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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독끠 님의 서재입니다.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

웹소설 > 일반연재 > 중·단편

흰색코트
작품등록일 :
2020.07.19 22:28
최근연재일 :
2020.11.20 05:41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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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32,257

작성
20.07.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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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헌터의 하루

DUMMY

5:27


깨어난다.

잠시 눈을 더 붙이고 있는다.


삐- 삐- 삐-


알람을 끈다.

일어난다.


솨아-


물이 타일에 부딪혀 피부로 튀어 오른다.


샤워를 한다. 물 온도는 차갑다. 그래서 손을 먼저 넣고, 잠시 후 발을, 허벅지를, 머리를 넣는다.

그러면 약간 시림이 익숙해진다.


그다음 근육을 수축했다 풀었다 하며 운기(運氣)한다.

그러면 대충 시림을 견딜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등을 넣는다. 이후 양치질을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나온다.

아직 면도할 때가 되지 않았다.


트따따따따-


불을 켠다. 냄비를 올린다. 보급용 식량을 하나 꺼내 넣는다.

감자와 옥수수가 대충 버무려진 스프.


데워질 동안 어제의 설거지거리를 씻는다.


음식이 따뜻하게 데워지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내 수저와 그릇 반대편에 두 쌍의 수저와 그릇을 올려놓는다.


반대편 벽에는 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수저를 들며 그들을 향해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다 먹은 후 음식을 치운다.

물에만 담가 둔 후 집을 정리한다. 이불을 정리하고, 밤사이 쌓인 먼지를 닦고, 바닥을 쓸고, 널어두었던 빨래를 개어서 서랍장에 넣는다.


그러면 검던 하늘이 서서히 푸르게 변한다.


기저귀, 내복, 외복을 입는다. 코트를 걸친다. 검을 챙긴다. 현관에 쭈그려 신발을 신는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뒤돌아보며 중얼거린다.


“다녀올게.”


문을 닫는다.


눈이 내렸다.


4층에서 계단으로 내려가 거리로 나선다. 곳곳에 얼어 죽은 자들이 눈에 띈다. 오전 내로 치워진다. 차고로 내려가, 열쇠로 문을 열고, 흑색의 오토바이로 간다.


가지고 나와, 차고를 잠그고, 시동을 건다.


그때 다가오는 자들이 느껴진다.


팔목이 잘려 뭉툭한 자.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자.

그저 추레한 행색의 청년.

그 외 열일곱 명.


아무도 말하지 않고, 그저 내 앞에 엎드려 양손을 내민다.


나는 지갑에서 지폐 전부를 꺼내 내려놓는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그들은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가만히 있다가, 한 사람이 일어나 숫자대로 나눠놓는다. 지폐의 수와 맞아떨어지지 않자, 청년을 비롯한 몇몇이 물러나고 남은 이들이 가진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운전에 집중한다.


예전에 한 번 나에게 바짓가랑이를 잡고 구걸한 이가 있었다.

그의 손을 잘랐다.


예전에 한 번 나의 집 앞에서, 손만 내밀고 무릎을 꿇은 채 구걸한 이가 있었다.

그에게 돈을 주었다.


예전에 한 번 여러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가기도 전에 서로의 돈을 뺏었다.

빼앗으려 드는 이를 모조리 죽였다.


예전에 한 번, 내가 간 이후 그들의 돈을 뺏는 이가 있었다.

이제까지와 다르게 처절하게 죽였다.


그 이후로는 대충 나의 방식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릎쓸 만큼 절실한 이들은 철저히 규칙을 지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도시를 달리던 도중 도심을 달리는 사내의 경로가 나와 겹치는 듯했다.

나는 잠시 속도를 줄여 그들의 추격전을 바라보았다.


이내 사내는 잡혀 사내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사내들은 사내의 품에서 주먹밥을 꺼냈다.


죽일까. 고민하다가, 귀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사내들 중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야, 야...!”


“왜?”


“저기 미친ㄴ..아니 헌터 있다.”


“뭐?”


나는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잠시 얼어 있다가, 그들이 구타한 사내의 품에 다시 주먹밥을 넣어주고는 공손히 인사한 후 도망쳤다. 잠시 후 쓰러져있던 사내도 나에게 인사한 후 도망쳤다.


나는 다시 출발한다.


군부대에 들어간다. 신분증을 주고, 통과 받고, 담당 군인한테 어젯밤의 특이사항과 변경점, 그리고 사냥감의 위치 등을 듣는다.


이후 장비를 착용한다.


철걱-

강화플라스틱 재질의 흑색 갑주가 단단하게 맞물린다.


“시체가 하나 줄기를.”


“시체가 하나 줄기를, 형씨!”


그렇게 10년째 일상을 이어나간다.


도시 밖.


덜덜거리는 흑색의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한다. 자동차는 안 된다. 혹시라도 습격을 받으면, 곧바로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스쳐가는 속도감. 바람을 뚫고 달리는 도로는, 어딘가 통쾌한 면이 있다.


그렇게 10분가량 달리다보면 도로 상황이 점차 좋지 않다. 아스팔트는 갈라지고, 부서지고, 울퉁불퉁하며 가끔은 죽은 동물도 존재한다.


속도를 줄인다. 10분을 더 달리면, 광화대교가 나온다. 그 끝에 검문소가 있다.

이 이후부터는, 도로가 없다.


“잠시 신분증 검사하겠습니다.”


신분증을 내어주고, 기다린다.

하늘은 파랗다. 구름이 예쁘게 끼었다.

숲은 우거진다. 그 사이사이에 저격수가 끼어있다.


“네. 통과되셨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걷는다.


몬스터 웨이브, 혹은 규격 외 괴수를 대비한 2차 방어선이다. 20km에 걸쳐 저격수가 엄폐한 채 경계한다. 군인이며, 대략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이다.


만약 3급 이상의 괴수가 오면 죽는다.


그들 모두를 인지하며 걷는다.


두근, 두근. 심박이 빨라짐을 느낀다.

감각이 확장되며 예민해진다.

나뭇등걸에 숨은 딱정벌레, 바람결에 떨어지는 나뭇잎, 스물다섯걸음 북동쪽에 위치한 살쾡이를 확인한다.


걸음은 점차 빨라지다, 이내 질주하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와 나무 사이를 달린다. 그러다 땅 아래에서 숨어있는 괴수가 느껴지면,


가가각-


칼을 뽑아 땅 아래를 긁으며 지난다.

흙에 피가 스며든다.


세상 어디에 괴수 없는 곳 있을까.

세상에 괴수 없는 곳 어디 없을까.

철없는 인턴사원이 될 수 있었던 과거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아내를 만나기까지 추억이 전개될 때쯤,


-쿠륵?


추억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날리는 흙, 잘리는 나무, 그 사이 위치한 오늘의 원수.

그 피가 흩뿌려진다.


하나.


방향을 바꾸어 달린다. 그 최단거리 사이에 위치한 작은 원수들을 갚는다.


열셋.


-크어어어!


인간의 형태를 한 회색 비늘의 새빨간 눈이 공포를 드러낸다.

그런 괴수를 세 조각내며 질주한다.

다음 괴수에 내가 닿을 때쯤에 그 괴수는 땅에 닿는다.


오십다섯.


육십하나.


칠십아홉.


팔십셋.


구십,


그리고


일백.


그제서야 질주를 멈춘다. 길게 긁힌 땅이 가가각- 괴로움을 내지른다.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걸어갈 길을 바라본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속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느낀다.

한 번 숨을 크게 마시며 몸밖에 다가오는 기의 동작을 느낀다.


달려온 경로 근처에 존재하던 괴수들이 그 살의를 못 이겨 못 이길 상대에게 달려오는 광경은,

마치 평화롭던 일상이 죽은 한 남자의 직후와 같다.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남자가 그 가족을 못 지켜 못 정한 대상에게 복수하는 모습은,

마치 도심에서 미쳐 날뛰던 한 괴수의 모습과 같다.


그러니 저들과 나 사이의 차이는 없는 것이었다.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숲 속 그들의 거처의 침입자에게 분노하는 입주민들 앞에서 나는 칼을 벼렸다.


저들이 했던 대로,

가족이 죽은 대로,


반으로 잘려 죽어라.


나무들이 무너진다.

상반신이 무너진다.


그 진원지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직 죽여야 할 것들이 많다.

나의 가족을 죽인 것들을 죽여 그것들이 죽인 감정에서 태어난 감정을 죽여야 했다.

마땅히 죽어야 할 것들을 죽이기 위해,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피에 절은 장비들을 맡겼다.


“오늘자 정산은...”


“알아서.”


“네. 푹 쉬십시오.”


말이 날카롭게 나왔다.


나는 오토바이 앞에 섰다.

타기가 싫다.

나는 곧장 그 이유를 알았다.


아직, 붉은 감정이 남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손은 하나의 검격조차 버거워하지만,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잠시 오토바이 곁에 앉았다.

땀에 절은 옷자락이 질척거렸다.


그 상태로 얼굴을 감쌌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말을 걸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동시에 들었다.


살인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선택지다.

아니, 사람을 이용한 감정조절이 매력적이라 하는 편이 낫겠지.


타인을 힘으로 강압하여 그를 두렵게 만든다는 것은, 본능적인 승리감과 괴수에게선 느낄 수 없는 정복감이 있다.


나는 과거에 그러한 짓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또다시 그러한 짓을 할까봐, 말을 걸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간의 교류가 그립기도 했다.


내가 이만큼 힘들다고, 위로해달라 털어놓으면 그것을 들어줄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한 번 가졌었던 기쁨은 사라졌을때 더한 존재감을 내쉰다.


그러나 심각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10분만 있으면 된다.


익숙한, 일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온다.


따뜻한 물으로 샤워를 한다.


저녁을 먹으며 과거의 행복을 바라본다.


어쩔 때는 저 사진 속 얼굴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그 사진 속 얼굴들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저 고정된 모습이 어떤 다채로운 모습이었는지를 회상한다.


술이 필요한 밤이다.

그러한 음료는 비싸진 지 오래였으나 그러한 궁핍은 이제 상관없어진 지 오래였으므로 이러한 날을 위하여 사두었던 음료를 꺼낸다.


고정된 과거를 향해 한 번 잔을 짠, 하고 건배한다.


술의 도움을 받아 고민한다.


사는게 지긋지긋하다.


이 삶은 언제쯤 끝날까.


그립다.


그렇게 주책맞은 생각을 하다 잠자리에 든다.


작가의말

글을 쓰는 건 참 재미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을 놓치게 되고, 무협에서나 나오던 몰아일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잘 써야 한다‘라는 강박과 ‘성공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스며들게 되면 더는 몰입할 수 없습니다.

잘 쓰기 위해선 잘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니, 아이러니하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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