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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더 월드

떨어지는 공이 너무 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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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결
작품등록일 :
2024.01.04 18:22
최근연재일 :
2024.03.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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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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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바다 없는 바다늑대 2

DUMMY

“그럼 주님, 구종 체크를 다시 해보실까요?”


오후 2시 36분.

나와 몬테는 예정보다 조금 늦게 경기장에 도착했다.

다들 일찍 와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어쩌지- 걱정도 찰나.

코치님은 퉁명스럽게 우리들이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빨리 왔다고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첫 등판인 내가 가장 긴장하고 중압감을 느끼는 거겠지.


“체크? 그게 필요한 일인가? 그대는 이미 권능을 보았다.(구종 체크고 뭐고, 이미 봤잖아.)”

“아니, 뭐. 크게 세 개로 나눠서 ‘조금 떨어지는 공,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는 공, X나 많이 떨어지는 공’ 이렇게 나뉘는 건 알겠는데요.”

“훌륭하군. 그거면 충분하다.”

“로케이션은 자신 있으십니까? 아직 한 번도 주님의 전력투구를 본 적 없거든요.”

“과녁을 삼등분하여 원하는 곳에 벼락을 떨어트릴 정도는 된다. (스트라이크 존을 삼등분하는 것 정도는 간단해.)”

“삼등분···. 역시 주님이십니다. 그럼 제가 손을 이렇게 하면 적당히 떨어지는 공이고···.”


경기 준비에 돌입한 몬테는 평소 이상으로 진지했다.

모르긴 해도, 그도 오늘의 상대인 씨울브즈는 꼭 쳐부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대충 조사해보니 작년 이스턴 리그 챔피언십 결승전은 이 이상 초라할 수가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나긴 했다.

3판 2선승제 시리즈에서, 첫 경기를 단 1안타로 거의 퍼팩트하게 내주고, 두 번째 경기도 산발 2안타로 꽁꽁 묶인 채로 도합 13실점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아무리 마이너 리그라도 포스트 시즌은 소중하고, 특히나 결승전은 중요하다.

평소 메이저리그만을 바라보던 선수들이 유일하게 오롯이 한 리그의 중심이자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니까.

아무튼, 대강 체크를 마친 몬테는 결의를 다지듯 경기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씨울브즈하고는 몇 년 전부터 악연이 생겨났어요.”


몬테는 조용히 지난 3년의 이야기를 했다.

무려 3년.

스쿼럴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박살이 난 것은 물론, 리그에서도 씨울브즈를 상대로 3할 승률을 채 가져 가지 못했다.

사실 꽤 특이한 일이긴 했다.

선수들이 자주 바뀌는 마이너리그의 특성상, 이렇듯 한 팀에게 상성이 잡혀 내리 패배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이미 만성 질환이 된 패배에 선수들은 크게 지쳐 있었다.

나는 낙담한 듯한 몬테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검은 몬테여. (괜찮아, 인마.) 바다늑대 놈들은 내가 완전히 박살 내버릴 것이다.”

“주, 주님···!”


몬테가 감격한 얼굴로 커다란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일부러 크게 흘린 말이었기에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선수들도 웃으며 환호했다.


“오, 신입의 의지가 남다른데.”

“아니, 그보다 저 친구 스페인어가 가능했어?”

“응? 방금 그게 스페인어였어? 한국어 인 줄?”

“좀 고풍스럽긴 한데, 스페인어 맞잖아.”

“진짜? 뭔 소린지 못 알아듣겠는데.”


···대체 저들에게 내 스페인어가 어떻게 들리고 있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 *



오후 6시 32분.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 선발 투수는 도미니카의 산체스로, 나보다 5살 많은 대학 리그 출신자다.

주기적으로 공개되는 유망주 순위에서 딱 한 번 전체 30위 안에 들었던 친구로, 장기라면 요즘 개나 소나 던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최고 100마일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2미터에 달하는 장신에서 내리꽂히는 파워 커브라고 한다.

거기에 최근엔 각이 날카로운 슬라이더도 장착했다고 하니, 상당한 노력파가 아닌가 싶다.

이렇듯 가진바 툴(Tool)만 보자면, 지금의 평가가 오히려 박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 사실.

하지만 냉철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평가란, 언제나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퍼억-!


“볼!”


퍼억-!


“볼!”


퍼억-!


“보올!”


시작한 지 30초나 되었을까.

순식간에 쌓인 3볼이라는 금자탑.

대단했다.

시작하자마자 100마일을 내리꽂는 위력도 대단했지만, 포수 머리를 넘기는 ‘플라잉 패스트볼’은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할 물건이었다.


“히유, 대단한 놈이네.”

벤치에 앉아 내가 실소하자, 앞에 있던 선수 하나가 해바라기 씨 껍질을 퉤- 뱉으며 말했다.


“대단한 놈이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응? 이제부터?”


이건 무슨 말일까-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퍼억-!


경쾌한 미트음과 함께 구심의 굵직한 스트라이크 콜이 들렸다.


“스트-라잌!”


방금 뭐였던 거지? 패스트볼인가?

그러자니 구속은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는데.


“저놈, 스위퍼를 잘 던져.”

“스위퍼? 그, 변형 슬라이더? 일본인들이 잘 던진다는 거.”


스위퍼(Sweeper).

최근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변형 슬라이더다.

특징은 상대적으로 느린 구속과 매우 큰 좌우 변화폭.

물론 구속이 느린 만큼 상하 변화폭도 작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름대로 홈플레이트를 쓸듯(Sweep) 떨어진다고 해서 스위퍼인 것이다.

확실히 산체스의 스위퍼는 대단했다.


“스트라이크!”


스리 볼을 쌓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풀 카운트.

그것도 우리의 리드 오프는 아직 공에 방망이를 가져다 대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제6구째.


휘리릭-! 퍽-!


정말이지 깔끔하게 휘어나가는 궤적과 함께 삼진으로 아웃.


“···아니, 저런 공을 갖고 있으면서 처음에 그 개짓거리는 뭐였대?”


내가 어이없어 웃자, 해바라기를 씹던 하워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자식은, 지가 파이어볼러여야만 하거든.”

“앙? 그게 뭔 소리야?”

“생각해봐, 숨 쉬듯 간단히 100마일을 던진다고. 키는 6.62피트(202cm)에, 100구를 던져도 멀쩡한 강견도 갖고 있어.”

“어···. 그런데?”

“그렇게 신이 내린 듯이 좋은 파이어볼러 조건을 타고난 놈이, 고작해야 83마일(133.5km) 나오는 스위퍼가 장점이라고 생각해 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뭔 상관이야, 자기가 잘 던지는 걸 던지면 그만이지.”

“그치? 그런데- 그게 아닌가 보지, 저놈은. 뭐 인기와 명성을 ‘100마일’로 얻은 놈이니까. 사실 그 100마일을 빼놓고 보면···.”

“하긴, 구종의 질을 떠나 남들 다 던질 수 있는 83마일짜리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 1이 될 뿐이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냥 이해 못 할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구속이야 그렇다 치고, 변화의 폭이나 흐름은 상당히 좋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딱히 없으니 확신하긴 힘들겠지만, 저런 변화구면 충분히 빅리그에서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저거, 가로축으로 몇 인치나 움직이는 걸까?”


첫 번째 타자에 이어, 두 번째 타자도 삼진 아웃.

모두 스위퍼가 결정구였다.


“글쎄, 듣기로 16인치 전후라는데?”

“그럼, 거의 홈플레이트 크기(17인치)만큼 움직인다는 거네?”

“그런 셈이지.”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움직임이었다.

홈플레이트의 끝에서 끝을 오가는 공이라는 말이 아닌가.

‘떨어지는 공’에 집중한 나와는 참으로 대척점인 존재였다.


“그럼 말이야, 83마일로 16인치 휘는 것과 89마일(143km)로 31인치(78.7cm) 떨어지는 것.”

“···응?”

“어느 게 더 위력적이라고 생각해?”


그 순간.


“스트-라잌! 배터 아웃!”


우리 측 세 번째 아웃이 나왔다.

역시나 결정구는 스위퍼.

허망한 헛스윙과 함께 삼 구 삼진이었다.

공수 교대.

나의 첫 등판이었다.


-저기, 혹시 이상한 경쟁심 같은 거 불태우는 건 아니지?


이상한 경쟁심이라니.

이건 야구 선수로서 건전한 경쟁심이지.


-솔직히 말해서, 나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 컨디션도 썩 좋은 편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계약 정령과 나는 어찌 됐든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까.

뭐,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긴 했다.

간밤에 덜컹거리는 버스로 이동했고, 아침 해가 방긋 뜬 가운데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몇 시간 자고 일어난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런저런 변명을 할 거면 어떻게 프로 야구 선수를, 그것도 메이저리그를 노린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오늘 길게 던지지도 않을 것이다.

5이닝··· 어쩌면 6이닝.

딱 그 정도.

욕심을 부려도, 딱 그 정도다.


-좋아, 중력 조작은?


1.25배.


1.25배의 중력 조작.

143km로 공을 던져, 무려 79cm의 낙차를 보일 수 있는 중력이다.

79cm의 낙차란,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보아도 손에 꼽을 정도의 정상급 낙차였다.

그만한 낙차를 143km로 던진다는 것은, 마구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가보자고.”


몬테와 짧게 몸을 풀고 나자, 타석에 씨울브즈의 1번이 들어섰다.

작은 키, 잘 그을린 구릿빛 피부,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

꽤나 올드스쿨에 가까운 1번 타자였다.

그를 한 번 본 몬테가 홈플레이트 너머 가볍게 손가락을 아래로 뻗었다.


[크게 떨어지는 걸로]


마음이 통한 걸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초구.

주먹으로 이전보다 강력한 중력이 실리는 것을 체감하며 힘껏 공을 던졌다.


퍼억-!


타자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했다.

구심 역시 잠시 당황한 듯 콜을 멈췄다.


“스, 스트라잌-!”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던 걸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범한 공들로 훈련되었을 눈은, 분명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시점만 해도 존을 확실하게 통과했다고 알려줬을 테니까.

그러나 포수의 미트는 필사적으로 내려가 공이 엉덩이 뒤로 빠지는 걸 방어하고 있었다.

그간의 상식이 괴리되는 순간이었다.


“좋아, 이대로 가자! 유!”


몬테가 일부러 크게 소리치며-아마 이 공이 좋은 공이라고 각인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구심에게 공을 교체 받은 뒤, 다시 내게로 던졌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같은 위치로 두 번.


퍽-!


퍼억-!


땅에 내리꽂히는 마구를 던져 기념비적인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었다.



* * *



“뭐야, 저 공?”

“포크볼인가?”

“스플리터··· 아니면 포크볼, 뭐가 됐든 미친놈처럼 떨어지네.”


연전연패로 약간 긴장이 감도는 플라잉 스쿼럴스의 더그아웃과는 반대로, 씨울브즈 더그아웃엔 사뭇 여유가 맴돌고 있었다.

상대 전적 압도적 우위라는 든든한 역사적 배경에 더해, 오늘의 선발 투수 산체스가 평소의 고집을 버리고 완벽한 스위퍼로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상대 선발 투수가 이제 막 싱글 A에서 올라온 애송이라고 하니, 어떻게 요리해줄까 기세등등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첫 번째 타자가 삼 구 삼진으로 물러나고, 두 번째 타자마저 4구째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저게 대체 뭔 공인지는 몰라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야. 시종일관 저 ‘떨어지는 공’만 던져대는데, 진짜 진심으로- 맹세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각도로 떨어져.”


막 타석에서 돌아온 2번 타자, 에르네 무어의 평이었다.

더블A 2년 차, 작년 이스턴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MVP 급의 활약을 펼치기도 했던 뛰어난 재능의 교타자였다.

2라운드 전체 47위, 계약금은 188만.

모 팀인 타이거즈의 상황에 따라서는 곧 메이저리그를 밟게 되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고작 공 4개 만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돌아온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 술렁임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놈···. 저거 스프링캠프 때 3경기인가 4경기 등판한 놈 아니야?”

“넌 다른 리그 스프링캠프까지 기억하냐···?”

“씨발, 개부러웠으니까 기억하지!”


그렇게 선수들이 술렁이는 사이.

그들의 3번 타자 역시 방망이로 맥없이 허공을 가르며 삼진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공 11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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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웰컴 투 중력 월드 3 +1 24.02.18 1,173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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