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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 님의 서재입니다.

이산진화기담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가늘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0
최근연재일 :
2021.07.01 18:4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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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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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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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마녀와 배신자 (1)

DUMMY

나는 현재 한겨울에 산속에서 쓰러져있었다.

졸리고 춥고, 배 고프고.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잠들면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사건의 발단은 바야흐로 8시간 전.

햇살은 쓸데없이 눈을 찔러오고, 새들이 의미없이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짜증 나는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앉은 식탁에 모르는 누나가 한 명 앉아있었다.

밥그릇을 받아드는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평소처럼 밥을 한 숟가락 떴다.

그 날 아침의 메인 반찬은 찹스테이크.


“산아. 양파랑 피망도 같이 먹어야지?”


싫어하는 피망과 양파을 골라내고 등심만 골라 먹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그 강렬한 통증이 아직 잠들어있던 뇌를 일깨웠다.

맑아진 의식이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낯선 인물을 향했다.

고등학생 쯤되어 보이는 나이에 새하얀 목을 드러내는 단발, 꽤 예쁘지만 얼빠져 보이는 얼굴.

장담하건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뭘까? 뭔데, 우리집에서 태연히 밥을 먹고 있지? 왜 내 고기를 뺏어먹지?’


입으로 탄수화물이 들어가서 그런지, 뇌가 점점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녀를,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수상한 여자는 몸 전체를 움찔, 하며 떨었다.


“콜록, 켁!”


밥알 때문에 사레라도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수상하고, 또 궁상맞다.

내친김에 물어도 봤다.


“누구세요?”

“컥, 우에엑!”


얼마나 기침을 해대는지 눈물 맺혀 빨개진 눈.

낯선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그 순간, 가족들의 움직임이 모두 멈췄다.


마치 나와 불청객을 제외하고 주위의 공간이 동결된 것처럼 보였다.

숟가락으로 국을 뜬 채로 입가에 가져가는 아버지와 나물로 젓가락을 뻗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아기용 숟가락과 포크를 들고 설치는 4살 난 동생.


마치 정지된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처럼 미동도 없는 기괴한 광경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큼, 크음.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누나잖니?”’

‘누나는 얼어 죽을. 언제부터?’


너무 어색해서 귀에 거슬리는 자애로움을 가장한 말투.

그것이 그녀의 첫 대사였다.

그렇게 자신을 내 누나라고 멋대로 소개하자, 가족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재개했다.


“꿀잠이었나 보구먼.”


아버지의 천하 태평한 소리가 들려왔다.

꿀잠을 잔 건 이와중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멀쩡히 밥을 먹으려고 하는 아빠 같은데....

그와 별개로 도중에 내 누나라는 작자와 눈을 마주쳤지만, 상대방은 슬금슬금 눈을 피했다.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흐응.”


이 정체불명의 인간에게 이해했다는 의미와 비웃음이 섞인 비음으로 적당히 반응을 주었다.

8시간 동안 잠들어있던 내 뱃속은 방금 먹은 밥 한 숟갈 때문에 난리가 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지고, 위는 에너지원을 더 내놓으라고 자신을 쥐어짰다.

그래서 일단 낯선 자에 대해 납득하고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기 귀찮아서 넘어간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절대.

밥 한 공기가 거의 다 비워질 무렵,



“누나, 이름이 뭐예요?”

“응? 나는 정새을이라고 해.”

“정? 나는 이씬데?”


다시 세상이 얼어붙었다.


“어어? 아아, 맞다. 자, 잘못 말했네. 맞아, 난 이새을이었지. 아하하하···.”


그 몇 문장에 세상이 다시 녹는다.

이 수상한 침입자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한 친근감.

마치 동네를 돌아다니는 멍청한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그 어리바리함에 호감이 생길 정도다.


“흐응.”


이번에 비웃음의 의미가 좀 더 강한 코웃음을 보냈다.

그러자 한층 더 행동이 수상해졌다.

전에는 잘만 집어가던 나물도 자꾸 놓치고, 손은 덜덜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콜록, 켁.”


얼씨구, 이번에 나물이 목에 걸렸나 보다.

그 야단법석에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새 누나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

엄마는 들어봤어도 새 누나라니....


“산아, 누나 좀 그만 놀려.”

”네에~”


엄마의 시선이 바로 불청객에게 향했다.


“그리고 새을이. 너는 오늘 뭐할 거니?”

“네? 아, 그 집에서 할 일이 있어서요.......”

“또 또 또! 얘도 참! 할 일은 무슨. 또 평소처럼 빈둥거리면서 놀려고? 언제까지 집에서 틀어박혀 있을 거니? 오늘부터 아빠 따라서 농사일도 좀 도와. 그리고 조만간 생활비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네? 아, 그, 저, 넵. 알았어요.... 어, 엄마.”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눈치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거로 봐선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흐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나도 엄마를 본받아 이 상황을 즐겨야겠다.

그러니 방관.

그것이 내 결정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아무래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눈을 끔벅이며 상황을 관망했고, 누나의 거동은 한층 더 어색해지고, 수상해졌다.


남은 밥을 먹는 내내 내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밥을 먹는 누나.

그 와중에도 나와 시선을 계속 부딪쳤다.

누나는 슬금슬금 눈길을 피하더니 결국 자기 밥그릇으로 시선을 내리깐다.


“산아, 딴짓하지 말고 빨리 밥 먹어. 학교 가야지.”


엄마의 호령에 얌전히 눈을 깔고, 밥이나 먹었다.

식사 후 그녀를 뒤로하고는, 샤워하고, 이를 닦고, 옷을 입고.

일련의 준비를 끝낸 나는 초등학교로 향했다.


“에휴.”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50분짜리 등굣길의 대단원이 막을 여는 순간.

문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어떡해? 이 집 꼬맹이한테 인식 왜곡 마법이 안 통해. 이거 어떡해!”


야옹ㅡ


새로 생긴 친누나가 안타깝게도 고양이와 대화하고 있었다.

집 주변 가까운 숲에서 놀던 실력을 발휘해서 살금살금 다가갔다.


“내가 침입한 걸 이 마을 영주가 알면···. 일단 임무 실패는 확정이고. 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아, 목이 타네...”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들려오자 갑작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도 그럴게, 나는 아직 10살. 미지에 관한 탐구심이 넘칠 나이였다.

그것도 마법이라니!

그 이야기를 듣고 흥분하지 않을 초등학생이 있을쏘냐.

누나가 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둘 다 방심하고 있을 때 고양이가 혼자만 정신줄을 잡고 있었나 보다.

사람의 투정을 들어주던 기묘한 고양이가 현관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야옹ㅡ


“뭐? 다 들켰다고? 갑자기 무슨 소....”




누나의 눈동자가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다가, 현관 모퉁이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물이 입에서 질질 흘러나왔다.


“켁! 너, 너어. 언제부터 거기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귀엽고 깜찍하게 말해보자.

어린 나이라는 건 꽤 훌륭한 방어수단이니까.


“저한테 뭔가가 안 통한다고 했을 때부터? 헷.”


봐.

내 발랄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경계심이 팍 사라진다.


“으아아!”


온몸을 배배 꼬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점점 망가져 가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고양이도 안타까운 것을 보는 눈으로 제 주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자라나는 꿈나무.

그런 분위기를 읽고, 배려할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아이를 소악마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딴 건 잘 모르겠고 일단 내 호기심부터 채워야지.


“흐음, 그렇구나아. 그럼 누나는 마법사?”


눈앞의 마법사는 어느 정도 자포자기를 한 듯이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꽤 초조해 보이던 그녀가 금세 정적을 깨고 역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넌 내가 무섭지도 않니?”

“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누나가 고개를 떨궜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약간의 희망 섞인 회의감이 묻어있었다.


“왜?”


최대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를 무서워해야 할만한 일을 하실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안 할 거긴 한 데.”

“왠지 그럴 거 같았어요.”


나쁜 짓을 할 만큼 머리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라는 건 비밀이다.

그녀의 눈이 갑자기 크게 떠진다.


“응? 왜 갑자기 그놈이 떠올랐지? 그러고 보니 저 개썅마이웨이가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나랑 비슷한 마이웨이....

나도 왠지 그놈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자기만의 생각에 잠겨있던 누나가 갑자기 깨어났다.


"아! 그럼 비밀로 해줘! 부탁해!"

“네!”


엄마도 눈치챘겠지만, 일단 나는 괜찮다. 재미있을 것 같고.


“어, 음, 그래. 되게 흔쾌하네. 너무 쉬워서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진다, 얘.”


고맙다고 인사를 한 누나가 머리가 아픈지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짚었다.

내가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학교 잘 갔다 오라는 듯이 반대편 손을 흔든다.


누나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대문을 나섰다.

발걸음이 하늘도 날 수 있을 것 같이 가벼웠다.

내 머릿속에는 갔다 와서 누나랑 재밌게 놀 생각만 가득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방과 후.

학교 담장을 넘어 학교를 탈주하는 길,



“이산!!!”


저 멀리서 들리는 선생님의 고함소리.

저 정도로 화나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다.

그저 숙제 좀 안 해가고, 청소 좀 도망쳤을 뿐인데 말이다.


분노에 찬 선생님의 고함이 가슴 속에서 메아리치기는 했지만, 이 길이 어떤 길인가.

모든 근심과 걱정이 녹아버린다는 바로 그 하굣길.

사소한 것들이 걸음마다 녹아내려 논으로, 밭으로 사라져 갔다.


“흥흥흥~ 집에 가면 누나랑 놀아야지!”


집에 도착하니, 누나가 마당에서 식물들을 옮겨 심고 있었다.

그중 가장 특이한 식물은 인삼 형태의 뿌리식물이었다.

인형을 손에 쥔 듯 몸통 가운데를 쥐고 풀과 뿌리의 연결지점을 쓰다듬는 모습은 꽤 그로테스크했다.

누나의 팔목을 타고 올라가는 촉수 같은 뿌리 한 가닥.

그걸 참 뭐라 형용할 수 없네.

몸통 중앙에 있는, 입 같은 큼지막한 검은 구멍은 블랙홀처럼 주변 흙먼지를 빨아들였다.


“누나, 그게 뭐예요?”


“어? 왔니? 이건 만드라고라라고 해. 이건 민간에도 제법 알려졌을 텐데 못 들어봤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10살짜리 초딩에게 뭘 바라는 건지.


“이건 꽤 귀한 약재로 쓰이는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뽑힐 때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면 죽는다는 정도?”

“남의 집 마당에 그렇게 위험한 걸 심는 건가요?”


팩트로 인해 양심에 찔린 그녀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니, 그치만 심어두지 않으면 어렵게 구한 건데 금방 말라죽어 버린다고. 하, 하여튼 이건 이전에 채취할 때 비명을 다 빼놔서 위험하지 않아. 그러니까 다시 무덤가에 묻어놓지 않는 이상 위험하지는 않다구.”

“흠, 그럼 그것도 봐줄게요.”

“어? 응. 고마워?”


뭔가가 걸리는지 찜찜해 하던 누나가 다시 식물들을 옮겨심기 시작했다.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전부 시뻘건 식물.

액체로 이루어진 것 같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식물.

건드리면 움찔 움츠러드는 식물.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우리 집 마당을 점령해 가고 있었다.


“정말 잠깐만 지내는 거 맞아요?”

“......그보다 이것 좀 봐봐. 이 투명한 풀은 ‘엘라마바’라고 하는데 뿌리가 본체야. 나머진 순수 액체야. 신기하지?”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는 모습이 수상쩍다.

다만 그녀의 말대로 옮겨 심고 있는 모종들은 전부 신기한 것들이긴 했다.

특히 ‘엘라마바’라는 식물의 이파리는 탄산 같이 톡 쏘는 맛이 나서 꽤 맛있었다.

물론 귀한 약초를 훼손했다고 누나가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흐아, 드디어 끝!”


그런 외침과 동시에 옆에서 구경하던 나와 누나가 하이파이브를 쳤다.

짝! 소리가 일의 종료를 알림과 동시에, 나는 집주인으로써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자아, 그럼, 이제 월세 협상을 해야죠.”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깃들었다.


“응?”

“설마 공짜로 지내려고 했어요? 에이, 설마 그렇게 염치가 없으려고....”

“하.하.하. 당연하지. 내가 그렇게 후안무치하진 않지. 그럼, 그럼.”


누나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신체 어딘가가 따끔한 표정이었다.


“마당 사용료에 밥값, 집세까지 다 포함해서 마법 알려주기. 어때요?”


월세를 나 혼자만 받아 챙기는 것 같아서 양심에 찔리지만, 결국 난 10살.

사고 좀 쳐도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겠어?


“그건 좀··· 곤란해.”

“왜요? 가르쳐준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누나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긴, 그건 그러네. 닳는 것도 아니고. 좋아! 알려줄게. 어차피 그 배신자 놈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시간도 남아돌고.”

“야호! 신난다!”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대신, 누나가 조건을 한 가지 달았다.


“대신! 이건 정식 사제 관계가 아니니까, 때가 되면 난 떠날 거야. 알았지? 그때가 돼서 무책임하다고 해봐야 소용없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 이 층에 있는 내 방으로 이끌었다.

방 중앙에 책상을 펼쳐, 그걸 사이에 두고 누나와 마주앉았다.


“교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오늘은 못해. 내일부터 할 거니까 조금 기다려.”

“그럼, 마법 이야기라도 해주세요.”

“흐음, 좋아. 오늘은 강의 전 오리엔테이션인 걸로 하자.”


누나가 자신은 말주변이 없다며 중얼거리다가 팔짱을 끼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5분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가고, 드디어 누나의 말문이 트였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어. 일단, 난 마법사가 아니야. 마녀학을 공부한 마녀지.”

“마녀랑 마법사가 다른 거에요?”

“뭐, 사전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학술적으로 접근하면 둘은 굉장히 달라.

마법학이 룬어와 술식으로 신비를 재현하는 학문이라면, 마녀학은 잊힌 존재의 힘을 재현하기 위한 학문이야.”

“으음.”


큰일이다. 벌써 재미가 없다.


“물론 마법학과 마녀학은 혈통에 따라 계승되지 않고, 누구나 배울 수 있어서 같은 갈래에 속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마녀학뿐이야.”

“와. 그렇구나아.”



말하는 본인이 들어도 성의 없고 무미건조한 답변.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설명에 취해서 혼자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마녀의 주특기는 제약(劑藥)과 계약. 그중에서도 우리는 제약에 대해 공부할 거야. 내 전공이 그거거든.

커리큘럼은 대략 약초학을 먼저 공부하고, 그다음에야 간단한 비약을 만들어 볼 거야.

사실은 약학이나 생리학 같은 것도 배워야 하는데, 그건 시간이 없으니까 대충 패스.“


강의가 계속되었고, 내 반응은 점점 없어졌다.

결국, 누나는 학생의 반응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에 눈치를 챘고, 내 인내심은 한계가 와버렸다.


“··· 재미없어. 안 할래.”



내 선언에 누나도 굳이 힘쓰지 않았다.

왠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느낌?


“흥, 뭔가를 배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나도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리고 할 생각 없으니까 됐어. 이 이야기는 없던 걸로!”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누나가 방문으로 향했다.


“원래 애들 인내심이란 게 이 정도라고요. 누나는 딴 건 몰라도 교육자로선 꽝이네요. 아까 말한대로 말도 진~짜 못하시네요.”


그 세 문장에 폭발한 누나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 부족한 능력 때문에 현실에 치여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그간 쌓여있던 울분을 전부 내게 토해내려는지 고음으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이익! 너, 너어! 꺅!”


얼마나 부끄러우면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혀까지 씹을 정도일까.

자신의 안타까운 멍청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현실에 좌절한 사람은 얼굴에서 힘줄이 돋아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뇌리에 세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자고로 오리엔테이션이라 함은 앞으로 배울 것들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법!

그에 반해 누나의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아무런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없어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 위주의 무능한 교사네요.”

“고작 10살짜리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그녀가 아픈 혀 때문인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좌절감 때문인지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 착하디착한 심성이 본인의 한계에 맞부딪혀 좌절하고 있는 가여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했다.

현실을 깨달은 누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괜찮아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서양의 옛 성현이 그랬잖아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거래요. 스스로 부족함을 알았으면 고치려고 노력하면 되죠.”

“···도대체, 나는....”


누나가 내 위로에 감동해서 목이 막히는지 가슴에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까지의 수업은 없었던 것으로 쳐줄 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수업을 해보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그 배신자 놈이냐! 그놈이 만악의 근원인 거냐? 그 자식, 잡히면 죽여버리겠어!”


내 배려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아서, 마녀 주제에 신까지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내 입꼬리는 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리다고 방심해서 내게 알려준 비밀들.

자신이 마녀라는 것이 비밀인 이상, 우리 마을에서 소란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내게 들킨 이상.

뭐가 어쨌든, 갑은 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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