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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폭군은 죽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3.12 11:40
최근연재일 :
2024.03.14 19:41
연재수 :
3 회
조회수 :
23
추천수 :
0
글자수 :
12,917

작성
24.03.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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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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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0쪽

두 아들

DUMMY

그렇게 새로 등장한 승리자들 중 인자한 왕의 선물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은 많은 것을 돌려받았다. 그 중에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데 대한 보답으로 주어진 것들도 있었다.


막대한 군자금이 부담스러워 가만히 있었던 것뿐인데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분명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의 열기로 달궈진 사막의 모래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피를 빨아들이던 세월 내내, 왕은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얌전하고 조용히 무역에 전념하고 있었다.


전란의 시대였다. 무기와 식량과 의복과 약품이 미친 듯이 비싸게 팔렸다.


항구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그 와중에 왕이 더없이 사랑했던 소박한 풍경은 옛 모습을 잃고 말았지만, 그 상실은 왕에게 천문학적인 수준의 부를 보상으로 안겨주었다.


국왕부처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둘은 마치 그들의ㅏ 전능한 신 알라가 내려준 선물인 양 하루하루를 소중히 아끼고 음미했다. 입안에서 금방 녹아 사라질 사탕을 아끼고 아쉬워하는 아이들처럼.


변방의 하급귀족이었던 외척들은 궁 안에 발을 잘 들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분란거리도 없었다.


*


왕은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첫 아들을 얻었다. 그것이 순전히 신의 섭리였는지, 아니면 남녀의 이치에 밝았던 왕이 일부러 늦게 아이를 가졌던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적장자의 탄생 소식을 들은 왕의 동생은 낙심천만이었지만, 그때는 망한 나라의 왕족과 맺어놓은 혼인관계를 청산하느라 경황이 없어 제대로 된 견제를 하지도 못했다.


왕의 동생은 부쩍 말이 줄었다. 그의 그늘에 숨어 온갖 전횡을 일삼던 측근들 역시 자연히 겁에 질렸다.


그러나 인자한 왕은, 부패와 비리를 일삼던 신하가 나이 들어 죽었을 때조차도 인정을 베풀었다. 왕제가 주춤거리며 눈치를 보는 사이에 성대한 장례를 치러주곤 했다.


그렇지만 유족들의 울음이 잦아들 때쯤에는 반드시 세금징수관을 보내 망자의 창고를 깨끗이 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시에는 오십이 넘어서까지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므로, 탐관오리들이 평생을 바쳐 긁어모은 재산은 결국 모두 왕의 것이 되었다.


왕의 몸에는 점점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첫째를 얻은 지 7년이 흐른 뒤, 왕은 둘째 왕자를 얻었다. 왕의 동생은 왕좌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처럼 보였다.


왕에게는 적이 없었다. 평화로운 세월이 흘렀다.


*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뒤에야 왕의 진짜 고민은 시작되었다. 평생 표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왕이었지만, 그즈음에는 근심걱정에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잦았다.


후계자 문제 때문이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의 일들을 상상해야만 했던 한 아버지의 머릿속이 사정없이 헝클어지고 있던 동안에도, 두 왕자는 건강히 자라났다. 서민의 가정이었다면 그저 신의 축복쯤으로 여기고 기뻐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나, 왕가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왕가의 일들 중 그보다 더 두렵고 참담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왕자들이 왕의 아들로서 누리고 있는 혜택과 특권들 또한 그 위험과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애초부터 한 몸이었다. 그들의 신 알라가 두 생명을 내려주었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섭리.


*


세월이 흘러 왕의 시력이 저하되기 시작하면서, 왕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한 번에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들의 유년을 지켜보던 시간에 차오르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장성한 아들들이 왕좌의 주인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살육과 눈물이.


어제와 내일을 보기 시작한 왕은 그토록 소중하던 오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을 빼앗긴 사람에게 즐거움이라는 것이 남아날 리 없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이고 모든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려든다면?


왕이 가진 것은 너무나 많아 둘에게 나눠줄 수 없었다. 부와 권력은 클수록 나누기 어려워진다. 싸움 없이 나눠줄 수 있을 정도의 재산과 힘이라는 것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다.


피를 나눈 형제가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에게 칼질을 해대던 선대의 참극을 이미 목격한 바 있었던 왕은, 평생 꿔본 적 없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미리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 비정하고 가슴 아픈 선택이었다. 물론 그 시절의 왕가에서는 드물지 않았던 일이었으나, 평생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었던 왕은 자기 자식들에게도 좋은 아버지이고 싶었다.


사실 왕은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아들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에게 일찌감치 무게중심을 기울여 다른 하나가 마음을 비우게 만드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일 터였으나, 그 방법도 애매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왕이 우유부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명했기 때문이었다. 왕은, 어떻게 해도 결국 자신이 아버지의 눈으로 피붙이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두 아들은 완전히 상반된 덕성과 장단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누가 와도 둘 중 하나를 골라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선택의 문제는 난감하고 첨예했다.


*


한 아들은 자상하고 영리하며 단아했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관심을 두고 궁궐 안에 있는 책들을 차분히 읽어나갔다.


그러나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축적한 식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고작 글자를 읽고 얻어낸 지식을 현실에 대입하려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사람을 대할 때 특유의 유약하고 의존적인 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고, 아버지의 꾸중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로 잘못을 숨길 때가 있었다.


나름의 결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왕실과 신료들의 시선은 애초부터 이 차분한 아들에게로 향해져 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의 관심과 애정이, 결국은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사람을 지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진작부터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일 왕이 오래 살지 못해 일찍 즉위하게 될 경우, 노련한 신하들에게 휘둘리게 될 공산이 컸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


다른 아들은 과격하고 충동적이며 말보다 몸이 앞섰다.


의심이 많았다. 자연히 몸이 바빠지게 마련이었다.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난 뒤에야 판단을 내렸다. 그렇지만 아버지와는 달리,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고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했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다 퍼붓는 편이었다. 말과 행동에 조심성이 없다는 점은 마음에 걸렸지만, 고난이 두렵다고 거짓을 고하지는 않는 강직한 면이 있었다.


필요 없이 적을 만들고 분란을 일으킬 때가 많았지만, 눈치가 빠르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행동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그러나 인품이 시원시원하고 호방하기는 해도,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단점 역시 지니고 있었다. 왕자는 ‘인내’라고 불리는 ‘이후의 시간’을 가늠하지 못했다. 따라서 끈기와 지속력이 부족했다.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미루다가 한 번에 다 해결하려드는 버릇도 좋지 않았다. 왕의 뒤를 잇게 될 경우 자극적인 향락에 빠져 통치행위를 등한시하게 될 가능성은 물론, 엄정한 기준 없이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권력을 휘두를 위험성까지 엿보였다.


왕성을 왕래하는 왕족들과 귀족들의 평가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왕자는 남들의 시선과 소문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란 듯이 궁궐 담을 넘나들며 놀러 다녔다. 큰 사고를 저질러놓고 수습을 하지 못해 부왕의 귀에까지 들어간 일들이 이미 여러 건이었다.


타일러보기도 하고 혼을 내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면전에서야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지만, 나중에 알아보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전언이 들어올 뿐이었다.


젊은 시절, 답답한 궁궐을 떠나 자주 잠행을 했던 왕은 그것이 알라가 자신에게 주는 벌인가 싶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하지만 왕은, 반성을 모르는 혈기와 젊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두 아들을 한데 섞어 한 놈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왕의 입버릇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왕국의 후계자에게 있어 안정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있을 리 없었다.


노심초사한 끝에, 왕은 겨우 마음을 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의 나침반바늘은 무정히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모두의 운명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그 즈음의 일이었다. 왕이 몹시도 사랑하던 항구도시에 떠돌이 하나가 나타났다.


멀끔하니 잘생긴 얼굴에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다. 집도 절도 없는 신세 같았지만 일을 해 돈을 버는 법은 없었는데, 그래도 옷차림만은 늘 번듯했다.


볕이 잘 드는 바닷가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꼭 생선 낚아채려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조바심이 난 사람처럼 다리를 떨며 입술에 침을 바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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