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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달달

평범한 서점이라고 하기엔 서점직원들이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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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해달달
작품등록일 :
2020.05.11 15:16
최근연재일 :
2020.06.02 21:2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262
추천수 :
285
글자수 :
177,761

작성
20.05.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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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5쪽

신세계(2)

DUMMY

“인간이 몇인데, 세계가 하나만 있을 리가 있나. 이너가 된다는 것은 제작자가 된다는 것과 같아. 네가 살던 이 ‘지구(Earth)’는 내가 처음 제작한 세계야. 인정하기 좀 그렇지만, 어설펐지. 그 후로 십여 개의 세계를 더 제작했다. 그 중 네가 알아야 할 건 No.5 건곤(乾坤), No.10 루나(Luna). 건곤은 두 번째 종말에서, 루나는 세 번째 종말을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했지.”


젊은 남자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러면 내가 갈 곳이 거긴가? 그곳에서 악의체와 싸우면 되는 건가?”

“아니 네가 갈 곳은 No.15 내가 다시 지구라 이름 붙인 곳. 다른 넘버링들은 악의체를 상대하기 위한 곳이 아니니 네가 알 것 없어. No.15는 지금 까지 만든 세계 중 가장 기반이 잘 닦인 곳이다. 그렇게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너의 역할이 컸지. 너의 지구가 네 번의 종말을 막아냈으니까. 그래서 그 점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너로 인해 나도 많은 걸 지킬 수 있었으니까.”


젊은 남자는 지금까지 비아냥거리는 모습과는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감사를 전했다.


“너도,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거지······.”


젊은 남자의 의외의 모습을 본 중년남자였다.


“아마도.”


젊은 남자는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해서 너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중년 남자가 젊은 남자를 용서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알아.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앗아간 것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어. 처음의 그 한방으로 네 원한이 다 지워질 것이라고도 생각 안 해. 나중에 네가 자격이 되어 그 책임을 묻고 싶으면 그렇게 해. 물론 나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거지만. 하지만 이건 알아둬. 나나 되니까 진지하게 너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거다. 효율 따지는 이너들은 지금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 비웃을 걸? 쓸데없는 짓 한다고.”

“그때를 기다리지. 그런데 이너가 제작자라면 아우터는 뭐지?”

“아우터는 외근직(外勤職).”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역시 궁금한 게 많은 법이지. 크크크.”


젊은 남자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이죽거렸다.


“그곳에서 내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나?”

“뭐 바라는 게 있긴 한데.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잖아?”

“당연한 소릴.”

“뭐, 그 동안 너는 이미 충분히 네 역할을 했어. 나도 너에게 더 부탁하긴 눈치가 보이지. 그곳에선 알아서 해. 함께 지키던가, 모른 체 하던가.”

“그곳에도 악의체가 온다는 말인가?”


중년 남자는 화를 풀어낼 곳이 필요했다.


“물론, 이미 한차례 왔고 막아냈지. 원래대로라면 한 차례 더 막아내고 있어야 하는데······. 예상하지 않게 오래 버틴 곳이 있어서, 계획을 수정했지. 게다가 이번 종언의 존재는 귀찮은 정신계 능력이 있기도 하고. 사람 많은 No.15가 상대하긴 곤란했을 거야.”

“그 예상치 못하게 오래 버틴 곳이 이곳인가?”

“그래, 그래서 나는 이곳으로 악의체를 인도했고, 네가 혼자서 막아냈지. 저기 있는 저 종언의 존재. 꽤 강한 놈이었지.”


젊은 남자는 턱으로 대제급 악의체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자격을 갖추라는 거야. 뭐, 우리 둘 사이가 좋았다면 내가 이것저것 친절하게 ‘퀘스트’를 주면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을 텐데. 알다시피 이미 첫 만남부터 우린 어긋났잖아. 어때? 나는 상관없는데, 이제부터라도 내 성의를 받고 우리의 관계를 재설정할 생각 있나? 크큭.”

“개소리 그만해. 그렇다면 만약 너를 원망하고 있는 내가, 네가 공들이고 있는 그 곳을 지워버린다면?”


새로운 지구는 젊은 남자에게 중요한 곳임이 분명했다.


“이번처럼 또 너 혼자 악의체와 싸워야겠지. 덤으로 나의 분노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고. 그러니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이게 망하면 쉽게 새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게임인줄 아나? 그리고 착각하지 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어. 내가 이곳을 싫어해서 방관한 게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나의 첫 세계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노력했다. 그냥 처음엔 누구나 서툰 법이야.”


젊은 남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하지.”

“어쨌든 너는 혼자서 지구를 지켰잖아. 이번 일로 너는 우리 사이에서 더 유명해졌어. 널 원하는 애들이 많을 걸? 나중에 접촉하는 놈들도 있을 거야.”

“이렇게 망가진 지구를 보고도 지켰다고 할 수 있을까······. 날 원한다는 게 다른 ‘이너’ 들인가? 그런데 이너들은 왜 세계를 제작하지?”


중년남자는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자격은 아직 없고, 그냥 악의체를 상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만 알아둬.”


젊은 남자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너, 아우터라고 부르는 너희 같은 초월자들이 상대하면 되지 않나?”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다는 말 몰라? 우리라고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바쁘신 분들이시군. 새 지구에서도 너를 볼 수 있나?”


중년 남자는 비꼬듯이 말했다.


“글쎄? 자, 이제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


젊은 남자는 세계의 비밀에 대해서는 이제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질문을 차단했다.


“알겠다. 그런데 다른 세계엔 어떻게 가지?”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지만 젊은 남자에게서 더 중요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것을 질문했다.


“노커잖아? 두드려. 그리고 문을 열어. 손잡이는 여기”


젊은 남자는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접속 코드를 심상으로 전해주며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반예준은 어떤 원리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No.1 지구, No.5 건곤, No.10 루나, No.15 지구. 남은 한 군데는 어디지?”


접속코드는 다섯 개.


“거긴 도서관. 나락이라고 이름 붙인.”

“도서관은 뭐지?”

“후회로 점철된 미망들이 모여 있는 곳. 쉽게 말하면 네가 쓴 소설의 ‘탑’ 과 같아. 사람들이 강해지는 곳.”


씁쓸한 표정의 젊은 남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현재 No.15는 지금 한창 건곤과 루나를 공략중이야. 인간의 활동 임계치가 넘으면 군주급 이상이 활동해서 쉽지 않겠지만, 아직까진 성공적으로 공략중이지. '도서관'이 그들의 성장을 돕는다.”

“내 소설? 갑자기 무슨 말이지?”


흘러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이 강해지는 ‘탑’이라는 설정은 반예준에게는 아주 익숙한 설정이었다.


“No.15는 중요해. 허브역할을 하지. 건곤과 루나와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 이제 No.1과도 이어지겠지. 그곳의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악의체를 잡아서 에너지결정을 얻고, 멸망한 세계의 흔적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No.15가 잘 성장하면 멸망한 세계에서 악의체를 전부 몰아낼 수도 있겠지. 누가 도와준다는 전제하에서. 크크크,”


젊은 남자는 중년 남자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고 자신이 은근히 바라는 것을 이야기 하며 히죽 웃었다.


“그 세계가 뭘 하든 난 관심 없어. 그것 말고, 갑자기 내 소설은 무슨 말이냐니까?”

“······음. 네가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네. 사실 너는 No.15 지구의 공동저작자다.”


젊은 남자는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공동저작자? 그게 무슨 말이지?”

“새로운 지구는 네가 만든 이야기에 내가 살을 붙여 만든 세계야. 네가 싸우느라 바빠 보여서 따로 허락받진 못했지만, 저작권료는 챙겨줄 테니 표절이라고는 하지 말아줘.”

“설마?”


중년 남자는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지구는 내 첫 작품이야. 그래서 어설펐지. 악의체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안내가 없었고, 너무 불친절한 설정 때문에 사람들은 강해지기 전에 죽었지. 또한 강함의 척도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사람들은 성장하기 너무 힘들어했어. 게다가 나는 ‘설계’하는 방법도 모르는 초짜였지. 그래서 다른 세계들에 비하면 이곳 사람들은 초반 희생이 많이 컸어. 그러던 와중에 이 지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강해진 전직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을 알게 됐어. 그리고 그 남자에게 취미가 있다는 것도.”

“너는 다른 사람을 훔쳐보는 악취미가 있군.”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중년남자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알아서 생각해, 어쨌든 그 남자의 취미가 글쓰기더라고.”

“뭐, 평화로웠을 때 그런 설정의 글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었지. 곧잘 쓰기도 했었고. 각성하고 적을 무찌르고 아이템을 얻고 그런 글들.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좋아했거든. 그러다 이 지구가 책에서만 보던 그런 세계가 됐을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어. 책에서처럼 좀 더 구체적이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중년 남자는 세 번째 종언의 존재를 상대하기 전까지 꾸준히 글을 썼었다.

그것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아픔들을 버티기 위한 방법이었다.

본인이 지키지 못하던 것들을 후회하며, 이 종언의 끝에 해피엔딩이 오길 바라며.


“그래, 나는 네가 만든 설정들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성했어. 특정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을 우리는 ‘설계’ 라고 하지. 설계를 통해 우리는 안정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어쨌든 그래서 그 세계에는 네가 쓴 등장인물들도 실제로 존재한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흘러서 죽은 사람들이 많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주인공이었다.


“내가 주인공이었지. 네 글과 다른 건 '도서관'을 정복한 회귀한 사람이라는 설정? 그래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으니까. 물론 모든 변수를 조정할 수 없으니까 달라진 부분도 많아.”

“그렇겠지. 그런데 굳이, 그렇게 힘들게 이야기를 따를 필요가 있나? 그냥 당신의 힘으로 이고깽 하면 되는 거잖아.”

“그건 해봤자 의미 없어. 절름발이가 범인인 걸 알고, 대머리가 유령인걸 알면 사람들이 영화의 마지막에 얻을 희열과 감탄이 있을까? 이것도 비슷해. 치트키가 있는 제작자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중요한 인과에 관여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버린다면 그 과정과 결과에 의미가 있을까? 세계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 적다는 말이야. 효율이 너무 떨어지지. 그래서 제작자는 자신이 제작한 세계를 살지 않아. 다만 어쩔 수 없이 설계된 세계를 살아갈 때는 본인이 제작자임을 모르고 온전히 그 세계의 사람으로 산다. 시스템적으로 기억과 능력을 완전히 봉인해버리지.”

“복잡하군.”


젊은 남자의 설명을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간단하게 말해 자신이 드래곤인지 모르는 드래곤의 유희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야 투자 대비 원하는 결과의 효율이 나오지. 그러다가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봉인은 깨진다. 그렇게 되면 제작자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세계를 떠나지. 한가득 쌓인 미뤄뒀던 일들을 할 생각에 욕을 하며. 첫 번째 종말을 막으면서 내가 설계한 이야기는 끝났어. 그래서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나는? 제작자는 아니지만 세상에 대해 많은 걸 알아버렸잖아?”


중년 남자는 의문이 들었다.


“괜찮아,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만한 인과다. 너에게는 그 정도 투자할만한 공적(功績)이 있어. 그리고 네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구할 건가?”

“당연히 아니지.”


No.15는 중년 남자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문제될게 없지. 실제로 뉴비 노커들은 불안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용병으로 많이 고용되기도 해.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종말을 막은 후의 세계는 설계된 내용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새로운 악의체를 인도할 것이고,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가 없어. 새 지구가 가장 준비가 잘된 곳이긴 하지만 그만큼 강한 악의체가 가게 될 테니.”


젊은 남자는 할 이야기를 다했다는 표정으로 중년 남자를 바라봤다.


“자, 이제 작별할 때가 되었군. 문 열어봐, 아마 반가운 얼굴이 마중 나올 거야.”

“반가운 얼굴?”

“네가 만든 등장인물.”

“······이렇게 하면 되나?”


허공에 노크하는 듯 한 중년 남자의 손짓에 특별한 에너지가 모여 작은 ‘특이점(特異點)’이 생성됐다.


“잘 하네. 전편은 원작이 좋아서 그런지 벌이가 꽤 좋았어. 그리고 이곳에서 너의 투쟁도 눈부셨고. 그래서 저작권료 및 감사의 표시로 작으나마 선물을 준비했으니 잘 받고, 새로운 인연들도 마다하지 말고.”

“닥치고, 꺼져.”

“오케이 굿바이~ 마지막으로 내 성의는 개소리 취급했으니 우리의 속편은 알아서 잘 쓰시길. 떡밥도 한 가득이니 잘 풀어보시고. 공동저작자여. 크크크.”


젊은 남자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졌다.

중년 남자는 세계가 멸망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는 젊은 남자의 저런 가벼운 모습이 싫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한들, 악의체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한들, 종말을 불러들인 자가 아닌가.


그리고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을 만큼 중년 남자는 어리숙하지 않다.

그렇게 순진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위야 어쨌든 그가 제시한 길은 충분히 가볼만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만한 젊은 남자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터.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중년 남자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접속 코드를 알기에 언제든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지만, 작별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다.

모든 후회는 이곳에 두고 떠나기 위해.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겼던 남자는 특이점에 다가가 그것을 찢어 벌렸다.

알 수 없는 길.

무언가 막아서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부딪쳐 뚫어 낼 것이다.

중년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만든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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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계 혹은 인연(1) 20.05.11 167 13 12쪽
» 신세계(2) 20.05.11 237 12 15쪽
2 신세계(1) +1 20.05.11 385 23 14쪽
1 프롤로그 +2 20.05.11 461 5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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