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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건 쏘는 천재 마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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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9호
작품등록일 :
2023.12.03 16:02
최근연재일 :
2024.05.08 12:11
연재수 :
67 회
조회수 :
243,353
추천수 :
6,757
글자수 :
356,601

작성
24.01.25 20:39
조회
1,925
추천
88
글자
12쪽

[45화] 매드 엔지니어 (3)

DUMMY

“아아······.”


황금손 듀린은 허망한 눈빛으로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프리츠의 로켓을 바라보며 탄식을 자아냈다.


남들에게 산의 부족 제일의 병기 제조 기술자라는 호칭으로 불려온 지 어언 50년.


자기 분야에서 겪은 첫 패배는 그의 마음에 깊고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내, 내가 지다니······.”


절망한 드워프 기술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요망한 앵무새가 그의 발치에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치켜들면서 물었다.


- 빨간 수염 아저씨. 뭐가 잘 안돼?

“뭐라고!”

- 왜 멀뚱멀뚱 서 있어? 다음엔 아저씨가 한 발 더 쏠 차례잖아.

“이 요사스러운 것! 그 부리 다물지 못할까! 나더러 시합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좀생이가 되라는 거냐!”

- 여러분! 우리 주인님이 이겼어요! 여러분! 우리 주인님이 이겼어요!


구경꾼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면서 얄미운 목소리로 주인의 승리를 알리는 카를.


프리츠는 커다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듀린에게 다가가면서 말을 걸었다.


“황금손 듀린 님. 제법 인상적인 박격포를 만드셨군요. 앞으로도 계속 화포 연구에 매진하면 머지않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요.”

“크윽!”


자존심이 강한 패배자에겐 조롱과 농락보다 승자가 건넨 동정과 격려가 더 고통스러운 법.


듀린은 끈 떨어진 꼭두각시처럼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이내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엎드렸다.


‘어라? 열받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설마 드워프가 약속을 어기진 않겠지?’


금전 거래에서 실수로 동전 한 개를 빠트리거나 약속에 1분만 늦어도 사람 취급 못 받는 드워프 사회에서 악의적으로 계약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는 국법에 따라 교수형에 처한다.


프리츠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듀린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의무를 다하리라 여겼으나, 오만했던 드워프 기술자가 보인 반응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하버 경!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을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듀린이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면서 소리치자, 프리츠가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떴다.


“스승?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전 화약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푹 빠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 화약 제조 실력이 당신에 비하면 발톱의 때 수준이라는 걸 증명했지요! 그러니 당신과 동행하며 연금술 지식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대신 제 노동력과 기술을 제공하겠습니다!”


지식을 향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자존심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프리츠는 당장 듀린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었으나, 먼저 세르시아와 데이비슨에게 의견을 물었다.


“둘 다 어떻게 생각해? 난 이 사람 데리고 다니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성질이 고약한 드워프 동료라. 썩 내키진 않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반대하진 않겠다.”

“저도 찬성입니다. 무구를 손질할 줄 아는 동료 늘면 제 종자 업무도 한결 수월해지겠군요.”


모두가 갑작스러운 새 동료 영입에 찬성하자, 하늘을 날던 카를이 듀린의 어깨에 앉으면서 다시 조잘거렸다.


- 환영한다. 신입.

“이 녀석이 아까부터 정말!”

- 어어? 때릴 거야? 패밀리어는 주인하고 수시로 오감을 공유하는데? 날 때리면 스승님까지 아플지도 모르는데?

“크아악!”


거짓된 용사는 앙숙이 돼버린 패밀리어와 제자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카를은 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뺀질거릴까?”


세르시아와 데이비슨은 말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프리츠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프리츠가 황금손 듀린을 동료를 들이고 내심 기뻐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심판역을 맡은 드워프는 산양을 타고 로켓이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보나 마나 시합의 승부가 갈렸다고 해도 장로님들이 맡기신 의무를 소홀히 할 순 없지.’


심판은 반나절 동안 고생한 끝에 마침내 바위산의 능선에 추락한 로켓을 발견했다.


“조상신들이시여! 멀리도 날아왔구먼!”


그는 산양에서 내린 다음 배낭에서 측량 기구를 꺼내 로켓의 발사 지점과 추락 지점 사이의 거리를 잰 다음 카즈라시 장로회관에 돌아와 프리츠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하버 경. 축하드립니다. 경께서 발사하신 화약 무기는 오천삼백 미터를 날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시합은 하버 경의 승리입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날아갔군요. 로켓을 찾으러 다니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 의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프리츠는 로켓의 사거리가 그 정도일 것임을 예상했기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던 드워프 장로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오, 오천삼백 미터?!”

“그럼 가장 큰 투석기보다도 사거리가 훨씬 더 길다는 얘기잖습니까!”

“놀랍군. 정말 놀라워.”

장로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자, 프리츠의 곁을 지키고 있던 듀린이 갑자기 대장로에게 언성을 높였다.


“전통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늙은이들! 그래서 내가 진작부터 화약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누누이 얘기했잖아!”

“그럼 너도 진즉 로켓처럼 뛰어난 물건을 만들어서 우릴 설득하지 그랬느냐? 그랬으면 여기 있는 장로들은 모두 네 말에 귀를 기울였을 터인데.”

“큭······.”


대장로 쓰론은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무는 듀린을 보고 혀를 한번 찬 다음 프리츠에게 말했다.


“하버 경. 우리 드워프 부족 연맹 장로회는 그대가 발명한 로켓이라는 병기의 뛰어난 성능에 크게 감탄했소. 우리 장로들은 조상신들께서도 국방에 큰 도움이 되는 새 기술의 도입을 허락하실 거라는 본인의 의견에 동의했소.”

“감사합니다. 대장로님. 다만, 이번에 만든 로켓은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불완전한 병기입니다.”

“그렇소? 조금 전 경이 화장실에 가셨을 때 앵무새가 시합 전에 시험 삼아 발사한 로켓 다섯 발도 전부 성능이 비슷했다고 들었소만.”

“대장장이 아이언핸드의 실력이 뛰어난 데다 운이 좋았던 덕분입니다. 로켓은 제작 도중에 조금만 실수해도 불량품이 나오기 쉬운 병기거든요. 다른 대장장이가 로켓을 제작해도 또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순 없습니다.”


프리츠가 대답을 마치자, 드워프 장로들과 듀린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껄껄껄!”


그 뜻밖의 행동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세르시아였다.


“왜 갑자기 프리츠를 비웃는 거냐?!”

“오해하지 마시오. 숲의 자녀여. 우리 장로들은 저 듀린 놈처럼 은인에게 무례를 범할 마음은 없소.”

“그렇소이다. 그저 산의 백성과 인간의 사고방식 너무 다른게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이외다.”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산의 백성이 만든 상품 중에 불량품은 존재하지 않소. 그런 형편 없는 물건을 만들어서 팔다 적발된 파렴치한 놈은 즉시 곤장 백 대를 맞고 재산을 몰수당한다오.”

“그러한 형벌은 지난 오백 년 동안 한 번도 집행된 적 없소이다.”


세르시아와 데이비슨은 드워프의 완벽주의에 질려 입을 다물어버렸으나, 프리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불량품이 없는 로켓 무기라! 가성비가 어마어마하겠구나!’


로켓 캔디를 추진제로 쓴 수제 로켓 무기의 가장 큰 단점은 높은 불량률과 낮은 명중률.


그중 한 가지를 드워프의 광기에 가까운 장인정신으로 해결했으니 돈 밝히는 거짓된 용사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프리츠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 걸 보고 데이비슨이 말을 걸었다.


“하버 경.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로켓을 많이 만들어서 가져가면 어떻겠습니까? 왕국에선 싸고 신뢰도가 높은 로켓을 만들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설탕은 가격이 비싸니까 이번엔 대체재를 써야겠네.”


듀린이 프리츠의 말을 듣고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뜨면서 소리쳤다.


“설탕?! 스승님! 설마 고급 감미료 설탕 말씀입니까?! 그런게 로켓 연료였을 줄이야!”

“그래. 설탕과 곱게 빻은 불의 가루(질산칼륨)를 적절한 비율로 섞은 게 오늘 발사한 로켓의 추진제 로켓 캔디다.”

“비싼 설탕을 대신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벌꿀이겠군요!”

“음, 우드엘프들이 사는 숲을 제외하면 어느 동네에서나 꿀이 설탕보다 싸긴 하겠네. 아쉽지만, 틀렸어.”

“스승님. 궁금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습니다. 어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작나무나 떡갈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리톨이라는 감미료다. 산의 백성들은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네.”

“아마 자작나무 설탕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작나무 설탕은 카즈라의 시장에서 진짜 설탕 값의 백분의 일쯤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습니다.”

“그거 잘됐군. 자일리톨로 로켓 캔디를 만들 때는 설탕을 쓸 때 하곤 재료 배합 비율이 다르다. 자일리톨 로켓 캔디를 개발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스승님. 이 제자가 옆에서 돕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해보자.”


그리하여 프리츠는 비싼 설탕 대신 자일리톨을 연료로 사용하는 로켓 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호위 기사들한테는 드워프들하고 국교 재개 조약 세부 사항을 조율하느라 시간이 걸린다고 말해놔야겠네.’


듀린은 성격이 거친 만큼 호기심이 왕성하고 손이 빨랐기에 금방 프리츠의 화학 지식을 흡수하면서 자일리톨 로켓 캔디 개발 과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거짓된 용사는 드워프 기술자를 제자로 들인지 사흘 만에 생산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춘 로켓 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 피유우우웅!


“스승님! 성공했습니다!”

“네 공이 컸다. 듀린. 과연 황금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한 손재주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음번엔 로켓의 탄두에 폭발물이나 인화물을 넣어서 발사해 봐야겠군. 아, 야수형 몬스터를 상대할 땐 염소가스를 넣어서 발사하는 것도 효과적이겠어.”

“음, 로켓의 살상능력을 측정하려면 살아있는 실험대상이 필요하겠군요. 얼른 가축 시장에 가서 염소 몇 마리를······.”


듀린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이비슨이 우레같은 고함을 질렀다.


“아니 되오!”

“으악! 깜짝이야! 데이비슨! 왜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난리냐!”

“죄 없는 동물에게 함부로 고통을 주면 아니 되오!”

“너도 고기 잘만 먹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가 먹는 고기는 모두 인도적이고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 도축한 가축의 고기입니다! 하버 경께서 허락하시더라도 가엾은 염소가 폭사하게 내버려 두지 않겠소!”

“돌겠네! 이 소 대가리야! 그럼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네가 염소 대신 폭격당할 거야?!”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소이다. 하버 경. 부디 제게 영혼 결속 반지를 빌려주십시오.”


프리츠와 세르시아는 결이 다른 두 광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뒷골이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프리츠. 저놈들 둘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내 말이. 둘 다 그만해. 로켓의 살상능력은 나중에 오크들한테 실험해 볼 거야.”

“스승님. 카즈라 시 주변엔 오크가 없습니다.”

“드워프 부족 연맹 북부의 오크 부족 연합군이 머지않아 왕국을 침략할 거 같거든. 그때 오크 수만 마리한테 로켓을 퍼부으면 네 궁금증도 풀릴 거다.”

“수만 마리 오크한테 불벼락을······!”


화약의 낭만에 취한 드워프 기술자의 눈동자에 광채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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