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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眀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할 세계의 소설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명無眀
작품등록일 :
2023.11.27 23:02
최근연재일 :
2023.12.10 13:00
연재수 :
1 회
조회수 :
7
추천수 :
0
글자수 :
2,282

작성
23.12.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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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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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

하늘은 마치 유리처럼 깨져있고, 그 위에서는 수십만의 검은 손들이 내려온다.

사방에는 피와 시체가 가득하다. 너무나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강은 피를 머금어 붉게 보인다.

그리고 무너지는 세계의 아래에서, 웃는 자들이 있다.


“이 개같은 추종자 새끼들이...!”


이 모든 사건의 원흉들.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자들.

통칭 허무 추종자.


『우리는 원한다. 삼라의 멸망滅亡을』

『우리는 바란다. 만상의 종말終末을』

『그리하여, 이것이 세계의 끝이다.』


“커...어흡...”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입에서 피가 터져나오며 입을 막아버렸다.

몸은 이미 기능을 거의 정지했다. 하반신은 잘려나갔고, 오른쪽 가슴은 꿰뚫렸다. 왼쪽 눈은 전에 터져 이미 상실되었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그런데 그것을 덮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무력감이 날 휩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세상의 끝을 눈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너무나도 무력하고, 나약하다.

이미 이계전쟁에 참여한 영웅들은 모두 사망하였다.


검의 극의를 꿰뚫은 검성은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창조의 힘을 가진 예술가는 목이 베였다.

누구보다 강대한 힘을 지닌 역신은 배에 구멍이 나 과다출혈로 죽었다.


그 누구도 나를,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이제 저 손들이 지상에 닿는 즉시 이 세상은 소멸한다.


지금, 세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몸에 힘이 빠진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이, 의식이 흐려진다.


눈이 감겼다.


.

.

.


"....?"


나는 죽었다. 분명히 그랬다. 사후 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신성교에서 말한 대로라면 사후 세계는 불과 유황이 끊임없이 불타는 지옥일 터였다.


그런데 이건..너무나 새하얗다. 찬란할 정도로 새하얀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원고지 같았고, 셀 수 없이 많은 칸들이 무한하게 뻗어나가 있었다.


"여긴..천국인건가?"


그 순간 평원에 글자들이 적히기 시작했다.


[당신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게..뭔..”


[어째서였나.]


“...당신은..신입니까?”


[나는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네가 상상하던 것.]


“......으윽..!”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살아오던 이 세상은, 이전 생에 내가 연재 중단한 세상이라는 것을.


너무 파워 인플레가 심해 주인공마저도 죽어버린 세상, 다시 쓰기에는 너무 늦어서 포기해버린 세상. 그게 이 이야기였다.


"아아..."


저 끔찍한 것들도, 우리에게 닥쳐온 모든 불행도, 전부 내가 생각했고, 야기한 것이었다.


"아아아...!!"


[후회는 언제나 늦은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웃으면서 쓰러지던 아이가 떠올랐다.

머리가 뭉개지던 어느 여인이 떠올랐다.

허리가 박살 나 죽은 남자가 기억났다.

죽고, 아파하고, 절규하며, 불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을 해집는다.


전부...내 탓이었다.


[이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제가...제가 뭘 해야 합니까..이걸 떠올리게 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잘못된 이야기는 이야기의 주인만이 고칠 수 있는 것.]


[다시 고쳐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나에게는 과거로 돌아가는 돌 같은 편리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 백색의 세계를 무수한 활자가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전생에 쓴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전생의 글을 썼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삭제한다.


원래 존재하던 이야기를 지운다.


남자의 부서짐을 삭제하고, 어느 여인의 아픔을 삭제한다.


[⬜️⬜️⬜️⬜️⬜️⬜️⬜️⬜️]

[⬜️⬜️⬜️...]


황금빛의 인과율이 간신히 움직이는 오른손에 맺히기 시작한다. 무한한 백색의 세계를 채우던 검은 활자가 사라진다.


그리고 상상한다.


나는 이야기를 상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상상한다.

즐거웠던 기억을 상상하고 울었던 행복을 상상한다.


손이 찢어질 것 같다. 심장이 타오르는 것같이 아파서 너무나도 포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완성.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억지로 구겨 넣는다.

당장이라도 영혼이 터질것만 같다. 그럼에도 내가 저지른 죄악으로 머리를 억지로 채운다.


[나는...⬛⬛한 세상을 바란다.]


눈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남은 건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다.


[눈이 감긴다.]


[그럼에도 당신은 왜 인지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만 같다.]


[조금 자고 일어나면, 그때는 모든게 돌아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그리고 어느 야심한 밤


골목길에 쓰러져있던 작은 아이가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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