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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세상 살아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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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3.09.16 16:47
최근연재일 :
2023.09.25 12:32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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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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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31,291

작성
23.09.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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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호빵맨과 합기도

DUMMY

천만뜻밖에도, 그 절대무공이 발견된 곳은 무협지의 본고장인 중국 무림이 아니었다. 한국과 일본의 무술계도 아니었다. 브라질이었다. 아예 다른 대륙이었던 거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은, 하나의 가문에 의해 독점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너무 무협지적이어서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세가는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음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드래곤볼’에 나왔던 천하제일무도회를 실제로 개최해버렸다. 매우 만화적인 진행이었지만, 이것은 무려 실화.


천하제일을 가리는 무술대회가 열리기 직전, 이 세가의 인물들이 했던 걱정은 단 한 가지였다고 한다.


그들의 걱정은, 일반인들이 할 법한 고민들과는 아예 결이 다른 것이었다. 세상의 온갖 무술가들이 다 출전하는 위험한 대회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입거나 불구가 될까봐 겁을 냈던 것도 아니었고,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 경기에서 과연 모든 상대를 제압하고 우승할 수 있을지를 가지고 고민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걱정은, 세가에서 가장 강력한 고수를 내보내 우승을 하게 될 경우, 그것이 세가의 강함이 아니라 그 고수 개인의 강함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홍보효과가 줄어들 것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입장에서는 일부러 기술을 공개하고 대회를 연 의미가 반감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본 목적은 자신들 세가의 강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으므로.


그렇다면 가문에서 가장 강력한 1인자를 내보낼 것이 아니라, 유약하게 생긴 2인자를 내보내 우승하기로 하자. 그러면 더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결론을 냈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만만했다. 애초부터 자신들이 우승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었던 거다.


그런 생각으로 1인자 대신 2인자를 내보냈던 이 세가는 보란 듯이 대회에서 우승해 버렸다. 요즘 무협지도 이렇게 쓰면 개연성 없다고 욕먹는 세상이라는 걸 알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실화다.


당시 브라질 그레이시 세가는 그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그 강함은 무협지 식의 강함이 아니었다. 무규칙 격투기 발리투도에 기반한 강함이었다. 당시 세가에서 가장 강력한 고수였던 힉슨 그레이시는, 단전호흡을 잘하기는 했지만 경공술로 하늘을 날 수는 없었고 장풍을 쏠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국배경 무협지와 일본만화책을 양분 삼아 자라났던 나의 세계가 전혀 터무니없는 망상은 아니었음이 기적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상상 속의 세계는 어느 정도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접점을 얻었고, 결국에는 살아남게 되었다.


내 무협세계의 종말을 막아준 새 이름은 ‘달아이’가 아니라 ‘브라질리언 주짓수’였다.


나는 그레이시 세가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비전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기술을 모두에게 알려줘 버린 대가로 이제는 MMA에 세계최강의 지위를 넘겨주게 됐지만, 아직도 그레이시 세가의 가주 엘리오 그레이시를 존경한다.


시합 도중에 팔이 부러졌는데도 끝까지 계속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엘리오 그레이시는 나처럼 작고 마른 사람도 사자의 심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힉슨 그레이시는 당시 격투세계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너무 강하게 생겨먹었다는 이유로 천하제일무술대회 출전권을 동생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형 대신 대회에 출전한 호이스 그레이시는 대학생처럼 얌전하게 생겨먹은 얼굴을 하고 온갖 엘리트 격투가들을 간단하게 초살시켜버렸다.


이들도 훌륭한 격투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이 아들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무협 또는 판타지에서 소비되는 영웅들은 앞서 말한 대로 극강의 무공 또는 절대적인 권능과 마법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지만, 현실의 영웅들은 그와는 다르다.


현실에서 어떤 사람이 영웅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단서는 권능이 아니라 용기다. 나는 감히 이렇게 적어두고 싶다.


그러므로 운이 따라주지 않아 노숙을 하게 된 사람이든 길거리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든 간에 불의와 싸우거나 위험에 처한 약자를 도울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다 영웅인 거다.


어쨌든 그레이시 세가의 격투대회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세계가 종말을 면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이 행복하고 기뻤다. 그리고 격투기를 수련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레이시 세가에 영원히 감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든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보면 금방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전에서 어떤 무술이든 다 이길 수 있는 절대무공을 가지고 있었던 그레이시 세가가, 자신들의 비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레이시 세가는 현재까지도 실전최강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그레이시 세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격투기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 나라의 꼬맹이들은 지금도 자기 가랑이가 얼마나 높이 찢어지는지를 자랑하며 개폼을 잡고 있을 것이고, 태권헬스맨이 전교에서 가장 강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태권헬스맨이 싸움에서 줘터지고 들어와도 그 결과를 해석하지 못해 헤매기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뿐인가. 몇 백 년 몇 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무술의 계승자를 자칭하면서도 실은 길바닥 양아치 한 마리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괴상한 사이비 무술가들에게 생돈을 뜯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레이시 세가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MMA의 콜로세움을 소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격투세계는 끓는 물처럼 격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있던 무렵이었다.


나는 이 시기에 정말 재미있는 인물을 만났다.


호빵맨(가명)이었다.


당시 호빵맨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던 한 사립대학교 체육대학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이었다. 그가 사회체육학과였는지 체육교육과였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 됐지만, 호빵맨이 엘리트 체육인이 아닌 일반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체대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체대생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반체육학과 학생과 체육특기생이라는 두 가지 구분이 있다.


일반 체육학과 학생들은, 수능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물론 실기시험의 비중이 다른 전형에 크기는 하지만 전문적으로 선수생활은 한 경우는 없다. 대체로 다른 대학생과 비슷한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지고, 똑같이 강의를 듣고 학점을 받아 졸업을 한다.


체육특기생들은 엘리트 체육인들인데, 이들은 수능시험과 상관없이 대회성적만 가지고 대학에 들어간다. 중등부 또는 고등부에서부터 한 체육종목의 전문선수생활을 시작해 대학부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집을 떠나 합숙을 한다.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기는 하지만 거주이전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 거다. 새벽부터 훈련을 시작해 수업도 빼먹어가며 운동만 한다. 시합 시즌에는 야간까지 훈련을 해야 한다.


대체로 고달픈 생활을 한다. 요즘은 유소년 선수들의 합숙이 아예 법으로 금지됐지만, 예전에는 중등부 숙소에서도 단체기합 받고 빠따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체육특기생들은 전문선수라서 대체로 전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들이다. 일반 체대생들과도 격이 다르다. 일반인들 실력으로는 어떻게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전문선수출신이라는 말을 줄여서 ‘선출’이라는 말로 이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이 ‘선출’이라는 말은 취미로 시합 몇 번 나가본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올림픽에 정식으로 채택된 종목을 평생 해온 사람을 말하는 거다.


시합 몇 번 나가본 동호인인 주제에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자신을 ‘선출’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다 무식해서 하는 소리인 걸 이제는 좀 알고 다녔으면 좋겠다.


하여간 호빵맨은 당시 유도 4단이어서 사범자격이 있었지만 유도 ‘선출’은 아니었다. 특기생이 아니라 일반 체대생이었던 거다. 그 즈음에는 나와 같은 체육관에 등록해 입식 타격기를 배우고 있었는데, 호빵맨을 떠올릴 정도의 호감형 외모였고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관원들이 다 좋아했다. 나보다는 한 살인가 두 살 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딱히 연장자 특유의 거리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에 나는 호빵맨이 순수하게 운동이 좋아서 배우러 온 게 아닌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했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호빵맨은 내가 배우고 있던 투기종목의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그 종목은 정식 지도자 자격을 얻기가 많이 힘들었다.


단증 같은 걸 따로 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인물이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서였던 게 아닐까 싶다. 만일 호빵맨이 중등부 고등부를 거쳐 올라온 대학부 특기생이었다고 해도 대회성적만 보고 바로 자격증을 주는 게 아니었다. 2년이었나? 아무튼 일정 기간 이상 해당 종목의 중고등부나 대학부, 또는 실업팀 등에서 트레이너 생활을 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 경력을 가라로 만들기 위해 체육관에 다니고 있었던 거다. 경력증명서가 필요해서 관장과 딜을 하는 중이었던 거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저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 나중에 들키면 어떡하려고 저러나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체육관장은 그래도 순박한 면이 남아있었고 나쁜 사람들과도 연결되기 전이어서 별 군말 없이 선심을 써줬던 것 같다. 아마 서류를 만들어줬을 것이고, 호빵맨이 자격증 따는 데 별 지장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천후 체육지도자로 활동하기 위해 유도와 타격기 지도자 자격을 다 갖추려는 모양이었다. 복수전공 같은 거겠지 싶었다. 어쨌든 호빵맨에게 외골수로 파고드는 면은 없었기 때문에 당시 그 종목의 매니악이었던 나는 금방 흥미를 잃었다.


아마 오래 운동을 해 단증을 땄을 테니 유도는 잘했겠지만 특기생 선출이 아니었으니 일반인 수준이었을 것이고, 입식 타격기 실력도 출중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정석적으로 스파링을 운영하는 모범생 형이 아니었고, 트릭키한 변칙을 써서 뜻밖의 공격을 날리고 흐름을 뒤집으려드는 도박사 형이었다. 당시 나는 입문한지 오래 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호빵맨이 쓰고 있던 트릭은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냈었는데, 그때 호빵맨이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놀라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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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빵맨과 합기도 23.09.25 7 0 11쪽
5 호빵맨과 합기도 23.09.22 10 0 12쪽
4 호빵맨과 합기도 23.09.19 10 0 11쪽
3 호빵맨과 합기도 23.09.18 11 0 12쪽
2 남자의 직감 23.09.16 12 0 12쪽
1 남자의 직감 23.09.16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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