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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공무원의 악인 고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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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9호
작품등록일 :
2024.01.22 15:34
최근연재일 :
2024.02.28 17:0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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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2
추천수 :
408
글자수 :
114,671

작성
24.02.01 17:00
조회
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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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2쪽

[3화] 7천만 명을 죽인 독재자를 벌하다. (2)

DUMMY

염라대왕은 박석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나서 곁에 있는 이선아를 불렀다.


“이선아 주무관!”

“네. 염라대왕님.”

“저 전도유망한 신입 관리를 인재개발원 교육지원과 자료실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다른 지옥의 관리들이 TV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마오쩌둥의 비명을 들으며 기뻐 날뛰는 와중에도 이선아 주무관의 표정과 말씨는 변함없이 무미건조했다.


“박석길씨. 가시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박석길은 앞서가는 이선아의 뒤를 따라갔다.


5분 넘게 걷는 동안 이선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박석길이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이선아 주무관님. 불편하지 않으시면 사적인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대답 여부는 질문을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저하고 비슷한 시대에 사셨던 분 같은데, 저승에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 궁금해서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승 시간 기준으로는 동북아시아 저승청에 취직 당한 지 딱 여섯 달째 되는 날이네요. 저승 시간 기준으로 180년째고요.”

“네?”

“저승의 시간은 이승보다 365배 빠르게 흐릅니다.”

“모든 부서에서 시간의 흐르는 시간이 같나요?”

“아주 오래전에는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의 각 계층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달랐다더군요. 저승 기준으로 만 년 전쯤 시왕님들께서 모든 부서의 시간을 통일하셨다고 합니다.”


박석길은 뜻밖의 정보를 얻자마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럼 저승의 일 년은 이승의 하루구나! 삼 년 안에만 염라대왕을 설득하면 내 몸뚱이가 화장터 소각장에 들어가기 전에 부활할 수 있어!’


이선아가 그런 그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군요.”

“당연하지요. 부모님이 꼴사나운 자세로 죽어있는 절 발견한다고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박석길은 투정을 부린 자신에게 훈계나 질책이 돌아올 거로 예상했지만, 이선아가 보인 반응은 씁쓸한 긍정이었다.


“이해합니다.”


대답을 마친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희미한 아련함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으나, 박석길은 초면에 남의 과거를 꼬치꼬치 캐물을 만큼 무례하지 않았다.


‘전생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백 년 가까이 지나도 이승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을까? 겁나 궁금하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석길 씨. 여기가 동북아시아 저승청 인재개발원 교육지원과의 자료실입니다.”

“하······ 여기 국립중앙도서관보다 백배는 커 보이네요. 어느 세월에 필요한 자료를 찾나.”

“공교롭게 자료실 직원들이 전부 바쁘군요. 평소 자주 이용한 곳이라 여기 지리에 익숙합니다. 원하는 자료를 말씀해주시면 제가 대신 찾아드릴게요.”

“제일 얇은 마오쩌둥 전기하고 어록 모음집을 부탁드립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자기 근무 부서가 아님에도 이선아는 10분도 걸리지 않아 박석길이 부탁한 자료를 찾아서 가져다주었다.


‘대단하네. 이 사람, 어쩌면 전생에 도서관 사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책장을 넘기며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듯 재미없는 자료를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박석길.


‘자존심이 강한 인간일수록 자기 인생이나 노력이 부정당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법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면 독재자 주변엔 늘 구린내 나는 진실을 숨기는 아첨꾼들이 많지. 마오쩌둥은 자기 때문에 자국민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죽었을 확률이 높아.’


역사에 등장한 다른 독재자들처럼 마오쩌둥은 자기가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은 채 숨을 거뒀을 터.


박석길은 자부심 강한 역사적 죄인을 팩트로 폭행하여 그의 가슴속에 후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이선아 주무관님. 자료 조사 끝났습니다. 절 다시 염라대왕님께 데려다주세요.”

“알겠습니다.”


똬리를 튼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긴 저승청 건물 복도를 지나 다시 벌판처럼 넓은 사무 공간으로 돌아오자, 염라대왕이 의아한 목소리로 박석길에게 물었다.


“아직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돌아왔구나. 그래. 일급 죄수 마오쩌둥에게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가할 방법을 발견했느냐?”

“그렇습니다. 염라대왕님.”

“꽤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군. 얼른 네 의견을 말해봐라.”

“다른 역사적인 인물들처럼 마오쩌둥은 어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어록을 인용하여 질책하면 그 거만한 자도 분명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겁니다.”


박석길이 자세한 설명을 마치자, 염라대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밑져야 본전인 기획이로다. 좋다. 내가 직접 마오쩌둥을 엄하게 꾸짖어보마. 누가 등활지옥 옥졸들에게 참새 원혼들이 잠깐만 일급 죄수 마오쩌둥을 적당히 쪼도록 지도하라고 전해라. 통증이 극심하면 대화를 나하고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거 아니냐.”


잠시 후, 염라대왕은 눈치 빠른 저승의 관리 중 한 명이 가져온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마오쩌둥이 무수한 참새 원혼들에게 고통받는 장면을 생방송 중인 TV 화면을 바라보면서 호통쳤다.


“일급 죄수 마오쩌둥은 나, 염라대왕의 말을 들으라! 너는 생전에 언제나 백성이 가장 중하다고 떠들어 왔으면서 어찌 그리도 많은 자국의 백성을 해쳤느냐?”

- 크억! 시끄럽다! 부르주아 잡귀야! 혁명엔 희생이 따른다! 끄아악!


역사적 죄인이 격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말대답을 했기에, 염라대왕이 다시 그를 꾸짖었다.


“무엄한지고! 네 무지가 널 쪼고 있는 참새 삼억 여 마리를 죽이는 바람에 발생한 대기근이 얼마나 많은 백성을 죽었는지 아느냐?! 무려 오천만 명이다!”

- 그, 그럴리가! 흐어억! 참새는 아악! 대기근이 발생한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으아악!

“누가 그러더냐? 네 주변에서 아첨을 늘어놓던 측근들이?!어리석은 놈! 아직도 저승의 시왕인 내가 아니라 아첨꾼들의 말을 믿는 거냐!”

- 아, 아니야! 끄아악! 아니라고!


“너는 생전에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인간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인민을 위해 죽는다면, 이는 태산보다도 무거운 죽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노라! 무지하고 잔혹했던 죄수여! 정녕 인민이 중한 줄 안다면 수천만 인민을 죽인 자의 죄가 태산보다 무거움을 알지어다!”

-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니야아아아아아!


마오쩌둥은 말로는 여전히 염라대왕의 질책을 부정했으나, 그의 마음속엔 자신의 무지함 때문에 반동분자가 아닌 수천만 국민이 죽어갔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연기에 스며들어 저승의 관리들을 다시 한번 기쁘게 하였다.


“염라대왕님! 보십시오! 일급 죄수 마오쩌둥이 뱉어내는 비탄의 정수 색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으하하하하! 저 빌어먹을 놈이 후회하고 있구나! 아비지옥에서 수천 년 동안 고문받으면서도 후회를 몰랐던 놈이! 왜 그동안 저자에게 전생의 악업을 상세히 알려줄 생각을 못했을꼬?”

“망자 재판이 서류심으로 바뀐 데다 시왕님들께서 워낙 공사다망하시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저우펑쑤오 사무관의 말대로다. 우리 동북아시아 저승청은 나름대로 열심히 근대화를 추진해왔으나, 정작 근래 이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창의적인 사고는 받아들이지 못한 게야. 옥졸 후보자 박석길.”


염라대왕이 부르자, 박석길이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예. 염라대왕님.”

“팔열지옥의 최하층, 아비지옥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다른 지옥들은 죄수들에게는 숨돌릴 틈이 주어 지지만, 아비지옥에 떨어진 죄수들은 전생의 저지른 죄의 대가를 다 치를 때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고통받아야 합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렇기에 나는 구덩이에 숨어 처벌을 피한 마오쩌둥을 보고 노했던 거다. 저승의 인력난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니 네가 그자를 등활지옥의 불희처에 보내자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다시 그러한 꼴을 보게 됐을 테지. 정말 큰 일을 해주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다. 넌 죄수 고문 기획에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음을 보란 듯이 입증했어. 그러니 네 재능과 실적에 걸맞은 자리에 임명하겠노라. 박석길. 널 기획조정실 고문기획담당관 소속 사무관에 임명하겠다.”


일순, 저승 공무원들이 박석길에게 경의, 부러움, 질투 따위의 감정이 서린 시선을 보내며 수군거렸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친구라도 신입이 사무관?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큰 실적이잖아. 부러우면 너도 악명이 자자한 일급 죄수를 효과적으로 벌할 방법을 염라대왕님께 제안하던가.”

“쳇.”


이승에서 28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선망의 대상이 되본 적 없는 박석길이었기에, 주변의 반응이 싫지만은 않았다.


‘사무관이면 5급 공무원이잖아? 좀 끌리긴 하네.’


잠시 고위직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욕실에서 벌거벗은 채 죽어있는 외아들을 발견하고 오열하실 부모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도저히 염라대왕의 제안을 수락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염라대왕님. 제게 과분한 자리를 주신다고 해도 오늘과 같은 실적은 다시 내긴 어려울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어떤 유명한 뇌 과학자가 한가함은 창의력의 거름이라고 말했다는 글을 SNS에서 읽은적이 있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본론만 얘기하라.”

“현재 동북아시아 저승청에서 가장 높은 분이신 염라대왕님께서도 늘 격무에 시달리십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게 되면 제 보잘것없는 창의력은 한여름 땡볕에 내놓은 얼음 조각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릴 겁니다.”

“음, 그럴싸한 말이로군. 그래서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무냐?”

“저승의 고문기획 담당자로 일하되, 이승에 있는 제 몸으로 돌아가서 재택근무하게 해주십시오.”

“뭐, 뭐라고?! 네가 정녕 실성한 게로구나!”


조금 전의 우호적인 태도가 무색할 정도로 노성을 지르는 염라대왕.


수군대던 저승 공무원들도 입을 다무니 숨쉬기조차 힘든 무거운 적막이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박석길은 성난 범과 같은 표정의 염라대왕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예정대로 아비지옥의 옥졸이 되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죄수들이나 찌르면서 영겁의 세월을 보내겠습니다. 괜히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때까지 격무에 시달리느니, 말단이라도 딱 1인분 일만 하면서 사는 게 나을 테니까요.”


잠시 박석길을 바라보던 염라대왕은 옆에 서 있는 강림도령을 흘끗 보고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허허허허! 이토록 당돌한 놈은 감히 이승에서 날 납치하러 왔던 강림도령 이후론 처음이구나! 자신의 재능을 무기로 삼아 감히 나, 염라대왕을 협박하다니! 좋다! 만약 네가 두 가지 과제를 더 통과하면 그 청을 들어주지.”


갑작스런 염라대왕의 변화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빠르게 기회를 잡기로 마음먹은 박석길이 물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첫 번째는 충실하게 열흘간의 직장 내 직무 교육을 마치는 거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직무 교육이 끝나기 전에 우리 저승청의 골칫거리인 신종 악업, 보이스피싱을 처벌하기에 적합한 소지옥의 기획안을 제출하라. 네 기획안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널 이승에 돌려 보내줄 뿐만 아니라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상을 내리겠다.”


그 순간, 희망에 부풀었던 박석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보이스피셔 전용 지옥이라······. 이거 쉽지 않겠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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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퇴사를 위한 빌드업 (2) +2 24.02.14 594 13 13쪽
11 [11화] 퇴사를 위한 빌드업 (1) +3 24.02.13 669 12 11쪽
10 [10화] 자강두천의 레이스 (2) +2 24.02.11 695 16 12쪽
9 [9화] 자강두천의 레이스 (1) +5 24.02.09 712 16 11쪽
8 [8화] 지옥의 도망자 +5 24.02.08 765 20 12쪽
7 [7화] 역사적 악인의 재능을 얻다. +6 24.02.07 816 19 11쪽
6 [6화] 보이스피셔 맞춤형 처벌 (2) +3 24.02.06 871 21 11쪽
5 [5화] 보이스피셔 맞춤형 처벌 (1) +7 24.02.03 876 20 11쪽
4 [4화] 지옥 견학 +5 24.02.02 977 24 11쪽
» [3화] 7천만 명을 죽인 독재자를 벌하다. (2) +10 24.02.01 1,183 23 12쪽
2 [2화] 7천만 명을 죽인 독재자를 벌하다. (1) +6 24.01.31 1,317 31 12쪽
1 [1화] 갑작스러운 죽음 +3 24.01.30 1,499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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