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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가수 납치사건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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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단하[丹霞]
작품등록일 :
2016.05.23 09:43
최근연재일 :
2016.05.23 11:37
연재수 :
8 회
조회수 :
1,476
추천수 :
8
글자수 :
18,847

작성
16.05.23 10:01
조회
340
추천
1
글자
5쪽

1.

DUMMY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지붕이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든 건물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 장소라면 나는 편안하게 몸을 맡길 수 있다.


나는 지붕이 그 어떤 곳보다 우리 고양이를 위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나를 지켜왔던 시종 데노는, 그러나 여전히 지붕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익숙해지지 못했다.

지붕의 가치가 인간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있다고 믿는 데노에게, 지금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야외 공연장의 지붕은 불편하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얼른 이 곳을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들로 가득한 공원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일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청소꾼들만 분주한 관객석을 내려다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연장은 이제 비었지만, 여름밤을 뒤흔들었던 열기는 아직 다 식지 않고 바람에 실려 내 코끝을 간질이고 있다.


서진우의 전국 공연 일정에서 야외 공연은 오늘이 유일했다.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서 그의 공연을 지켜본 직후의 여운을 조금 더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데노는 그런 시간을 나와 함께 향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습니다. 왕자님. 우린 이제 떠나야 합니다."


떠나야한다 함은 물론 이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곳은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왕자님의 의무를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늘 같은 이야기이지만 다른 때보다 훨씬 조급한 어조였다.


"당장 돌아오라는 왕의 엄명이십니다. 어기시면 결국 왕자님은 왕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나보다 더 나의 왕위 계승을 열망하는 데노. 그의 기대를 꺾으면 결코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분은 이제 괜찮을 겁니다. 오늘 공연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왕자님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분이십니다."


데노의 말처럼 오늘 서진우는 한결 편안해보였다.

첫 공연 때 팽팽하게 그를 감싸고 있던 부담과 긴장감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열광적인 관객들의 반응에 어느 정도는 행복한 듯도 보였다.


하지만 그를 두고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한바탕 소동극처럼 요란하다.

지구에 발을 붙인 지 사십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른다.

너무 쉽게 움직이고, 너무 쉽게 달아오르고, 너무 쉽게 가라앉는다.

지구에서 사는 동안, 인간이 얼마나 쉽게 등 돌리는 동물인지를 알게 된 나는 데노의 말에 온전히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리 고양이들은 부화내동하지 않는다.

가장 하찮은 위치에 있는 고양이들조차도 자신의 옆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리를 허락받아 차지한 이는 영원히 그 자리의 주인이 된다.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그의 노래를 상기한다.

용광로의 불길처럼 뜨거웠던 그의 노래는 아직 내 고막에 달라붙어 있다.

그가 유년 시절 불렀던 동요가 불멸의 입자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내 귓가에 머물고 있듯이.


한 남자의 삶의 고백에 다름 아닌 그 노래들은 언제니처럼 신경의 줄을 팽팽히 잡아당기고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공연장에 모인 인간들은 소리 지르고 뛰어 올랐고 울음을 삼켰다.


나는 그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을 뿐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한숨은 인간들의 백 마디 외침보다 파장이 길다.


"왕자님. 왕께선 이제 연로하십니다."

"나도 알아."


나는 별들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중 하나가 내가 떠나온 별이다.

이 미개한 별에서 길고양이로 살면서 십년 동안 방랑의 시간을 견디는 것은 왕자들이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함께 왔던 형제들은 돌아갔지만 나는 수련기간의 네 배가 넘는 시간이 진난 뒤에도 귀환을 미루고 있었다.


향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고 아름다운 나의 별,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민하고 유연한 고양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 곳엔 지붕이 없었다. 음악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가 없었다.

데노의 간절한 애원이 담긴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자신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데노."


데노의 눈이 가늘게 옆으로 퍼졌다. 불만스러울 때 그의 눈은 저런 모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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