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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끼적 님의 서재입니다.

제목 미정 교지 소설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끄적끼적
작품등록일 :
2021.11.10 00:25
최근연재일 :
2021.11.10 00:26
연재수 :
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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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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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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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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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ㅇㅅㅇb

DUMMY

나는 한 송이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빛나는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나는 한 송이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빛나는 당신이 나의 눈에 들어온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그 순간부터

나는 한 송이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기왕 해바라기가 되어버린 김에

계속해서 빛나는 당신을 바라보는

한 송이 해바라기로 나는 살아보렵니다.


도대체 뭘까, 이 시는.


내 앞으로 도착한 이 시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보낸 이도 적혀있지 않은 편지 봉투 속엔 편지지 한 장에 적혀있는 시 한 편이 전부였다.


아름다운 문장임은 분명했지만, 보낸 이도, 보낸 이유도 알 수 없는 편지에서 나오는 의문스러움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호기심의 해소를 위해 편지지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난 편지지 귀퉁이에 작게 적힌 문장을 발견했다.


-답장을 원한다면 문학 동아리로-


난 그 길로 4층 맨 끝에 있는 문학 동아리로 향했다.


<삼삼한 삼베옷>이란 이름을 가진 문학 동아리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없는 동아리이다.


이 동아리의 존재 여부도 모르는 사람들이 파다하지만, 난 알고 있다.


어째서냐고? 무려 내가 이 동아리에 몸담고 있는 ‘유일한’ 부원이니까!


어찌 됐든, 난 동아리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왔어?”


지금 날 맞이하는 녀석은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동아리방을 지키고 있는 이 동아리의 유일한 부장, 상현이다.


생글생글한 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내게 손을 흔드는 녀석을 보고 난 직감했다. 녀석이 이 편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난 망설임 없이 편지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상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이야기한 상현의 말을 요약하자면, 같은 학년 여자아이가 내게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그리고 답장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주고받는 다라. 굉장히 고전적이고, 느리지만··· 낭만적인 방법이지. 아마도.


상현에게 답장하는 방법을 물으니, 동아리방 앞 화분에 올려놓으라고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방법. 뭔가 평범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을 시간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답장할 편지, 써야 할 거 아냐? 문학을 통한 고백인데, 성의 없이 쓸 생각은 아니지? 문학동아리 자존심이 있는데, 설마 그러겠어?”


“아, 나도 시로 써서 보내라고?”


“얼마나 낭만적이야! 안 그래? 난 네 문학 활동, 아니, 연애 활동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마! 수고해!”


그렇게 이야기하며 상현은 소란스럽게 동아리방을 빠져나갔다.


답장이라, 답장.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난 종이와 펜을 가져다 두고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랑 고백에 어떻게 대답하느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단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펜을 잡고 종이를 채워냈다.


-이름-


포근한 봄날

길거리를 분홍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그 이름은 벚꽃이요


무더운 여름날

제 몸 내던지며 서늘하게 다가오는

그 이름은 장맛비네


선선한 가을날

바스라지는 붉은빛 양탄자 펼쳐내는

그 이름은 단풍이요


추운 겨울날

삭막함을 덮어내고 하얀 세상 수놓는

그 이름은 눈꽃이네


지금 나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는

그대 이름은 무엇일까


그리고 뒤에 짧은 문장을 덧붙였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그렇게 답장을 적어내고 동아리방에서 편지 봉투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종이를 쪽지 모양으로 접어내고 동아리방 앞 복도에 놓인 화분의 흙 위에 쪽지를 올려두었다.


진짜 답장이 오려나?


기대 반 의문 반에 휩싸인 채로 들려오는 종소리에 일단은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화분에는 내가 쓴 쪽지 대신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있었다.


“진짜 답장이 왔네.”


곧바로 동아리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난 편지봉투를 뜯어냈다. 역시나 작고 깔끔한 글씨체가 편지지를 채우고 있었다.


-아직은 비밀이야.-


어제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 그리고 그 아래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 한 편이 적혀있었다.


-목련-


아름다운 곡선 순수한 백색

봄날의 순간을 장식하는 그것은

고귀함과 숭고함의 마그놀리아


바닥에 떨어지고 즈려밟혀 뭉개진

비참한 길거리의 흉물 그것도

고귀함과 숭고함의 마그놀리아


아아, 봄날이 스쳐 가고 있소


그사이 시간이 빠르게 흘렀음을

그리고 계속해서 흘러감을 알려주는

고귀함과 숭고함의 마그놀리아


-목련을 보면 많은 게 생각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무상감,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까지.-


목련, 목련이라. 난 창밖을 내다봤다. 풍성했던 꽃나무가 살을 덜어내고, 길바닥을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색으로 채워내는, 봄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세상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를 읽고 내가 답장을 적어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선-


같은 시간 같은 세상 살아가는데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설령 같은 것 바라보아도

각자의 시선 다른 것을 생각하고 떠올리고


우리는 그러한 각자의 다름을

각자의 언어로 적어 내려가며

서로의 세상을 보여주고 엿보고 있네.


-네 시를 보고 생각나서 적어봤어. 난 목련을 보고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


그렇게 답장을 적고 화분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엔 편지 봉투에 넣어서.




*




이름 모를 이와 시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창밖의 풍경은 새하얗게 채워져 있다. 봄에서 겨울, 시간이 꽤 흐르는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시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몇 개만 꼽자면······


······일기장 같은 시,


-일상-


월화수목금토일

다시 월화수목금토일

또다시 월화수목금토일


쳇바퀴 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박한 특별함과 사소한 행복을

그리고 순간순간을 즐기는 게

우리의 삶이겠지



······후회와 무상감이 묻어나는 시,


-가을 달밤-


달은 차면 기울어 떨어지고

단풍은 시들어 낙엽으로 바스라지네


그들의 결말은 죽음과 끝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네


차라리 나도 달과 단풍이었다면

적어도 삶에 빛나는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과거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시까지,


-행운-


죽고 싶을 때

죽지 말라 이야기해주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뭐 이 정도. 편지를 굉장히 많이 주고받은 만큼 다양한 시와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난 이러한 대화를 즐기는 중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내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고, 표현하는 대화. 서로를 알아가는 일종의 ‘교류’를 말이다.


그러던 중 상현이 내게 물었다.


“너, 그쪽한테 마음이 있긴 한 거야?”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호했다.


“당연하지.”


상현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약간 구겨진 미간과 함께 상현이 다시 질문했다.


“아니, 누군지도, 얼굴도 모르는데, 그게 된다고?”


“난 그 사람의 겉모습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속마음을 가졌는지 아는걸. 그럼 된 거 아니야?”


내 말을 듣고 이내 상현이 이야기했다. 나쁜 의도로 이야기한 건 아니니까 이해해달라고. 뭐, 그렇게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래서, 얼굴 보고 연애할 생각은 없어? 지금처럼 편지 주고받는 것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솔직히 너도 누군지 궁금하잖아?”


······라는 상현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중이다. 흠, 만나자고 해볼까? 아니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는데?”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고,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




눈이 잔잔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학교는 어딘가 들떠있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그건 지안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처럼 손에 편지 봉투를 들고 화분에 편지를 놓으러 가는 지안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남들은 모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애와 둘만의 편지, 그리고 시를 주고받는 걸 즐기고 있는 지안은 요즈음 행복했다. 솔직히 지안은 송민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망설임이란 것은 시작하면 끝도 없기에,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지안이었다.


어쨌든 오늘도 동아리방 앞으로 향하는 지안이었다. 자신이 편지를 보낼 차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어있어야 할 화분 위에는 쪽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내가 보낼 차례가 맞을 텐데?”


지안은 의아해하며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쳤다. 익숙한, 항상 보던 글씨체가 적혀있었다.


복도를 지나다 눈에 들어온

겨울날의 눈을 닮은 목화꽃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이야기


지안은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떠오른 듯하더니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다 눈에 들어온 목화꽃. 학교 복도에는 비록 모형이지만 목화꽃이 놓여있는 곳이 있다. 지안은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복도 한쪽 창문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목화꽃 모형들, 지안은 그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직감대로, 또 다른 쪽지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나 익숙한 글씨체가 쪽지를 메우고 있었다.


지식과 마음의 양식의 보금자리

그곳에 머물고 있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책


지안은 이번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젠가 송민과 나눴던 대화에서 말해주었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인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책장을 펼쳐내자 그 속에 어김없이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이번 쪽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가장 높은 곳, 가장 아름다운 곳


망설일 것도 없었다. 지안은 옥상에 위치해 하늘정원이라 이름 붙은, 작게 꾸며진 정원으로 향했다.


옥상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차분하게 내리는 눈발이 낭만적이었다. 비록 푸르른 나뭇잎은 없었지만, 소복이 쌓인 눈은 정원을 색다르게 꾸며주고 있었다.


지안은 쪽지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지안이 뒤쪽에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미로운 톤의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편지 한 장에서 시작된

너와의 인연은


내게 가장 인상적인 시간을

선물해주었어.


난 너와 함께하는 게 행복했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해하고 싶어


이렇게 마주했으니 확실히 말할 게

너를 좋아한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지안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송민이었다.


천천히 내리는,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날씨, 그리고 아름다운 인연.


그날은 아름다운 날, 그래,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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