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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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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쿨러
작품등록일 :
2023.05.10 12:44
최근연재일 :
2023.07.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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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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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녀의 이야기.

DUMMY

5화. 그녀의 이야기.



“어무이. 왜 두 분이서 백화점을 가는데 나를 데꼬 가쌌소.”

“일요일에 쉬는 놈은 너밖에 없잖니! 그리고 넌 그런 위험한 곳에 여자 둘만 보내야 속이 시원하냐?”

“카드만 주시오. 그러면 그리 위험한 곳도 아니니.”

“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엄마는 단벌 숙녀인 나를 위해 백화점으로 나섰다.

다른 의도가 다분히 보이지만 형 옷과 남자의 사각팬티로 연명하긴 힘들어 곧장 따라나섰다.

그 모습이 도산은 탐탐 치 않는 모양이다.

나 같아도 생판 모르는 여자애에게 옷을 사준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테다. 하물며 집 안의 우환 덩어리에게 사주 다니.

속이 쓰리고도 남았겠지.


“어무이도, 꽃순이가 뭐가 이쁘다고 옷까지 사준다요. 허벌라게 속도 좋소. 진짜, 천사가 현세에 강림 해븠네. 천사가 강림 해븠어.”

“그래, 너 걷어 들이고 그런 소리 많이 들었지.”

“어매, 무슨 말을 그리 섭 하게 한답니까? 야랑 나랑 같다요.”

“내 딴에는 다를 것도 없지. 그리고 이게 섭섭하냐? 난 네가 독립을 안 해서 섭섭하다.”

“아따 쪼까 거시기 하고만, 아들내미 집 사서 나갈라믄 쪼금이라도 더 모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는 놈들이 셋이나 있으니 문제지.”


도산은 본전도 찾지 못하고 결국 찌그러졌다. 하지만 엄마의 한풀이는 이제 시작한 모양이다.

그는 괜히 말을 꺼내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 폭격을 감내해야 했다.


“말이 나와서 바른 말이지. 너희 이제 곧 서른이야. 언제까지 우리 등골 빼먹고 살래?”

“뭐 또 등골이라 하요. 참 표현 거시기 하네.”

“평생 안 봐도 좋으니 제발 나가서 각자 인생들 살아라. 엄마 흰 머리 보이지? 이젠 아주 지겹다 지겨워.”

“아따 우리 어무이 또 맴에도 없는 소리 했싼다.”

“맴? 네가 내 마음을 어찌 알아. 확 진짜! 좀 다들 내 인생에서 꺼져 줬으면 좋겠다.”

“알았어라. 진정 하시란께요. 아따 우리 어무이 오늘 따라 쪼까 까칠하고마잉.”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저렇게 늘 한풀이 속사포 랩을 할 때마다 왜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까?

이제야 귓가를 따라 늘어선 하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런 와중에 스스로 또 식충이를 자처하고 들어앉았으니 미안함에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쪼다, 10년째 식충이는 아직 감이 오질 않는 모양이다.

그는 이미 한 귀로 흘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되지도 않는 그르부를 타고 있었다.


“너는 엄마 말을 듣고는 있냐?”

“꽃순, 우리가 이리 정다운 사이였남?”

“너 벌어 놓은 돈도 있겠다. 이제 나가 사는 게 어때?”

“아따 그새 내 뒷조사를 해부렀냐? 하지만 고로코롬은 안되제. 내가 효도 한번 못했는데. 호강 한번 시켜 드려야 제. 우리 어무이 유럽 여행 딱! 호화 여객선 딱! 금강산 관광 딱!”

“네 대가리 딱!”


도산은 나에게 맞고는 룸미러로 눈을 흘겼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시선에 맞선 후 엄마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엄마도 그런 내가 싫지 않은지 포개어 잡아 꼭 쥐어 주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 잡은 적 없는 손은 갈라지고 주름져 거칠어져 있었다. 그동안 왜 몰랐던지.

엄마의 숭고한 희생을 마땅히 내 것이라 여겼던 지난날들이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늘 누렸던 소소한 행복이 내 것이 아니게 되니 이제야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 손 꼭 잡고 백화점 주차장에 이르게 되었다.


“전자발찌는 보고 가실라요?”

“봐서. 시간 나면.”

“지는 요 있으면 되지라?”

“꽤 걸릴지도 몰라. 일 있으면 일 봐.”

“아니어라. 마침 핸드폰 빳데리도 만땅이겠다. 기다려 드려야지 그거시 아들의 참된 도리 아니것 써라.”

“너 편한데로 하고, 아 참! 명호 이번에 이력서 넣은 회사 또 떨어졌니?”

“그렇지라. 눈 구녕이 쩌짝 히말라야에 걸려 있는디 그 스펙으로 가당키나 허겄소. 그랑께 그날 그리 술 처먹고 혹하나 달고 온 거 아니겠소.”

“다 내 업보다. 내 업보야.”

“싸게 싸게 댕기 오소. 두 시간은 넉넉히 게임 할 수 있응께.”


그랬다. 나는 곧 죽어도 대기업에 원서를 넣어 주구 장창 떨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그날도 떨어져 낙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만취하도록 먹은 이유는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니다.

대기업 문턱에 낙방에 술 처먹을 정도로 심약하지 않고 워낙 내성이 생겨 힘들지도 않았다.

그날은 반드시 술을 먹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몸이 이렇게 된 마당에 의미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생각해 보면 큰일도 아니 건만 그날은 왜 그리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는지.

그러고 보니 가짜도, 나도 그날 이후를 너무도 잘 보내고 있다.

나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아니지 녀석도 나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하여튼 며칠 앓아누울 줄 알았는데 너무 싱겁게 이겨내 버렸다.

우리는 1층 명품관은 건너뛰고 바로 2층으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엄마의 억눌렸던 쇼핑 욕구는 막 분출된 분화구처럼 꺼질 줄 모르고 타올랐다.

역시 예상대로 나는 들러리일 뿐 본디 목적은 엄마의 욕구 충족이 맞았다.

어제 아빠에게 내 속옷이며 잠옷이며 추리링 한 벌 사야 한다 했을 때 짐작했는데.

세 아들도 벌겠다. 아빠 퇴임도 멀지 않았으니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아빠는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건넸고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명호는 없는 모양이다.”


2층 영 캐주얼과 잡화가 함께하는 공간.

한창 매장에서 구두를 팔고 있어야 할 가짜 녀석은 자리에 없고 캐셔와 선임근무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말이라 한창 바쁜 시기지만 오늘 입고하는 물품이 많아 막내, 시다바리는 아마 창고로 직행했을 것이다.

최고조로 바쁜 오후에는 매장을 지키겠지만 나중에 편하려면 지금 창고 정리하는 게 맞았다.


“창고 정리하러 간 모양이네요.”

“그럼, 여긴 볼일 없고. 바로 속옷 먼저 보러 가자.”

“가시죠.”


질질질. 질질질.

넓지도 않은 여성관을 얼마나 개처럼 끌려다녔는지 모른다.

사지도 않을 거 예쁘다며 몸에 대보고, 예쁘지도 않은 거 가격이 마음에 든다며 입어 보고, 한 번쯤 갖고 싶었다고 둘러 보고.

엄마의 아이 쇼핑은 끝 날 줄 몰랐다.

더 어이없는 건 속옷 매장은 아직 발도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영혼 없는 말로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지쳐 지린내 나는 속옷이라도 안 빨고 계속 입고 싶어졌다.

그러다 번뜩.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떠올렸다.


“엄마, 나 잠깐 갔다 올 데가 있어.”

“이제 시작인데 어디를 가려고?”

“금방 와. 한 바퀴만 더 돌고 있어.”

“빨리 와야 한다. 아무리 나라도 여로워서 혼자 기웃거리지는 못하니까.”

“네. 다녀올게요.”


나는 엄마를 안심시키고 부리나케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가까운 무인민원발급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몸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적어도 이름이라도 알아야 했다.

이 몸으로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있어야 했다.

기계에 서서 지문을 갖다 댔다. 그리고 미리 챙겨온 동전을 넣으니 금세 신상목록이 인쇄돼 뱉어 졌다.


이름: 서은하. 부: 서삼식. 모: 박장화.


하, 이제야 이름을 알아내다니. 주소도 알아냈지만 찾아갈 엄두는 나질 않는다.

기회 되면 기웃거리 긴 해 보겠지만 생각한 방법이 틀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출력한 등본은 품속에 구겨 넣고 다음은 전당포로 향했다.

여자 옷 브랜드는 잘 모르나 이 몸이 걸친 옷은 하나 같이 비싸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구두 판매원인 나는 알 수 있다.

이 몸이 신은 구두는 내 한 달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비싼 브랜드란 사실을.

그냥 명품에 환장한 여자 일지도 모르나 갖은 게 시계와 반지가 전부니 이거라도 팔아 식충이는 면해야 했다.

부모님이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 줬으니 이 몸의 주인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다.

남의 것이지만 지금은 내 몸.

덕분에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우선 반지 먼저.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는 반지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값나가는 물건이 아닌지 귀를 후볐다.


“얼마나 주실 수 있나요?”

“처분할 거요?”

“우선 듣고 나서요.”

“브랜드는 좋긴 한데, 우린 금값만 쳐줘. 10만.”


아이씨, 이 돈으로는 속옷 한 벌 겨우 장만할 돈밖에 되질 않는데. 그래서 간절히 빌며 다음 물품을 내밀었다.


“이 시계는 값이 좀 나갈 겁니다.”

“오, 좀 사시는 처자가 뭐 때문에 이걸 처분할까?”


나는 화색을 띠며 반겼다. 저 말인즉슨 예상대로 값나가는 물건이 틀림없다는 뜻.

100만 원만 쳐줘도 아니 그 반만 쳐줘도 오늘 엄마의 등골을 빼먹지 않고 옷을 장만할 수 있을지 몰랐다.


“사정이 있습니다. 얼마 주실 수 있나요.”

“딱 보니 보증서도 없어 보이고, 생활 기스도 많고, 이게 본인 것이란 보장도 없고.”


가격을 후려치려는 수작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계는 이 몸이 지닌 유일한 값나가는 장신구였고 값어치를 산정할 만한 안목은 내 겐 없었다.


“매입은 안 되고 대출은 해 줄 수 있어.”

“대출요?”

“당장 이걸 살 현찰도 충분치 않거든. 500은 무난할 거 같은데.”


오오오백. 담보 대출이 오백.

그렇다면 정상가는 얼마를 주고 샀다는 말인가?

이 여자 정체가 다시 궁금해졌다. 분명 사는 주소는 평범한 곳이었는데.

아버지 서삼식이란 양반이 엄청난 재력가가 아닐까?

나는 다시 내 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출로 하죠.”


백만 원 안짝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감당할 수준의 액수가 아니었다.

혹시 우리가 서로의 몸을 찾아 시계의 행방을 물으면 미안하다며 위치를 알려 줘야 했다. 그러니 이자를 감당하더라도 팔아 치울 수는 없었다.

전당포 아저씨는 이자와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준 후 바로 현금을 건네주었다.

돈을 마주하자 이제야 현실이 와 닿았다.

내 것도 아닌 물건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지. 갑자기 손이 달달 떨리고 입이 말랐다.

전당포 아저씨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흘겼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다.


“정말 아가씨꺼 맞지?”

“맞다니까요.”


계약서에 정자로 그녀의 이름을 새기고 준비한 검은 비닐봉지에 돈다발을 쑤셔 넣었다.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공돈을 마주하자 미소는 만개하고 엄마에게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는 쇼핑 욕이 한풀 꺾이셨는지 구석 고객 쉼터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3층을 두바퀴나 돌았는데 손에 들여 있는 건 작은 쇼핑백 하나.

그 모습에 뒤늦은 효심이 샘솟으며 이자 걱정은 눈 녹 듯 사라져 버렸다.

공돈도 생겼겠다. 일부는 엄마를 위해 쓰고 싶었다.

나는 검음 봉지를 손가락에 끼워 돌리며 엄마를 향해 기쁜 마음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미끌.

삼선 슬리퍼에 A라인 스커트는 마음만 앞선 나를 감당하지 못했고 슬리퍼가 발목까지 올라오며 엉덩이는 바닥을 향해 직행했다.

몸이 붕 떠 오르더니 손가락에 끼워진 봉투는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때마침 매장에는 내 추태에 어울리는 BGM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별빛이 내린다. 샤랴랄라라랄라 샤랴랄라라랄라.’


검은 봉지는 저만치 날아갔고 흩뿌려진 돈다발은 하늘 가득 수 놓는다.

밀집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흩날리는 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엄마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렇게 여기서도 꽃순이가 되고 말았다.


작가의말

이 소설은 여자 , 남자 시점이 번갈아 진행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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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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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그의 이야기. 23.05.14 31 0 12쪽
12 11화. 그녀의 이야기. +2 23.05.13 40 1 14쪽
11 10화. 그의 이야기. 23.05.13 39 1 12쪽
10 9화. 그녀의 이야기. 23.05.12 41 1 13쪽
9 8화. 그의 이야기. 23.05.12 40 1 12쪽
8 7화. 그녀의 이야기. 23.05.11 51 1 12쪽
7 6화. 그의 이야기. 23.05.11 58 1 12쪽
» 5화. 그녀의 이야기. +2 23.05.10 71 1 12쪽
5 4화. 그의 이야기. 23.05.10 81 2 12쪽
4 3화. 그녀의 이야기. 23.05.10 121 3 14쪽
3 2화. 그의 이야기. 23.05.10 162 4 12쪽
2 1화. 그녀의 이야기. +8 23.05.10 267 6 16쪽
1 우린 몸이 바뀐게 아니었다. +2 23.05.10 350 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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