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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거울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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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12.13 12:31
최근연재일 :
2023.12.1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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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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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내가 없다

DUMMY

거울 속에는 내가 없다. 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나를 포착하지 못하고, 나는 거울에 잡히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은 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아니지.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이었을 것이다, 라고 쓰는 편이 낫겠다. 기억이 미치지 못하는 유년의 영역이 있으니까. 나는 그 영역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또 아이답게 잊곤 했을 것이다.


멀쩡하던 아이가 난데없이 그렇게 변할 리 없으므로, 적어도 나의 부모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거울에는 비치지 않는 아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종종 그런 아이를 둔 부모가 어떤 심정으로 아이를 키웠을지 상상해볼 때가 있다.


잘은 몰라도 매우 난감한 일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내 부모는 거울과 나를 깊이 감추는 쪽을 선택했다. 아마도 오랜 의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방으로 직장을 옮긴 것도 모자라 아주 외진 곳에 집을 구했다. 엄마는 학교에 나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직접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큰 희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철이 든 뒤에도 그간의 일들을 섣불리 묻지 못했다.


사실 이날 이때까지도 내 부모는 이러한 내 이상증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묻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침묵 속에서 나는 자라났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집에는 거울이 많지 않았다. 또 있더라도 어린애의 눈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달려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거울에 다가서는 순간이 오면, 무슨 스위치라도 누른 것처럼 침묵이 발동되곤 했다. 이 오싹한 고요는 언제나 시선과 함께였다. 집안이 조용해진 뒤 내가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엄마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딘가를 가다가도 주위가 조용해지면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이 습관은 이 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었던 날 밤이면 안방에서는 불온한 수런거림이 오가곤 했다. 아마도 거울에 비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주제로 심도 있는 토론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침묵과 시선과 수런거림으로 만들어진 탑 속에 나는 살았다. 나는 라푼젤과 비슷한 형식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내 얼굴매무새를 봐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에 와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린 시절의 내가 정확히 언제 이 이상증세를 깨닫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그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되었다.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아서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애들도 다 나 같을 줄 알았던 거다.


이렇듯 엄중하게 보호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내 최초의 기억은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찾아왔다.


살다 보면 멋대로 집밖에 나가보고 싶어지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잘 없는 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부모가 모두 집을 비우고 없던 잠시, 나는 매미 우는 소리를 들었다. 문득 매미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늦여름이어서 날은 무더웠고, 여름나무들이 하늘 향해 분수처럼 뿜어 올리고 있던 진녹색 잎들이 무성했다. 꼭 매미가 계속 자리를 옮겨가며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재미있을 것이 없었는데도 나는 이상하게 신이 나서 걷고 또 걸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집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걸어 나온 뒤였다. 그래봤자 그런 시골에서 사람 마주칠 일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던 즈음이어서 그랬는지 평소 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명절 전 묘지의 풀을 깎기 위해 고향에 와 있던 외지사람들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을 근교에서, 마을 밖을 향해 걸어 나오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또래 여자아이를 본 건 그때가 생애 최초였을 것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던, 길옆으로 바로 논두렁이 펼쳐지던 시골 소로에서 나는 소녀와 맞닥뜨렸다.


소녀는 나만큼이나 어리고 작았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신기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걸음은 무의식적으로 이미 멈춰서있었다. 꼭 거울로 다가가다가 엄마의 침묵을 감지하고 멈칫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개를 산책시키려던 모양으로 중형견 한 마리를 끌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목줄을 잡고 있었던 것은 소녀였지만 소녀를 끌고 있었던 것은 개였으니까.


힘 좋은 개가 자꾸 앞서 나가는 바람에 애를 먹는 눈치였는데, 그래서인지 소녀는 겨우 열 걸음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용건은 없었지만 그런 순간에 침묵하는 것은 어쩐지 방송사고 같았다. 나는 그 새로운 상황보다도 침묵이 더 두려웠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 뒤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누구니?”


크지도 않았던 내 말소리에 소녀는 화들짝 놀랐다. 그제야 나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크게 놀란 듯싶던 작은 몸은 격하게 퍼득였다.


그때 그걸 그대로 놔뒀더라면 소녀가 뭐라고 대답했을지 지금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방해자가 있었다.


컹컹컹컹컹컹!!!


소녀를 끌고 있던 개가 갑자기 짖어대기 시작했다. 당장 나를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처럼 흉악하게.


개는 내 등장에 크게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속으로 안전거리를 정해놓고 있다가 내가 선을 넘자마자 짖어대기 시작한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개는 사람보다 오감이 예민한 짐승이다. 정말 내가 그렇게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갈 때까지 정말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꺄악!


소녀가 지른 쇳소리가 심장을 찌르고 들어왔다. 꼭 끓는 물을 귀에 대고 들이부은 것 같은, 청각적인 충격이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가장 겁에 질렸던 건 바로 나였다. 텔레비전에서 개를 본 적은 있었으되 그렇게 험하게 짖는 개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어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으니까.


세상에는 침묵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있었다.


비명을 지른 소녀는 안 그래도 가까스로 잡고 있던 개 목줄을 놓쳤다. 놓여난 개는 당장 아가리를 끝까지 벌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움칫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개는 희고 누런 이빨로 내 정강이가 있던 허공을 물어뜯었다.


개의 공격은 천행으로 빗나갔지만, 개가 흘린 침은 내 정강이까지 날아와 튀었다. 침은 그 뜨겁던 여름날보다 더 뜨거웠다. 위험한 온도였다. 나는 아예 소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선 뒤 내 등 뒤에서 벌어졌을 일 역시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슨 사정이 있어선지 개의 추격은 잠시 늦춰졌던 것 같다.


여자아이가 다시 개의 목줄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줬던 것일 수도 있고,

이유 없이 광분해 내달리던 개가 논두렁으로 굴러 떨어졌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놓친 목줄이 개의 다리에 엉켜 개가 잠깐 달리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이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개가 내 뒤를 쫓고 있다는 것만 생각했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달렸던지 금방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아졌다. 달리다 보니 나는 포장도로에까지 나와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던 거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나는 다른 희망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개가 나를 추격하는 일을 그만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건 판단이 아니라 희망사항이었다.


달리기를 멈추지 않은 채로 나는 뒤를 흘깃거렸다. 그러나 개는 추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개는 생각보다 훨씬 조용히 달릴 줄 안다.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사냥의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날씨가 무더웠기 때문에 꽤 느려진 것 같기는 했다. 개는 더위에 약한 동물이었으니까.


그때쯤이었다. 도로변 흙바닥에 가로눕혀져 있던, 아니 쓰러져 있던 대형 볼록거울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만화영화에 나오던 기사들이 쓰는 방패 같았다. 나는 그걸 들고 서서 그 뒤에 몸을 숨기고 개를 피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냈다.


급해서 한 생각이었지 현실성은 없었다. 그 볼록거울은, 누군가 차나 트랙터를 몰다가 들이받아 교통사고를 낸 뒤 방치된 것 정도로 보였다.


볼록거울의 철기둥은 낮게 꺾여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울 뒷면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어린 내가 아니라 힘센 어른이 와서 그걸 들어 올리려 했다 해도 절대로 들 수 없었을 물건이었다.


만일 그 순간 내가 생각대로 볼록거울 뒤에 숨어 몸을 피했더라면? 아마도 개는 금방 거울을 타넘고 내 목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위험은 사라져버렸다. 거울에 거의 다 왔다 싶은 순간 내가 크게 넘어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맨발에 찬 땀 때문에 샌들이 홱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등과 어깨가 머리보다 먼저 땅바닥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충격은 컸다. 넘어진 위치도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볼록거울 면을 머리와 어깨로 들이받았을 것 같은 각이었다.


맹견에게 쫓기는 가운데 큰 부상까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눈뜨는 일조차 두려워졌다.


그런데 거울을 들이받는 느낌은 없었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을 떠보니 내 어깨와 머리는 거울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 내 몸이 거울 안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에 걸쳐져 있었다고 써놓는 편이 낫겠다.


거울 속에는 별개의 세계가 있었다. 내 상반신은 거울 속에, 하반신은 거울 밖에 내던져져 있었던 것이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놀라지도 못했다. 그저 땅에 떨어진 새우처럼 필사적으로 기었을 뿐. 나는 더 깊은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나를 쫓아온 개가 바로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거울 속으로 몸을 피한 뒤였고, 그래서 개는 또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물었다.


나는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땅바닥에 긁히고 쓸린 팔꿈치와 정강이에서 피가 났지만, 개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나를 놓친 개는 거울 너머에서 한동안 헐떡이다 다시 짖어댔다.


컹컹컹컹컹!!!


그러나 나를 따라 거울 속으로 달려 들어오지는 못했다. 이미 그 앞은 막혀있었다. 그 개와 똑같이 생긴, 그러나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의 개가 거울 바깥의 개를 막아서고 있었다.


개는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방해를 피해 내 쪽으로 아가리를 들이밀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따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사정은 개와 달랐다. 크게 달랐다.


거울 속에 내가 없었듯이 거울 바깥에도 내가 없었다. 거울 속에서도 밖에서도 나는 단 하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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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속에 내가 없다 23.12.16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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