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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침묵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용
작품등록일 :
2015.11.06 01:21
최근연재일 :
2015.11.25 11:06
연재수 :
1 회
조회수 :
50
추천수 :
3
글자수 :
3,491

작성
15.11.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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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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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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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프롤로그 - 새장 속의 공주

DUMMY

설용 장편 소설

판타지



프롤로그 - 새장 속의 공주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을 비추었다.


그 아래 낡은 석벽, 넝쿨이 실핏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높은 첨탑의 붉은 창가엔 한 여인이 힘없이 기대어있었다.


약간은 푸른빛이 감도는 비단 같은 장발의 머릿결과 우유를 갈아 만든 것만 같은 부드러운 콧날, 빛나는 실로 짜인 것만 같은 입술, 유리 보석보다 밝은 눈동자. 아름답다는 말이 아까웠다.


달은 충분히 밝았으나, 그녀의 눈동자보다 밝지 않았으며, 별은 충분히 빛났으나, 그녀의 입술보다 빛나지 않았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신이 조각가라면 온갖 노고와 고초를 겪은 후에야 탄생한 완벽한 여성상이라 믿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그녀조차 수심에 젖은 눈으로 공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탄식했다.


“멍청한 사람들.”


오랜 떨림을 간직한 듯한 가녀린 목소리가 창밖의 바람을 타고 조용히 흘러내렸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처럼. 연약하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는 것처럼.


뒤돌아 창가에서 벗어나자 넓은 방이 드러났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그녀가 방 가운데 서자 이상하게도 방이 비좁게만 느껴졌다.


방 한쪽에는 머리 부분에 날개 달린 용 형상이 양각으로 조각된 고급스러운 침대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많은 서적과 고풍스러운 고서가 정렬된 책장이 있었다.


구석에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되어 있는 소파가 있었고, 그 앞의 탁자에는 언뜻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커피와 코를 자극하는 온갖 향신료들이 있었다.


부드러운 담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큰 벽에는 세계 각 곳의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히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서두르듯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시리아 공주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입가에 불쾌한 미소를 띠고 있는 기사였다.


그는 진한 금발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소유자였고,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과 목소리는 자칫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갑주에 박혀있는 문장과 문양으로 보아 라토엠 왕국의 근위 기사단 소속이었다.


그의 등장에 그녀는 무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굉장히 무례하군요. 야밤에 홀로 있는 여인의 침소에 멋대로 들어오다니.”


그러자 그가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멋대로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입구에서 허락을 받고 들어온 겁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끼리 허락한 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애초에 자신의 의사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고선.


“그래서, 라토엠 기사단의 캡틴이 제게 무슨 볼일이죠?”


라토엠 기사단의 캡틴이라고 불린 그는 그녀의 쌀쌀맞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느글느글한 웃음기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급히 전해드릴 말이 있어서 온 겁니다.”


순간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잠깐의 멈칫.


그녀는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약동한다. 손이 떨린다. 작은 신음을 동반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런 표정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시리아 왕국은 오늘부로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한 달 뒤, 항복에 반대한 시리아 왕족과 귀족의 처형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공중을 향해 검지를 세우며 실눈을 뜬 채, 비릿한 어조로 말했다.


“아, 물론 공주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주님께서는 콜린 왕자님의 처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을 것이기에······.”


그는 신이 난 듯 주절주절 나댔다. 하지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순간 말이 끊긴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히 네년 따위가 내 말을 끊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처한 상황을 일깨워주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곧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찬란했다.


달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비추었고 반쯤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은 그림자로는 담을 수 없었다.


밝디밝은 눈빛은 미세한 흔들림조차 없었고, 붉디붉은 입술은 단단히, 그리고 오롯이 그 위치를 고수하였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그녀는 그녀 자신이 진실로 기품 있는 공주임을, 또한 고귀한 왕족임을 자각시켰다. 그녀의 자세에서는 알 수 없는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건 후회라는 감정이었다.


그는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순간 패국의 공주라고 비웃으며 들어왔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분명 슬픔과 원망이 마음속을 휘젓고 다닐 텐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녀에게, 그러한 것조차 비웃으려 했던 자신이 꼴불견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자신만만했던 그는 어느새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긴 침묵이 이어졌고, 그 가운데 바람 소리만이 조용히 불어왔다.


차디찬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 여인에게 혼나는 듯한 표정의 기사. 이상한 광경이었다.


만약 이 광경을 궁중 악사와 음유시인이 본다면 분명 기막힌 시상이 떠올랐다고 즐거워했을 것이다.


얼마만큼의 침묵이 이어졌을까? 기나긴 침묵을 깨고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쩜 이리도 청명한 목소리일까?


그는 처음과 달리 굉장히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나직이 숨을 토해냈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를 하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끼익-하는 문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그가 사라지고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만약 침묵에도 종류가 있다면 이번 침묵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침묵일 것이다. 싸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었으니까. 공기가 진동할 정도의 무서운 침묵이었으니까.


그렇다. 슬픔이 동반된 살의 가득한 침묵이었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고, 이내 뱀이 허물 벗듯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시리아가 항복했고, 그녀의 가족, 친인척이 전부 죽는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슬픔이 눈물을 타고 흘렀다. 분명 당연한 절차거늘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원망만이 강하게 살아남아 가슴을 요동쳤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의 얼굴은 타오르듯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름답던 얼굴은 마귀처럼 변했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마치 피가 흐르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분노가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무섭도록 변한 그녀는 잔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자 울상을 지어버렸다.


“아아, 신이시여, 당신이 정녕 존재한다면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도대체 왜······.”


그녀는 말꼬리를 흘렸다. 그저 자신의 원망 섞인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빌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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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새장 속의 공주 15.11.25 51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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