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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고양이의 안방입니다.

괴수는 그림자 속에 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안방고양이
작품등록일 :
2020.04.18 19:28
최근연재일 :
2020.12.11 20:47
연재수 :
87 회
조회수 :
69,670
추천수 :
1,955
글자수 :
450,904

작성
20.06.23 14:34
조회
791
추천
23
글자
11쪽

법국 (1)

DUMMY

수도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무질서한 인파란 겉모습일 뿐, 그 속에 숨겨진 규칙성을 깨닫는다면 이보다 불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명이 저희 뒤에 따라붙었어요.”

“들킨 건가?”

“아뇨. 그냥 외국인 모두에게 붙는 거 같아요.”


오페라의 말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를 포함한 다수의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시민, 혹은 경비인 척하는 그들의 모습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속을 수밖에 없으리라.


“따로 감시를 붙이는 걸 보니 개개인끼리 연동은 안 되는가 보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인력이 남아돌면 이딴 짓을 하는 걸까.”


한 사람당 한 명.

수도로 찾아오는 관광객만 치더라도 몇천을 될 텐데. 그야말로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이 주변도 좀 구경하도록 할까?”

“아, 저기 재밌어 보이는 게 있어요.”


뭐가 되었든 우리가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나와 오페라는 근처 숙소를 짐을 풀고, 다시 밖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뒤따라 붙는 자신들은 정말 감시를 위한 것인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감시를 위해 그 많은 사람을 쓴다고? 왜?”

“왕자님 저기도 한번 가봐요.”

“어디?”


아무렴 어떠랴.

오페라가 내 손을 잡고서 이끌었다.

그곳은 관광객을 위한 사진관으로, 전통 예복에서부터 결혼식 복장, 혹은 꽤 노출 있는 댄스복까지 갖춰져 있었다.


“굳이 여기를 들러야 할까?”

“예, 놈들은 시선을 분산할 겸 해서 말이죠. 모처럼 왔는데 둘러보지 않는다면 되려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감시자들도 내부까지는 쫓아오지 않는 모양이고요.”

“그것도 그렇네.”


그녀의 말은 타당했다.

가게로 들어서자 점원이 다가오며 당연하게도 여성복을 권유했다.


‘그래, 지금 나는 여자다.’


눈을 질끈 감고서 숨을 뱉었다.

그냥 구경만 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오페라 쪽을 돌아보자, 그녀는 괜찮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아니 도와달라고.


‘효율적인 잠입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부득의 한 일이다.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결심을 다지고 있던 사이, 먼저 옷을 고리고 있던 오페라가 나를 탈의실로 끌어당겼다.

다행히 점원은 다른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우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뭐 이상한 거라도 발견했나?”

“저기 보세요. 카메라가 있어요. 마이크는 따로 보이지 않고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과연, 천장 구석에 작은 소형 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다.

손님이 옷 갈아입는 걸 찍는 건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촬영이라. 악취미네.”

“자애로운 법황이라는 칭호가 무색하네요.”

“오페라 시간을 끌어라.”


오페라가 탈의실 밖으로 나가 주변을 확보했다.

나는 그림자를 움직여 순식간에 건물 구석구석을 차지했으니, 2층의 거주 장소와 함께 카메라와 연결된 컴퓨터를 확인했다.

컴퓨터를 부수고, 카메라를 뽑아 살피자 따로 내부 저장도 가능한 종류였다.


“됐다 오페라. 이걸로 도촬은 없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탈의실 밖으로 나가니, 오페라의 손에 여러 가지 옷들이 들려있었다.

아까 봤던 전통 복장에서부터 단순한 여성복, 혹은 개량된 신관복까지.

그녀가 갈아입을 수 있도록 피하니, 오페라는 옷 무더기를 오히려 내 쪽으로 내밀었다.


“구경만 하고 나가면 안 될까?”

“저희는 관광객이에요.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의심할지도 모른답니다?”

“그, 것도 그렇네?”


여성 둘이 쇼핑을 온다면 이런 것인가?

오페라가 그렇다고 하니 아마도 맞는 거겠지.


나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방금 찾아낸 카메라가 오페라의 손에 들려있었다.


“설마 그거 찍고 있는 거야?”

“예 물론이죠. 다 필요한 일이랍니다.”


오페라는 생글생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딱히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확신에 찬 그녀의 모습을 보니 믿기로 했다.

거기다 초능력으로 그녀의 속내를 확인해도 진실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니까.


잠시 후, 우리는 꽤 시간을 소모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하반신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저기는 어떤가요?”

“어? 어어···.”


이후로도 오페라의 뜻에 따라 많은 곳을 구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뒤를 쫓는 감시자들을 위해 여러 길로 꼬아 움직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붙어있었다.

힘들어하지 않고 지겨워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로봇처럼 움직였다.


“슬슬 배고파지는데.”

“그러고 보니 구경한다고 아무것도 먹질 않았네요.”


마침 길거리에 음식을 파는 곳이 보였기에 가볍게 허기를 때우기로 했다.

핫도그를 구매하고 한 입 먹자, 입안에 터지는 듯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법이 걸려있어요. 미세하지만 음식에 섞은 모양이네요.”


동시에 오페라가 말했다.

음식에 마법을 걸 수도 있는 건가?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별로 좋은 맛은 아니네요.”

“이런 길거리 음식까지 작업을 치다니.”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자국민들 모두에게 세뇌를 걸었다고 했을 때, 법국 전체를 통솔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정말 머리만 바꾸면 된다는 소리네요.”

“그렇다면 더 편해지겠네.”


법황만 치운다면, 체계만 유지한 체 법국 전체를 삼킬 수 있다는 소리.

오페라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라며 기뻐했다.


“와 저기서 공연을 하나 봐요.”


하지만 그것도 이후의 일. 나는 오페라의 손에 이끌려 법국의 병사들이 열에 맞춰 지나가는 퍼포먼스를 구경했다.

오열 횡대로 늘어진 병사들은 아주 긴 줄을 만들고서 도로를 거닐었다.

시민들은 고개를 숙여 존경과 감사를 표했고, 구경하는 관광객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중앙에는 흰색 오픈카에 탑승하여 호위를 받는 사람 또한 보였다.

척 보기에도 중요한 위치의 사람.


“저 사람이 법황인가?”

“아뇨 저 사람은 추기경 중 한 명이에요. 아데ㆍ돌, 법황의 최측근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잠시 초능력을 발휘해 그의 감정을 살폈다.

병사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인형과 같은 그들에게는 ‘신뢰, 복종.’ 밖에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눈앞의 추기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뢰, 복종, 통솔.’


“예상대로 들어맞았어. 저놈도 마찬가지야. 법황만 처리하면 다 끝나겠군.”


뭔가 추가되어있었지만 그뿐이다.


우리는 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 이동했다.

두 감시자를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쉽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공중화장실로 들어갔다.

오페라와 눈빛으로 소통하고서, 나는 공간이동을 이용해 옆 남자 화장실로 움직였다.


그곳에 마침 볼일을 보던 사람이 있었기에 그의 뒤에서 기습했다.

생리 활동만 허용된 인형.

그의 목을 그어 목숨을 빼앗은 뒤 시체를 삼켰다.

그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밖으로 나왔다.


“가시죠 왕자님.”


동시에 현지인으로 변장한 오페라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였다는걸 잘도 알았네?”

“예, 그거야 요령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감시자들을 따돌렸다.


나는 오페라와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봤던 것들이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감시자들의 역할은 이것 때문이었군요.”

“마치 세상이 바뀐 거 같네.”


인형이라고 여기던 사람들과 로봇처럼 보이던 병사들.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톱니바퀴처럼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관광객, 아니 감시자들이 근처로 다가오면 얼굴에 미소를 만들고서 움직였다.


“감시자들이 관광객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모양이에요.”

“그러니 우리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건가.”


관광객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싸늘하고 무표정한 로봇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구경했다.

지금까지 봤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 이상향에서, 인적이 없는 인형 도시로 떨어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기 봐. 아까 봤던 병사들이야.”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정말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였나 보네요.”


아까 지나쳤던 병사들.

그들은 건전지 없는 장난감처럼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관광객마다 사람을 붙인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흑과 백이 섞인 신도 복장.

그들의 행동을 보아 단순한 인형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놈들은 뭐지?”

“본래라면 이단 심문관으로 알려진 사람들이에요. 법국에서 경찰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죠.”


“문제 있습니까?”


심문관이 다가와서 물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면이나, 숨기지 않는 철봉은 이쪽을 위협하는 듯했다.


나와 오페라가 잠시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오페라가 앞으로 나서 그들과 말을 나누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머리도 어지러워서, 뭐가 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귀의 유혹에 당한 모양입니다. 자, 대 예배당으로 가서 법황님을 만나보십시오. 그분께서 길을 인도해 주실 겁니다.”

“마귀라니. 저, 저희 같은 사람들이 가도 괜찮을까요? 법황님께 폐가 되는 건 아닐지.”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법황님께서는 방황하는 어린양을 모른 척 할 리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와 오페라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단 심문관들은 신의 축복이 함께하라는, 교인다운 말을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대 예배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가서 다시 세뇌받으란 소리군.”

“저들은 세뇌가 풀린 사람들을 찾는 역할인가 봐요.”

“물론 말로 끝나지 않았겠지?”

“예, 감시가 붙었습니다. 이번에도 두 명이에요.”


그녀가 곁눈질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자 방금까지와 달리 시민들의 표정이 살아 움직였다.


“그럼 볼 것도 다 봤으니, 법황에게 가볼까.”

“어떤 환영 인사를 해줄지 기대되는걸요.”


내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저물고 밤이 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늘어지고 촉수가 내게 속삭였다.


이제 악령이 날뛸 시간이 다가왔다.




오탈자와 설정 오류, 피드백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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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적색 괴수 (2) 20.08.12 481 9 11쪽
51 적색 괴수 (1) 20.08.08 50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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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견습 (2) 20.07.16 594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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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조우 (2) +2 20.06.30 689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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