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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량 님의 서재입니다.

수컷의 정석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눌량
작품등록일 :
2021.11.01 10:57
최근연재일 :
2021.12.15 07:00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14,311
추천수 :
341
글자수 :
452,115

작성
21.12.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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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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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아들

DUMMY

“마젤이랑 람쿤의 새끼는 엄청 날 거야. 마젤도 기대되지 않아?”

“제가 람쿤의 새끼를 낳는 게 부담스러우실텐데요.”

“내가 왜 부담스러워. 나는 수컷 새끼도 없는데.”


하긴 암컷만 낳은 파빈과 수컷만 낳은 데일라는 서로 입장이 다를 터.


“람쿤이 언제 세렝게티를 떠날지 모르겠지만 그 때 아시아스가 성체가 아닐까 봐 겁이 나. 막심은 내 새끼가 아니라 나랑 아시아스를 지켜줄 지도 모르겠고. 마젤이 새끼를 낳아. 우리 암컷끼리 도우면서 새끼를 키우자. 그리고 새끼를 다 키워서 성체가 되면 우리 다른 수컷을 만나든 우리끼리 살든지 하자.”


꽤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다. 마젤은 지금 이 순간도 람쿤의 새끼를 낳고 싶었다. 람쿤 사이에서 낳은 새끼는 꽤 특별할 것만 같았다.


“수컷 없이 혼자 출산하게 되면···. 너무 무섭잖아요. 그리고 만약 수컷을 낳게 되면 아버지 없이 크는 건데 아버지에게 배우게 되는 결투 훈련이라던가 달리기 훈련을 못 배우는 거잖아요.”

“마젤 당신이 결투 그 누구보다 잘 하잖아. 달리기라면 당신을 따라잡을 얼룩말이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마젤이 만약 수컷이었다면 어쩌면 세렝게티의 수컷 중의 수컷은 람쿤이 아니라 그녀였을지도 몰랐다.


“생각해볼게요.”

“마젤이 나와 함께 하면 아젤도 함께 하지 않겠어? 아젤은 언니 말이라면 꿈뻑 죽던데.”

“생각해볼게요.”

“그래.”


마젤이 몸을 돌려 가려 하자,


“마젤.”

“네?”

“우리는 함께야. 같은 수컷을 사랑하는 암컷이지만 꼭 적일 필요 없잖아.”

“맞아요.”


수컷만이 든든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젤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아시아스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파빈은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입으로는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막심의 마음은 온통 암컷 보비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다른 수컷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떻게 동생 얼굴을 이렇게 상처를 내냐고! 막심 니가 이럴 수 있어?”

“죄송해요.”


막심도 아시아스를 때린 것은 잘못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비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아시아스와 수두트는 징징 대며 같이 놀자고 떼를 썼다. 암컷에게 작업을 걸려고 하는 그 중요한 순간에 말이다.


“당신 말해봐요. 이렇게 차별을 해도 되는 건가? 막심이 지 동생 수두트는 때리지도 않으면서 아시아스는 앞발로 이렇게 때렸다구요. 게다가 암컷인 아시아스의 얼굴을!?”


파빈은 다가오는 람쿤을 향해 다짜고짜 퍼부었다.


“차별 아니에요!”


수두트를 때리지 않은 건 수두트는 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스는 보비 앞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듯 울어댔다.


“당신 말해보라구요. 당신이 이 세렝게티를 떠날 때 막심이 이 무리를 이끌게 되면 나랑 아시아스는 어떻게 되는 거죠?”


람쿤은 아시아스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았다. 발굽이 눈 가까이를 치고 갔는지 아시아스의 눈 옆을 찢어놓았다.


“죄송하다고요! 죄송해요! 죄송한데!”


막심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내 생활이 필요하다구요. 내가 지금 이 무리의 리더는 아니잖아요. 나는 지금 성체라서 암컷도 만나고 독립적인 생활도 맛보고 해야 한다고요!”

“무슨 말이니, 막심?”


듣고만 있던 데일리가 막심에게 물었다.


“독립을 하고 싶다고?”


어쩌면 모두 묻고 싶은 질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얼룩말들은 모두 막심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독립을 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인데 무리의 의사에 반하기에 이 것은 죄가 된다.


“독립을 하고 싶은 거야?”


파빈도 재차 물었다. 어쩌면 막심을 다그칠 게 아니라 달래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직 마젤은 암컷끼리 생활 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요.”


막심은 거짓을 말했다.


“아시아스! 뚝 그치지 못해!”


람쿤의 말에 아시아스는 눈물을 억지로 멈추었다. 그 바람에 새끼 얼룩말 아시아스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우는 걸로 의사소통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건 세렝게티에서 통하지 않아.”


아시아스는 아빠가 이러는 것이 서러웠지만 더 울지는 못하고 울음을 꾸역꾸역 참았다.


퍽, 막심이 람쿤에게 뒷발차기를 당했다.


“아부지.”


마음을 숨기면서까지 무리의 이익에 배반하지 않으려고 했건만 돌아오는 건 맞는 거라니. 막심은 아버지가 야속했다.


“니가 이 무리를 떠나 독립을 하든 여기에 남든 동생을 때리는 것은 안된다.”


아시아스는 서러운 마음이 없어지고 괜히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파빈도 람쿤이 미웠던 마음이 사라졌다.


“니가 어릴 때 우리 무리의 성체들이 너를 보호해서 큰 거다. 니가 스스로 큰 게 아니다.”


인간이었을 때 민수는, 그가 꼭 혼자 큰 것 같았다. 아니, 혼자 컸었다. 엄마라는 여자는 밥을 않았고 아빠는 술 먹기에 바빴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죽지 않고 산 거 보면 누군가 무언가를 먹인 거겠지? 그게 누구든 말이다.


“알고 있어요.”

“모든 새끼들은 귀찮은 존재야. 그렇지만 성체는 새끼가 성체가 되기 까지 키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갑자기 몽겔리가 떠올랐다. 어떻게든 그에게 젖을 먹이려고 애썼던 엄마.


“네.”


갑자기 수두트가 한 앞으로 나왔다.


“사실 막심 형은 잘못 없어요. 저랑 아시아스가 막심 형을 귀찮게 했어요. 하루 종일 쫓아다니고. 막심 형이랑 놀고 싶어서.”


데일라는 수두트가 괜히 람쿤에게 맞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시아스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세렝게티를 떠나면 막심 형이 파빈 이모네랑 마젤 이모, 그리고 아젤 이모를 버릴 수도 있다구요.”


람쿤을 비롯한 모든 성체들이 놀라고 만다. 어리디 어린 아시아스와 수두트가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저는 아시아스랑 같이 지내고 싶어요. 아빠도 하바 큰 아빠랑 친구처럼 지내셨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아시아스랑 친구예요. 친구가 멀어질 수 있다는데 저도 뭘 해야 하잖아요.”


무리의 성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심 형이 보비라는 암컷을 좋아해요. 그 암컷이랑 무리를 이루고 우리를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아빠가 세렝게티를 떠나면···. 우리 모두 성체 수컷이 없는 무리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성체가 되려면 한 번의 건기를 더 보내야 하구요.”


무리의 성체들은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끼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람쿤이 이 세렝게티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시기를 지나서 본격적인 발정기가 된다. 막심의 수컷 본능은 무리를 지켜야 한다는 죄책감 따위를 가뿐히 이기고 만다. 그는 새벽 일찍 무리와 함께 풀을 먹은 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시 정착한 보비에게 달려갔다.


아시아스와 수두트는 더 이상 막심을 따라오지 않았다. 파빈과 데일리가 말리기도 했지만 람쿤이 아시아스와 수두트를 불러내 하루가 멀다하고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스와 수두트는 아직 부모를 좋아할 나이기에 아빠와 있는 시간이 하염없이 좋았다. 아빠가 뛰라면 뛰었고 발차기를 하라면 찼다. 두 새끼가 암컷과 수컷이었기 때문에 동성끼리 보이는 그 특유의 경쟁심은 없어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것이 두 새끼에게는 더 나을지도 몰랐다.


보비도 막심을 마다하지 않는 듯 했다. 풀을 같이 먹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막심의 눈에 수디드는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그녀와 첫 교미를 했을 때 막심은 그 어떤 일보다 이 교미가 가장 황홀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녀의 등으로 올라 탈 때마다 정복감이 느껴졌다. 사자가 초식동물들을 정복할 때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막심과 보비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나 막심은 쉽게 그녀를 암컷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무리가 걸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발정기가 꼭 수컷만을 흥분시키는 것은 아니다. 파빈의 권유에도 새끼를 낳을 생각이 없던 마젤도 교미가 하고 싶었다. 교미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새끼를 낳고 싶다는 것과 동의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세렝게티의 호르몬은 새끼를 낳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흥분이 꼭 새끼가 없는 마젤에게만 해당 되는 것도 아니었다. 파빈과 데일라도 알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교미를 하고 싶어졌다. 그녀들의 몸은 교미에 대한 충동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병 때문인걸까? 모든 얼룩말들이, 누 떼가, 톰슨가젤이 흥분해서 교미를 미치도록 원하는 이때에 람쿤은 교미에 대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교미에 대한 충동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제 곧 세렝게티를 떠날 몸이기에.


그러나 암컷들이 달려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뱅뱅 도는 병 때문에 앞 날이 걱정인 람쿤은 적극적으로 교미를 원하는 마젤을 이길 수 없었다.

람쿤은 그녀와 적극적으로 교미를 했다. 밤낮이 없었다.

그것이 발정기니까.


파빈과 데일라도 아젤도 람쿤과의 마지막 교미라도 되듯 정열적으로 달려들었다. 네 암컷을 오고 가며 하는 교미는 더 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이 네 암컷을 사랑하니까. 물론 마젤에게 조금 더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람쿤은 이 네 암컷을 모두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교미의 순간들.

람쿤은 교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하고 하고 또 했다.

네 암컷들은 더욱더 그를 사랑했고 그도 그녀들을 사랑했다.

누가 임신할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람쿤은 교미를 할수록 새끼들을 이 세렝게티에 낳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람쿤과 네 암컷들이 교미에 미쳐있을 때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는 당연 막심이었다. 물론 그도 수컷이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발정기는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즌이니까. 게다가 새끼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은 세렝게티의 수컷이라면 모두 아는 마음이니까.


그러나, 그 모든 짐을 누가 진단 말인가?

결국 자신일 것만 같았다.

막심은 보비와 사랑으로 한 참 행복하면서도 무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한바탕의 발정기 시즌이 지나갔다.

그 사이 임신을 한 것은 마젤이었다. 람쿤과 마젤은 서로의 목을 핥으며 서로를 축하했다. 분명 둘 사이 나오는 새끼는 강인하고 강인한 새끼리라.

생이 늘 얼굴에 뒷발차기를 날리는 법이지만, 람쿤과 마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믿고 싶었다.


“람쿤.”“고마워.”


마젤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람쿤이 말했다.


“날 떠나지 않아서. 당신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얼마든지 또 다른 수컷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런 슬픔을 겪고도 날 떠나지 않아서.”

“내가 당신을 어떻게 떠나.”


갑자기 람쿤이 뱅뱅 제자리를 돌았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도 한데 람쿤도 마젤도 여전히 이 순간을 참아내기가 힘들다.


마젤은 그저 람쿤은 지켜보며 포식자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 사랑하는 수컷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막심은 멀리서 아버지의 뱅뱅 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슬프면서도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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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죽을 때 죽더라도 21.12.14 92 3 12쪽
86 아들 (2) 21.12.14 92 3 12쪽
» 아들 21.12.13 92 3 11쪽
84 세렝게티를 떠나면 21.12.13 108 2 12쪽
83 21.12.12 88 1 12쪽
82 텃새 21.12.12 87 3 12쪽
81 응고롱고로 21.12.11 92 1 12쪽
80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21.12.11 99 1 12쪽
79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 21.12.10 89 2 11쪽
78 슬픔 속에도 평안이 있고 평안 속에도 분열이 있는 법 21.12.10 96 2 12쪽
77 약점과 유혹 21.12.09 105 2 11쪽
76 새끼의 거래 21.12.09 98 2 11쪽
75 운명의 얄궂음 (2) 21.12.08 95 2 11쪽
74 운명의 얄궂음 21.12.08 101 2 11쪽
73 비극적 운명 21.12.07 108 1 11쪽
72 암컷과 발정기 그리고 새끼 21.12.07 150 3 11쪽
71 오래된 욕망 21.12.06 114 2 12쪽
70 죽음의 강, 마라 (2) 21.12.06 99 3 12쪽
69 죽음의 강, 마라 21.12.05 98 3 12쪽
68 강한 수컷이란 21.12.05 105 3 11쪽
67 두 암컷을 가진 다는 것 21.12.04 146 3 11쪽
66 약한 놈이 죽는 법 +1 21.12.04 117 2 11쪽
65 공포와 루머 21.12.03 128 2 11쪽
64 첫 교미 +1 21.12.03 263 2 12쪽
63 독립 21.12.02 100 1 11쪽
62 암컷 쟁취를 위한 결투 21.12.02 106 2 11쪽
61 살생의 맛 21.12.01 96 2 11쪽
60 죽이겠어 21.12.01 11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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