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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8.22 11:33
최근연재일 :
2017.08.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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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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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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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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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마을로 들어오는 그를 처음 발견한 농부는 그를 항상 보곤 하는 용병들이나 현상금 사냥꾼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덩치는 보통 사람의 두 배 이상 되었지만 추위를 막기 위한 로브와 얼굴을 감싼 붕대는 넝마 수준이었고 어깨엔 맨 자루는 다 낡아빠져 구멍이 숭숭 뚫린 데다가 홀쭉하게 줄어 있는 것이 마치 공기 빠진 돼지 방광 같았다. 낡아빠진 장대 같은 창은 또 어떤가. 자루 끝에 색이 바란 구슬 장식과 낡아빠진 깃털 장식이 달려 있다. 다른 사람들이 봤더라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었다.

날 끝은 보기 싫어 애써 눈을 돌리고 쟁기를 쥔 손에 힘을 실어 땅을 내리찍었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던 것이 병사로 차출되었다가 날붙이에 난자되어 핏기 없는 얼굴로 돌아온 뒤론 그 따위 것들은 더더욱 보기 싫었다.


마치 몇 차례의 전투를 치르고 패배한 패잔병 같은 모습은 쟁기를 들고 언 땅을 파헤칠 뿐인 농부도 그를 무시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지역에서 용병이나 현상금 사냥꾼이라 하면 대체로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불량배들이 자기 실력도 가늠하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다가 죽어버리는 쓸모없는 이들을 뜻하기도 했기에 신경 쓰면 귀찮아지고 신경 쓰지 않아도 시비를 걸어와 귀찮게 하는 존재일 뿐. 도움이라고는 하나 되지 않는 부류로 농부의 입장에선 그냥 뒤돌아서서 아스카난 산의 만년설에 몸을 파묻고 죽어주면 좋을 것이었다.


물론 식료품점을 겸하고 있는 농부의 집에서 건조 식량 따위를 사준다면 농부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손님이었겠지만 아스카난 산의 얼음 나무가 심통을 부린 탓에 한 달은 일찍 냉기가 내려와 작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당장 내일 먹을 것도 아쉬운 상태였기에 팔 물건은 극히 적었다.

농부는 단정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며 주변에 시비나 걸면서 거들먹거리지 않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물건을 살 것이 아니라면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판단과 보기도 싫은 날붙이를 시선에서 떼어내고자 단단히 얼어버린 땅에 쟁깃날을 쑤셔 넣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

그런 그가 농부에게 말을 걸기 전까진 말이다.


“저기. 실례지만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늑대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낡은 붕대로 칭칭 감아 눈만 보이는 얼굴은 어딘가 좀 이상했지만 화상 따위를 입고 흉해진 얼굴을 가린 것이라면 차라리 그 모습이 나을 것이었다.

언 땅에 쟁기가 제대로 박힐 리 없었다. 일하는 중에 누가 말을 거는 것은, 특히 거들먹거리기만 하는 용병이나 현상금 사냥꾼들이 말을 거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지만 다른 자들과 다르게 공손이 대화를 청해왔으니 인사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일이었기에 농부는 언 땅에 쟁기를 박아 넣은 채 자루에서 손을 뗐다.


“무슨 일인가?”


물건이라도 사려는 것일까? 아니다. 본적 없는 행색이니 자신이 뭘 운영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마을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자신을 찾았겠지만 마을 밖에서 온 처음 보는 행색의 사람이 자신을 알아 볼 리 없었다.


“현상금을 수령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 지요.”


그제야 농부의 눈에 창에 매달린 둥그런 물건이 들어왔다. 천에 감싸여 있었지만 아래쪽에 피가 묻어 있었고 그 형태나 크기를 봐선 자른 머리를 담은 것이 분명했다.

이름 낮은 도적의 머리라도 베어 온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농부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손을 뻗어 관청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곤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언 땅을 다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드럽게 해두지 않으면 곡식을 심을 수 없다. 더군다나 아스카난 산의 산자락에 있는 차가운 땅이니 더더욱 할 수 밖엔 없는 일이었다.

이 땅에 터를 잡은 조상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양이나 염소 따위가 먹을 풀과 이끼 정도는 얼마든지 잘 자라는 땅이다. 그걸 목적으로 이곳에 자리했던 조상들은 그 작은 축복에 감사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도 어릴 적엔 부모가, 부모의 부모가, 그 그보다 더 오래된 부모가 그랬듯 양과 염소를 치며 살아왔다. 잘못된 것은 토지와 기후를 읽지 못하고 곡식을 키우라는 지침을 내린 쪽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책상에 앉아 몇 줄의 공문을 적어 내리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한심한 일이지만 읽지도 못하는 글로 내려온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힘이 없을 뿐이었다. 농부도 힘이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름도 모를 창잡이가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지그시 뜨고 그 행동과 모습을 관찰했다. 누군가 싶었더니 죽은 아들이 남긴 손자였다. 손자가 그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손자의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농부는 시답잖은 일이 더 벌어진 것인가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졌지만 손자에게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난한 농부의 주머니 사정이 다 그렇지. 농부는 주머니에서 손을 뺀 뒤 손자를 맞이했다.


“할, 할아버지! 할아버지!”

“뭐냐. 영주님 무릎이라도 까진 게냐?”

“그, 그게에에!!!”

“뭐? 입 모양은 바르게 하고. 목소리는 알맞게 내라.”

“그라드 필라스!!!”


늑대를 닮은 머리, 사람의 몸과 짐승의 발톱, 웃기지도 않게 체계적인 언어를 갖추고 무술까지 쓰는 죄 많은 것들 중의 하나. 소라도 물어간 것일까. 하지만 손자의 뒤에서 나는 환호성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놈들은 곡식에 관심 없잖냐. 망할 샘슨네 소라도 물고 갔다더냐? 아니면 고귀하신 영주님 아들이라도 물어갔다더냐?”

“사냥꾼이 그라드 필라스를 잡았다고요오오!”


사냥꾼. 머리로 보이는 것을 들고 간 것은 길을 물어본 창잡이 한 명 뿐이었다. 놀라거나 기뻐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이다. 자신의 수중엔 동전 한 닢 떨어지지 않는다.

입이 쩍 벌어져선 기뻐하는 손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농부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모양인지 한쪽 입 꼬리를 살짝 올린 뒤 손자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때려주곤 다시 괭이를 잡았다.


“우리한텐 아무런 소용도 없는 거다. 닭 모이는 다 줬냐?”

“아, 아직이요······”

“빨리 해! 해지기 전에 어서!”

“네, 네!”


후다닥 달려와선 후다닥 달려갔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농부는 재미있는 일이라곤 손자 한 명 뿐인데 이 일로 사냥꾼이 되겠다고 설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될 뿐 다른 것엔 관심 없었다.


농부와는 다르게 잔뜩 모인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현상금을 담당하는 관리 앞에 놓인 그라드 필라스라는 짐승의 머리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늑대와 닮았지만 주둥이가 조금 짧으며 어두운 곳에서 보면 흡사 사람의 얼굴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보통은 검은 빛의 털을 가지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백색 털이 자란다. 잘린 머리는 피에 절어 있었지만 선명한 백색이었고 결정적으로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달려있었다.

백색 털의 세눈박이 그라드 필라스.

설산의 재앙, 흰 악몽, 붉은 웃음, 교활한 백색, 등등 몇 년 전부터 그 일대에서 흉흉한 소문과 별명은 혼자서 다 만들어내고 있는 죄 많은 것 중 하나였다. 사냥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가능할 정도다.

나이가 어려 그리 강하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검은 털의 그라드 필라스도 인간의 기준으론 상당히 강해 떠돌아다니는 한 마리를 잡으려면 잘 훈련된 수십 명의 병사들과 함께하는 경험 많은 사냥꾼이 두려움을 모르는 사냥개를 풀어 교묘하게 숨겨진 함정으로 유인해야 한다.

그래도 잡을 순 있다.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자는 이제껏 없었을 뿐. 자신의 힘과 기술에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수많은 사냥꾼과 용병들이 그라드 필라스라는 강인한 생물에게 도전했지만 그 때마다 썩은 시체 냄새를 맡은 시체 청소부들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냥꾼이 행한 일은 영웅적인 업적이라 부를 수 있었다.


“이거.”


하지만 현상금을 담당하는 관리의 표정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누구한테서 뺏은 건가.”


그의 뒤쪽엔 무장한 병사들이 사냥꾼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다. 사냥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흰 입김을 뿜어냈다.


“뺏은 거라니요.”

“혼자서 그라드 필라스를, 그것도 흰 악몽을 잡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제가 혼자 쓰러트렸습니다.”

“헛소리 마! 달칸! 저 자식 버릇 좀 고쳐 놔라!”


뒷일은 병사들에게 맡긴 관리가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그라드 필라스의 머리를 다시 천으로 싸서 관사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누가 봐도 공을 가로챌 속셈이었다.


“이런 식이군.”

“이봐! 원망 하지 말라고! 얌전히 있으면 다리 하나로 봐주지!”


창을 든 병사들 사이에서 큰 전투 망치와 방패를 든 덩치 큰 병사 하나가 으스대며 걸어 나왔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 그가 달칸인 모양이었다.

덩치는 다른 병사들보다 훨씬 컸고 갑옷의 두께나 방패의 크기도 달랐다. 거기다 들고 있는 망치는 피를 잔뜩 머금어 녹슨 것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것에 맞아도 뼈가 으스러지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크기였다.


“하! 대장! 저번에 그렇게 말하고 다리 하나 완전히 작살냈잖소!”

“그 자식 자살했던가?”

“며칠 지나도 안 죽고 겨우 목숨만 붙어 있던 거 내가 편하게 해줬었지!”

“아! 맞다. 맞다! 그 자식 표정이 볼만했지!”

“저놈이 죽는데 며칠 걸릴지 내기할까!”

“난 사흘!”

“이틀도 못 갈 거 같은데! 하하하!”


병사들은 대열도 흐트러트린 채 시끌시끌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좋은 군인은 아니었다. 그나마 달칸 만이 적을 앞에 두고도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뭐, 저 녀석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라. 너도 이제 알게 될 거니까!”


망치를 높게 들더니 사냥꾼의 머리를 향해 바람같이 내리찍었다. 사냥꾼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그의 공격을 간단히 피하곤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한숨을 쉬는 순간 들고 있던 창 자루의 끝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병사의 인중에 꽂혔다. 살이 찢어지고 이빨이 부서지는 힘이 실린 찌르기는 정확하게 그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의 무지막지한 힘을 알고 있던 후열의 병사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의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귀찮다.”


사냥꾼이자 창잡이인 그가 병사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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