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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구의 서재

아우덴스(AUDENS)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김석구
작품등록일 :
2020.11.22 00:45
최근연재일 :
2020.12.17 01:21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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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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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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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Ⅱ. 제53부대 - 2

DUMMY

휴고와 현이 물건을 한껏 들고 장비 상점을 나오자, 주인이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오며 말했다.


“고마워! 다음에 또 오라구!”


휴고는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


“네, 나중에 또 올게요. 스미스 씨.”


“에이, 우리 사이에 서운하게 그리 부르기야?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래도 누나라고 부르기엔 좀···”


휴고는 난처한 눈치였다. 아무리 동안이라도 부모뻘 되는 사람한테 누나라고 부르기는 역시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그가 말끝을 흐리며 주저하자, 스미스는 눈쌀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노려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휴고의 시선은 한동안 방황하다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현을 향했다. 휴고의 시선을 따라, 스미스는 고개를 돌려 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졸지에 가만히 있던 그에게로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에? 나는 왜?”


“맞아! 너도! 왜 나한테만 레이첼 씨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한텐 싹싹하게 굴면서!”


“그건, 저기···”


현 역시 스미스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 원치 않게 검을 내어줘야 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듯 했다. 어색하게 얼버무리던 현이 휴고와 눈을 돌려 휴고를 바라보자, 휴고 역시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뜻이 통한 듯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내 말 듣고는 있어? 어, 너희들 뭐···”


“안녕히 계세요!”


레이첼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뒷걸음치던 둘은 짧은 인사만 남기고 들고 있던 새로 장만한 장비가 든 자루 안에서 짤랑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둘은 시계탑이 있는 광장에 도착해서야 벤치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차올랐던 숨이 진정되자, 현이 말을 꺼냈다.


“후우, 정말이지, 레이첼 씨는 몇 번을 봐도 부담스럽다니까.”


“그러게.”


현의 한탄에 휴고가 동조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많이 살 필요 있어? 무기는 좋은 것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어차피 에이드로 웬만한건 보완이 되고 말이지.”


현은 가슴팍의 뱃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뭐가 맞는지 몰라서. 사실 이게 제일 손에 익긴 한데, 이걸론 무리잖아.”


휴고는 주머니칼을 꺼내 보여주며 받아쳤다. 그러자 현은 납득하지 못한 듯 다시 물었다.


“그런 것 치곤 사는 무기가 다 원거리인데? 이것 봐, 총에, 활에··· 근접 무기라곤 하나도 없잖아?”


현이 장비가 든 자루를 열어 들여다보며 말하자, 휴고는 주머니칼을 집어넣으며 답했다.


“지난번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지난번이라니, 처음 나갔던 그 때?”


“그 때, 괜찮은 원거리 수단만 있었어도 그렇게 죽을 뻔까지 안 가도 됐어.”


곱씹을수록 뼈아픈 기억이었다. 뒤늦게 현에게 원거리 기술이 있다는 걸 알아 어떻게든 하나를 처리했다 해도, 이어서 나온 두 번째 녀석에게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해버린 것은 아무리 첫 출장이라고 한들 넘어갈 순 없었다. 만약, 그 때 전투의 음성이 로타스에게 닿지 않았더라면, 그가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지금쯤 둘 다 이 세상에 있진 않았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긴 듯 말하는 휴고를 보며, 현은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두 손을 들어 뒤통수에 올리며 일어났다.


“읏차, 뭐, 그렇다면 그런거고··· 어?”


일어나 앞을 향한 그의 시야에, 무언가를 찾는 듯 한 손에 종이 한 쪽을 들고 연신 주변을 살피는 소녀가 들어왔다. 셀레스트리아에서도 보기 드문 잿빛에 가까운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동자. 이 곳 슬럼블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거의 모든 주민들과 오래 본 사이 마냥 스스럼없이 지내게 된 그에게도 낯선 그 소녀의 얼굴을 보더니, 현은 옅은 미소를 띄우며 발걸음을 뗐다. 그가 걷기 시작한 것을 포착한 휴고가 한마디 던졌다.


“또 ‘모두의 친구’ 납시셨네.”


“뭐, 그렇지. ‘누구든 곤란하면 도와줘라.’ 이게 내 신조니까.”


휴고는 한숨을 쉬며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매번 대단한 오지랖이라니까. 그러다 나중에 크게 데인다?”


“헤헤. 상관없어. 진심으로 대하기만 하면 그럴 일은 없으니까!”


매번 듣는 휴고의 틀에 박힌 충고 따윈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은 소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은 소녀가 종이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현은 최대한 상냥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저기, 뭐 찾는 거라도 있어?”


현은 이제껏 그래왔듯, 자신이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만큼 상대도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대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에게 의외의 반응이 날아들기 전까진.


‘짝!!!!’


너무나도 경쾌한 소리가 시계탑 광장 전체에 울려퍼지자, 곳곳에서 바닥을 쪼던 새들마저 놀란 날개를 푸덕이며 솟구쳤다. 휴고 역시 그 ‘모두의 친구’ 현이 그런 대우를 당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한 손으로 얻어맞은 뺨을 감싸며 굳어버린 현을 보며, 소녀는 입을 열었다.


“친한 척 말 걸지 마세요. 마그나인.”


“에···?”


“오, 있다, 있어! 안 늦었구만!”


멀리서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로타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셋의 시선이 막 도착한 그에게 향하자, 그는 입을 열며 휴고와 현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꺼냈다.


“어라? 니네들 벌써 만난거냐? 뭐, 수고가 덜어서 좋지만.”


“벌써라니, 무슨?”


영문을 모른 채 묻는 휴고에게 로타스는 휴고와 현이 상상도 못한 사실을 통보했다.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얘가 오늘부로 여기 전근 온 녀석이다. 이름은 앨리스 에더마이어. 잘 해 주라고.”


“에???”


보자마자 자기 뺨을 후려친 저 싸가지를 밥 말아 쳐 먹은 녀석이 오늘부터 동료라니. 현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린 그를 뒤로 한 채, 앨리스는 로타스를 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로타스 스칼렛?”


“오, 그래. 일단 너네 대장이다만.”


“사이아스의 부하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대장을 다셨네요.”


어쩐지 비꼬는 듯한 그녀의 말에, 로타스는 분개하며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뭐? 사이아스 부하아? 뭔 말도 안 돼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애초에 말이야, 난 알비디 팔코네스 창립 멤버라고, 창! 립! 멤! 버! 사이아스 걔는 내 후배! 게다가 걔 부하로 뛰었던 적도 없어!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에, 사이아스가 대장 아니었어요?”


현 역시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로타스는 분을 못 이기는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하아··· 사이아스 고놈 참 유명하긴 한가 보네. 다들 걜 대장으로 알고 말이야...”


로타스가 침울해하며 말을 줄이자, 눈치를 보고 있던 휴고가 끼어들었다.


“저기, 휴고 스타게이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때와는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앨리스에게 현은 따지듯 달려들었다.


“뭐야! 왜 쟤한텐 그러는데! 난 말도 제대로 안 듣고 싸대기를 때렸으면서!”


“당신과 할 말은 없어요, 마그나인. 주제를 알아야죠.”


“뭐?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현이 화를 내며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앨리스는 바로 허리춤에서 왼손으로 단총을 뽑아 쏴제꼈다. 놀란 현이 주춤하며 물러서자, 그녀는 한 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더니 말했다.


“안심하세요, 공포탄이니까. 그리고 실탄이어도 에이드 때문에 죽지도 않잖아요.”


“그렇다고 사람한테 총을 쏘는 게 어딨냐?”


계속해서 따지고 드는 현을 상대하기도 싫은 듯, 앨리스는 뒤돌아섰다.


“그러니까, 마그나인과 할 말은 없다고 몇 번이나··· 꺅!!!”


여태껏 보여왔던 거만한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명소리를 내며 그녀가 휴고 뒤에 숨자, 나머지 셋은 어리둥절하며 비명의 이유를 찾아봤지만, 그들의 시선에선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던 휴고는 앨리스에게 직접 물었다.


“왜 그래요?”


앨리스는 소리를 죽인 채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웬 고양이 한 마리가 기분 좋은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오, 미미잖아. 이리 온.”


현이 몸을 쭈그려 오라고 손짓하자, 고양이는 현에게 다가가 안겼다. 이를 지켜보던 휴고가 물었다.


“아는 녀석이야?”


“응! 이 동네 명물이야! 붙임성 있고 귀여운 애지. 누구랑은 다르게.”


현은 그렇게 말하며 앨리스 쪽을 쳐다보았다. 앨리스는 미미가 무서운지 휴고의 뒤에 더 꼭 붙어 숨었다.


“하아, 뭔 하자가 있어서 여기 보냈나 했더니, 이거였군.”


로타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자라는 단어를 놓치지 않은 휴고가 물었다.


“하자라뇨?”


“말 그대로야. 여기 제대로 된 애들을 보내줄 리가 없거든. 너네들은 성적이 그래서 그렇지 그런대로 쓸만하다만··· 쟤는 저래서야 일은 제대로 하겠어?”


“제대로 된 애들을 보내줄 리가 없다니 무슨 소리에요?”


로타스의 한탄에 이해가 되지 않은 듯 현이 다시 질문했다. 미미 역시 궁금한 듯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었다.


“그거야 그거지. 애초에 53부대는 날 꼽주려고 억지로 만든 데니까.”


“에?”


놀라는 둘에게 로타스는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아직도 미미에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는 것 같았지만.


“너희들, 알비디 팔코네스가 원래는 50개 부대였다는 말 들어봤지?”


“네.”


“그래, 그렇게 각 지역을 담당하는 50개 부대를 만들고 보니까, 얘네들을 이어주거나 지역 상관없이 뛰어 줄 애들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만들어진 게 광역(廣域)부대인 게일윙이랑 스톰윙이고. 그리고 또··· 아니다.”


게일윙과 스톰윙. 질풍날개와 폭풍날개라는 뜻의, 노베라 대륙의 서부와 동부를 각각 누비고 다니는, 지금은 알비디 팔코네스의 간판과도 같은 부대의 창설 배경에 대한 것은 둘 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바였지만, 그 다음 로타스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둘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로타스는 그것을 묻어둔 채 다시 제53부대에 대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52개 부대로도 잘 돌아갔단 말이지. 그런데도 굳이 제53부대를 만든 이유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만만해지니까 꼽주려고 작정한 거지. 사라가 따라와주긴 했지만, 너희들 오기 전까지는 지금껏 제대로 된 인원 보충도 없었고, 너희들을 보낸 것도 도움이 되기보단 한 번 엿 좀 먹어보라는 심산이었겠지. 뭐, 너희 둘은 아까 말했듯이 썩 괜찮다만, 얘는 진짜 제대로 엿을 먹었네. 일단 수석으로 들어오긴 했고 에더마이어 가 사람이라 짜르진 못해서 여기 보낸 것 같은데.”


로타스는 그렇게 얘기하며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미미를 무서워하면서도 이야기는 듣고 있던 그녀는 눈을 피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웬만하면 다른데선 하진 말라고. 아, 어차피 술김에 맨날 떠들어대서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구나.”


비밀 아닌 비밀을 이야기한 로타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여튼, 이왕 이렇게 된 거 친하게들 지내라고. 그럼 난 간다.”


“아니 잠깐만요! 그건 그렇다 쳐도 얘랑 어떻게 친하게 지내요!”


돌아서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만 흔들며 대충 인사하며 떠나는 로타스에게 현은 도저히 앨리스와는 친해질 자신이 없었는지 따졌지만, 그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듯 그는 멀어져만 갔다. 그가 사라지자, 셋 사이에는 미묘한 분위기만 남아 공기를 더욱 무겁게 했다. 심각한 셋과는 반대로 미미는 현의 품에 안겨 느긋하게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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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Ⅱ. 제53부대 - 4 20.12.14 4 0 11쪽
8 Ⅱ. 제53부대 - 3 20.12.13 5 0 11쪽
» Ⅱ. 제53부대 - 2 20.12.10 7 0 12쪽
6 Ⅱ. 제53부대 - 1 20.12.08 13 0 9쪽
5 Ⅰ. 알비디 팔코네스(Albidi Falcones) - 5 20.12.06 11 0 10쪽
4 Ⅰ. 알비디 팔코네스(Albidi Falcones) - 4 20.12.02 7 0 12쪽
3 Ⅰ. 알비디 팔코네스(Albidi Falcones) - 3 20.11.27 9 0 12쪽
2 Ⅰ. 알비디 팔코네스(Albidi Falcones) - 2 20.11.25 9 0 7쪽
1 Ⅰ. 알비디 팔코네스(Albidi Falcones) - 1 +2 20.11.22 26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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