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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폭군은 울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3.12 11:41
최근연재일 :
2024.03.14 19:41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9
추천수 :
0
글자수 :
12,917

작성
24.03.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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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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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내기권투 시작

DUMMY

항구는 온갖 사건사고들로 항상 끓어 넘치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 수상한 사내의 행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 무관심을 즐기고 있었는지 어땠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내는 계속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출몰했다.


사람들이 알량한 이익을 두고 서로 다투거나 사소한 일로 소란을 피우는 자리에 그 떠돌이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다툼에 끼어드는 일은 잘 없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큰 재미라도 있는 양 눈을 빛내며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흔치 않게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심심한 날이면, 사내는 꼭 뭔가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아랍의 따가운 햇살이 달구어 놓은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곤 했다.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될 리 없는 조용한 사내였지만, 우연이 상황을 바꿨다. 어쩌면 그것 역시 그들의 신 알라가 안배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항구도시에서는 내기권투시합이 유행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일반인들끼리 주먹질을 해 소소한 분쟁들을 해결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지만, 재미로 돈 내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돈 내기의 액수는 점점 커졌다. 그래서 그즈음에는 직업적으로 싸움을 하고 내깃돈의 일정액을 수당으로 받는 전문선수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사내는 내기권투를 구경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지만, 한 번도 판에 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시합이 잡혀있던 한 선수가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바람에 결원이 생겼다. 선수소개 및 주심을 맡고 있던 노인은 궁여지책으로 아무나 손에 걸리는 대로 잡아당겨 빈자리에 꽂아 넣어 버렸다.


거절할 겨를도 없었다. 이미 돈을 건 사람들이 사내의 등을 떠밀어 엇, 하는 사이에 시합장에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얼결에 싸울 태세를 취하기는 했는데 그 자세가 하도 이상해 구경꾼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주먹다짐이라는 것은 원래 만국공통이어서 차이가 크지 않은데, 당시에도 강한 오른손을 뒤로 빼놓고 결정타를 노리는 한편, 왼손은 앞에 내밀고 상대를 견제하는 전술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사내의 자세는 정반대였다. 왼손은 뒤로 빼 놓은 채 오른손을 앞으로 내고 있었던 것. 왼손잡이여서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양손을 반대로 놀리고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몸과 어깨가 완전히 측면을 보고 돌아서 있어서 뒷손을 내지르기가 영 어렵게 돼 있던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누가 봐도 주먹질을 하기에는 심히 불편한 자세였다. 내깃돈은 금세 사내의 상대방에게 쏠렸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시합은 모두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사내는 생전 처음 주먹질을 해본 듯싶은 엉성한 자세로 싸움에 임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싸움이 결국에는 거리와 간격 다툼이 될 것이라는 점만큼은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내는 다른 선수들처럼 상대의 주먹이 닿는 간격 안으로 걸어 들어가 발을 멈추고 양 주먹을 휘둘러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보는 대신, 발을 잘게 놀려가며 계속 상대 주먹 사정거리의 외곽으로 빠지고 돌았다.


욕심껏 세게 주먹을 휘둘러 한 방에 이겨 먹으려던 상대선수의 공격은 계속 빗나가기만 했다. 사내는 꽉 말아 쥐지도 않은 오른 주먹을 일직선으로 쭉 내질러가며 상대를 괴롭혔다.


원래 팔이 긴 편이었던 데다 다른 내기권투선수들과 달리 앞으로 내놓은 오른쪽어깨가 상대 방향으로 더 기울여져 있던 ㅌ사에 더 길게 주먹을 내뻗을 수 있었다.


뒤로 빼놓은 왼손은 아예 내지도 않고 있었다. 사실상 앞에 내놓은 오른손만 가지고 경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결정타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계속 상대의 얼굴에 잔매를 집어넣는 데는 성공을 하고 있었다.


해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는 했지만, 사내는 예비동작이나 기척 없이 간결하게 주먹을 내는 법은 알고 있었다. 상대는 눈을 뜨고 다 보면서도 얼굴을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상대는 코웃음을 쳤다. 맞고 쓰러질 만큼 강한 공격이 아니어서였다. 상대는 시합 중이었음에도 애써 웃으며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고, 관중들은 자기가 돈을 건 선수가 순식간에 얼치기 떠돌이를 때러 엎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약한 공격이기는 해도 계속 주먹이 들어가고 있기는 했다. 결국 상대는 콧등이 꺾였고, 잠시 후에는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격투 중에 생기는 출혈은 매우 불길한 징조다. 출혈량이 많지 않다고 해도 치명적이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 피가 흘러 호흡이라도 방해하게 되면 바로 지구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관중들의 응원과 함성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쩐지 내기에 건 돈을 잃을 것 같다는, 요상한 예감 때문이었다.


연신 얼굴을 툭툭 얻어맞아가면서도 열심히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던 상대선수는 갑자기 고장이 난 것처럼 덜컥 멈춰서 버렸다. 그러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씩씩대며 더는 안 하겠다고, 이런 건 싸움이 아니라고 불퉁스럽게 소릴 질렀다.


시합의 승자는 사내였다. 사내를 시합장으로 밀어 넣었던 노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내의 손목을 잡고 팔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내기를 했던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돈을 잃은 가운데, 준비도 없이 시합에 나가 수당을 받게 된 사내가 쩔그럭거리며 돈을 셌다.


*


물론 사내는 아차 하는 사이에 밀주密酒를 파는 술집으로 끌려들어가 그 돈을 모두의 술값으로 다 써버리고 말았지만, 딱히 돈을 아까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뒷손은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승리를 챙긴 사내의 소문은 삽시간에 항구도시를 흔들었다. 사내는 그제야 사람들의 입에 짜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사내에게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들이 꽤 있었다. 훤칠한 키, 누구에게든 거부감을 주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을 정도로 번듯한 외모, 가끔은 연극배우 같이 들리는 말투, 은근한 기품이 느껴지는 행동거지, 항상 두려움 없이 빛나는 눈.


사내에게는 싸움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타인들로 하여금 경이를 느끼게 하는 특별한 면모가 있었다. 그 특질은 그날 이후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사내가 내기권투를 시작하기 이전과 이후의 겉모습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의 대우는 판이하게 변했다. 이를테면 사내의 용모에 대한 태도가 그랬다. 사내는 분명 빠지는 구석 없이 단정한 외모를 갖추고 있기는 했지만,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수려한 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기권투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먹다짐은 얼굴을 망가뜨린다. 콧대가 휘고 꺾이거나, 눈썹 뼈가 내려앉아 눈꼬리가 처지는 것은 물론, 얼굴에 찢어진 흉터 한 두 군데쯤은 생겨나게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멀끔한 용모의 사내가 시합장에 올라가기만 해도 사람들에게는 놀랄 일이 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어마어마한 실력자여서 콧대와 얼굴이 그리 매끈한 것이리라는 지레짐작이 군중의 기대심리를 부채질했다.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하던 일을 놓고 와서 경기 구경을 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제까지의 싸움꾼들 중 가장 잘생겼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이었다. 유혈이 낭자한 내기권투시합을 본능적으로 꺼리게 마련인 여자들까지도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고 와서 구경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연히 판이 커졌다. 사내의 시합에는 이전까지의 내기에서는 꿈도 꿀 수 없던 액수의 큰돈이 걸렸다.


그런 큰 시합이 벌어지던 날, 사내는 약조한 시각을 시간을 한참이나 넘겨 시합장에 나타났다. 오래 기다린 군중의 긴장도는 당연히 최고조였다.


사내는 다소 지친 기색으로 숨을 헐떡이고는 있었지만 결전을 피하지는 않았다. 선수소개와 진행을 맡은 노인은 바로 목청을 돋우었고, 그리하여 항구에서 벌어진 내기권투시합 사상 최고 액수가 걸린 판이 시작됐다.


그리고 사내는 거기서 거짓말처럼 쉽게 져버렸다.


초반에는 열화와 같은 응원을 받으며 첫 시합과 같은 양상으로 흐름을 끌고 나갔지만, 그날 시합은 그렇게 순순히 풀려주지를 않았다.


전술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발을 놀려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해가면서 앞에 내놓은 오른손만 사용해 상대를 타격하는, 그 괴이한 전법은 다시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질질 끌려가다간 필패하리라는 것을 직감한 시합상대는 갑자기 엇걸음으로 크게 걸어 들어가 거리를 좁히며 눈을 감은 채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그 갑작스러운 주먹이 운 좋게 사내의 눈 밑에 얹혔다.


눈먼 주먹이었으니 체중이 실릴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 시원찮은 공격에 사내는 바로 얼굴을 싸쥐고 등을 돌리더니 시합을 포기해버렸다. 항구에서 내기 권투 시합이 시작된 뒤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초유의 사태로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진 관중들이 넋을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고양이새끼처럼 얼굴매무새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치 얼굴에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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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아들 24.03.13 4 0 10쪽
1 무적의 군주 24.03.12 1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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