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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17 님의 서재입니다.

썩어 빠진 이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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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17
작품등록일 :
2019.04.01 10:31
최근연재일 :
2019.04.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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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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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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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3)

DUMMY

“진정하세요.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뒤로 들이밀어진 창 끝에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손을 들었다. 그 말의 뭐가 심기를 거슬렀는지, 작은 원숭이가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오해? 웃기지 마라. 지금까지 네놈 같은 학살자를 몇 명이나 봤다고 생각하는 거냐.”

학살자, 작은 원숭이는 그 단어가 무슨 대명사라도 되는 듯이 거리낌 없이 나를 학살자라고 불렀다. 공교롭게도, 짚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학살자 – 6/100]


“저는 학살자가 아닙니다. 전 탐험··· 윽!”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뒤에서 있던 큰 몸집의 원숭이가 창 끝을 내찔렀다.


다행히 경계하고 있어서인지, 창격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뒤이어 찔러오는 작은 원숭이의 공격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큭!”

날카로운 창날에 스쳐진 종아리의 살갗이 벗겨졌다.


“죽어라, 학살자 놈!”

다리의 상처에 정신이 팔려 엉거주춤 서있는 내게 작은 원숭이가 창을 내찔렀다. 창은 정확히 내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등을 뒤로 빼고, 힘차게 허리를 튼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 끝이 마치 스쳐 지나가는 총알처럼 가슴팍 앞을 통과했다.


“흡!”

동시에 눈앞에 내밀어진 창 끝에 몸을 던져 달려든다. 겨드랑이에 창을 끼워 넣고 힘차게 몸을 뒤로 뺀다.


일단은 작은 원숭이의 창을 뺏어 견제하고, 큰 놈을 상대한다.


싸움의 기술 같은 것은 알지 못했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여주는 몸과 함께라면 어려울 것도 없어 보였다.


“얕보기는!”

그러나 강한 힘으로 당긴 창은 바위에라도 걸린 듯 작은 원숭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젠장, 에토보다 조금 더 큰 주제에 무슨 악력이···.


“토아즈!”

작은 원숭이가 내 등 뒤에 대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큰 원숭이의 이름이다!


작은 원숭이가 외치자마자 황급히 꽉 잡고 있던 창대를 놓고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등 뒤에서 찔러오는 창을 완전히 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옷이 찢어지는 감각와 함께, 등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고통이 뇌리를 엄습했다.


“크윽!”

생각보다 원숭이들의 능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마치 손발을 사전에 맞춘 듯 서로를 착착 보안해주는 모습이 훈련된 병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학살자, 우리를 상대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 던전은 우리한텐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니까.”

작은 원숭이는 창 끝을 들이대며 말했다. 상처 부위가 빨간약이라도 쏟은 듯 죽을 만큼 아팠지만, 신음을 꾹 참고 나를 포위한 채 다가오는 원숭이들을 둘러본다.


등 뒤는 벽, 창 끝을 내민 채 침착하게 거리를 좁혀오는 두 원숭이를 보자, 승산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 정말 학살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뭔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나는 등이 닿은 벽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묵묵부답인 큰 원숭이와는 달리, 작은 원숭이가 입을 나불댔다.


“네놈이 받은 퀘스트가 바로 학살자 퀘스트잖냐. 던전 안의 모든 생물을 처치하는 것, 그렇지?”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작은 원숭이가 여유롭게 응대했다. 말을 섞을 여지가 있다면 아직은 괜찮다.


에토의 이름을 팔면 될 테니까. 이들의 생김새도 그렇고, 아까 훔쳐 들었던 대화에서도 그들과 에토의 인연은 짐작 할 수 있었다.


“저는 퀘스트를 하려고 여기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 등을 대고 두 손을 슬쩍 올렸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몸의 표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은 원숭이는 흥미가 없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창 끝을 가까이에 했다.


“저는 도우미··· 아니, 마법사 에토의 부탁으로 이 던전에 들어왔습니다.”

창은 여전히 내게로 겨눠진 채로, 언제든지 내 심장을 찌를 수 있다는 듯 흔들거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자기들이 쥐고 있는 무기들과 같은 여유를 갖지 못했다.


“에토 님에게서?”

큰 원숭이에게서 만나고서 처음으로 반응이 왔다. 내 말에 그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원숭이에게 명령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 속지 마라 토아즈. 이놈은 에토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작은 원숭이도 확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거라면 통한다. 에토의 이름, 마음껏 팔아보자.


후에 에토에게서 어떤 후폭풍이 올지는 두려웠지만,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내일을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정말입니다. 에토는 자신은 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다며, 제게 대신 들어가 달라며 부탁했습니다.”

창의 촉은 여전히 날카롭게 서있었지만, 그 끝은 더 이상 날 향하고 있지 않았다. 창이 바닥을 향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작은 원숭이가 내게 증명을 요구했다.


“정말이라면 에토의 모습을 설명해봐라.”


“에토는 당신의 반도 되지 않는 몸집에 누적 대기를 옷처럼 걸쳤습니다.”

내 설명에 원숭이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에서 기쁨과 경악이 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에토에 대한 이야기를 더 꺼낸다.


“그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죠. 손끝에서 푸른 실을 길게 뽑아내 벽을 만들곤 했습니다.”


“단, 단장.”

내 말이 끝나자마자 큰 원숭이가 작은 원숭이를 돌아봤다. 단장이라 불린 작은 원숭이가 눈가를 찌푸리고 나를 바라본다.


“··· 더 이야기할까요?”

나는 단장 원숭이에게 그리 말했다. 에토에 대해 더 이야기할 게 남아 있었나 하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돌연 그가 내게 겨눠진 창을 거뒀다.


“아니, 됐다. 넌 정말로 에토의 사신인가 보군.”

그 일련의 행동거지를 따라 큰 원숭이도 창을 거두며 자신의 어깨 옆에 붙였다.


살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미안하다. 지금까지는 바깥에서 온 외부인들은 모두 학살자였어서 말이지. 에토의 사신에게 오해를 하고 말았어.”

단장이 기다란 꼬리로 자신의 정수리를 꾹 짚었다. 그 행동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사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괜찮습니다. 당연히 경계 할 수 있는 거죠.”

나는 헤프게 웃으며 손사래쳤다. 내 모습을 보고 정수리를 꾹 누르고 있던 꼬리가 다시 원상 복귀됐다.


“에토의 사신, 좋다. 일을 해결하러 왔다 이거지. 이제서야··· 아니,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인 건가.”

단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렸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지만, 에토의 이름을 빌린 이상 내가 해결할 일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단장. 우선은 상처의 치료를.”

토아즈가 중얼거리는 단장을 깨웠다. 그러자 단장은 그제서야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배낭을 뒤져 허접하게 만들어진 붕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아! 미안하군. 이거로라도 처치를··· 응?”

내 상처 부위를 찾 듯 몸을 바라본 단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드셨나?


“너, 상처가 벌써 다 나았네.”


“네?”

단장의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말에 내 몸을 스스로 살펴보자, 그가 말한 대로 어느 한 곳도 상처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허벅지의 스친 상처는 작은 상처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등에서도 더 이상 출혈 특유의 쓰라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뒤로 뻗어 만진 등은 매끈하기 그지없다. 신기한 현상에 내가 눈을 크게 뜨자, 단장이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회복 스킬 한두 개는 있나 보군.”

그 말에 얼마 전 레벨업 후에 생긴 재생이 떠올랐다. 또 나도 모르는 새에 스킬이 발동한 건가? 확실히 그 고통은 예사롭지 않긴 했었지만, 그게 스킬의 효능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다 나았다면 괜찮겠지. 바로 그곳으로 가자.”


그곳?


단장의 말에 바로 되묻고 싶었으나, 또다시 의심을 받을까 봐 함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다행히도, 단장의 이어진 말에서 정답이 나왔다.


“여왕님과 우리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고 보니 배고프다고 했었지. 자, 이거라도 먹으면서 움직여. 미안하지만 서둘러줘.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으니까.”

단장의 말에 큰 원숭이, 토아즈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시간에 쫓기고 있다, 여왕과 기사단··· 나는 단장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가 던져준 말린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단장은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서두름이 초조함에서 비롯된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어서 가자. 초소는 그리 멀지 않지만, 너에게 모든 걸 설명하기에 밤은 짧다.”

단장은 시험에서 백 점을 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흥분기가 가득 찬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에 선 단장과 뒤에서 주변을 경계하는 토아즈,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나. 마치 귀빈처럼 나를 호위하는 모습,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세 변화에 웃음이 나올 법도 했다.


앞서가는 단장은 제 나름대로 빠른 발걸음으로 길을 찾고 있었지만, 체구의 차이 때문에 나로서는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그 인도를 아무 말 없이 쫓아가기엔 지루했다.


“미안합니다. 강압적인 단장이라.”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토아즈가 묵직한 침묵을 깨트렸다.


“토아즈 씨죠? 아까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끼기긱. 그런 말씀 하지 말아주세요. 에토 님의 사신에게 그런 폐를 끼쳤다는 사실은 정말로 괴롭습니다.”

토아즈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호들갑을 피웠다. 그 사람 같은 몸짓에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에토나 단장보다는 친근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단장은 에토와 무슨 관계입니까? 얼핏 보니 꽤 친근하게 부르시던데.”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궁금한 질문이 망설임 없이 튀어나왔다. 내 물음에 토아즈가 끽끽거리며 웃었다.


“에토 님이 단장님에 대한 건 말하지 않으셨나 보군요. 하긴 그럴 만도 하죠. 에토 님과 단장님은 피로 엮인 원수 지간이니까요.”

토아즈가 웃으며 한 말에 나는 새삼스레 앞서가는 단장 쪽을 바라봤다. 에토와 친형제? 작은 몸집이나 특유의 웃음소리 등등 비슷한 면은 많았지만, 정말로 형제일 줄이야.


“그러는 이류 님은 에토 님과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단장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토아즈가 기습처럼 질문을 날린다.


“에토가 제게 여러 부탁을 한 걸 계기로 끈끈한 인연이 이어졌죠. 몬스터 퇴치를 부탁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요.”

끈끈한 인연, 몬스터 퇴치. 에토가 들으면 거품 물고 쓰러질 듯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따지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오! 몬스터 퇴치. 이류 님의 그 신체 능력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지요.”


“그럴 리가요.”

나는 토아즈의 칭찬에 어설프게 웃었다. 힘이나 속도는 원숭이에 비해 조금 나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난 싸우는 기술이나, 하다못해 이미 주어진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다.


“스킬을 많이 사용치 않으신 게 흠이긴 하지만, 그건 앞으로 적들과 싸우다 보면 점차 해결될 일이니까요.”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내게, 무슨 기대를 하는 건지. 토아즈가 활짝 웃었다. 내가 그에게 뭐라 말하려는 순간, 앞서가던 단장이 돌연 듯 멈춰 섰다.


“도착이다.”

그 말에 통로 너머를 보자, 큰 공동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모여 있는 광경이 시야에 담겼다.


“여왕 폐하! 에토 부단장의 사신을 데려왔습니다!”

단장의 큰 외침이 공동에 울렸다. 공동의 어수선함이 한 단어에 반응하여 얼어붙었다.


“에토?”


“에토 님이라고?”

그리고 웅성거리는 원숭이들 사이로 특이한 원숭이가 몸을 드러냈다.


그 원숭이는 에토처럼 누적 대기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놓인 기괴한 모양의 왕관이 공동의 어두운 빛을 반사했다.


“돌아왔구나. 에투.”

여왕의 목소리가 공동을 조용히 메웠다.


작가의말

월요일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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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튜토리얼s +1 19.04.08 142 3 10쪽
5 경고 +1 19.04.06 141 4 13쪽
4 임시 기지 19.04.05 177 2 13쪽
3 도우미 에토 19.04.03 206 4 14쪽
2 몬스터 +2 19.04.02 222 6 13쪽
1 포탈의 너머 19.04.01 31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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