 못 들었는지 계속 걸어갔다. 한은 최 도령의 뒷모습과 부적을 번갈아 보다가 부적을 슬쩍 품에 넣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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